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하를 보자, 먼저 아는 척을 한 사람은 서인호였고 자신을 부르는 인호에게 살짝 고개 짓 해 보이고서
재하는 다시 은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도 저 멍청한 귀문왕이 깨어나 있었군, 그래?"
"..할 말이 있으면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서 꺼지도록 해, 재하."
열심히 고민하다가도 갑자기 나타난 재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은민은 사정없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정면에 서서 받아 치던 재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도록 하지, 나도 너 같은 바보 왕이랑 놀아 줄 만큼 한가한 요괴가 아니 거든."
두 사람의 신경 전에 인호는 둘 모르게 고개를 돌리면서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런 생각을 할 생각은 아니지만..
정말이지, 저 두 녀석이 어쩔 수 없는 천적인 건 알겠지만, 애도 아니고..
하아 왜 만날 때마다 저렇게 애처럼 싸우는 거야.
그래도 유리 문제로 의기투합하면 잘 맞을지도 모르겠군.
으음.. 나중에 힘든 일 있으면 유리한테 부탁해서 저 두 녀석 좀 이용해 먹을까?
라면서 문득 위험한 생각을 하는 인호였다. 하지만, 유리는 여기에 있는 상황이 아니니 곧 고개를 저으면서
쓸데없는 생각을 날려 버리고서 어느새 본론으로 들어가려는지, 드디어 이야기할 자세를 잡는 재하를 주시했다.
"전생을 기억한다면 잊지 않았겠지? 서(徐)가의 저주 받은 자."
"....!!"
"귀요족(鬼要族)을 수호하는 요괴들의 어머니이자 신부로 살아야 하는 그들의 무녀 서란(徐爛) 그리고 반대로
어느 일족에도 속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명을 조건으로 요괴를 부릴 수 있는 마녀 서해(徐海) 그녀가 바로 유일하게
서(徐)가에서만 태어나는 저주 받은 자."
재하의 말에 인호는 미치겠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강은민으로 모자라서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재하까지 이런 애기를 하니..
1000년 전 그 시대에 서(徐)가에서 태어난 아이는 쌍둥이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 둘이 아니었다.
막내인 또 다른 쌍둥이 여자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녀는 오라버니인 서혼(徐琿)이 '어둠의 현자'가 되고
언니인 서란(徐爛)이 '죽음의 무녀'로 선택을 받는 해에 몸이 약했기에 죽을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해가 지난 후 죽었다.
서란과 반대인 '생명의 무녀'였다.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죽은 자 혹은 요괴를 조종하는 인형 술사였고 귀요족(鬼要族)과
대립하는 흑유족(黑有族) 족장과는 영혼의 쌍둥이였다.
그래서 몸은 죽었지만, 그 영혼만은 살아남아 그의 일부가 되어 살아 남았고..
후에 서란이 죽고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들어냈고 그녀를 사랑했던 누군가가 죽은 사해(死海)를 부할 시키기
위해 그녀와 같은 피가 흐르는 많은 귀요족(鬼要族)의 사람이 살해당했고 서혼은 또다시 자신의 누이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오는 거야? 유재하! 너 나한테 무슨 감정이라도 있는 거냐?
어? 강은민으로도 모자라서 너까지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화를 참지 못하고서 결국은 그때의 일이 기억난 인호는 있는 힘껏 재하에게 소리쳤지만 무덤덤히 그는
인호의 화를 받아 내고 있었다. 어차피 이미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각오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서해(徐海) 혹은 사해(死海) '죽음의 마녀'라 불리던 그녀는 너희와는 반대되는 힘을 있는 자들
그래, 흑유족(黑有族을 지키는 그들의 '생명의 무녀'이기도 했지.
그리고 귀문왕과 죽음의 무녀가 서로 사랑했던 것처럼 그녀는 흑유족(黑有族)의 수장인 흑사운(黑死殞)의
사랑을 받던 유일한 여자."
"...그래서? 서란과 마찬가지로 이미 죽은 사람인 서해가 이번 일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하는 거냐, 유재하?"
"야, 강은민!"
"조용히 해, 서인호. 말해보시지, 유재하.
너 지금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 사건들이 모두 오래전에 죽은 서해와 관련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냐?"
은민의 날카로운 시선에 재하는 피식 웃으며 그의 시선을 맞아 쳤다. 그리고는 닫고 있던 입을 열고 말했다.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는 나도 아직 확실하지 않아. 단지.."
"단지?"
"서인호가 예상했던 대로 내가 방금 만나고 온 나의 스승인 가율(歌律)에게서 느껴지는 그 꽃향..
분명히 항상 흑사운 그 바보가 사해를 위해 홍옥에서 꺾던 꽃 냄새를 똑같아.
마치 그녀가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은 생생한 향.."
그래, 내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라면 분명히 그 묘한 슬픔이 감도는 듯한 달콤한 향은 사운이
사해를 위해서 항상 그곳에서 꺾어 가던 꽃의 향..
그리고 흑유족(黑有族)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흑사운(黑死殞) 그는 저 바보 같은 귀문왕(鬼門王)처럼
사해를 아니 서해(徐海)를 사랑했었다. 이미 죽은 그녀를 금기의 사술을 이용해 다시 살려 내려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염라국(閻羅國)에는 죽은 영혼을 심판하는 수많은 지옥들이 있지, 그중에서 침묵으로 죄를 벌하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가장 깊은 지하에 있는 연못. 염천(閻川)이라는 곳이 있어. 이곳에 봉인 당하는 자는 죄를 모두
갚을 때까지 침묵으로 벌을 받으며 환생할 수도 없지.
지금 너희를 위협하는 영혼들은 모두 그 염천(閻川)의 봉인에서 풀린 악귀(惡鬼)들이지."
재하의 말에 인호는 사정없이 얼굴을 찡그리면서 은민과 재하를 한 번씩 노려보고서 말했다.
"가장 깊은 지하 연못이라면 경계가 소홀하지는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그런 데서 영혼들이 도망친 거지?"
"요즘에 유리의 문제로 대제는 천제와 한참 신경전을 벌이는 중이야.
뭐, 두 사람의 밑에 있는 우리들도 그 문제로 전쟁이 일어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상태라 어떻게 된 게 경계가 소홀해졌어.
그리고 녀석들은 봉인을 풀 수 없어. 누군가 그들을 끌어내기 위해서 봉인을 풀어 준 것이지."
"그렇다면, 모든 상황을 조합해 보고 생각해 보면 이번 일들이 서해와 연관되어 있다는 거야?"
흔들리는 인호의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며 은민은 침묵을 지켜도 재하는 한숨을 내뱉으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것까지는 나도 알 수 없어. 그녀의 영혼은 이미 1000년 전 죽은 시점에서 사라져 버린 지 오래야."
"..........."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영혼이 누군가에 의해서 봉인되어 있든지 아니면 소멸당했을 거야."
"사람의 영혼을 소멸시킬 수 있는 자는 몇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재하?"
"그래, 너와 우리 명부의 108 왕 중 상위권에 속하는 '심판하는 자' 혹은 대제 외에는 없지."
"그렇다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꺼내리다가도 멈추는 인호의 모습에 재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요즘 들어 흑유족(黑有族)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그래도 한 가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게 있다면 강은민 넌 이대로 있다가는 신유리와 함께 죽을 수밖에 없어.
너희의 심장이 이미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니 말이야."
재하의 말에 은민은 애써 자신을 쳐다보는 인호의 시선을 피하며 작게 말했다.
"알아.."
신유리가 나를 떠난 이상.. 곧 내 심장은 멈추어 버릴 것이다. 내 생명을 그리고 나의 뛰지 않는 심장을 걸고서
나는 서란(徐爛)과의 기억을 다시 태어나고 있지 않도록 저주를 걸었다.
그리고 결국 그녀를 다시 찾아 내가 스스로 건 저주는 풀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내 심장이 뛰는 것은 아니다.
신유리가 곁에 이어야지만 뛀 수 있는 빈 겁데기인 심장일 뿐이지.
고민에 빠지는 세 사람을 감싸는 불안한 공기에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은민은 무슨 생각이냐는 듯이 재하를
쳐다봤고 그는 모르겠다는 듯이 무덤히 은민의 싸늘한 눈초리를 받아 내고 있었다.
그리고 곧 익숙하다는 듯이 문 너머에 움직이는 작은 존재를 향해 말했다.
"드디어 움직이는군, 이번에는 또 무슨 장난을 벌일 생각인 거지? 소아(笑娥)"
"......??"
재하의 뜬금없는 말에 인호는 이해 불능이라는 듯이 재하를 바라보았고 재하는 느긋하게 은민의
싸늘한 시선을 느끼며 조용히 웃었다.
◈
평범하게 손님방이라 보이는 방 안에는 편안해 보이는 싱글 침대와 결 좋아 보이는 하얀 침대 그리고
둥그런 원목 탁상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싱글거리면서 웃는 우진이 아인의 짐을 정리 중이었다.
으음.. 이렇게 잠깐이라도 아인이 옆에 있는 건 좋기는 하지만..
역시 내가 오빠라는 사실을 들키는 날에는 천령은 물론이고 나도 아인이 손에 죽겠지.
아니, 지금까지 이 사실을 알면서 숨긴 아저씨랑 시윤이 놈이 가장 먼저 제거 대상에 속할지도 몰라.
그러면 그전에 아인의 맘을 돌려야겠네.
나도 살아야 하니..하하
룰루랄라 ~♪ 노래까지 부르다가도 아인에게 들키는 날에는 자신이 죽는다는 생각에 우진은 급격히 기분이
하락했고 이런 그의 궛가로 속삭이는 작은아이의 목소리가 있었다.
'네가 원한다면 널 과거의 시간으로 돌려줄 수 있어, 어때?'
"누..누구?"
우진의 앞에 나타나는 것은 작은 꼬마 아이였다.
대충 12살에서 14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로 까만 머리를 동그랗게 말아서 은색 리본으로 고정 시키고
넓게 펴지는 은색의 차이나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앙증맞은 작은 발에는 하얀 꽃신이 신겨져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멍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우진을 향해 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는데..
"넌 누구지?"
' 이름은 '소아(笑娥)'오래 전 '시간의 주인'이었던 이(李)가의 당주를 모시던 그의 종이지.'
"........"
'그런데.. 당신 굉장히 슬픈 기억을 하고 있네.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 그 사건이 일어났던 그때로..'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면서 자신을 유혹하는 소아를 바라보다가 우진은 피식 웃으며 소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지우고 싶지 않아.."
'어째서..?'
"아무리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고 해도 인간은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와 추억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는 거야."
'..당...당신도 우리 주인님이랑 똑같아! 어떻게 그런 기억을 하고서 살아가는 게 행복 할 수 있다는 거야?!'
"........"
'그런 기억 따위 차라리 지우고서 살아가는 게 좋잖아?'
"아니야, 기억이 있는 게 좋아..."
어느새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소아의 작은 손이 숨통을 조여 오자, 우진은 그를 밀어 내려 했지만, 인간인
그가 밀어내기에는 힘의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으윽.. 지금까지 내가 상대해 왔던 놈들이랑 다르잖아.
그런데 기억을 지운다는 게 무슨 말이지?
난 잊고 싶지 않은데.. 내가 가진 기억들을..
숨을 조여 오는 작은 손의 차가운 온기와 이상하게 몸을 감싸는 나른함에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궛가로 장난기 가득한 소아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 여자와는 다르게 너에게는 꿈을 보여 줄게, 가장 행복했고 네가 잊고 싶던 그 잔인한 기억을을.. 키킥'
"..아..아인아.."
◈
자신에게 있어서 슬픈 기억 따위는 그냥 잊어버리는 게 좋잖아?
그렇게 옛 추억에 괴로워하지 말고 말이야.
잊는 게 바로 행복할길인데, 어째서 내 주인님도 당신도 거부하는 거지?
괴롭고 슬퍼하는 것보다도 기억을 지워 버리는 게 행복할 텐데.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영원히..
by- 소아(笑娥)
.........
...
모락모락 뜨거운 김이 피워 올라오는 하얀 욕조에 푹 몸을 담갔다가 피로를 풀고 나온 아인은 오랜만에
거울 앞에 서며 비치는 자신의 작은 몸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방금 목욕을 해서 그런지, 까만 머리카락은 촉촉하게 적어 있었고 어려서 그런지 통통하게 살이 오른 동그란
얼굴에 그리고 정말로 아무것도 난 몰라요~? 라는 이 순진무구한 눈동자를 보자, 아인은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게 뭐야? 이거 완전히 옛날 모습이랑 똑같잖아."
카페 게시글
BL소설
퓨 전
귀문(鬼門)고등학교 4부(부제: 원령화) 48화
하늘처럼★。
추천 0
조회 67
08.08.26 20:1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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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헤..... 재밌네요...>ㅁ< 1부부터 다 봤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