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1일(목)
* 시작 기도
(시 147:10-11) 여호와는 말의 힘이 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사람의 다리가 억세다 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주님...
주께서는 말의 힘이 센 것이나 다리의 힘이 센 사람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들은 약할지라도 주를 경외하며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나를 높이려 하고 나의 강함을 자랑하려 하였습니다.
그것이 마치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줄 알고 내 이름을 얼마나 많이 드러내려 했는지요?
이런 괴악한 자를 주님은 아주 진멸하지 않으시고 심판하시되 징계를 통하여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고난을 주셨습니다.
이 못난 자식은 그 고난조차 싫다고 하면서 이를 해결해 달라고 얼마나 아우성을 치며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 고난이 내게 유익임을 알지도 못한 채 말입니다.
이제는 주께서 주신 고난이 내게 유익임을 인정하며 받아들입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나는 다리의 힘도 약하고 지식도 부족합니다.
하여 오직 주님의 은혜를 구하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은혜를 주옵소서.
이 하루도 성령 안에서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죄악으로 달려가고자 하는 다리는 더 약하게 하시고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9:27-37
제목 : 이세벨이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27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정원의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그 뒤를 쫓아가며 이르되 그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그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28 그의 신복들이 그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 성에서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29 아합의 아들 요람의 제11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
30 예후가 이스르엘에 오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31 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이르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하니
32 예후가 얼굴을 들어 창을 향하고 이르되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하니 두어 내시가 예후를 내다보는지라.
33 이르되 그를 내려던지라 하니 내려던지매 그의 피가 담과 말에게 튀더라. 예후가 그의 시체를 밟으니라.
34 예후가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이르되 가서 이 저주 받은 여자를 찾아 장사하라. 그는 왕의 딸이니라 하매
35 가서 장사하려 한즉 그 두골과 발과 그의 손 외에는 찾지 못한지라.
36 돌아와서 전하니 예후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지라.
37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하였더라.
* 나의 묵상
예후가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아합의 집을 심판한다.
그는 아합의 아들 요람을 죽이고, 요람을 문안하러 온 유다의 왕 아하시야도 죽였다.
요람을 죽인 예후는 아하시야를 추격하며 ‘그도 죽이라’고 하였다.
이에 군사들은 이블르암 근처의 고갯길에서 병거를 타고 있던 그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그는 므깃도로 도망하여 거기서 죽었다.
그의 신하들이 그를 병거에 실어 예루살렘으로 옮겨다가 다윗 성에 있는 그의 무덤에 조상들과 함께 장사하였다.
아하시야는 다윗의 계보를 잇는 왕이다.
하지만 그는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그래서 그도 역시 아합의 집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예후가 이스르엘에 도착하였다.
그 때 이세벨은 소식을 듣고 눈화장을 하고 머리를 손질한 뒤에 창밖을 내다보았다.
예후가 성문에 들어서자 이세벨이 그에게 말한다.
“자기 주인을 죽인 시므리 같은 놈아, 그래 일지 잘 되었느냐?”
시므리는 엘리와 바아사 집안을 멸망시켰으며 그가 다스린 기간은 불과 7일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세벨은 예후의 행동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시므리를 빗대어 비난한 것이다.
그러자 예후는 창을 향하여 눈을 치켜뜨며 말한다.
“누가 내 편이 되어 나와 함께 하겠느냐?”
이에 내시 두어 사람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을 향하여 예후가 소리쳤다.
“그 계집을 내어던져라.”
이에 내시들이 그 여자를 밖으로 던지자 피가 담벽과 말에 튀었으며 예후가 그의 시체를 짓밟았다.
예후는 안에 들어가 먹고 마시다가 말하였다.
“그 저주받은 계집을 찾아다가 묻어주어라. 그래도 왕의 딸인데...”
그들이 그 여자를 묻어주러 나가보니 해골과 발과 그 여자의 손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돌아와 예후에게 보고하자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하신 말씀이 응하였다고 말한다.
그것은 이스르엘의 밭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 것이며, 이세벨의 시체가 이스르엘의 밭에서 똥같이 굴러다녀서 아무도 그것이 이세벨이라는 것을 모르게 되리라는 말씀이었다.
예후가 아합의 아들 요람과 그와 동맹한 유다 왕 아하시야를 죽였다.
이어서 이세벨 역시 그에 의해서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녀의 시체는 장사되지 못한 채 개들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엘리야를 통해서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이다.
이세벨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의 선지자들과 종들을 죽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가 멸시한 말씀으로 인하여 자신이 끔찍한 죽임을 당하였고 개들의 밥이 된 것이다.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강탈하기를 주저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세벨은 거침없이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강탈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녀가 죽어서 개들의 먹잇감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왕상 21:23)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
이후로도 그녀는 언약백성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죄를 저질렀으며, 이는 바알을 섬기는 음란과 술수의 죄악을 저지른 것이다.
모든 시대, 언약 백성 안에는 이세벨의 바알적 역사가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새 언약 백성이 된 교회 안에도 예외는 아니다.
소아시아의 두아디라교회에도 이세벨의 음행과 우상이 침투하였다.
(계 2: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여기에 나오는 이세벨의 행음과 우상의 제물은 그 의미가 같다.
행음(헬, 포르테오)은 우상에게 내어준다는 뜻으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의미한다.
자칭 선지자라고 하는 이세벨은 그녀의 유해한 활동으로 인하여 그녀를 아합의 아내 이세벨로 부른다.
특별히 교회에 나타난 이세벨은 하나님의 종들을 타락시키는 일에 집중하며 이들을 가리켜 영지주의라고 한다.
영지주의와 같은 이세벨과 그 무리들은 ‘우리가 사탄의 깊은 것을 알았다’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당시 두아디라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은 그들이 말하는 ‘사탄의 깊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계 2: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본디 ‘깊은 곳’이란 ‘하나님의 깊은 것’으로서 창세전 약속하신 비밀을 말한다.
(고전 2:10)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그런데 당시 이세벨로 일컬어지는 영지주의 지도자들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안다고 하며 성도들을 미혹한 것이다.
사실 여기서 그들이 주장하는 ‘사탄의 깊은 것’에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 운운하는 것은 실제로 사탄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들은 실제로 사탄의 깊은 것을 더 깊은 진리라고 부른다.
“this false teaching('a deeper truths,' as they call them - depths of Satan, really)"(계 2:24, NLT).
(이세벨과 그 추종자들은 그 가르침을 ‘더 깊은 진리들’로 부르고 있으나, 실상은 사단의 깊은 비밀입니다).
이들 이세벨과 그 무리들은 더 깊은 진리 또는 더 특별한 영적 경험을 준다고 하면서 믿음을 저버리게 만드는 거짓 예언자들이었다.
그래서 이세벨과 그 무리들이 주장하는 ‘더 깊은 진리’는 다름 아닌 성도를 미혹하는 ‘사탄의 비밀’이다.
결국 이세벨의 가르침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 곧 우상의 제물로 재미를 누리는 음행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재미는 결국 세속적 재미이며 음행에 다름 아니다.
진정한 기쁨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존재로 만나는 기쁨인 것이다.
이세벨이 주창하는 이러한 주장은 곧 영적인 간음이며 이를 통하여 결국 이 세상 풍조를 따르는 육적 방탕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시대 곧 오늘날에도 횡행하는 이단 세력이 그러하다.
이렇게 이세벨이 준동하는 극히 위험한 상황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인 영생을 끝까지 굳게 붙잡는 것이다.
(계 2: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영생)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셨다.
그 영생을 붙잡고 그 삶을 꾸준히 살아내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딤전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종들을 넘어뜨리며 죽였던 아합의 여자 이세벨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후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였다.
그리고 그의 시체도 찾지 못할 정도로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이처럼 교회와 성도를 미혹한 이세벨의 실체는 마지막 날 멸망 받을 음녀로 드러난다.
그 여자는 이세벨처럼 화려하게 꾸민 채 모습을 드러낸다.
(계 17:3-4)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이 모습은 예후의 손에 죽임당하기 직전의 이세벨과 동일하다.
(30) 예후가 이스르엘에 오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이세벨로 대변되는 음녀는 사탄 곧 용의 권세를 받은 짐승 위에 타고 있다.
그런데 그 음녀는 자기가 타고 있는 짐승에 의해 죽임 당한다.
그리고 그 짐승이 그녀의 살을 먹고 불로 살라버린다.
오직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가 결국 용의 권세를 받은 짐승을 이긴다.
그와 함께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신실한 자들이 승리한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어린 양의 구속사건에 연합한 자들이 승리한다.
죽임을 당하기 직전 눈화장을 하고 머리를 꾸미는 이세벨은 마치 끈끈이판에 붙잡혀 꼼짝 못하면서도 자기 앞에 있는 먹이를 먹고 있는 쥐에 다름 아니다.
사망의 세력은 결국 마지막 때에 멸망할 것이다(고전 15:26).
하지만 주님이 오시기까지는 여전히 그 사망의 세력이 활개를 치고 역사한다.
그것도 하나님이 아닌 것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찾게 하는 음행의 죄로 역사한다.
나는 이러한 진리를 알지 못하고 그저 육신의 재미를 찾아 표피적인 즐거움에 마음을 빼앗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나는 마땅히 주의 공의로 심판을 받아 죽어야 할 자였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런 나를 아주 멸하지 않으시고 징계를 통하여 복음의 의미를 알게 하셨다.
이제는 그 복음의 목적인 영생을 날마다 누리며 주님과 함께 그 구속사건에 연합하여 나를 부인하고 오직 예수로 부요한 자 되어 살기를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 안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다가도 나도 모르게 이 은혜가 내게서 떠나면 어떡하지, 하는 염려로 억눌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는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기에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주님께 한 걸음 나아갑니다.
비록 주님의 은혜가 내 육신의 눈으로 볼 때 떠나간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떠난 것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선한 것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습니다.
여하튼 짐승과 죄의 세력인 마귀를 영원히 이기신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영생을 누리는 자로 살게 하소서.
가장 좋은 것과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