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퇴근 후에 '가족모임'이 있었다.
매달 한 번씩 사당역에서 만나는 정기 미팅이었다.
이번 모임의 주관자는 딸이었다.
간만에 장어집에서 맛있게 식사했다.
식사하면서 주로 딸의 '인도여행'에 대한 경험과 감흥을 청취했다.
여행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했다.
"나를 낳아준 건 부모지만, 나를 키워준 건 책과 여행이었노라."
딸의 표현은, 이렇게 적었던 수많은 선각자들의 고백과 일치했다.
불편하고 힘든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인도' 고유의 정신, 문화, 전통, 풍습에서 보고 느낀 점도 무척 많았다고 했다.
왕성한 호기심과 배움에 대한 열정이 큰 딸에게 진심어린 박수와 격려를 보냈다.
또한 "앞으로도 시간을 쪼개 지구촌 곳곳을 누벼보라"고 당부했다.
청년기에 경험하는 다양한 배움과 감동은 평생을 동반하는 가장 값진 자산이기 때문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가까운 카페로 이동했다.
우리가 자주 가는 곳이었다.
각자의 취향대로 커피와 차를 마시며 다시 수다 삼배경에 빠져들었다.
카페에선 주로 아들 얘기를 들었다.
한 달쯤 전에 집으로 찾아온 아들은 우리에게 "5년 간 다닌 직장을 사직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었다.
우리는 "네 인생이니 네가 심사숙고하여 스스로 결정하라"고 했다.
"어떤 결정이든 네 판단을 존중할 것"이라고 했다.
소싯적부터 삼십 대 초반인 현재까지 자녀들을 동일한 방식으로 대했고, 항상 같은 논조로 얘기했다.
한 달 사이에 있었던 일들과 심경의 변화 그리고 내적 갈등과 번뇌 등등 여러가지 얘기들을 진솔하게 들을 수 있었다.
사회생활 초년병의 딱지를 막 떼기 시작한 싯점.
부모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때 쯤이면 번민이 많을 때였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부적응자의 모습으로 조직을 떠나고 싶진 않다"고 했다.
"자신의 자존심이 도저히 이런 사직을 허락치 않았다"고 했다.
"과거의 5년처럼 앞으로의 5년도 더욱 뜨겁게, 열정적으로 맞서겠노라"고 했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승리자의 당당한 모습으로, 모두에게서 뜨거운 박수를 받으면서 마침표를 찍겠다"고 했다.
현재의 조직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걸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선,후배들에게 심지어는 경영층에게 까지 직언하는 '커뮤니케이션 스타일'도 과감하게 바꾸겠다고 했다.
내가 자주 쓰는 표현이 있다.
"도망쳐 도착한 그곳이 '에덴동산'일 리 없다"는 것이다.
아들도 이와 비슷한 표현을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번민과 갈등이 매우 깊고 많았겠구나.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며 마음의 평정을 유지했구나."
또한 자신만의 미래와 비전을 재설정하면서 내적으로 치열한 '숙고의 시간'을 뚫고 나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거다. 그게 인생이지"
"무엇보다도 같은 직장에 다니는 여친에게 고맙다"고 했다.
많은 위로와 격려가 있었고, 둘만의 심도있는 대화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연애 4년 차.
우리도 아들의 여친이 보고 싶었고, 아들도 사랑하는 그녀를 '자신있게' 부모님께 소개해 드리고 싶다고 했다.
딸은 이미 몇 번 만나서 알고 있다고 했다.
우리도 적극 환영한다고 했다.
삼월 하순 우리가족 정기모임 때 아들이 여친을 데려오기로 했다.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도 백프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일 것으로 믿는다.
자식이기 때문에 우리 눈에 콩깍지가 씌어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자식들을 양육하면서 최대한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되 그 자유 이면에 더 무서운 '책임'이 존재한다는 인생의 '준엄한 원칙'을 잊지 말라 했다.
이 '한가지 원칙' 외엔 별다른 잔소리나 삶에 대한 부연을 하지 않았다.
'양육'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녀들의 '완벽한 독립'이라고 생각하며 키웠다.
진심이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사당역 지하로 내려왔다.
헤어지기 전에 딸과 아들을 차례로 꼬옥 안아주었다.
딸은 동대문구로, 아들은 송파구로 갔다.
녀석들의 뒷모습을 바로보며 마음을 모아 주님께 기도할 뿐, 부모로서 더 이상의 어떤 역할이 필요할까 싶다.
삼십 대 초반 청년들의 건투를 빈다.
파이팅.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