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꽃밭에서 한 잔의 차를 마시며
전영순
엄마의 미소와 같이 따뜻한 햇살아래, 연초록물이 배어나는 산자락에는 진
달래의 붉은 수줍음이 가득하고, 아직 벚꽃 여향이 남아 있는 듯한 들에
는 어느새 병아리들의 합창마냥 노란 유채꽃이 톡톡 꽃망울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린다.
가슴 벅찬 이 계절에 유채꽃 잔치가 우리고장 오창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소식에 내
마음 또한 한 송이의 꽃이 되어 달려왔다. 노랗게 봄단장을 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유
채꽃의 고운 마음에 함께 물결치며 은은하게 들려오는 국악의 선율 속에 다도(茶道)를
선보이고 있는 마당으로 시선은 끌리고 있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숙련된 자세로
정성을 다하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은 앙증맞기 그지없었다. 다례(茶禮)를 갖춘 저 손
길아래 정갈한 마음으로 한 잔의 차를 마신다면 어찌 내가 도인이 되지 않으리.………….
우리나라의 차는 주로 사찰에서 승려들이 마셨으며 “차의 깨끗한 정기를 마실 때
어찌 대도(大道)를 이룰 날이 멀다고만 하랴"는 말도 있다. 또한 육우(陸羽)는 '덕이
있는 사람이 마시기에 가장 적당한 것이 차'라 했는데, 만일 우리의 생활 속에 차
(茶)가 없다면 어떠할까? 잠시 생각하며 무대 옆에선 여러 가지 차를 시음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유채꽃 하늘거리는 들녘. 시음(試飮)하는 연차(蓮茶)앞에
줄을 서니 백련(白蓮)이 면상희이(面相喜怡).한 얼굴로 시선을 끌어당기며 길손의
마음을 빼앗아 간다 물동이만한 다기 한가운데는 연밥이 계향 충만(戒香充滿)한 자
세로 자리하고 있었다. 연차 한 잔을 건하는 여인의 손길에도 연향(蓮香)이 스쳐 지나
간다. 노란 물로 가득한 유채꽃밭 언저리에서 소박한 비취색 찻잔에 연차를 받아들며
견자개길(見者皆吉)한 사람을 반기듯 반색을 하니 맑은 햇살이 찻잔에 소복하다. 산
들바람이 노란색으로 불어와 하얗게 타오르는 갈증을 연차 한 모금으로 목축 임하니
성숙청정(成熟淸淨)한 이를 대하듯 눈이 열리고 마음이 맑아진다. 하늘엔 하얀 뭉게
구름이 유유히 떠다니고, 살갗을 간질이며 스치는 초록의 싱그러움으로 "마시고 또
마셔도, 갈증 나는 연꽃 향이여!"
연꽃 향을 가슴에 담았던 어린시절 동네 어귀의 연못가에 개망초꽃과 애기똥풀이
지천으로 피어있었고, 연못에는 핑크빛 연꽃이 이제오염(離諸汚染)하게 하늘 거렸다.
그 연못의 주인은 호랑이같이 무서운 사람이었다. 길을 걷다가도 그 집 앞을 지날 때
는 조심조심 긴장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어느새 마음은 연못가에 머물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활짝 핀 연꽃과 연못에 서식하는 우렁이를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운 마음이 들
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다녔다. 소담하게 피어난 연꽃을 바라보노라면 내 마음도
함께 연못에 잠기고 있었다. 불여악구(不與惡俱)한 꽃인지라 감히 그녀 앞에선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연꽃에 마음을 빼앗긴 것도 그때부터였지만, 연꽃에 관
심을 가지게 된 것은 여고시절, 국어선생님이 내 생김새와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꽃에 비유한다면 연꽃 같구나 하시며 수련(睡蓮)이라 이름 지어 주신 것이 지금까지
나의 별명에 연꽃이 함께 따라다니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연꽃과 마주하면 연꽃인
양 착각하기도 한다.
한 잔의 연차에 어린시절 추억이 서린다. 고향의 향이 느껴진다. 들녘에 노란 수줍
음으로 피어나는 유채꽃밭 언저리에서 한 잔의 차 맛은 무아경이다.
2005. 20집
첫댓글 한 잔의 연차에 어린시절 추억이 서린다. 고향의 향이 느껴진다. 들녘에 노란
수줍음으로 피어나는 유채꽃밭 언저리에서 한 잔의 차 맛은 무아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