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정지용
넓은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밤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 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상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린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시인의 시 이야기]
이 시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테너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이 함께 부른 노래 때문이지요. <향수>를 작곡한 이는 대중가요 작곡가인 김희갑 작곡가입니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엇을 때 대중가요 작곡가로 어떻게 저처럼 멋진 곡을 썼나 하는 생각에 자료를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시 <향수>가 담고 있는 시의 의미를 너무도 잘 살린 수준 높은 곡이 아닐 수 없습니다.
<향수>는 이토록 아름다운 시지만, 정지용 시인이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었다는 이유로 출판과 사용이 금지되었다가, 1988년 납북과 월북 작가의 작품에 대한 해금 조치로 작품집 출판과 작품 사용이 자유로워졌지요. 이처럼 아름다운 시가 오랫동안 묻혀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랬기에 더욱 값진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시 <향수>는 고향에 대한 짙은 서정이 아름답고 토속적인 시어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하지요. 이를 잘 알게 하는 것이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이라든가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든 곳’, 이라든가 ‘하늘에는 성근 별 /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라는 표현인데, 이로 인해 <향수>는 읽는 이의 마음 깊이 감동을 불러일으키지요. 그래서일까, 이 시를 읽고 나면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더욱 고향을 그리워하게 되고, 고향을 더욱 사랑하게 되지요. 이처럼 좋은 시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행복이자 축복이랍니다.
출처 : 《위로와 평안의 시》
엮은이 : 김옥림, 펴낸이 : 임종관
김옥림 :
-시, 소설, 동화, 교양, 자기개발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집필 활동을 하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에세이스트이다. 교육 타임스 《교육과 사색》에 〈명언으로 읽는 인생철학〉을 연재하고 있다. 시집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만남이고 싶다》, 《따뜻한 별 하나 갖고 싶다》, 《꽃들의 반란》, 《시가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소설집 《달콤한 그녀》, 장편소설 《마리》, 《사랑이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 것들》, 《탁동철》, 에세이 《사랑하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아침이 행복해지는 책》, 《가끔은 삶이 아프고 외롭게 할 때》, 《허기진 삶을 채우는 생각 한 잔》,《내 마음의 쉼표》, 《백년 후에 읽어도 좋을 잠안 315》, 《나는 당신이 참 좋습니다》, 《365일 마음산책》, 《법정의 마음의 온도》, 《법정 행복한 삶》, 《지금부터 내 인생을 살기로 했다》, 《멋지게 나이 들기로 마음먹었다면》, 《인생의 고난 앞에 흔들리는 당신에게》, 《마음에 새기는 명품 명언》, 《힘들 땐 잠깐 쉬었다 가도 괜찮아》, 《법정 시로 태어나다》, 《이건희 담대한 명언》 외 다수가 있다. 시세계 신인상(1993), 치악예술상(1995), 아동문예문학상(2001), 새벗문학상(2010), 순리문학상(2012)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