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마트는 10시 개점이라는 데
간혹 일찍 열기도 한다는 남편의 말을 믿고
9시 30분에 집을 나섰지만
쇼핑카트로 막아둔 입구는 10시가 되어야 열렸다.
남들은 명품백 사려고 오픈런을 한다는 데
식품을 사려고
마트 문 열기를 기다려보기는 난생처음이다.
사람이 없어 한가한 마트를 쇼핑카트를 밀고 이리로 저리로 달렸다.
과일을 사고 젓갈을 사고 집에서 먹을 우유와 날짜가 임박한 호빵도 사고
시댁에서 먹을 점심으로 초밥도 샀다.
9시 30분에 문을 연다는 우리 동네 큰 대학병원 옆 죽집에 가서
전화로 주문한 네 종류의 죽을 사서
집에 미리 준비해 두었던 먹거리들이 캐리어에 다 안 들어가서
장바구니 하나 더 들고 어머니댁에 들어섰다.
쉬는 날이라
조카아이는 세수 안 한 얼굴에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나오며
'외숙모 오셨어요!" 하고
어머니는 당신의 지정석인 흔들의자에서 " 힘들게 뭐 하러 오냐!" 하신다.
지난번 한마디도 안 하셨던 어머니가 아니다.
손부터 씻고 어머니께 다가가서 만져보니
어머니가 입은 분홍색 수면바지에서 아주 예쁜 향기가 났다.
"어머니한테서 예쁜 향기가 나요!"
(시누이가 유연세제를 듬뿍 넣고 세탁을 했는 모양이다)
빙긋 웃으신다.
남편과 아들은 어머니 얼굴 한 번 쳐다보는 것으로 인사가 전부이고
(손 한 번 안 잡아주는 저런 아들이라니... )
둘이 소파에 앉더니 TV 쪽으로 눈을....
어머니는 지난번 뵈었을 때보다 좋아 보였지만
점점 쪼그라드는 체구에 쑥 들어간 눈에는 눈물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거기서 가야 하는데 다시 와서"...라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는데
이게 무슨 뜻인지 처음엔 몰랐다.
병원에서 죽었어야 했는데... 다시 집에 왔다는 말이라는 것을
몇 초 뒤에서야 깨달았다.
며느리인 내게 베푸신 것만으로 평가하면
큰 병 없이 앓다가 바로 돌아가실 정도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지만...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어머니는
오직 자신의 자녀에게 좋은 것 먹이고 깨끗이 입히는 것에만 총력을 다 기울이신 분이시다.
누가 당신 집에 오는 것도 싫고, 가는 것도 싫은
오직 당신의 귀한 자녀들과 함께라면 좋은....
그래서 우리 어머니는
늦게 시집간 시누이가 임신하고 입덧으로 힘들어한다고
신혼살림 차린 지 1년도 안 되어
집으로 불려들여서.... 여태 함께 살고 계신다.
우리 세 식구는
아침도 안 먹고 (나만 수프에 고구마 먹었다) 어머니댁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1시 넘었으니
남편이나 아이나 다 배고플 시간인데
어머니댁은 점심, 저녁 시간 맞춰서 드시는 분들이라 이미 드신 후였기에
우리만 식탁에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
혹시나 여쭤봤다
어머니 초밥 드실래요?
금방 밥 먹었다!
시누이에게 김치 꺼내달래서 국물 없이 초밥을 먹는데
새로 담갔다는 김치가 맛있어서
김치 한 접시가 금방 동났다.
조카아이는 일요일에 친구와 해외여행 간다 하고
어머니 옆에서 재미도 없는 스포츠방송을 켜 놓고
남편과 아이는 뭐가 재밌는지 웃으며 얘기하는데
난 어머니께
이 말저말 시켜도 보고
준비해 간 것 드리고 커피도 마시고 한라봉도 먹어봤다.
시누이에게는
"그 병원에는 보호자 샤워시설이 없더냐" 물었더니
위층에 있는데 코로나병동 사람은 올라오지 못하게 해서 사용 못했단다.
아가씨 고생해서 살 빠졌지?
그렇잖아도 지난번에도 아파서 51킬로라고 했던 것 같은데
몸무게 앞자리 숫자를 4로 바꿨단다.
어머니댁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드는 생각은
우리 어머니는 돈을 어디다 쓰실까?
짜장면 값을 내시나... 뭐에 쓰시려나 궁금해지면서
어머니께 돈을 드릴게 아니라 고생한 시누에게 돈을 주는 게 낫겠다 싶어서
어머니 드리되 그 액수를 줄이고 시누이를 줘야겠다고 맘먹었었다.
어머니댁에 머문 지 세시간여 지난 후
시누이에게 " 아가씨 국민은행 계좌 쓰시죠?" 묻고는
시누이 계좌로 돈을 보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체내역을 시누이 휴대폰 문자로 전송했더니
내가 보낸 송금했다는 문자를 본 시누이가 "이게 뭐예요?" 하기에
수고한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지만
애썼어요!라고 했는데.
그다음에 무슨 말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다음 말이 없다!
"뭘... 우리 엄만데 수고는 무슨..."라고 하던지
평소 말투대로.."에게 게 게.... 이게 뭐야!" 하던지.
주는 사람은 주느냐 힘이 드는데
받는 사람 입장은 또... 그런 게 아닌 거라서
수고한 것에 비해 턱없이 작아서
"고마워요"라는 말이 없는 것일까?
내 속에서는 이런다.
(뭐! 어쩌라고
너네 엄마지 내 엄마야!
나도 내 엄마였으면 지극정성으로 간호했어.
그것도 내가 안 주면 어쩔 건데.
어머니의 아들이며 너의 오빠가
내게 만원도 안 벌어다 주는데
그 정도면 내가 잘하는 것 아니니...)라고.
한 참을 흔들의자에 앉아계셨던 어머니께서
안방 침대로 누으시기에
나도 집에 갈 준비를 하며
누운 어머니 곁에 가까이 가서
손주들 잘 되는 것 보고 천천히 가세요.
기운 내주셔서 감사해요 했더니
"니들이나 잘살아"...라고 부탁인 듯 말씀하신다.
어머니가 기저귀를 여러 개 쓰신다는 말을
시누이를 통해 들으며
뭐는 조절이 되겠어
그걸 수발하는 사람이 딸이라 다행이지.
내가 모셨으면 기를 쓰고 조심하느라고
당신이 더 힘드셨을 거야.
그간 어머니가 아가씨 떠 받들어 데리고 살았으니
아가씨가 갚을 차례야!
안 드신다고... 안 드신다만 말하지 말고
뭘 좀 적극적으로 해서
이것도 드려보고 저것도 드려봐.
20240226 아직도 돈 주고 인사를 못 들어... 마음이 개운하지 않은 밴댕이 속 커퓌
첫댓글 역시나 오늘도 재밌어요
내겐 아줌마피가 흐르나
정치 경제 스포츠 얘기보다 이런 얘기가
잼나요
임신해서 힘들다고 불러들인 딸
보아하니 조카는 같이 사는거 같은데 그 아이 아부지는 오데로 갔나요 흔적이 안보임다
돈은 그래요
어머니는 또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어요 왜 저번보다 적게주지?
시누이는 예기치 못한 금액이 너무 황송해서 몰래 입째고 있을지도 모르고 메누리가 해야 할 그 간병을 내가 해줬는데 안주면 몰라도 겨우 이걸 돈이라고 주냐? 할수도 있어요
근데 님의 입장에선 하든가말든가 하면됩니다
딸라급전 내서 더주겠니? 하구요
어머니들은 아들이 말 안붙여워도 힐끔힐끔 아들 스캔 다 해요 혈색도 좋고 통통하고 옷도 따시게 입었구나 다행이다 메누라 고맙다 합니다
여긴 통영 비지니스 호텔이예요
이틀 연박중임다
편한밤 보내세요^^
어머니는 '뭘 주냐" 하며 받으셨어요.
어머니의 협탁 서랍속이 궁금하다는.
하동선님 부부께서는
사람 사는 것 처럼 사세요.
혼자서라도 가고 싶은
통영 비지니스 호텔!
조카 아부지는
길어서..,
@북앤커피 다들 이나이 무렵엔 외국돌아다니던데
저는 가난하고 무엇보다 비행기탈 자신이 없어서
국내파입니다 근데 뭘요 ㅋㅋ
@하동선 대한민국 못 본 곳이 많아서
해외여행은 바라지 않습니다.
완전 국내파 여기요!
저도 지난 주말에 울 외손주가 초등학교 입학이라서 사위에게
현금100만원을 줬는데
잘 쓰겠다든지
고맙다든지
라는 인사말을 안하더이다.
책가방과 신발가방, 점퍼도 미리 사줬거든요
인사 들을려고 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말이 없으니까 조금 서운했어요.
커피님과 제 마음이 비슷한걸까요?ㅎ
돈이거나 물건이거나
받으면 고맙다 말해야지요.
돈 안드는 말이잖아요. 말.
그걸 왜들 못 하는지...
이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그집 사위가 되어봅니다
아~ 또 돈을 주시네 받긴 받았는데 미안해서
차마 입이 안떨어져서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다
이럴수도 있구요
부자들이 더 짜구나 딴집은 책상도 사주고 하라고 3백정도 주나보던데 쓴김에 쪼금 더쓰시지 할수도 있구요
나는 이집 아들 같은 관계니까 고맙지만 뭐 어머니한테 격식 갖춰서 인사하냐 어머니는 내맘 아시겠지 만약 2번이면 가관이겠지요 아닐거예요
@하동선 울 사위가 인사치레의 말을 잘 안한다고 하더군요.
다른 분들이 음식을 해주면 고맙다거나 맛있게 잘 먹겠다거나 잘 먹었다거나 ...
그러다보니 그 이후로는 뭘 주기가 싫다는 말을 자주 듣거든요.
@꽃향기짱
그 사위가 바뀌어야 합니다.
인사치레는 안 하더라도
중요한 인사는 해야지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정도는 할 줄 알아야...
@북앤커피 큰딸이 떠나고 없어도 외손주가 있으니까
연은 계속 이어지고
명절때나 가족들 생일때,어버이날 다 잘 챙기는데
친척이나 지인분들이 돈이나 선물을 주거나 음식을 해주면 인사를 안한다고 서운해 하더군요.
그렇다고 장모가 시키기도 그렇고요.
돈이 작든 많던 받았으면 고맙다는 말은 해야죠 잘 보고갑니다
사계절· 님
처음 뵙지요.
반갑습니다.^^
어머니한테 준 돈은
시누이에게 살림에 보태
쓰라고 건네주었을지도 모르고
받아서 고맙다고 말 안하는건
당연한건데 라고 생각할수도 있고
남의집 식구들 오는거
싫고 내집식구만 오는거
좋아하는 1인 여기 우리집 사람도 있고
여태까지 조카한테
등록금 교복 용돈줘야
작은엄마가 자기 미워한다고 자살시도한
내 조카도 있는뎌
정작 시숙은 나보고
왜 미워했냐고 물어보는데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라서
조카 짐싸서 내려보내지 않으면 내가 나간다고 하니
조카 다시 할머니집에 보낸
사람도 있다고 전하오
지금 제주도로 가서 산 시숙 이야기요
착한 며느리는
언제 복받고 살려나
그것이 궁금하옵니다
고맙다는 말을 안 한 까닭에
아가씨는 내게 두번 용돈 받기는 글렀어.
앞서 나가는 사람이 나를 배려해서 먼저 밀고 나간 문을 잡아줘도 '고맙습니다! '
승강기 열림을 누르고 내가 타기를 기다려준 분께도 '고맙습니다!'
몇 층 가냐고 물어보고 눌러준 이에게도 '고맙습니다!'
조카를 데리고 있었어?
내려보내지 않으면은 무슨 말이야?
걔도 참 웃긴다
핑계 댈게 없어서 작은 엄마 핑계를 대니.
아이고다 아이고.
@북앤커피 글로 여기에 올릴께
세월 많이 흘렀네
그 조카는 지금 시집가서
잘살고 있어
내 시집살이도
추억이네
@지 니
시원하게 털어나봐!
구구 절절 사연이 많으십니다! 뭐가 되었든 받으면 인사는 꼭 있어야 되겠지요!
사연 잘 보고 갑니다!
사연 없는집 있던가요?
그걸 맘에 품고 있느냐
글로 풀어내느냐의 차이겠지요.^^
맞아요 돈안드는 말한마디에
인색한 사람과 사는
1인 여기도 있습니다
지난설날에 친정엄마가
농사지은 쌀을 두포나
주셨는데도 잘먹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면
입에 가시라도 돋칠까 ~
그반면에 우리사위는
별거 아닌걸 줘도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꼭 인사를 한답니다
그러니 더 이쁜더이다
커피님 우야든둥
행복한 오늘이길요
예쁜 사위입니다.
반면 부군께서는 이쁨은 별로 못 받으셨을 듯
ㅎ~
절대로 밴댕이 속 아닙니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뭔가를 받으면
거기에 대한 반응을 보여야하는 것이 맞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요.
추측건대 시모님이 딸을 불러들였지만
아마 육아 살림 모두는 시모님이 하셨을 듯합니다.
이웃도 남도 없이 오로지 자식들에게만 평생을 올인 하셨으니 말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친정어머니를 모신 것이 아니라 얹혀살았단 생각이 듭니다.
저의 오지랖인지 모르겠지만~ㅎㅎ
그 집 식구들 ...댓글로 쓰려니
확 짜증이 올라옵니다.
ㅋ~
못 된 며느리 파이팅!
ㅋㅋ
구구절절 공감되는 사연입니다
내친구를보듯 친구의 생활상을 듣는듯합니다
커피님은 하늘에 상 이 많을듯합니다
분명 많을거라 생각합니다 훗날 천국에서 커피님보면 내가 말할거에요
천국에서 커피님 상 많을거라 한 내말맞죠?!! 라고.....
꼭 봐요!
고맙습니다.^^
아뇨, 절대 밴댕이 아닙니다
인사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대꾸 없는 사람 정말 정나미 떨어집니다
스포츠 중계방송에서도 아나운서가 함께 하는 전문가에게 뭘 묻고,
"그렇지요?" 하면 그렇다고 하든지,
아니면 아니라고 하든지 해야 하는데 멘트를 씹는 거 보면,
진짜 꼴 같잖은 게 전문가랍시고 웃기지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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