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지옥
김여정
얼마나 속울음을 울었던가. 얼마나 많은 한숨을 쉬었던가. 그리고 한없는
낭떠러지로 추락하듯 고민을 하며, 어디 호소할 곳 없이 홀로 두려움만
더 해갔다.
어느 날 샤워를 하다 오른쪽 유방이 아파서 만져보니 작은 계란만한 멍울이 만져 졌
다. 가끔 자가진단을 해왔지만 무언가 만져지기는 갑작스런 일이었다. 못 견딜 정도의
통증은 아니지만 뜨끔거리고 신경이 쓰일 만큼 아프다 내 상식으로는 암은 통증이 없
다는 것밖에 모르는 문외한인데 혹시 암이 아닐까? 덜컥 겁부터 났다. 그러다 2주전쯤
층계를 오르다 오른쪽으로 넘어져 어깨가 몹시 아파서 얼른 일어나지도 못했던 적이
있었는데 혹시 그때 부딪쳐 생긴 멍울인가 생각했다.
그 후 며칠사이로 집안 행사와 설 명절 연휴까지 겹쳐 20여 일이 지난 뒤 방사선과
를 찾아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결과는 암은 아닌 것 같으나 멍울이 3㎝이고 염증도
오래되면 악성으로 진행될 수도 있으니 하루속히 종합병원에 가서 전문의에게 조직검
사를 받아 보라는 것이었다.
왜 그리 겁이 나는지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머리가 멍하니 기가 막혔다. 그 날로
대학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예약 일은 일주일후인 금요일로 잡혔다. 저절로 삭기만 바
랐던 멍울은 날로 커지는 것만 같은데 일주일을 기다린다는 것은 병을 키우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에 초조하고 일각이 여삼추였다.
넘어져 생긴 상처로만 생각했던 무지가 이렇게 키운 병,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신이
한심스럽기만 했다. 시간이 왜 이렇게 더디 가는지 몸이 바싹바싹 마르는 것만 같이
애태우며 조바심 속에서 조직검사 날이 왔다.
진단결과 보다도 우선은 유방에서 조직을 떼어 내는 검사가 무서워서 잔득 겁을 먹
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 손을 꼭 잡고 겁내지 말라는 남편의 격려의 말도 위로가
되지 않고 몸이 떨려왔다 가끔 당뇨검사나 몸살감기로 병원을 찾았을 때와는 달리 유
방암 검사 날이라서 그런지 내 눈에는 기다리는 환자들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 마
냥 눈망울에 불안과 초조가 흥건히 고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 생전에 처음 다른 곳도 아닌 하필이면 유방에서 조직을 뗀다는 것은 생각만 해
도 무섭고 진저리가 쳐졌다 잠시고통의 순간이 지난 뒤 조직을 두 군데서 떼어내고
검사결과는 일주일 후 금요일에 오라 했다.
또 일주일을 기다리기엔 너무 잔인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
고 책을 읽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며 잊으려 노력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18일 조직검사를 한 후 20일 날 가슴이 뜨끔거리더니 거짓말같이 하루사이에
또 하나에 멍울이 먼저 것 밑으로 만져진다 병원에서 오라는 날은 25일이니 그저 기
다릴 수밖에 없었다. 예약 날에 정작 먼저 것의 결과는 알려주지 않고 새로 생긴 멍울
의 조직검사를 하고 흉부x-ray까지 찍고 일주일 후 결과가 나온단다.
이제는 지쳐서 악성이든 양성이든 결과라도 알았으면 속이 시원하겠는데, 자세한
결과는 듣지 못한 채 나는 지레 죽을 것만 같고 답답하기만 했다 만약 암 이라면…
하는 생각에 걷잡을 수 없이 내 인생이 무너져 내리며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들었다. 고희를 바라보며 움켜잡을 만한 건더기 하나 없이 쓰러질 것만 같아 억울
하기만 했다.
남편이 일찍 일어나 내가 하던 대로 과일도 갈아주고 밥도 해놓는다 그 모습이 왜
그리도 측은한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복받치는 속울음을 꿀꺽꿀꺽 삼키며 애
처롭고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암이 아니라는 검사결과를 듣는 순간 남편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하게 밝아지며
희색만면하였다 평소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그 모습에서 저 깊은 내면에 보이지 않았
던 속정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암이란 공포에서 벗어난 순간 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충
동을 느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천 갈래 만 갈래 흩어지는 나약한 정신력 때문에 입맛을 잃고
소화도 되지 않아 체중이 많이 감소되었고 병명도 없는 중환자가 되어, 내시경까지
해보았더니 역시 신경성이다.
그런데 나중에 생긴 멍울이 곪아서 간단한 수술을 그 자리에서 받았다. 몸에 칼을
대야하는 고통도 컸지만, 두려움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서며 생각하니,
우매한 소치로 갈팡질팡 공상에 빠져들어 암울한 터널을 허우적이며, 헤맨 4주 동안은
지옥문을 드나들었다.
생길 때는 급성으로 생겨난 멍울이 애간장 다 녹이며 시나브로 줄어든다. 그동안 당
뇨는 잘 관리하여 합병증은 없었기 때문에 건강에 대해 소홀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이보다 더 큰 병을 알아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심신의 괴로움과 충격이 컸다. 병이 한
번 생기면 이렇게 무섭고 힘든 것을 크게 깨달았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뼈저리게 느
껴보았다.
사람이 죽는 것은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지 못 함과 같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수양
이 되지 않은 나에게는 초조와 불안뿐이었다.
햇살이 눈부시게 부서져 내리는 병원뒷길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나는데 유난히 심
했던 꽃샘추위 속에서도 파릇파릇 솟아난 채마밭의 새싹들이 생명은 강한 것이라고 소
곤대는 듯 하였다.
2005 20집
첫댓글 햇살이 눈부시게 부서져 내리는 병원뒷길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나는데 유난히 심
했던 꽃샘추위 속에서도 파릇파릇 솟아난 채마밭의 새싹들이 생명은 강한 것이라고 소
곤대는 듯 하였다.
사람이 죽는 것은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지 못 함과 같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수양
이 되지 않은 나에게는 초조와 불안뿐이었다.
햇살이 눈부시게 부서져 내리는 병원뒷길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나는데 유난히 심
했던 꽃샘추위 속에서도 파릇파릇 솟아난 채마밭의 새싹들이 생명은 강한 것이라고 소
곤대는 듯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