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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기술자들의 정권’이라고 할 수 있는 윤석열 정부의 가장 큰 특징은 별일 아니라는 듯 쉽게 법을 무시하는 것이다. 시행령으로 상위법을 흔드는 ‘시행령 통치’나 대검찰청 예규로 헌법을 유린하는 ‘압수자료 통째 저장’ 같은 국기문란 행위를 스스럼없이 자행한다. 법을 장악하고 있다는 자신감, 이 나라의 주류라는 확신 그리고 우호적인 언론 환경이 이런 무도함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 정점에 윤석열 대통령이 있음은 물론이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헌법 제7조와 공직선거법 제9조를 대놓고 무시하는 민생토론회를 스물네 차례나 열었고, 관권선거라는 비판이 잇따르자 중단하겠다고 했다가, ‘민생토론회 후속조치 점검회의’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재개했다.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우습게 보니 다른 기관장들이 따라 하는 건 자연스럽다. 기획재정부는 ‘2023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를 총선 다음날인 11일 국무회의에 올릴 예정이다. 4월10일까지 감사원에 제출하도록 날짜까지 못박고 있는 국가재정법 위반이다. 역대급 세수 펑크로 부실해진 재정 실태가 총선 전에 주목받는 걸 피하려는 불법적 ‘꼼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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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총선에 개입하는데, 법에 없는 애매한 사안에서 몸을 사릴 이유가 없다. 편법 대출 의혹을 받는 양문석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관련해 새마을금고중앙회와 공동 검사를 자처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여기 해당된다. 새마을금고 관할 감독기관인 행정안전부도 아닌 금감원이 야당 후보의 결격사유와 관련해, 그것도 총선 직전에 조사하겠다고 나선 것은 정치적 의도가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렵다. 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의힘 후보였더라도 이렇게 했을까?
검찰이 지난달 7일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재수사한다며 대통령기록관을 압수수색한 것도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이었을 때 기소하지 않았던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을 겨냥한 것으로, 조 대표가 총선 참여를 결정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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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신관권선거 5종 세트는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완성한다. 미세먼지 농도 수치 ‘1’을 표기한 문화방송(MBC) 날씨 방송이 “고의성이 있었던 거로 보인다”며 법정 제재 최고 수위인 ‘관계자 징계’를 의결했다. 자라 보고 놀란 문화방송은 ‘복면가왕’ 9주년 방송 결방을 결정했다. 코미디는 계속되고 나라는 병들어간다.
이재성 논설위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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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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