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비평가이자 역사가인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1795-1881)은 스코틀랜드의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나 에든버러 대학에서 공부하였고 프리랜서 저술가로 평생을 보내다가 만
년에는 모교의 명예총장까지 지낸 분입니다. 그의 저술은 역사 문학 철학을 넘나들며 넓게 퍼져
있는데 '프랑스혁명사'(1837)는 그의 대표작입니다. 1837년 「프랑스혁명사」를 집필하여 세
계적인 역사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훌륭한 저서는 칼라일이 각고의 노력 끝에 1834년에
이미 집필을 끝낸 내용을 다시 작성한 것입니다.
그는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프랑스 혁명사를 탈고한 후 이웃에 사는 그의 친구인 스튜어트 밀을
만나 원고를 보여 주며 "내가 2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쓴 원고라네. 자네가 한 번 읽어주었으면
좋겠네." 하고 그에게 원고를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스튜어트 밀에게서 아무
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며칠 후 창백한 얼굴로 칼라일을 찾아왔습니다.
"자네의 원고를 나의 하녀가 난로의 불을 지피기 위해 그만 난로 속에 넣어 버렸다네. 정말 할말
이 없구만." 이 말을 들은 칼라일은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2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원고가 재로 변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절망한 칼라일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칼라일은 아침 산책길에 벽돌공이 벽돌을 쌓는 것을 보고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되
었습니다. "벽돌공은 한 번에 한 장씩의 벽돌을 쌓는다. 나도 그렇게 하면 될 것이다. 불란서 혁명
사의 내용을 한 줄 한 줄 다시 기억하면서 벽돌을 다시 쌓자. " 그 일은 정말 지루한 일이었지만
꾸준히 한 덕에 마침내 원고를 완성하였습니다. 불태워진 원고가 거의 완벽하게 다시 기록되었고
어떤 대목은 처음 원고내용보다 더 나았습니다.
결국 3년 후 출간된 “프랑스 혁명사”는 불후의 명작으로 인정되었고 우리에게 오늘날도 높은 평
가를 받고 있습니다. 만약 처음 원고 그대로 출판되었다면 그 작품은 이렇게 뛰어나지 못한 평범
한 작품에 지나지 않았을지 모를 것입니다.
우리는 예측 못한 수많은 문제들을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를 절망하게 하고 좌절하게 만들기도
하며 어떤 것들은 평생을 큰 슬픔과 고통 속에 살게 만들 것 같은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
요한 것은 절망과 좌절 속에 주저앉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저앉는 순간 더 이상의 희망이
나 가능성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지만 그러나 다시 기운을 내어 일어설 때 우리 앞에 새로운 가능
성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신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
라[요일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