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PF 부실 누적의 고리를 끊으려면
이동현 LG경영연구원 경제·정책연구부문 연구위원2024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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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시장 규모는 2020년 말 93조 원에서 2023년 말 135조 원으로 3년간 45% 가까이 확대됐다. 그 사이 2022년 강원도가 채무보증을 약속했던 춘천 레고랜드 부동산 PF 자산유동화 기업어음(ABCP)이 부도 처리된 일명 ‘레고랜드 사태’가 발생하면서 공사채 및 회사채 시장 경색을 유발하고, 2023년 태영건설이 480억 원 규모의 지급보증 부채를 막지 못하며 우발채무 추산액 9조5천억 원, 총채권액 21조7천억 원으로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에 돌입하는 등 국내 부동산 PF 불안이 현실화되고 있다.
또한 2023년 말 기준 금융권의 부동산 PF 연체율은 2.70%를 기록하며 2021년 말 대비 0.37%p 상승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시행사가 5% 수준의 자기자본으로 토지를 매입하는 구조가 ‘한국형 부동산 PF’의 맹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특징으로 우리나라의 부동산 PF는 외부 충격에 더욱 취약하고,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 파급 규모의 불확실성도 높다. 이에 따라 지난 5월 14일 금융위원회는 부동산 PF의 ‘질서있는 연착륙’을 위한 정책 방향을 발표하고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간 기대만큼 작동하지 않은 부동산 PF 연착륙 방안
주요국과 달리 한국형 부동산 PF는 시행사의 영세한 자본력과 아파트 단지와 같은 소요자금의 대규모성으로 높은 레버리지를 일으켜 사업을 진행한다. 즉 시행사가 자기자본은 거의 투입하지 않고 새로운 대출을 조달해 기존의 대출을 상환하는 자금조달 방식으로 운영한다. 브릿지론(제2금융권 차입금)→본PF→수분양자 순으로 자금이 조달·상환되는 구조다.
과거 부동산 PF의 주요 참가자는 브릿지론을 공급하는 저축은행, 본PF를 제공하는 은행, 전 단계에 걸쳐 신용보강을 제공하는 시공사로 구조가 비교적 간단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축은행은 자기자본 비율이 20% 이상인 PF 사업에만 참여가 가능하게 됐고, 건설사의 우발채무 공시 등 새로운 규제가 시행되며 여신전문금융사, 상호금융사, P2P(온라인투자연계금융) 업체 등으로 PF시장 참여자가 확대됐다. 또한 증권사는 2009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정을 통해 채무보증이 법적으로 허용되기 시작하면서 부동산 PF 시장에 진출했다. 이렇게 부동산 PF와 금융시장과의 상호연계성이 높아짐에 따라 리스크 요인과 파급 규모의 불확실성도 크게 확대됐다.
금융위원회는 2022년 이후 부동산 PF 시장 상황을 파악하는 한편,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해 만기연장 중인 브릿지론과 사업성이 낮은 본PF를 재평가 및 선별해 적정 충당금을 반영하고, 건설사의 우발채무 및 장기공사 수익 회계를 적절하게 처리하도록 권장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지난 1월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제2금융권이 취급한 브릿지론의 70%, 본PF의 50%가 만기연장 중으로, 실질적인 리스크 관리가 거의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원회는 그동안 시장원리에 따른 조정을 유도하며 PF충당금 적립 강화 등 손실흡수 능력을 점검하고, 사업자보증 및 대주단 협약 등을 통해 사업성이 부족한 사업장의 재구조화 및 정리를 지원했다. 그럼에도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연체율 또한 상승하고 있다. 2023년 말 기준 연체율은 증권사 13.73%, 저축은행 6.94%를 기록하는 등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14일 금융위원회는 부동산 PF의 질서 있는 연착륙을 위한 향후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2022년 이후 추진해 온 정책 목표와 기본방향은 동일하지만, 정상 사업장에 대한 지원, 사업성이 부족한 사업장 재구조화 또는 신속한 경매·공매, 시장·금융사·건설사의 안정화를 위한 조치 등을 포함한 대책을 보다 구체적으로 보완·보강했다.
브릿지론 비중 크고 연체율 높은 제2금융권은
추가 충당금 적립과 자본금 확충에 힘써야
금융위원회는 이번 발표에서 사업성 평가대상 규모를 230조 원으로 발표하며 그동안 공식적인 집계에서 제외했던 저축은행의 토지담보대출, 새마을금고의 관리형 토지신탁, 증권사 채무보증 등을 포함했다. 또한 평가등급을 현행 3단계(양호·보통·악화우려)에서 4단계(양호·보통·유의·부실우려)로 세분화해 사업성이 부족한 사업장에는 적극적인 사후관리를 유도했고, 최대 5조 원 규모의 신디케이트론(둘 이상의 금융기관이 공통의 조건으로 기업에 자금을 융자하는 대출)을 조성하는 등 사업장의 체계적인 재구조화 및 정리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금융위원회는 230조 원의 평가대상 중 5~10%(최대 23조 원)가 유의 또는 부실우려 등급의 사업장이고, 특히 2~3%(최대 7조 원)가 경매·공매로 자산을 처분할 의무가 있는 부실우려 사업장이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만 금융위원회는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 대해 감독 기준 이상의 충당금을 충분히 적립토록 지도해 왔음을 고려하면 부실 사업장 처리에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PF 부실의 지속적인 누적은 부동산시장의 자금공급 경색을 초래하고, 금융업 및 건설업계의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충분히 대응 가능한 현시점에 선제적으로 질서 있는 연착륙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PF 부실 누적의 고리를 끊고 시장을 안정시키려면 시행사의 자기자본 비율 강화, 건설사의 우발채무 관리 강화, 금융사의 PF 사업성 평가 강화 등 전반적인 제도 및 관행의 개선이 필요하다. 시행사와 건설사는 사업성이 낮은 부실 사업장을 신속히 재구조화하고, 금융사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업성 평가 및 충분한 충당금 적립을 통해 시장정상화를 달성해야 한다. 특히 브릿지론 비중이 크고 연체율이 높은 증권사, 저축은행, 여신전문금융사 등 제2금융권의 경우 추가 충당금 적립과 자본금 확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