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
나는 기다리는 사람 비가 어스름을 핥으며 온다 기다리는 일은 무언가를 응시하게 한다 물어도 아프지 않을 애완견 샵으로 바짝 다가선다 두발로 선 채 손을 내미는 견 나도 반갑게 손을 내미는데 우리는 악수를 못하고 유리에 닿는다 견이 그만 물그릇을 엎지른다 새로 바꾼 이불을 물어뜯는다 맛도 없는 이불을 물어뜯는 동안 또 다른 견이 다가온다 색도 냄새도 없는 유리창에 혀를 대는 견의 눈동자에 비가 내린다 나를 핥는다 얼음이 언 바닥으로 나는 미끌,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고 창 너머의 사람이 되어간다 환한 샵 주위에 어두운 우산을 받치고 있다 일곱 개의 방마다 가득 찬 마음이 돌아앉은 등덜미를 어루만진다 나는 금방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고 견은 까치발을 하고 주인의 발소리를 기다린다
잎 뼈 가루
잎
11월 젖은 잎사귀에서 나프탈렌 냄새가 난다
낙엽이 헌옷처럼 떨어져 쌓인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잎들이 물들고 있었다
키 큰 은행나무 뒤로 병원이 보인 이곳을
당신이 잠만 자는 곳이라 불렀을 때
나뭇잎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던 울음을 오므렸다
은행나무가 좋아 날마다 산책을 나왔다
샛노란 은행잎으로 당신의 무릎을 덮다가 어깨를 덮다가
두꺼운 잠바를 걸쳤다
떨어진 잎들은 다 어디로 사라지나
병원 냄새가 묻어있는 마지막 풍경은 따로 태울 거라고 했다
뼈
참았던 울음이 사흘 동안 터졌다
뜨겁게 사라져가는 당신 앞에 차가운 물을 들고 서 있었다
젊은 장례지도사가 가을에 이렇게 많은 비는 처음이라고 했다
건물의 뼈 나무의 뼈 비의 뼈들이 젖고 있었다
가루
젖는 당신을 리무진에 태웠다
집으로 가자고 조르던 액자가 한참을 머물렀다 나왔다
산등성이에 있는 목백일홍 곁으로 갔다
자꾸 날아가려는 까치밥을
식구들이 눈물과 섞어 잘 뭉쳐놓았다
다시 잎
당신이 걸친 잎들을 정리했다 새 잎과 헌 잎이 뒤섞여 병원 냄새가 났다
헌옷수거함에 다녀온 아이의 눈이 붉다
보풀이 일고
나프탈렌 냄새가 강한 마지막 풍경만 따로 모아두었다
2024 월간 모던포엠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