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불꼬불 라면의 변천사
1963년 9월 15일 국내 최초로 발매된 삼양라면은 투명한 비닐 포장에 닭 그림과 함께 '닭고기국물로 맛을 냈다'는 광고를 내보내 관심을 끌었다.
한동안 '라면은 삼양라면'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많은 호응을 얻었다. 70년대 초에 발매한 '삼양칼국수'는 '천연 원료를 사용한 가장 안전한 식품'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품목 다양화를 꾀한 제품이었다.
요즈음 발매되는 인스턴트 칼국수에 비하면 모양이나 맛이 많이 뒤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나 100g 한봉지에 30원의 가격으로 색다른 맛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인기를 얻었다.
1970년 '짜장면'을 시판한 삼양은 1972년 3월 7일에는 국내 최초의 용기면인 '컵라면'을 시판해 영업사원을 하려면 삼양으로 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단한 위세를 자랑했다.
도매상이나 대리점에서 미리 결재 준비를 해 놓고 수금 사원을 기다렸을 정도이며, 영업 사원들의 비위를 건드리면 장사를 그만 두어야 했기 때문에 타 회사 직원들에게 삼양식품의 영업사원은 스트레스를 모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부러움을 샀다고 한다.
1970년에 발매된 '짜장면'은 당시 외식으로 가장 즐겨 먹던 짜장면을 즉석에서 먹을 수 있도록 개발해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많은 호응을 얻었다. 가격은 120g 한 봉지에 25원. 이듬해에 발매된 '치킨면'은 고기를 먹는 일이 흔하지 않았던 소비자들에게 카레 맛까지 가미시킨 색다른 맛으로 인정받으며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지금도 30대를 넘긴 장년층에서는 별식으로 먹던 '치킨면'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컵라면은 1972년 3월 7일 발매되어 특히 학생층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요즘 나오는 즉석 용기면에 비해 기술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뜨거운 물을 부어도 잘 익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가격은 다른 것들보다 조금 비싸 한 개에 50원이었다.
삼양라면의 위세에 눌려 곤욕을 치렀던 롯데라면은 후발 업체로서의 비애를 씹으면서도 신제품 개발을 통해 한발, 한발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
롯데라면은 삼양과의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롯데제과에서 지원받은 껌이나 별 사탕을 넣기도 하고 120개를 사면 고급 탁상시계를 주는 경품 제도까지 실시했으나, 영업 사원들이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결재일이 두렵다고 말할 정도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도매점에서 결재를 약속하고도 자리를 피하거나 아예 물건을 반품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1968년에 '왈순마' '장모님 곱빼기'를, 1969년에는 '스파이스 라면'을 출시했으나 한번 굳어진 업계의 위치는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70년에 국내 최초로 개발한 '소고기라면'이 히트를 치고 현재까지도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새우깡'으로 다소 여유가 생기면서 회사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이렇게 조금씩 입지를 넓혀 나가던 롯데라면은 1975년에 개발한 '농심라면'이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광고 카피와 함께 인기를 끌게 되면서 후발 업체로서의 서러움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농심라면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구봉서-곽규석 콤비를 광고에 등장시켜 쫄깃한 면발과 구수한 국물 맛을 선전했는데, 소비자들에게 맛이 제법이라는 평을 듣게 되었다.
롯데라면은 회사 상호까지 아예 농심으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업계 선두의 자리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삼양라면은 후발업체인 농심의 추격에 맞서 신제품을 개발하기보다 기존의 이미지를 굳히는데 주력해 나갔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던 업계의 위치는 농심이 야심차게 발매한 신제품들로 인해 서서히 변화되기 시작했다. 1982년 11월에 출시된 '너구리'와 1983년 9월에 발매된 '안성탕면' 그리고 1986년 10월에 개발된 '신라면'은 '히트 삼총사'로 불리면서 '라면은 삼양'에서 '라면은 농심'으로 바뀌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너구리는 '오동통한 내 너구리'라는 광고 카피와 함께 굵고 쫄깃한 면발로 씹는 맛을 강화시켰으며 기호에 따라 얼큰한 맛과 순한 맛을 선택할 수 있도록 두 가지 맛의 제품을 동시에 발매해 더욱 인기를 끌었다.
안성탕면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탕을 라면에 접합시킨 맛으로 현재까지 단일 제품으로는 가장 많은 양을 판매한 제품이다.
신라면은 매운 음식을 즐겨 먹는 한국인들의 기호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단일 제품의 판매량이 경쟁사의 전체 판매량과 맞먹는다고 할만큼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간판 제품이다.
특히 신라면은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어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라면의 종주국이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라는 생각을 갖게 할 만큼 수출 향상에도 적극적으로 기여한 상품이다.
농심이 업계의 선두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소비자들의 기호를 정확히 읽어 낸 품질 좋은 신제품을 개발한데도 큰 원인이 있으나, 89년에 세상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던 우지파동으로 인해 삼양라면이 상당기간 발매가 중지된 것도 결정적인 기회로 작용했다.
1994년 1월 과거와 비슷한 주황색 포장지에 담겨져 재 발매된 삼양라면은 우지파동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소비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출시 6개월만에 월 평균 40만 박스 이상을 판매하는 호조를 보여 일단 재 출시에 성공을 거둔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장년층 이상의 소비자들은 과거의 라면 맛과 차이가 많다는 애교있는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당시 삼양라면 측은 "소비자들의 입맛이 변화되면서 라면 맛도 변화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포장은 장년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도록 만들었고 맛은 신세대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우지를 사용하지 못하고 식물성 기름으로 유탕을 했기 때문입니다."
삼양 식품은 이외에도 90년 초에 '쌀라면'을 출시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농심은 진공 Mixer 공법을 이용한 '쌀탕면'과 '순진면'그리고 부드러운 맛으로 입맛을 돋우는 '소세지 짜장면' 등을 출시하여 업계의 선두 자리를 굳히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외에도 청보라면을 인수한 오뚜기와 빙그레 등이 라면을 발매하고 있으나 시장 점유율은 아직 미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첫댓글 왜 갑자기 라면에 관심을 ??? 나무 라면불 ().......
ㅋㅋㅋ
ho ! ho! .. 너무 웃겨요. 나무 라면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