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구위안부 이용수는 자신의 과거를 솔직히 고백하라!
지난 5월 7일 대구의 한 찻집에서 구위안부 이용수는 기자회견을 열어 수요 집회는 없애야 하며 이후 수요 집회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동안의 수요집회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참가한 학생들이 낸 성금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른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용수씨의 말을 믿지 않았다. 이전에도 그래왔듯이 시간이 지나면 또 말이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차츰 수요집회에 참석한다는 발언이 이어지더니 오늘 수요집회에 참석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12일이 임박한 시점에서 전 국민이 수해 등 재난으로 고생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집회에 참석하지 않는다며 또다시 말을 뒤집었다. 진정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수요집회 자체를 열지 못하도록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좌우를 불문하고 다수의 정치인들은 정대협(정의연)의 30년 위안부 운동을 여성 인권 운동의 세계적 모범 사례라고 추켜세우며, 이용수씨의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정의연 사태 때문에 30년 위안부 운동의 명성이 위협받아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우리는 이에 동의할 수 없다.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정신대와 전혀 성격이 다른 위안부 문제를 다룬 것이 그렇고, 사실관계조차 맞지 않은 위안부 정의를 근거로 제정한 위안부피해자법이 그렇고, 양아버지에게 끌려간 김학순을 일본군에게 끌려간 것처럼 호도하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정한 것 등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의연의 위안부 운동을 부정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정의연이 내세우고 있는 일본군 강제연행설이 전혀 근거가 없는데다, 위안부가 사적 영역에서 발생한 계약에 따라 이루어지는 매춘의 성격을 지닌 것이기 때문이다. 노예라면 군인들의 계급과 이용 시간에 따라 정해진 요금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문옥주와 같이 거액을 모아 그 중 일부를 고향으로 송금하는 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우리가 주목하는 부분은 구위안부들의 초기 증언이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번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 이용수가 있다.
이용수는 자신이 위안부로 가게 된 과정에 대해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1993)』에서는 ‘국민복에 전투모를 쓴 일본인 남자가 건네준 옷 보퉁이 속에 있는 빨간 원피스와 가죽구두에 마음이 혹해 다른 생각도 못하고 선뜻 따라나서게 되었다.’고 비교적 자세하게 증언했다. 이 증언에서 이용수를 위안부로 이끈 것은 바로 ‘빨간 원피스와 가죽구두’이지 강압적인 일본군의 손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증언은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달라진다.
2007년도 6월 12일의 EBS ‘시대의 초상'과 2018년 프랑스 의회에서는 어느 날 방 안에 있는데 여자아이가 창문 밖에서 손짓으로 날 불러서 나갔더니 여자아이는 손으로 내 입을 막고, 군인이 날카로운 걸로 등을 찔러서 끌고 갔다고 했다. 그리고 그 중간쯤인 2012년 영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대구에 있는 집 마당에까지 일본군이 들어와서 끌고 갔다고 전혀 다른 증언을 했다. 어린 소녀가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갔다면 이는 평생 두고 잊을 수 없는 크나큰 충격이다. 그런데 그토록 큰 충격적 사건에 대해 기억이 오락가락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이용수는 또 2016년 7월 2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 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하며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을 뽑아놨으면 국민을 사랑하고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 이건 아무것도 아니고 자기 마음대로다”라면서 한일정부간 위안부 합의에 대해 “지랄하고 있네 진짜. 협상은 무슨 협상입니까”라며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리고 “용납 못한다. 우리가 살아있는데 무슨 협상. 아무것도 없는 협상이다. 왜 무엇 때문에, 내 인생을 지가 살아주나”라며 “내 인생 돌려놔라. 15살에 가미카제 부대에 끌려가 온갖 전기 고문, 매를 맞아가지고 지금도 아야아야 죽지 못해서 이렇게(산다)”고 말했다. 열다섯 나이에 가미카제 부대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했다는 주장이다.
이와 같이 가미카제 특공대에 끌려가 전기고문을 당했다는 증언은 2016년 12월 박유하 세종대교수의 결심공판이나 2019년 11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소송 재판에도 반복된다. 하지만, 당시 대만에는 가미카제 특공대가 존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죄 없는 여인을 군부대로 끌고 가 전기고문까지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 증언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용수의 초기 증언에는 자신을 끌고 간 사람도, 자신에게 전기 고문을 가한 사람도 오야지로 부른 위안소의 주인, 즉 포주라고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가미카제 특공대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는 이씨의 증언은 신뢰할 수 없다.
또 다른 증언 번복의 사례로 이용수에게 전쟁이 끝났음을 알려준 인물에 대한 증언이 있다. 1993년 정대협 증언집에는 어느 날 통 말이 없던 먼저 온 여자 하나가 ‘나도 조선 여자다’라고 하며 조선말로 전쟁이 끝났다고 알려주었다고 했다가, 2015년 4월 한 인터넷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부대 내에서 비행기 청소일 등을 하는 대만 노무자가 담 너머에서 전쟁이 끝났다고 알려주었다고 하더니,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일본 군인이 알려주었다고 했다. 그야말로 오락가락이요 조변석개다.
지난 5월 한겨레 신문에는 정의연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가 일본과 보수진영 등에서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 ‘가짜 피해자’라는 등의 공격이 있었는데 이 할머니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시키는 대로 증언을 해왔는데 왜 나를 보호해주지 않냐’고 정의연에 서운함을 토로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용수 스스로 자신의 증언 번복이 정의연의 사주에 의한 것임을 고백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정의연의 사주가 이씨 스스로 행한 증언 번복이나 거짓말에 대한 책임을 면탈시켜 주지는 않는다.
이제 이용수는 자신의 말을 믿은 다수의 국민과 각국의 지지자들에 솔직히 고백해야 한다. 그것이 그동안의 증언번복과 거짓말에 대해 사죄하고 여생을 마음 편하게 사는 길이다. 이에 우리는 이용수에게 아래와 같이 요구한다.
1, 위안부로 되는 과정이 왜 빨간 원피스와 가죽구두에서 가미카제 특공대로 바뀌었는가?
2, 전기 고문을 가한 장본인이 왜 포주에서 가미카제 특공대로 바뀌었는가?
3, 전쟁 종식 사실을 알려준 사람은 조선여인, 노무자, 일본군인 중 어떤 사람인가?
2020. 8. 12.
위안부 진실 규명과 일본군 성노예상 철거를 촉구하는
반일동상진실규명공대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