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시집 박기영의『맹산식당 옻순비빔밥』출간 삶과 시, 삶 같은 시, 시 같은 삶 조망하는 문학포럼 9월2일(금) 저녁7시 구미 형곡동 카페공간서 열린다
요즘 먹방이 유행이다. 먹방은 '먹는 방송'을 줄임말로 드라마나 예능 등 공중파와 케이블 채널은 물론 인터넷 매체까지 음식과 요리를 다루는 프로가 넘쳐난다. 심지어 페이스북에도 식당이나 음식 이야기를 포스팅하면 조회수가 더 많이 올라갈 정도다.
먹방이 대세라서 그런지 음식을 소재로 쓴 시편들을 묶어낸 입맛 다시게 하는 특별한 시집이 출간돼 문단의 주목을 끌고 있다.
신간 시집『맹산식당 옻순비빔밥』 (박기영 지음·모악·8000원)은 음식 관련한 내용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낯선 북한음식과 옻요리가 주로 등장해 더 독특하다. 특유의 이북 사투리와 거침없는 언어로 토속적인 음식 속 개인사와 실향민으로 살아온 이산가족이라는 공동체의 기억을 시로 되살려냈다.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은 박기영 시인이 지난 1991년 민음사에서 첫 시집『숨은 사내』를 내고 홀연히 문단에서 사라졌다가 25년만에 불쑥 내어놓은 두번째 시집이다.
그는 1979년 당시 열일곱 살이던 장정일을 처음 만나 문학의 길로 인도하였고, 그가 첫 시집『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내고 김수영 문학상을 받을 때까지 이끌어준 스승으로도 문단에서 널리 회자되어온 인물이다.
그동안 박기영은 KBS 방송작가 및 프리랜서 연출가로 여러 프로그램의 제작에 참여했으며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등 한동안 문학을 떠나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시집에는 시를 내려놓고 시를 찾아다녔던 시인의 역설적 시간이 삶의 등고선처럼 굴곡을 이루고 있다. “그동안의 그의 역정을 떠올리면 가히 파란만장인데, 그러한 역정 가운데서도 시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간직해온 게 신기하고도 고마울 따름”이라는 이하석 시인의 ‘발문’처럼, 이번 시집에는 박기영 시인의 원초적 생명력인 야성(野性)이 잘 드러나 있다.
박기영 시인은 충북 옥천의 돈키호테다. 연고도 없는 곳에 들어와서 터를 잡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옻된장과 옻간장 등 토속음식을 지역 특화식품으로 자리잡게 하고 좌충우돌 뛰어다니며 옥천을 옻특구로 만든 장본인이다.
시인이 살고 있는 집에는 250년 된 옻나무와 옻샘이 있다.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은 이유는 북한 맹산 포수 출신으로 월남하여 대구시 안지랑이 입구 앞산 대덕식당 자리에 '맹산옻식당'을 하던 아버지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박기영 시인은 "옻나무는 나와 아버지를 연결해 주는 고리였고, 내 청소년기를 지켜온 숱한 가능성을 지닌 나무였다"고 고백한다.
그와 함께 북한음식과 옻에 대한 질펀한 이야기가 오는 9월2일(금) 저녁 7시 경북 구미시 형곡동 카페공간(형곡4주공 사거리)에서 펼쳐진다. 이번 행사는 '시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테마로 구미지역에 문학의 텃밭을 일구고 30년간 오랜 전통을 이어온 수요문학회(회장 박상봉) 주관으로 열린다. 류경무 시인이 진행을 맡고 이하석 시인과 이춘호 영남일보 기자 등이 페널 토론자로 참석해 대담 형식으로 진행되며, 박기영 시인의 '삶과 시, 삶 같은 시, 시 같은 삶'에 대해 조망하는 시간을 가진다.
* 대표시 2편
식당 문 열고 들어가면 서툰 솜씨로 차림표 위에 써놓은 글씨가 무르팍 꼬고 앉아, 들어오는 사람 아니꼬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옻오르는 놈은 들어오지 마시오.”
그 아래 난닝구 차림의 주인은 연신 줄담배 피우며 억센 이북 사투리로 간나 같은 남쪽 것들 들먹였다.
“사내새끼들이 지대로 된 비빔밥을 먹어야지.”
옻순 올라와 봄 들여다 놓는 사월 지대로 된 사내새끼 되기 위해 들기름과 된장으로 버무려놓은 비빔밥을 먹는다. 항문이 근지러워 온밤 뒤척일 대구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을 먹는다.
옻오르는 놈은 사람 취급도 않던 노인은 어느새 영정 속에 앉아 뜨거운 옻닭 국물 훌쩍이며, 이마 땀방울 닦아내는 아들 지켜보고 웃고
칠십년대 분단된 한반도 남쪽에서 가장 무서운 욕을 터뜨리던 음성만 옻순비빔밥 노란 밥알에 뒤섞여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옻올랐다고 지랄하는 놈은 김일성이보다 더 나쁜 놈이여.” ―?맹산식당 옻순비빔밥? 전문
지랄 같은 세상 옻이나 한번 올라봅시다.
나뭇가지 끝에 독사 혓바닥 같은 새순들 빳빳이, 고개 쳐들고 올라오고
거들먹거리는 햇살 환장할 것 같이 산기슭 어슬렁거리면 옆구리에 수 삼년 묵은 된장 한 주먹씩 보자기에 싸 꿰어 차고
뒷동산 양지녘 허공에 종처럼 매달려 고개 기웃거리는 옻순들 손바닥 시커멓게 꺾어 겨울 동안 땅속에 숨어 있던 독을 입으로 삼켜봅시다.
달싹하게 나른한 봄독 전신으로 기지개 켜듯 퍼져나가면 핏속에 잠들어 있던 욕망들 살가죽 벌겋게 들어올리고 폭탄처럼 미칠 듯한 근지러움 한꺼번에 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면
시커멓게 옻진 물든 손톱 독수리 발톱같이 날카롭게 세워 악다구니처럼 온몸에 달라붙는 세상 군더더기 한꺼번에 떨어져라 정신없이 긁어대는 옻이나 한번 올라봅시다. ―?옻순? 전문
* 미디어 서평 한국시의 영토를 드넓히는 아찔한 해발의 언어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은 ‘맛’의 전수에 대한 숭고한 수용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며, 동시에 가업으로 전수한 살아있는 맛에 대한 자부심으로 엮어낸 웅장한 서사의 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하석(시인)
“나는 이 서럽고 외롭고 그립고 안타까운 레시피를 가만히 앉아서 읽어낼 수가 없다. 식재료의 산지와 채집 방법이 떠오르고 조리법은 물론 밥상에 둘러앉은 얼굴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무엇보다 저 밥상에 분단, 실향, 타향, 망향이 녹아들어 있어서 양반다리를 하고 받아들 수가 없다.” ―이문재(시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 시편들은 또한 백석 이후 근근이 유전하는 음식시편들과 함께 옹색해진 한국시의 영토를 한껏 드넓히고 있다. 눈보라 몰아치는 낭림산맥의 쩌렁쩌렁한 얼음 골짜기를 닮은 이 아찔한 해발의 언어는 실로 얼마 만에 만나보는 장관인가.” ―손택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