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이 남편이고
우리 아이의 기준으로 고모부인 그분을
1994년 결혼식 있었던 5월과
그해 아버님 생신이었던 10월에
그렇게 두 번 본 게 전부다.
아버님 생일이던 그날 구척장신 고모부께서는
초록색 푸딩을 커다란 스테인리스그릇 가득 만들어 주셔서
식구들 모두 실컷 먹어본 기억이 있다.
지금은 여자나이 마흔이 넘어도 그런가 보다 하지만
1994년의 여자나이 서른다섯은 똥차나 다름없었다.
노총각 장남이 안 팔려 나가니 그 집의 혼사는 모두 정체되어 있었다.
장남이 평균나이에 장가를 갔더라면
얼굴 되고 몸매 되는 시누이는 좀 더 나은 남자를 고를 수 있었을 수 것이다.
장남이 안 팔려나가니
동생들이 줄줄 이로 결혼은 생각도 못하고 나이를 먹고 있었던 까닭이다.
36. 35. 33. 30세 이렇게...
드디어 그 집의 구원자인 내가 장남을 치워주니
한해에 한 명씩 혼사를 치르게 되었다.
이듬해에 나와 동갑인 차남이 10년 사귄 사람과 결혼을 하고
작은 시누이는 그 이듬해에
부랴부랴 중매로 광주의 모 호텔의 제빵사에게 시집을 갔다.
서울 사람인 고모부는 어쩌다 그 먼 곳에 직장을 잡았은지 모르겠다.
서울과 경기도에서만 살아봤던 시누이가 졸지에
친구하나 없는 전라도에 가게 된 것이다.
결혼식과 동시에 내려갔고 입덧으로 힘들다고 8월에 올라왔다.
좀 있으면 추석이고.. 좀 있으면 설이고 그렇게
친정에 있다가 그 이듬해 2월에 딸을 낳았고
산후조리 후 내려갔다가 얼마 되지 않아 친정으로 돌아왔다.
고모부께서 친구와 동업으로 빵집을 하고 싶다고 했고
사업은 다 망하는 것으로 아는 사업에 무지한 시댁 식구들은
고모부가 호텔 제빵사로 머물러 주기를 바랐다.
사업하다 흥하는 것보다는 망하는 것에 확률이 크다며
당신의 딸이 거리에 나 앉을까 봐
사업은 결사반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빵가게를 하고 싶다 하니
몇 푼 되지도 않은 아파트 전세금을 빼서 시누이는
살림 몇 가지만 가지고 아이와 시댁으로 들어왔다.
고모부의 자금만으로는 빵가게를 할 수 없었고
동업하기로 한 사람이 맘이 변해서
빵가게는 없었던 얘기가 되었다.
빵가게 하려던 전세자금은 시누이가 쥐고 있었으니
그 후로 고모부께서는 어디서 숙식을 하셨는지.. 모르겠다.
호텔에 오래도록 근무했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 있었는지... 모른다.
그 고모부를 우리 시누이에게 소개한 사람은
큰 시누이의 옛 직장 후배가 자기 사촌오빠가 제빵사인데... 라며
큰 키에 제빵 기술만 있을 뿐 얼굴을... 별로였던 그분을 소개했고
그에 비해 우리 작은 시누는 꽤 괜찮은 용모였다.
작은 시누이는 고모부에 대해 말이 없는 사람이고
궁금해서 물으면... 뭘 알려고 해! 라며 입을 막는 사람이다.
조카아이는 돌 되기 전에 아빠를 봤고 말을 할 줄 아는 다섯 살쯤에서야
아빠라는 사람을 만나 봤을 뿐 같이 살지는 않았다.
나는
사오 년 전쯤 큰 시누이를 통해서
그분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고모부님 댁에서는 하나뿐이 피붙이에게 연락을 안 하고
장례를 치른 모양이다.
시누이는
고모부에게 생활비나 교육비 등을 전혀 받지 않고
자신만의 딸로 키웠다. (돈은 큰 시누가 다 벌었으니...)
조카아이는 순하고 바르게 크고 공부도 잘해서
대학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아서 학자금대출이 없다.
졸업 후 출판사에 잠깐 있다가 지금은 IT업체에서
전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아빠가 없는 것을 뭐라고 설명했을까?
애가 워낙 조숙해서... 묻지 않았었을 수도 있다.
아빠라고 말을 몇 번이나 입 밖으로 내어봤을까?
결혼을 하려면
상대방의 가족을 봐야 한다는 게...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난 뒤늦게 깨달았다.
고모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큰 시누이를 통해 들으며
.. 너무 안타까웠다.
그분도 내내 혼자 그렇게 사셨다고.
저렇게 여자들 속에서 만 자란 조카아이가
남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저를 키운 엄마와 이모를 부양하기 위해
결혼 따위는 꿈도 안 꾸고 그렇게 살게 될까 봐
이 외숙모는 걱정한다.
20240302 내가 지금 잘 나가는 저조카를 걱정할 때가 아닌데...
첫댓글 어머나
그 시누이 남편 도통 이해가 안 가는 사람이네요.
결혼하기엔 부적합 한 사람임에 틀림 없네요.
아내와 자식에게 대한 그 어떤 책임감도 하나 없고...
한편 그 분의 인생도 참 그러네요.
다행히 조카가 잘 되었으니~
그 조카 어른 부양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아빠 같은 사람 만날까 기피할지도 모르겠네요.
제 경우는 오빠가 둘 있었는데
먼저 결혼을 했습니다.
아들일 경우엔 바뀌면 안 되지만
여동생은 먼저 해도 상관없다고들 하던데요..
중매로 바로 결혼해서
정이 든것도 아닌 상태에서 아이만 낳았고
같이 산게 얼마 안되니...
어머니께서 딸을 끼고 있을 게 아니라
광주로 내려 보냈어야 했어요.
여동생도 동생 나름이지요.
바로 아래 시누이도 있는데
세째가 무슨...생각도 못 해요. 그 집안에서는.
@북앤커피 오로지 내 자식들만 끼고 있으려는
친정 엄마가 문제가 크군요.
시누이도 시누이 남편도 다 희생양 이었을까요?
커피님의 선택으로
남은 시누이들이 줄줄이 새 인생을 맞이 했으니
귀인 이십니다.^^
밤이 깊었네요.
휴일 푹~쉼 하시고
월요일 화이팅~~해요.
@비 사랑
귀인대접을 받은 편이지요.
ㅋ~
남은 시누이들은 아니고요.
시동생과 시누이 한 명만 결혼했지요.
편히 쉬세요.^^
너무나 맛깔나게 주셨네요
깊어가는 밤
덕분에 좋은 글 고맙습니다
친정엄마가 끼고돈다고 너무나 사랑하면 남편 곁으로 안갈까요? 밤에 보따리싸서 둘이 도망도 갈진데 ㅋㅋ
시누이가 올케한테 만다꼬 사사건건 얘기 다하겠어요 그들만의 사연이 있겠지요
부녀간도 하루하루 세월가다보면 몇십년도 후딱가고 키울때 부정이 없음 이웃아저씨보다 더 정없어요 칩거하는 엄마 밑에서 그래도 그딸은 보이는것만으론 잘컸다고 할수있겠네요
보이지 않는 정서가 안쓰러울수도 있지요
남은 세월 여자나라 사람들 행복했음 좋겠어요
예전엔 생활고가 심해서 커피님이 많이 도와주셨는데 이젠 그러지 않은거 같아서 다행입니다
패밀리 스토리 재밌어요^^
고생을 하더라도
다시 보냈어야 한다고..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내 딸은 소중하고
남의 아들은 어떻게 살거나말거나...
그건 잘못 된 일이다.
어머니댁은 이제 제 도움없이 잘지내요.
월급 많이 받는 조카아이가
생활비는 안 주지만
쿠팡에서 식품과 간식거리등은
산다고 합니다.
저는
자꾸
대학입시 원서값 없다고 빌려간
60만 원을 잊지 못하고 있어요.
카드는 내가 쓰라고 준 것이지만
그건 아니었어서
ㅎ~
ㅋㅋㅋ
@북앤커피 저도 그렇고 보편적인 사람들이 받을땐 당연하고 지꺼줄때는 인색해요
봉급 많이 받으면 그동안 고생한 동거여인들에게
아낌없이 베풀면서 살아야지 왜 그정도 물건만 사준데요 할머니 이모 외숙모 고마운줄 알고 지극정성은 아닐지라도 수시로 감동있는 식사 여행 선물은 해줘야지^^
제말은 두남녀가 너무나 사랑했더라면 엄마가 가지말래두 몰래 보따리싸서 나가고 장모님이 구박해도 처가집에 들어와서 같이 살지 안그래요?
커피님이였음 엄마랑 싸우더라도 서방님찾아 천리먼길이라도 빵긋빵긋 웃으면서 갔을거예요^^
시누님이나 고모부님이나 사랑이 부족한 분들이군요,
빵가계해서 성공하면 좋고 안되면 다시 노력하면 되지요.
평생에 한번 모험도 해볼만한데~
인생이란 안갯속
안주하면 벗어나기 힘든것인데,,,,
일기는 형제들과 장가계 두번째 다녀와서
몸은 피곤해도 기분은 좋습니다,,ㅎ
정이 들새 없이 떨어져 살았으니...
장가계를 두번이나요?
다른데 구경을 하시잖고.
ㅋ
양씨집이나
이씨집이나
설명하기 힘든 집들이네
잘 지라준 조카가 기특한데
그르게
누가 누굴 걱정하는건지
그때 제빵 사업했음
대박났을지도 모르고
하긴 대박나면
상황이 바뀌었을까?
모르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실패를 하더라도 했다면
사는 게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짐작은 하지.
변화가 무서운 양씨들이라니.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