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의 울릉도는 쪽빛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맑고 푸른 물결은 해안가에 부딪쳐 하얀 포말을 그리며 출렁인다.
울릉도 어업전진기지인 저동항. 방파제 옆에 촛대바위가 우뚝 솟아있다. 꼭두새벽, 일출을 보러 아내와 나는 촛대바위로 나왔다. 수평선을 뚫고 동해 해오름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새벽 여명과 함께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이 새날을 열고, 환한 빛으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대숲이 너무도 시원한 죽도
붉게 물든 수평선을 보며, 방파제를 따라 천천히 발길을 옮긴다. 코앞에 자그마한 섬, 죽도가 보인다.
아내가 죽도를 가리키며 말을 걸어온다.
"일본이 독도를 '죽도(다케시마)'라 부르죠? 여기 울릉도에도 죽도가 버젓이 있는데…"
울릉도 일대에서 죽도(竹島)라 부르는 섬은 이곳 죽도뿐이다. 일본이 독도를 죽도라고 부르며 떼쓰는 게 어이가 없다.
울릉도에 왔으니 죽도에 가보자. 우리는 도동항으로 옮겨 대나무 섬인 죽도로 가기 위해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여보, 죽도에도 사람이 살고 있는 건가?" "그럼. 죽도 사람, TV에도 나왔잖아!" "아! 섬 총각 장가들었다는 거?" "그래. 지금은 2세를 낳아 한 가족 세 명이 살고 있다고 하더라!"
전날만 해도 거센 바람 때문에 여객선 죽도 접안이 어려웠다는데, 날도 맑고 바람도 잠잠하다. 행운이다.
도동항에서 죽도까지는 배로 20여 분. 갈매기와 함께 친구하며 가는 뱃길이 좋기만 하다.
▲ 섬의 유일한 진입로인 나선형계단이 있다. 계단 수가 365개나 되어 오르는데 좀 힘이 든다. 일명 달팽이계단이다.
ⓒ 전갑남
죽도 선착장에 도착하니, 깎아지른 절벽이 아찔하다. 나선형 계단이 없었다면 섬에 오르기가 만만찮을 것 같다. 오르는 계단이 365단이라 한다.
한 계단 한 계단.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 숨소리가 거칠다.
"아니, 죽도록 올라가야 해서 죽도인가?" "그게 아니라 죽도는 대나무 죽(竹)이여!"
▲ 수많은 대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자라있다. 죽도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이다.
ⓒ 전갑남
계단을 오르니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계단이 끝나 한숨 쉬어가는데, 죽도 섬 이름이 실감나게끔 대나무가 엄청 우거졌다. 대나무는 굵지 않은 신우대이다. 어느 곳은 대나무 터널로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바닷바람에 댓잎이 부딪치는 소리가 사각사각! 자연의 소리에 마음도 시원하다.
▲ 죽도에는 울창한 수목이 우거져 있고, 경작지에는 더덕과 메밀 등이 심어졌다.
ⓒ 전갑남
전망대로 무작정 걸어 올라갔다. 전망대 가는 길이 호젓하다. 바다에서 봤을 때는 조그만 섬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다. 길을 따라 도는데 길이가 약 4km이다. 1시간 반은 걸어야한다.
울릉도는 어딜 가도 물이 철철 넘쳐나는데, 죽도는 샘이 없다. 빗물을 받아 생활용수로 쓰고, 식수는 울릉도 본섬에서 갖다 먹는다. 화장실에 물이 나오지 않아 물 귀한 것을 실감한다.
죽도가 대나무섬이라 해서 대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망대 오르는 길에는 쭉쭉 뻗은 멋진 해송이 숲을 이루었다. 후박나무, 동백나무와 소나무숲길이 어울려 호젓하고 운치가 있다.
죽도에는 죽도만큼 아름다운 사람이 산다
▲ 광활한 경작지에 더덕이 상당히 많이 심어졌다. 더덕은 죽도 주민의 주 소득원이다.
ⓒ 전갑남
작은 섬이지만, 경작지가 펼쳐진다. 푸른 더덕밭이 장난이 아니다. 코끝에 풍기는 더덕향에 내남없이 감탄사를 자아낸다.
"와! 이 섬 땅에서 어떻게 더덕농사를 짓노?" "그러게 말이야!" "이건 또 메밀인가 봐!" "가뭄에 잘 견디는 메밀을 심었나 봬!"
어떻게 물 부족한 이곳에다 더덕농사 지을 생각을 했을까? 야생 더덕이 많아 한 뼘 한 뼘 늘려 짓다보니 재배면적이 넓어진 듯싶다.
▲ 죽도 전망대. 전망대에 오르면 탁 트인 전망과 함께 몸과 마음이 시원한다.
ⓒ 전갑남
▲ 죽도 전망대에 바라본 울릉도 바다. 가까이 보이는 삼선암과 관음도 풍광이 너무 아름답다.
ⓒ 전갑남
오르막 끝에 전망대가 나타난다. 발아래 펼쳐지는 푸른 바다가 너무 멋있다. 어디 바다뿐인가! 넘실대는 파도는 눈이 다 시원하다. 울릉도 북동 능선과 깎아지른 절벽의 경관이 빼어나다.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한 폭의 그림처럼 관음도와 삼선암이 한눈에 펼쳐진다.
"이제 죽도 사람을 만나봐야지!"
아내의 서두름에 우리는 숲길을 따라 죽도 호수산장에 이르렀다.
죽도는 아버지와 아들이 사는 '부자(父子)의 섬'이었다. '부자의 섬'은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에 방송돼 유명세를 탔다. 아버지는 약소를 키웠다고 하는데, 지금은 돌아가시고 그 아들은 더덕을 가꾸며 살아간다. 혼자 산 젊은 청년은 몇 년 전 배우자를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 죽도 주민이 거주하는 그림 같이 아름다운 "호수산장"이다. 죽도에는 1가구 세 명이 거주하고 있다.
ⓒ 전갑남
▲ 섬에 이런 정원이 있다니! 너무도 아름답게 가꾼 호수산장의 정원.
ⓒ 전갑남
젊은 부부가 사는 '호수산장'은 말 그대로 산장처럼 아름답다. 건물도 건물이지만, 정원은 더욱 예쁘다. 잔디밭이며 잘 가꿔진 수목들과 꽃들이 그림 같다.
관광객들이 몰려들자 죽도 주민 남편은 더덕을, 그의 아내는 더덕을 갈아 주스를 판다. 외딴 섬에서 두 내외가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다.
▲ 죽도에서 거주하는 주민은 여기서 재배한 더덕을 관광객들을 상대로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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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도에서 재배한 생더덕을 갈아 만든 주스는 색다른 맛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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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더덕주스는 섬 여행에서 오는 갈증과 피로를 씻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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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더덕 주스 한 잔 어때?" "좋지! 캔 맥주도 파는데, 맥주도 한 잔 할까?"
안주는 깐 더덕. 시원한 맥주 한 잔에 갈증이 단숨에 날아간다. 직접 재배한 더덕을 갈아 만든 즙은 더 맛있다. 부부가 아름다운 섬에서 천생연분으로 만나 살아가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죽도의 초여름은 대숲과 아름다운 자연이 제자리를 지키며 푸르름을 맘껏 뽐낸다. 여행자는 잠깐 들렸다 가지만, 죽도는 깊은 인상을 가슴에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