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2일(금)
* 시작 기도
주님...
예수께서 당신의 아버지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마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분명히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은 육신적으로 죽은 자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육신적으로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 품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자들의 하나님이심을 천명하십니다.
우리는 육신적으로 죽으면 죽었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자들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를 가리켜 산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나 역시 반드시 언젠가는 육신적으로 죽을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러할지라도 아들의 생명을 얻어 영원한 생명으로 사는 자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산 자의 하나님이라는 그 호칭 안에 나도 들어감을 믿습니다.
오늘도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성령 안에서 말씀과 늘 함께 거하는 자로 세워주소서.
그 말씀이 나의 양식이 되어 영원한 생명이 나의 소망의 근거가 되게 하소서.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습니다.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신부로 세우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10:1-11
제목 : 그들이 왕자 70명을 붙잡아 죽이고
1 아합의 아들 70명이 사마리아에 있는지라. 예후가 편지들을 써서 사마리아에 보내서 이스르엘 귀족들 곧 장로들과 아합의 여러 아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전하니 일렀으되
2 너희 주의 아들들이 너희와 함께 있고 또 병거와 말과 견고한 성과 무기가 너희에게 있으니 이 편자가 너희에게 이르거든
3 너희 주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하여 그의 아버지의 왕좌에 두고 너희 주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더라.
4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 왕이 그를 당하지 못하였거든 우리가 어찌 당하리요 하고
5 그 왕궁을 책임지는 자와 그 성읍을 책임지는 자와 장로들과 왕자를 교육하는 자들이 예후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 당신이 말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행하고 어떤 사람이든지 왕으로 세우지 아니하리니 당신이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하라 한지라.
6 예후가 다시 그들에게 편지를 부치니 일렀으되 만일 너희가 내 편이 되어 내 말을 너희가 들으려거든 너희 주의 아들된 사람들의 머리를 가지고 내일 이맘때에 이스르엘에 이르러 내게 나아오라 하였더라. 왕자 70명이 그 성읍의 귀족들, 곧 그들을 양육하는 자들과 함께 있는 중에
7 편지가 그들에게 이르매 그들이 왕자 70명을 붙잡아 죽이고 그들의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 예후에게로 보내니라.
8 사자가 와서 예후에게 전하여 이르되 그 무리가 왕자들의 머리를 가지고 왔나이다. 이르되 두 무더기로 쌓아 내일 아침까지 문어귀에 두라 하고
9 이튿날 아침에 그가 나가 서서 뭇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의롭도다. 나는 내 주를 배반하여 죽였거니와 이 여러 사람을 죽인 자는 누구냐?
10 그런즉 이제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히리라. 여호와께서 그의 종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 하니라.
11 예후가 아합의 집에 속한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자를 다 죽이고 또 그의 귀족들과 신뢰 받는 자들과 제사장들을 죽이되 그에게 속한 자를 하나도 생존자를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 나의 묵상
왕궁의 관리와 성읍의 지도자들 그리고 장로들은 예후의 편지를 받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들은 예후로부터 아합의 자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쓸 만한 자를 왕으로 세워서 자기를 대적해 보라는 편지를 받았다.
예후는 자기의 주인이었던 요람을 죽인 자였기에 이를 잘 알고 있는 그들은 심히 두려워하며 예후에게 절대 굴복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그들은 예후에게 답하기를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고 하면서 예후가 명하는 것을 그대로 행하겠다고 한다.
이런 사마리아 방백들의 답변은 더 이상 아합의 집을 좇지 않겠다는 항복의 표시이기도 하다.
즉 그들은 아합 집을 섬기던 자들로서 예후를 두려워한 나머지 아합 집을 배신하기로 한 것이다.
이들이 아합의 집을 버리고 예후를 선택하기로 한 것은 아합의 악행을 생각할 때 잘한 일이지만 자신들의 주군을 배신하였다는 점에서 보면 참으로 비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에게 있어 가장 수치스런 말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배신자라는 말처럼 수치스러운 말도 없을 것이다.
배신자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신뢰를 저버린 것이라는 점에서 선악을 떠나 사람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마리아의 방백들은 예후의 위협에 눌려 배신자의 길을 걸은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아합 왕가로 말미암아 온갖 존귀와 영화를 다 누렸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반란을 일으켜 자기들의 왕을 죽인 예후에게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들의 배신을 확증하기 위하여 예후의 지시대로 아합의 자손들을 모조리 몰살해서 그 머리를 예후에게 바치기까지 하였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이처럼 자기의 주군의 아들들을 모조리 죽인 이유는 예후가 하는 일이 옳다고 여겼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예후가 지닌 권력과 그가 휘두르는 칼이 두렵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런 끔찍한 일을 자행한 것이다.
성경은 마땅히 두려워할 대상이 누구인가를 가르쳐 준다.
그는 곧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그분을 두려워하고 경외해야 하는 이유는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처신하는 본문의 사마리아 방백들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해야 하는 이유는 그분은 만물 위에 계셔서 만물을 통일하시고 만물 가운데서 다스리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독생자 되신 아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셨고 그 아들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로 작정하셔서 아들을 보내주셨기 때문이다.
그 아들의 생명이 아니면 우리는 영생을 누릴 수가 없기에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신 그분은 바로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다.
나는 사마리아 방백들처럼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배신한 배신자였다.
가야바의 재판정에 서신 주님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위하여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며 저주까지 했던 베드로가 바로 나였다.
내 입술로 주님을 부인할 일은 없었지만, 나의 삶으로 주님을 부인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
입술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것만 부인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게 주님의 뜻을 거역하며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입술로 부인하는 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나의 욕심과 정욕을 위하여 일했고, 심지어 목회를 하면서도 세상적인 가치에 빠져 철저히 나 중심적인 목회를 하였던 것이다.
목회를 통하여 나의 욕심과 영달을 위하여 애썼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회에 전념했었다.
주님의 관심이 나의 관심이 아니라 나의 관심이 주님의 관심인 양 호도하면서 하루하루 나의 탐욕의 배만 채워가곤 하였다.
새 생명을 얻어 새 사람이 되었으면 마땅히 옛 사람의 옷을 벗어 버리고 새 옷을 입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날에 입던 옷을 입고서 그 위에 새 옷을 입은 자로 살아갔다.
땅의 지체인 음란과 부정, 사욕과 악한 정욕, 그리고 탐심의 주머니는 점점 커져만 갔다.
풍선은 커지면 커질수록 터질 위험이 높다.
내가 바로 그런 상태였던 것이다.
여기저기서 구멍이 나고 부풀어 오른 탐욕의 풍선이 터질 조짐이 보였건만 나는 그것이 주는 메시지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남 탓만 할 뿐이었다.
내 속은 거짓과 탐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집어 삼키는 블랙홀과 같다.
이런 나에게 주님은 공의의 심판을 내리셨다.
그 심판을 통하여 복음을 듣게 하셨고 복음은 나를 생명으로 이끌었다.
주님의 심판은 언제나 옳다.
그 심판 앞에 나는 항복한다.
공의의 심판을 집행하는 도구로 쓰임 받았던 예후가 왕이 되고난 후에는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된 것 같이 나는 지금도 순간순간 그런 자로 돌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기다려 주신다.
공의의 심판으로 나를 죽이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려주시고 회복시켜 주기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말이다.
이제 매일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그리고 죄의 몸을 장애자 선언을 하며 왕의 명령에 복종하고자 한다.
나를 향하신 주님의 은혜는 너무나 크고 넓다.
하지만 나는 그 은혜를 따라갈 수가 없다.
오늘도 나의 영이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주바라기가 되어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마신다.
지금까지 찾아다녔던 야곱의 우물을 던져 버린다.
나의 남편 삼았던 모든 신앙의 유전과 전통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으로 아들의 생명을 누리며 살기 원한다.
그것만이 나의 살길이기 때문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베드로와 비교할 수도 없는 배신자였습니다.
내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왕의 아들들을 죽였는지 요.
날 사랑하셔서 구원해 주신 주님 앞에서 내 목숨 부지하기 위하여 정말 비굴하기 짝이 없는 짓을 너무도 많이 행하였습니다.
나의 정욕을 위하여 주님의 이름을 짓밟았던 자입니다.
이런 개 같은 나를 주님은 끝까지 용납하셨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스스로 개를 자처하였던 것처럼 지금 이 시간 저도 개임을 자처합니다.
개 같은 자이지만 주님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은혜를 구하오니 그 은혜를 먹고 살게 하소서.
부스러기 은혜라도 좋사오니 그것에 감사하며 살겠나이다.
내가 나를 생각하면 살 수 있는 건덕지가 아무 것도 없고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오나 주님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으면 살 수 있사오니 그 은혜를 주옵소서.
이제는 나의 관심이 주님의 관심이 되도록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뜻에 복종하여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 되기 원합니다.
이 종을 긍휼히 여기사 주의 은혜만 먹고 살게 하소서.
오늘도 나를 주의 말씀 속에 던져 말씀이 저를 이끌어가게 하소서.
오직 주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나의 생각을 다스려 주시고 주님의 생각으로 생각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