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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49) 최하연 시인
(『보헤미아의 유리』, 문학과지성사, 2024)
*꿈의 사고 과정에서 변형된 환상 경험
시는 알려지지 않은 것과 알 수 없는 것의 장벽을 쏘기 위해 음절을 찾는 것이라고 Carl Sandburg가 말했다. 이 말은 개별자가 시적 대상을 비현실적이고 비가시적인 코드로 해석하기에 기존 질서를 해체하는 표현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시인이 시에서 비현실적인 꿈과 환상을 통해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자신을 개방한다. 그 이유는 기존 질서가 시인 자신에게 사회공동체의 적응을 힘들게 하고, 고통스러운 삶의 정황을 억압하며 성욕 또한 억제시키기 때문이다. 억압의 장벽을 넘기 위해 시인들은 시에서 새 세계 인식의 창조를 통해 현실의 경계를 넓히고자 한다. 그렇다면 시에서 비현실적이고 비가시적인 꿈이 환상 경험으로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가. 꿈은 잠재의식과 의식, 무의식과 의식 사이에서 변신이나 왜곡을 거쳐 이미지로 나타난다. 융은 『기억 꿈 사상』에서 꿈의 억압기제인 성욕의 문제가 일부분이고, 다른 요인들에 의해서도 출현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꿈은 시인에게 안정감을 주거나 동시에 추락을 경험하게도 한다. 이때 꿈은 환상 영역으로 넘어가 시인의 정신을 비대하게 하고, 상승과 하강작용으로 욕망을 일으키기도 한다. 다시 말해 꿈은 완결 과정에서 “사고 내용이 퇴행적으로 변형되고, 소원환상으로 탈바꿈한 내용으로” 의식화되는 것이다. (윤회기‧ 박찬부 옮김, 『정신분석학의 근본개념』. 열린 책들, 2015. p.229) 또 다른 꿈의 환상 경험은 다른 요인에 의해 출현되는데, 시에서 시인들의 자아는 내면과 사회의 부정성으로 인해 비판을 일삼고, 부정적 영역으로 빠지기도 한다.
최하연 시인의 경우 『보헤미아의 유리』에서 나타나는 꿈의 환상 경험은 상승과 하강 작용을 거쳐 마음의 안정감을 찾거나 이와 반대로 추락하기도 한다. 이 환상 경험은 가장 기이하고, 가장 기괴한 언어작용을 통해 알레고리와 유사성으로 나타나는데, 시인이 독자의 반응을 결집시키기 위해 시로 환상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예를 들면, 자아가 꿈속에서 새와 소통하거나 거미에게 친친 감기는 등 상승‧하강작용으로 소원환상이나 추락환상을 경험한다. 시에서 환상 경험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자아가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세계에 참여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추락을 경험하는 일이다. 자아가 상승 작용에 참여하는 것은, 자기 생이 허공 정복에 가담하여 언어작용으로 시의 본질을 꿰뚫고, 생명력을 얻고자 함이다. 반대로 하강 작용은 자아가 급경사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자기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 정도로 추락하는 것이다. (「꾸욱」, 「당집」, 「잠 없는 꿈」, 「염소」)
베개가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고 단 하나의 꿈이 모든 꿈을 덮어쓰는 그
날이 오면 너만 보면 똥이 마렵다는 이의 얼굴
이 떠오를 것이다
흑두루미 발자국을 따라 강가로 나아갑니다
하얀 구름이 강물 위로 몰려옵니다
검은 돌들도 흰 구름을 베고 다들 눕습니다
잠이 베개에 매달립니다
두루미는 발톱 빠지는 꿈을 꾸고 낙방하여 텃새가 됩니다
서어나무는 사라지고 강이 있던 자리에 홀로 남았습니다
잠이 들 무렵-
머리맡에서 넙치가 죽었노라고 속삭인다
- 「당집」 부분
이 시에서 꿈속 소원환상은 자아가 허공을 비행하는 일이다. 그러나 비행이란 상승하는 동안 언제든 추락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결국 추락의 공포에 대한 극복이 비행 아니겠는가, 시적 자아가 추락을 통해 “단 하나의 꿈이 모든 꿈을 덮어 쓰는 날이” 올 것이란 걸 짐작하고 있다. 그런데 꿈속 소원환상이 단 하나의 꿈에 덮이게 되면, 자아의 모든 꿈은 꿈이 아니라 소망성취의 불확실성이 되는 셈이다.
한편, 시적 자아의 꿈은 끝난 게 아니라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한다. 연이은 꿈에서 그는 대상의 추락, 즉 환상을 경험한다. 이때 자아가 꾸는 꿈의 소원환상은 추락 형상으로 나타난다. ‘하얀 구름’이 강물에 내려앉고, “두루미는 발톱 빠지는 꿈을 꾸고/ 낙방하여 텃새가” 된다. 다시 말해 추락환상은 구체적인 대상이 없는 데도 대상의 고통이 자아의 시선에 선명하게 보이는 그런 형상이다. 이 시행에서 ‘두루미의 빠진 발톱’은 자아의 소원환상이 추락하는 이미지고, 시험에 낙방하는 이미지는 도시 학교로 가지 못하고 자기 내부에 고향 땅을 안아야 하는 내밀한 고통이다. 추락에서 깨어난 자아는 “있던 것이 사라지고/ 강이 있던 자리에 자기 자신이 홀로 남아” 있다. 이러한 비가시성은 추락환상 속에서 또 하나의 환상이 일어나는 중첩환상으로 나타난다. 자아의 소원환상 경험은 ‘흑두루미’와 ‘하얀 구름’으로 나타나는데, 그 대상들은 ‘변기 속’ 같은 억압된 자아의 현실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 시에서 ‘넙치’는 자아의 알레고리로 작용한다.
또 하나 상승 운동에 관한 꿈속 환상 경험은 격력擊力 작용으로 나타난다. 격력은 꿈의 완결 과정에서 물체 간의 충돌이나 타력을 가할 때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힘이다. 시인에게서 이 격력이 자아 자신의 불안한 심리를 해방하고자 하는 도약하는 힘이고, 반대로 시 쓰기의 강박에 걸린 자신이 조망 없는 추락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외박」, 「돌의 돌」, 「채석장」 「망치」, 「오우무아무아」)
다음 시들은 격력을 통해 자아와 대상 간의 도약과 추락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새의 표정을 물고기에게 전해줄 수 없을 때 이유 없이
찾아오는 몸의 반응, 발기
남근을 잘라 강물에 띄워보내면 새가 물고 날아올라
새끼들에게 먹이고 다 자란 새끼들이 둥지를 떠나며,
-「돌의 돌」 부분
새는 시를 쓰고 나는 모이를 먹는다
잘못 내려앉은 백지 위에서 새와 나는 덧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향해 없는 이유를 지어내고 있다
……<중략>……
눈밭의 허수아비는 사라지기로 한다
새는 수만 리를 날아와 보호종이 되어 곡식을 얻어먹고
돌아간다
소나무의 가지가 부러진다
나는 뛰어내리지 않았다
-「눈밭」 부분
「돌의 돌」에서 꿈속 소원환상은 시적 자아가 새의 비행을 환기함으로써 물고기에게 힘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자아가 물고기에게 그 힘을 줄 수 없으니, 대신 새의 고공비행처럼 자신의 봄을 발기시킨다. 발기된 남근에 타력을 가하는 순간, 남근은 강물로 떨어져 새들의 먹이가 된다. 이 형상을 통해서 보면, 자아의 남근과 새는 연인처럼 동일시 관계에 놓여 있다 동일시한 사랑은 대상 리비도의 집중이 먼저 일어나고, 그다음 자기 성적 에너지가 일어나는데 반해, 「돌의 돌」에서는 자기 성적 에너지가 먼저 일어나고, 그다음 대상 리비도인 새에게 힘이 집중된다. 남근을 물은 새는 그 남근을 새끼들에게 먹이고, 성조(成鳥)가 된 새끼들은 둥지를 떠나 하늘로 비상한다. 자아는 비상하는 새를 제 자신에게 비추어서 감정을 이입시키는데, 새가 시인의 투사물이다. 새를 통해 비상의 자유로움과 황홀감을 느끼는 자아, 새와 동일시한 마음이 마냥 기쁘고, 즐겁다.
그런가 하면 「눈밭」에서의 자아는 아직도 시 쓰기에 갇혀 자신의 길을 개척하지 못하고 있다. 답답한 점은 새와 자아의 역할이 바뀌어, ‘새가 시를 쓰고’, ‘자신이 모이를’ 먹는다는 것이다. 이런 기이한 현상은, 꿈이 환상 영역으로 넘어가기 때문인데, 둘은 그 이유를 몰라 이유 지어내기에 바쁘다. 자신의 역할을 찾지 못하는 자아의 태도는 허수아비와 결합하여 눈밭에서 사라지는 존재가 된다. 그런데 새는 인간의 보호종이 되어 곡식까지 얻어먹고 비상한다. 비상하는 순간, “소나무가 부러진다.” 부러진 소나무에 발을 딛고 있는 자아, 추락하지 않기 위해 ‘뛰어내리지 않’고 있다. 자아가 부러진 소나무에서 발을 박차고 뛰어내리는 순간이 격력이다. 하지만 자아는 그 격력을 발생시키지 않았기에 각성의 힘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자아는 제 틀에 갇혀 고통당하게 된다.
이 외에도 시에서 꿈속 환상 경험은 변신환상으로 나타난다. (「거미」, 「마디」, 「환생」) 변신환상은,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거나, 사물과 정신 사이에 혼돈이 일어날 때 펼쳐진다. 변신환상의 주제가 변형의 문제와 곤충, 짐승 등의 모티프들을 통해 실현되는데, 이 환상의 경우 시의 정황에 따라 유익하거나 무익하고, 의미와 가치가 있거나 상처와 고통이 따른다.
「거미」에서 거미는 인간의 지배력을 넘어 자아에 공포의 대상이 된다.
타일 줄눈을 잡아당긴다
욕실은 찌그러진다
끈적이는 격자에 갇힌다
거미는 나를 친친 감고 오래오래 먹어치울 것이다
이미 그랬던 것처럼
나는 거미의 꿈이다
……<중략>……
거미는 부른 배를 두 번 접고 세 번 눌러 타일을 뽑아낸다
바닥과 천장을 뽑아낸다
꿈은 또 찌그러진다
-「거미」 부분
이 시에서 거미는 인간의 경계를 넘어 자아의 영역 바깥에 위치한 존재이다. 그런데 거미가 “타일 선의 줄눈을 잡아당김”으로써 환상이 촉발된다. 환상은 인간을 향해 행위를 할 수 없는 거미가 마치 작고 미미한 존재를 대하듯 “나를 친친 감고 오래오래 먹어” 치우는 그로테스크한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자아의 바깥 영역에 위치하던 거미가 자아에 귀환함으로써 둘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예컨대 거미는 자아를 “끈적이는 격자에 갇히게” 하고, “오래오래 먹어치우기”까지 한다. 그런데도 자아는 거미의 귀환을 거절하지 못하고,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자아가 거미와의 합일로 인해, 그의 많은 꿈이 하나의 꿈으로 변하고 만다. 이 시에서 거미는 자아의 한 알레고리이면서 무의식적 욕망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분리되지 않고 밀착되는 거미는 더 이상 기괴한 절지동물이 아니라 자아 심리의 외형적 표출인 것이다.
지금까지 최하연 시인의 『보헤미아의 유리』에서 드러나는 꿈속 환상 경험을 하나의 주제로 다루어 보았다. 시인에게서 꿈속 환상은 의식과 무의식적 욕망의 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꿈은 소원환상과 격력환상, 변신환상으로 나타난다. 이 시에서 환상은 시인의 기존 가치관이나 세계 인식을 넘어 주변을 재정비하고 재구성하려는 꿈의 구성물이다. 꿈속 환상 경험은 최하연 시인 자신과 사회 주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고, 의식과 무의식의 은폐된 욕망 해체와 제도화된 틀의 새로운 인식이라는 점에서 그만의 특별한 시의 영역을 점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인의 심리와 꿈속 환상을 연관시켜볼 때 이 시집은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전의식의 사고 내용을 통합해서 깊이 탐구해 볼 수 있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최하연 시인 약력〗
2003년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 :『피아노』, 『팅커벨 꽃집』, 『디스코 팡팡 위의 해시계』
〖권영옥 문학평론가, 시인 약력〗
아주대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문학 박사)
2003년 『시경』으로 작품활동 시작.
2018년 『문학과사람』 평론 연재
비평집 『한국현대시와 타자윤리 탐구』, 『비시간성에 의한 그림자 시학』 외
시집 『청빛 환상』, 『계란에 그린 삽화』, 『모르는 영역』
《포스트24》시평 연재 중, 《한성뉴스넷》 ‘시의 오솔길 ’연재 중
문예비평지 『창』 편집장, <두레문학상> 수상
≪포스트24≫ 권영옥 문학박사의 현장 시평-(49) 최하연 시인
철원의 재두리미 © 포스트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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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최하연의 시들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감정적 간극이 좁지 않아 독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합일 점을 찾아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는데 권 평론가의 해설을 읽으니 아, 이래서 평론이 필요하구나 싶어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