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평가된 우량주처럼 실속있는 오름
기자명 김철웅 기자
제민일보 기사 입력 : 2012.06.27. 09:47
[다시 걷는 오름 나그네] 29.우진제비
단아한 외관 좋은 분위기 불구 방문객 적어
중턱엔 드물게 샘물도…탐방 40분이면 충분
우진제비의 매력은 중용이다. 높은 듯하나 아주 높지 않고 산세도 거친 듯하나 아주 거칠지도 않다. 외관도 뒤쪽은 아주 강하게 보이지만 앞쪽은 부드럽다. 특히 오름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잇는 앞쪽은 북동으로 터진 말굽형 분화구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에 가까울 만큼 단아한 모습이다. 더욱이 오름 중턱에는 도내 오름 가운데선 드물게 샘이 솟는다. 2개의 못을 만들 정도로 수량도 만만치 않다. 단아한 외관과 잘 정비된 탐방로에 풍부한 수량의 샘 등 오름의 거의 모든 것을 갖춘 우진제비는 저평가된 우량주처럼 알찬 오름이다.
우진제비 소재지는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산111~114번지 일대다. 번영로의 남조로교차로에서 정동쪽으로 뻗은 길 방향 3.8㎞지점이어서 제주시에서 번영로를 타고 동쪽으로 달릴 경우 남조로교차로를 지나자마자 바로, 그리고 가장 먼저 눈앞에 들어오는 오름이다.
우진제비도 비교적 큰 오름에 속한다. 비고가 126m로 368개 오름 가운데 55번째, 면적은 40만6250㎡로 83번째 이니 높이에선 6분의1, 면적에선 4분의1 안에 든다. 둘레는 2353m, 저경은 756m다.
일찍부터 우진제비 또는 우진제비오름이라 불리었으나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여느 오름들과 달리 끝에 '오름'이나 '악' 또는 '봉'을 달지 않아 이름이 독특하나 근본은 찾지 못하는 '안타까운' 오름이다. 한자를 차용, 우진악(牛眞岳)·우진저악(牛眞貯岳)·우진접(牛振接)·우진저비악(雨陣低飛岳)·우전접(又田接) 등으로 표기했다.
우진제비는 제주시 종합경기장에서 24.7㎞다. 번영로를 타고 동쪽으로 22㎞ 달려 거문오름교차로(거문오름과 부대악 서쪽 자락)에서 좌회전, 선교로를 따라 1.3㎞ 북쪽 방향으로 진행하면 시멘트길과 교차하는 사거리(탐방로 지도 A)가 나타난다. 길 왼편 전봇대에 '우진오름길'이란 팻말이 달려있다. 여기서 시멘트 포장 농로를 따라 서쪽으로 600m 가면 '우진제비오름'이란 표석(〃B)이 서있다. 이번엔 우회전해서 300m 들어가 만나는 오름둘레길(〃C)에서 다시 우회전 500m를 더 가면 우진제비 탐방로 입구(〃D)가 나온다. 자동차 몇 대를 주차할 만한 공간이 있다.
탐방을 시작하면 타이어매트지만 금방 돌계단으로 바뀐다. 말굽형 분화구 북서사면 자락에서 탐방로를 시작하는 만큼 오른쪽은 동산이고 왼쪽은 계곡이다. 돌계단과 타이어매트가 잘 어우러진 탐방로를 따라 6분 정도 올라가면 탐방로 갈림길(〃E)이다. 우회전해서 돌계단을 올라가도 되지만 우진샘을 먼저 보기위해 직진이다. 우진샘(〃F)은 1분여 거리다. 나지막한 경사가 이뤄진 말굽형 분화구 계곡 가운데 크지도 작지도 않은 샘이 솟고 있다.
▲ 맑은 물이 솟아 식수로 사용됐던 우진샘.
'사시사철 물이 끊이지 않아 가물면 주변 마을에서 이용했다'는 현장안내판의 설명처럼 수량이 풍부했는지 바로 밑에 연달아 2개의 못이 만들어져 있다. 가장 위쪽 샘은 식수로, 그 아래 못에선 나물 등을 씻고, 다시 아래쪽에선 빨래 등을 하며 '수질'에 따라 물을 나눠 알뜰히 썼던 조상들의 지혜다. 그런데 이러한 뜻을 살리기 위해 우진샘을 복원했다곤 하나 못에는 수풀이 무성하고 주변 벤치는 덤불에 덮인 채 방치되면서 좋은 오름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진샘을 출발하면 비교적 가파른 경사의 탐방로가 이어진다. 특히 1차 개활지(〃G)까진 탐방로가 온통 숲으로 덮여있어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대부분의 구간이 시원한 숲길로 이뤄진 우진제비는 여름형 오름이라고 할 수 있다. 중간 중간 쥐똥나무 등 초여름 자락에 꽃을 피운 들꽃과 열매를 맺은 자연산 오디와 산딸기 등이 산행에 기쁨을 더해준다.
경사진 탐방로를 10여분 오르다보면 하늘이 열리는 개활지가 나온다. 옆으로도 열린 남동쪽을 바라보면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이다. 그것도 잠시 다시 숲길이다. 그러나 채 10분이 되기 전에 정상(표고 410.6m)이다. 말굽형 분화구를 두고 형성된 동쪽과 서쪽의 2개 봉우리 가운데 서쪽 봉우리가 주봉인 셈이다. 정상과 붙어서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거문오름·부소악·부대악·민오름·대천이오름·꾀꼬리오름·생이오름과 당오름·알밤·웃밤 등 가까이 있는 오름은 물론 멀리 높은오름을 넘어 다랑쉬오름까지도 '제주의 오름'이란 한 폭의 그림에 동참한다.
정상 전망대 이후의 탐방로는 내리막길이다. 정상이 정상부 탐방로 4분의3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정상을 떠나 6분 정도 지나면 탐방 초기 우진샘을 선택했던 탐방로 갈림길(〃E)로 내려가는 돌계단이다. 계단과 갈림길을 거쳐 아쉬움을 달래며 천천히 내려와도 출발한지 40분 정도다.
우진제비 탐방을 끝내고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탐방로 계단에 낀 이끼 등으로 탐방객이 적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오름도 좋고 탐방로도 잘 정비돼 있고 다른 오름에선 드문 샘까지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은 우량주처럼 알찬 오름이지만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행정은 물론 지역주민·오름꾼들의 관심과 성원이 필요해 보인다.
말굽형 분화구를 갖는 우진제비는 붉은 송이(스코리아)로 돼 있으며 형성 시기는 5만년 전 이상인 젊은 오름으로 추정된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은 "학술용역 결과 거문오름이 3만5000년 전, 비교적 최근세에 분출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우진제비는 말굽형 분화구가 터진 방향으로 나란한 웃밤·알밤오름과 거의 동시대에 분출했고, 이후에 거문오름 등이 분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진제비 식생은 외사면의 삼나무조림지와 분화구 내사면의 낙엽활엽수 2차림 등으로 구성돼 있다. 삼나무조림지 등에는 예덕·머귀·곰의말채나무 등이 혼재하고 2차림 지역은 팥배· 느티·때죽·떡윤노리·산뽕·개서·산딸나무 등이 우점하는 가운데 하층에는 상산·새비·가막살·덜꿩나무 등의 관목류와 방울꽃·맥문동·개승마·십자고사리·한라돌쩌귀·큰천남성 등이 자라고 있다.
김대신 연구사는 "삼나무조림지 하부에는 비교적 습한 지역에서 자라는 물봉선·고마리·나도히초미·뽕모시풀 등이 자라고 있어 2차림 지역과 구분 된다"며 "오름 정상부에는 타래난초 같은 식물도 관찰되면서 식생변화가 가속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고 설명했다. 김철웅 기자
"지하수순환시스템 발달
수량 많은 '우진샘' 가능"
●인터뷰/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
"우진샘은 제주의 오름에서 샘이 솟는 원리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은 "오름과 같은 단성화산체에서 물이 솟는 용천이 가능한 것은 간단하게 보면 평면에 대하여 솟아오른 오름이라는 하나의 언덕이 하나의 독립된 지하수 순환시스템을 갖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오름 자체의 표면에 내린 강수를 오름 내부의 송이나 용암 덩어리가 흡수했다가 내보내는데, 그러한 시스템이 발달하면 수량이 풍부하고 우수한 수질의 '좋은' 샘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강 소장은 "우진제비의 경우 강우를 포획하고 샘으로 나오게 하는 오름의 지하구조가 양호하게 발달한 것 같다"며 '예로부터 우진샘은 사시사철 물이 끊이지 않아 가뭄이 들었을 때에는 선인동·덕천에서까지 식수로 사용했다'는 구전에 힘을 실었다.
그는 "우진샘도 제주도 선인들의 전형적인 용천수 이용형태도 보여준다"며 "제일 위의 것은 음용수로 절대 보호하고, 그 다음 칸은 나물 등을 씻는 곳, 그 다음은 빨래하는 곳 등으로 구별지어 놓고 있다. 이는 해안이든 중산간이든지 도내 어느 곳이나 같았다"고 말했다.
강 소장은 "지하수는 예나 지금이나 제주사람들의 생명수"라면서 "지금이야 지하 수백m에 빨대처럼 관정을 집어넣고 지하수를 팡팡 뽑아 쓰고 있지만 예전에서 가장 자연적인 지하수, 즉 자분정이라는 용천수만이 유일한 지하수이자 용수였다"고 강조했다.
용천수 복원사업에 대해 강 소장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쓴 소리에 이어 "그것도 복원이냐. 용천수 주위를 시멘트 구조물로 구획을 지어버렸고, 대부분의 용천수는 물이 안 나와 썩어 있다"며 "용천수로서의 가치가 없어졌는데도 전시행정으로 시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강 소장은 "용천에서 물이 안 나오는 이유로는 제주도의 잘못된 지하수 정책이 가장 크고, 용천수 시설 공사로 인해 샘 구멍이 막혀 물이 나오지 않는 곳도 적지 않다"며 며 무분별한 지하수 정책을 질타했다.
김철웅 기자
우진제비오름 안내도
우진제비오름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