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숨은 성자의 이야기
류도혁/시인.풍수연구가
옛날 충청도 내포지방(충남 서산, 홍성, 당진, 예산 일대)에 김사일 선생(1869~1940)이란 분이 살았습니다. 선생은 양반의 후예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만민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래서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모든 사람이 하늘처럼 존귀하다고 주장하는 동학에 입문하였습니다.
선생은 사람뿐 아니라 뭇생명을 다 같이 귀하게 여기고 사랑했습니다. 사람들이 힘없는
중생들을 마구 죽이고 괴롭히는 것을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선생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많은 사람들, 뭇중생 들에게 깊은 사랑을 베푼 성자였습니다.
선생의 나이 26세 때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선생도 자신을 따르는 젊은이들을 이끌고 혁명에 가담했습니다.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자 선생은 평생 수행의 길을 걸었고, 어느 의인으로부터 의술을 전수받아 병들어 고통 받는 이들을 많이 구해주었습니다.
선생이 스승을 만나 의술을 배우고 사람들에게 인술을 베푼 얘기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동학군이 패배하자 선생은 서해의 어느 무인도로 몸을 피했습니다. 한데 거기에는 먹을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급하게 조금 준비해간 양식은 두어 달이 못되어 모두 떨어졌고 선생은 솔잎으로 연명했습니다.
해변에는 쉽게 잡을 수 있는 게와 조개들이 무수히 많았지만 자기가 살아남으려고 살생을 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선생은 솔잎으로 허기를 때우며 만물중생을 위해 기도를 바쳤습니다.
선생의 몸은 날로 약해졌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탈진할 대로 탈진하여 걷는 것조차 힘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백사장 누워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커다란 바닷새가 금방 죽은 물고기 한 마리를 물고 와서 선생 곁에 떨어뜨리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선생은 그 물고기와 바닷새와 하늘에 감사하며 물고기의 살을 먹고 기운을 차렸습니다. 선생에겐 물고기도 바닷새도 하느님처럼 보였습니다. 그들만이 아니었습니다. 해변에 돋아난 이름 모를 풀잎, 손톱보다 작은 어린 게, 조약돌, 물고기 한 마리…. 삼라만상 모두가 하느님 같았습니다.
선생은 그이들 모두를 향해 절을 하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한데 그 뒤로는 솔잎만 먹어도 웬지 배가 안고프고 기운이 솟았습니다.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선생은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왼 종일 고통 받는 중생들을 보살펴 달라고 하늘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또 몇 달을 보냈는데 어느 날 밤에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선생은 머리가 하얀 노인 한 분을 만났습니다. 노인은 선생에게 나를 찾아 어서 빨리 가야산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꿈에서 깬 선생은 범상한 꿈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은 육지로 나가면 잡힐 것이 염려되기도 했지만, 하도 신묘한 꿈이라서 이튿날 섬을 떠났습니다. 며칠 뒤 선생은 가야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선생이 찾아간 가야산은 해인사가 있는 합천 가야산이 아니라 수덕사 너머에 있는 가야산입니다.
이 가야산은 해발 700미터도 안 되지만 내포지방에선 가장 높은 산입니다. 평야지대에서 솟아올라 규모가 웅장하고 골짜기들도 깊습니다. 선생이 가야산에서 제일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니 조그만 초막이 하나 있었습니다.
한데 초막 토방에 웬 노인 한 분이 앉아 계셨는데 신기하게도 꿈속에서 뵌 바로 그 노인이었습니다. 노인은 선생을 반겨 맞으며 기다리고 있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인은 선생에게 네 마음이 하도 갸륵해서 너를 불렀노라며 내 제자가 되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선생은 노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일년동안 함께 지냈습니다. 노인은 선생에게 특이한 의술을 가르쳤습니다. 선생은 아주 빨리 노인이 전하는 비법을 익혔습니다. 일년이 지난 뒤 노인은 병든 중생을 구해주라며 어디론가 떠나셨습니다.
스승이 떠난 뒤, 선생은 가야산 기슭에 머물며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시 시작했습니다. 선생의 의술은 아주 뛰어났습니다. 환자를 직접 보지 않고 병세만 들고도 무슨 약을 어느 정도 써야할지 알았습니다.
나을 사람은 약을 몇 첩 쓰면 나을 거라 말해주고, 도저히 낫지 못할 환자는 얼마쯤 후에 세상을 떠날 테니 환자의 마음을 편안 하게나 해주라 일렀습니다. 선생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생이 화타보다 더 용한 신의(神醫)라고 말했습니다.
선생은 환자를 고치며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또, 부자들은 직접 액을 지어주지 않고 처방전만 써 주었는데 처방전대로 약을 먹이면 틀림없이 나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다른 데에 가서 약을 지어 먹을 돈이 없으니 선생이 직접 약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약재는 선생이 산에서 캔 약초와 선생에게 감화를 받은 다른 의원들이 대어주는 것으로 충당했습니다. 약재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돈 많은 부자들은 다른 의원에게 가서 약을 짓도록 했던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약값으로 곡식 한 두 되를 가져오고 그것조차 마련할 수 없는 사람들은 땔나무를 해 왔습니다. 선생과 선생의 가족들은 가난한 이들이 가져오는 보리나 수수로 죽을 끓여 먹었습니다.
이부자리가 없어 짚으로 만든 멍석을 덮고 자기도 했습니다. 선생의 처방으로 병이 나은 부자들이 많은 돈과 곡식을 가져왔지만, 선생은 굶주리는 이웃들에게 나눠주라며 모두 되돌려 보냈습니다.
한번은 당진 읍내에 사는 신 씨 라는 부자 청년이 아버지 병환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신 씨 청년의 부친은 몸이 붓고 아무것도 못 먹는 병에 걸렸는데 선생이 어느 약 스물한 첩을 지어다 먹이라는 처방을 내렸습니다. 신 씨 청년은 선생의 처방대로 약을 지어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한데 약을 거의 다 먹었는데도 아버지의 몸은 더욱 부어오르기만 했습니다. 스무첩 까지 먹이자 아버지는 숨도 제대로 못 쉬었습니다. 깜짝 놀란 청년은 선생이 사는 마을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청년이 선생이 계신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 아래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고개 마루에서 난데없는 고함소리가 들렸습니다. 올려다보니 선생이 거기에 서계셨습니다. 선생은 청년을 향해‘너 왜 약 한 첩을 마저 안 드리고 여기로 오느냐. 네 부친이 돌아가시게 되었으니 빨리 가서 나머지 약을 드리라’고 소리치셨습니다.
청년이 다시 집으로 달려와 나머지 한 첩을 달여 먹이니 부친의 몸에서 물이 줄줄 흘러나와 부기가 모두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의 부친은 약을 더 쓸 것도 없이 그대로 나았습니다.
청년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마차에다 돈 꾸러미, 곡식, 옷감, 가구들을 가득 싣고 선생을 찾아갔습니다. 선생은 가난 한 네 이웃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라며 도로 돌려보냈습니다.
청년이 엎드려 간곡히 사정하니 도포 한 벌만을 받았는데 훗날 선생이 돌아가신 뒤 한참 후에 선생의 외손녀와 신 씨 청년의 손자가 결혼하게 되었답니다. 또 선생은 돌아가실 때까지 미물중생을 불쌍히 여겨 육식을 전혀 않고 소금을 반찬 삼아 진지를 드셨다는데 노인이 되어서도 건강히 지내셨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