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활 절정기에 사목활동에 전념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은 정말 엄청났습니다.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얼마나 은혜롭고 감미로웠던지 구름같은 군중이 몰려들었습니다.
종래 그 어떤 예언자나 지도자도 흉내낼수 없는 흥미진진하고 풍요로운 가르침에 사람들은 깊이 매료되어 에수님 가시는 곳 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엄청난 인파를 보신 타고난 교육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복음 선포가 보다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며 아이디어 하나를 내놓으셨습니다. 청중들은 갈릴래아 호숫가에 삥 둘러앉았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호숫가에 매어진 어선에 올라타 앉으셨습니다.
마침 호수 중심에서 호숫가로 불어오는 미풍에 실려 예수님의 말씀은 청중의 귀에 쏙쏙 들어와 박혔습니다. 상상만 해도 흥미롭고 은혜로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씀에 굶주린 당신 양떼를 향한 예수님의 배려와 따뜻한 마음이 크게 돋보이고 있습니다.
이윽고 예수님으로부터 선포되는 말씀은 기존 예언자들이나 지도자들의 말과는 질적으로 달랐습니다. 고리타분하거나 현실과 크게 동떨어진 구름잡는 말씀도 아니었습니다. 그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쉽고 구체적인 말씀, 백성들의 구체적인 일상과 연결되는 현장감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만 해도 팔레스티나 지방에서 살아가는 농부들이었다면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다.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마태오 복음 13장 3~8절)
팔레스티나 지방 농부는 씨앗 자루를 손에 들고 작년 추수 이후로 한번도 손대지 않은 채 널려 있는 들판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씨앗을 뿌립니다. 다음에 쟁기질을 합니다.
씨앗의 운명은 쟁기질이 끝난 후에 결정됩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에서는 아무런 수확을 얻을 수 없습니다. 굶주린 새들이 즉시 날아와서 쪼아먹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돌밭에 떨어진 씨앗 역시 해가 떠오르면서 오래 가지 않아 메말라 죽어버립니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은 가시덤불이 훨씬 더 빨리 자라면서 연약한 싹을 질식시켜 버리기에 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라는 놀라운 수확을 거두게 됩니다.
씨앗 한 알을 유심히 살펴보면 참으로 보잘 것 없습니다. 우선 작습니다. 기대할 것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씨앗 안에는 엄청난 생명력과 폭발적인 에너지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한 인간 존재는 수많은 가능성과 폭발적인 에너지를 소유한 씨앗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작은 씨앗 하나 그대로 남아있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십니다.
원형 그대로 남아있기보다는 발아되기를, 풍요로운 결실을 맺기 위해 스스로를 내려놓기를, 썩어 없어지기를, 그래서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 놀라운 모습으로 변화되고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