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역 스케치
경전선이 복선화되어 KTX 출발지이기도 하는 마산역은 다양한 계층 발길이 닿는 장소다. 전국에서 어느 역보다 광장이 넓은 편이다. 정작 열차 이용 승객은 이웃 창원역이나 창원중앙역에 비해 뒤지지 싶다. 서울행 KTX 이용 승객은 창원중앙역이 마산역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마산역을 출발하는 KTX열차는 창원역에 정차하면 창원중앙역을 건너뛰고 진영에서 밀양으로 올라간다.
내가 열차를 이용할 때는 주로 창원중앙역에다 타고 내린다. 그럼에도 나는 마산역으로 자주 나간다. 그때는 열차를 승객이 아닌 농어촌버스를 환승하기 위해서다. 마산역 광장 모퉁이에는 구산과 삼진 방면으로 가는 농어촌버스 출발지여서다. 겨울이면 구산면 갯가로 트레킹을 더러 나간다. 봄여름가을에는 여항산과 서북산으로 야생화 탐방을 나서고 산나물을 채집해 오기도 한다,
마산역 광장에는 김해공항으로 오가는 리무진버스도 운행이 된다. 창원을 둘러 장유에서 김해공항으로 간다. 지금은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 전세버스 업계가 보릿고개지만 마산역 광장은 전세버스들이 전국 각지로 출발하는 곳이다. 주말이면 원격지 예식장이나 산악회나 동창회에서 떠나는 관광버스가 뒤엉켜 북새통을 이루었다. 특히 가을 단풍철은 더 많은 관광버스들이 움직였다.
마산역 광장에는 자원봉사단체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 급식을 실시하는 곳이 두 군데다. 관청으로부터 예산 지원을 일절 받지 않고 특정 요일에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는 고마운 분들이었다. 무료 급식 자원봉사자들의 순수와 열정에 옷깃이 여며지고 감동 받는다. 그런데 코로나로 한동안 무상급식이 중단되고 있어 소외계층 노인들이 점심 한 끼를 어디서 해결하는지 궁금하다.
내가 마산역 광장으로 나가는 시간대가 이른 아침이다. 노점상은 철 따라 여러 과일과 푸성귀들이 펼쳐 놓고 손님을 기다렸다. 어디서 그렇게 다양하고 풍성한 산물이 모여드는지 신기할 정도다. 평일은 빼고 주말 이틀만 형성되는 노점인지도 모른다. 금방 이슬을 맞은 호박잎이나 풋고추를 비롯해 신선 채소들이 그득했다. 냇가에서 잡아온 다슬기가 보였고 누구는 칡뿌리도 캐 왔다.
농어촌버스 출발지 근처는 번개시장 들머리는 길표 옷을 파는 노점상 차지다. 잡곡을 진열한 곳은 비둘기가 날아와 기웃거렸다. 손두부와 도토리묵을 빚어온 할머니가 쪼그려 앉아 있기도 했다. 김장철이면 건고추나 마늘을 파는 아저씨가 나타나고 이른 봄 장을 담그는 무렵이면 어디선가 띄워온 메주더미를 팔았다. 번개시장 입구 콩국이나 단술 파는 가게는 언제나 손님이 북적댔다.
마산역 노점과 번개시장으로 나가면 도심에서도 계절감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어느 곳엔 골동품이나 말린 약재가 보이긴 해도 대부분 인근 지역에서 키워온 채소들이 대부분이다. 금방 텃밭에서 따온 고춧잎은 검불이 붙어 있고 무는 흙이 묻은 채였다. 대형 할인 매장이나 마트에 진열한 크기나 묶음이 균질한 농산품보다 못난이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 눈길은 오래 머물렀다.
내가 마산역 광장으로 나가 농어촌버스를 타는 두 가지 경우다. 구산이나 진동 갯가로 나갈 때는 겨울이라 보온도시락을 싸 간다. 곡차야 잊지 않고 챙긴다. 진북이나 진전으로 가 서북산이나 여항산 임도를 걷을 때는 번개시장 들머리에서 김밥을 마련한다. 봄날에 산나물을 채집하면 배낭이 비좁아 공간 확보를 위해서다. 가을에 두릅나무나 화살나무를 잘라올 때도 마찬가지다.
참, 마산역 광장 스케치에서 빠뜨린 게 하나 있다. 어디선가 옮겨 심은 우뚝한 소나무 몇 그루 앞에 노산 시비가 있다. 여러 해 전 지역 사회단체에서 가곡으로도 읊는 이은상의 ‘가고파’를 빗돌에 새겨 놓았다.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로 시작된다. 노산에 대한 평가를 달리한 단체에서 그 시비를 페인트로 훼손시킨 적 있었다. 지금은 본디 모습을 되찾았다.20.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