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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6 : 19 성령의 전 - 고전 6 : 20 값으로 산 것 ( 상 )
고전 6 : 19 성령의 전 -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
바울은 본장의 논쟁에서 여섯번째 질문을 던지고 있다.
1]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이며 주의 핏값으로 사신 바된 몸이다(고전 3: 16. 행 20: 28).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몸을 항상 거룩하게 보존해야 하고 우리의 몸과 영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치며 살아야 한다.
성도의 첫 번째 생활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이다. 이사야 43: 7은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고 말한다.
소요리문답 제1 문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3: 16에서 복수('너희')를 사용하여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과 그 공동체 속에 성령이 거하신다는 점을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몸'을 단수로 사용함으로써 성도 개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과 개인의 인격 속에 성령이 거하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전으로서 각각의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전에 적합하지 않은 행위들을 삼가야 한다. 이것은 비단 음행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에 있어서 적합하지 않은 행동은 절제되어야 한다는 것도 포함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모든 인격을 포함해서 자신의 몸을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처소(處所)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Mare).
2]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몇해 전 온라인상에서 강남의 초등학생들 사이에 ‘명품 지우개’가 유행한다고 해서 논란이 있었다. 인터넷에 그 명품 지우개의 사진과 함께 홍보하는 내용이 떴다. 갑자기 초등학생들 사이에 유행이 되기 시작했다. 그 지우개 가격이 무려 14만 원이나 했다. 그런데 부모들이 아이들의 기를 죽지 않게 하려고 앞을 다투어 사주었다.
이 일에 대해 댓글이 수없이 달렸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지 14만 원 짜리 지우개를 사줄 수 있나?” “우리 주변에 한 달 생활비가 14만 원도 안 되는 어려운 이웃들이 많이 있는데 너무하는 것 아니냐” 대부분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 눈에 띠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내 돈 주고 내가 사준다는데 당신들이 뭐길래 떠들어!” 그렇다. 자기 돈 주고 자기가 자식에게 14만 원짜리 지우개를 사주든, 100만 원짜리 지우개를 사주든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다. 자기 물질을 자기 뜻대로 쓰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다 내 것일까? 세상 그 누구보다도 많은 재물과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은 전 5: 19에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솔로몬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누리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살았다. 바로 지금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요, 그것들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결코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고백이다.
* 욥 1: 21 –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큰 부자였던 욥이 하루아침에 가진 재산 모두를 잃어버리고 난 후 고백한 말이다. 자기가 가지고 누리던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이제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다시 가져가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잃고도 찬송할 수 있었다.
그렇다. 우리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들은 다 하나님께 받은 것들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들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들의 청지기일 뿐이다. 이것을 모르고 내 것인 줄 착각하면 안 된다. 우리가 예수를 제대로 믿게 되면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솔로몬처럼 욥처럼 내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이 다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는 믿음이 더 깊어지면 더 놀라운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바로 나 자신도 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의 청지기임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본문을 보면 놀라운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의 전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예수 믿고 난 뒤 새롭게 깨닫게 된 내용이다. 우리가 어떤 존재이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다.
오래 전에 유행하던 대중가요 가운데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노래가 있다. 노랫말이 이렇게 시작된다.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그냥 나에게 맡겨 주세요.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나는 모든 것 책임질 수 있어요.”
이 노래는 가사 내용을 살펴보면 청소년들의 속마음을 노래로 만든 것이다. 부모님의 간섭과 통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청소년기의 반항심을 노래하고 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무엇인가 해 보고 싶은 열망을 노래했다. 그렇다.
청소년기 대부분의 청소년은 자기가 자기 인생을 책임질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한다. 자기 뜻대로 자기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다. 당장 부모님이 돌봐주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생활비는 물론이고 학비며 용돈이며 모두 다 부모님께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진로 문제도 부모님의 도움 없이는 올바로 해결할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자기 인생은 자기의 것이라 할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이런 착각 속에 살아간다. 자기 인생이 자기의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자기가 자기 인생을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자기 뜻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만나로 먹이셨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셨고 인도하셨다. 오늘날 광야 같은 인생길을 걷고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 뿐만 아니다. 실제로 따지고 보면 인생살이가 우리 뜻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다. 무엇인가 바라고 추구하던 것을 이루는 것보다 접고 포기하고 실패하는 것들이 더 많다. 그래서 인생 한 복판에서 고통과 좌절을 겪는다.
우리 인생이 우리의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착각일 뿐이다. 결코 우리 인생은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청지기다.
* 고전 7: 23 -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 갈 2: 20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고 나서 자기 인생을 보는 눈이 바뀌었다. 원래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대신 죽으셔서 자신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자기의 인생은 은혜로 새롭게 시작된 인생이라는 것을 증언하였다.
그래서 “나의 나 됨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백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자신은 빚진 자라”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우리가 이점을 깨달아야 한다. 오늘 나의 나 됨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이다.
내가 잘라서 된 것 아니다. 내가 노력해서 된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됐었다. 때마다 일마다 보이지 않는 손길로 역사해 주셔서 오늘 여기 이렇게 살게 됐다.
이 점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게 되면 고백할 수 있다. “내 인생은 내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더 이상 나를 위해서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 “나는 나 자신의 청지기일뿐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청지기로 살아야 한다.
고전 6 : 20 값으로 산 것 -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항상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에게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삶을 말하며(사 43: 21),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삶을 말한다.
그것은 성경의 진리대로 사는 삶이며 서로 사랑하는 삶이다(요일 3: 23). 요한이서 4,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것을 포함한다.
1]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이는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19절)고 말한 이유를 제시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몸을 타락시키거나 함부로 사용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산 것이 되었다'(*, 에고라스데테)는 것은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어떤 물건을 사기 위해 그에 맞는 '값(*, 티메스)을 지불했다'는 뜻이다.
본 절에서는
(1) 수동태로서
누군가에 의하여 '저희가 산 바 되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2) 부정 과거로서
그 행위가 과거의 단회적(單回的)인 사건에 의하여 성취되었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바울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죄의 노예가 된 인간을 위하여 죽으셨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리스도는 '죽음'이라는 고귀한 값을 치르고 죄인들에게 자유를 허락하셨다. 따라서 구속받은 백성은 이제 그리스도의 소유물로서 그 속에서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추구하여야 한다.
한편 '티메스'라는 표현은 본 절에서 두 가지를 강조한다.
(1) 그 가치가 비싸다는 것
(2) 값이 공정한 거래의 대가로서 정당하게 주어졌기 때문에 또 다른 값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는 18절의 부정적인 명령형과는 달리 적극적이며 진취적인 성도의 행위를 요구하는 명령이다.
성도는 죄악을 피해 다니며 죄를 안 짓는 소극적 차원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고 이제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긴장된 삶을 통하여 죄악의 세력으로부터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바울은 '몸'이라는 단어를 육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전인격적인 모든 것을 포함하는 용어로 사용함으로써 인간의 전인격인 모든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여야 함을 강조한다.
(1) 바울은 말한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전통본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이며, 우리는 주의 핏 값으로 사신 바 된 몸이다.
* 고전 3: 16 -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 행 20: 28 -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전인 우리 몸을 음행의 죄와 같은 죄로 더럽히지 말고 항상 거룩하게 보존해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것인 우리의 몸과 영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바쳐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의 첫 번째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이다.
이사야 43: 7은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고 말한다.
소요리 문답 제 1 문답,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것은 항상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에게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삶이다.
* 사 43: 21 -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삶이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삶이다.
* 요일 3: 23 -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성경 진리대로 사는 삶이다. 요한이서 4,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그것은 또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을 포함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우리의 몸이 성령의 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핏 값으로 사신 바 된 하나님의 것임을 깨닫고 음행을 피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몸과 영혼을 바치자.
(2)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
* 눅 16: 1-13 –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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