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국 여운
내가 열차를 이용할 때는 주로 창원중앙역에서 타고 내린다. 그럼에도 나는 마산역으로 자주 나간다. 그때는 열차 승객이 아닌 농어촌버스를 환승하기 위해서다. 마산역 광장 모퉁이에는 구산과 삼진 방면으로 가는 농어촌버스 출발지여서다. 겨울이면 구산면 갯가로 트레킹을 더러 나간다. 봄여름가을에는 여항산과 서북산으로 야생화 탐방을 나서고 산나물을 채집해 오기도 한다.
위 단락은 어제 내가 남긴 ‘마산역 스케치’ 한 단락이다. 주말이면 이른 아침 마산역 광장으로 나가는 여정의 일부다. 근교 북면 야산이나 용추계곡과 불모산으로도 가지만 서북산이나 여항산 기슭으로도 더러 누빈다. 겨울 산마루를 넘으면서 숫눈을 밟아봤다. 삼월 중순 가랑잎을 헤집고 피어나는 노루귀나 얼레지 꽃을 시작해 철 따라 피고 지는 야생화 탐방을 위한 길을 나섰다.
예전 진해 관아가 있던 진동에서 나뉜 진북면과 진전면이다. 동헌 북쪽이라 진북이고, 앞쪽이라 진전이다. 워낙 자주 다녀 이제 골마다 운행하는 농어촌버스 출발 시각도 머릿속에 훤히 입력되어 있다. 골짜기로 들어가는 자연마을 이름도 척척 외운다. 어느 산자락에 전주 이 씨 효령공파 후손 무덤이 있고, 어느 동네가 안동 권 씨나 밀양 박 씨가 집성촌을 이루는지도 알고 있다.
삼진 지역은 기미년 만세 운동 때 여덟 의사가 순국한 충절의 고장이기도 했다. 여항산은 한국전쟁 때 미군과 인민군이 치열히 교전하면서 부산을 지킨 최후 방어선이었다. 산등선에는 당시 참호 흔적이 있었다. 이웃 간에 보도연맹과 국방군의 아물지 않은 상처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어 침묵이 흘렀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유력 정치인이나 기업가 이름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삼진 일대로 나가는 경우는 여름을 제외한 겨울과 봄가을이다. 여름은 무덥기고 하였지만 북면이나 불모산 일대 활엽수림으로 들어 영지버섯을 찾느라고 틈이 나질 않았다. 겨울엔 진동 갯가를 트레킹하고 서북산이나 여항산 임도를 더러 걸었다. 봄이 오는 길목 이르게 핀 매화를 구경했고 서북산 부재고개나 감재를 넘을 때 산짐승도 발자국을 남기지 않은 숫눈을 밝아보기도 했다.
지난봄 의림사 계곡 야생화 탐방 이후 늦은 봄에도 찾은 서북산이고 여항산이다. 둔덕 오실골에서 머위를 뜯고 미산령을 넘으면서 두릅 순을 땄다. 감재를 넘어 버드내로 내려서면서 취와 비비추를 뜯어 산나물로 마련했다. 북면 감계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생태계 변화가 나타났다. 조롱산이나 작대산에서 채집하던 산나물 텃밭이 망가져 경계를 넓혀 여항산이나 서북산까지 뻗쳤다.
여름을 건너뛰어 가을이 되면 진북이나 진전 일대로 산기슭으로 발길이 잦아졌다. 서북산 허리로 난 임도를 따라 걸으면 길섶에 피어난 여러 야생화를 완상할 수 있었다. 사람 발길이 드문지라 계곡 물가엔 선홍색 물봉선이 지천으로 피었다. 둔덕에서 미산령을 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노란 마타리꽃이나 분홍색 이질풀꽃도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늦가을엔 꽃향유가 벌들을 불렀다.
이런 속에 진북과 진전 일대 산자락에서 가을을 대표하는 꽃을 만났다. 그건 다름 아닌 연보라 쑥부쟁이와 하얀 구절초였다. 굽이굽이 이어진 임도를 따라 산모롱이를 돌아가면 쑥부쟁이와 구절초 꽃의 열병을 받았다. 쑥부쟁이는 흙살이 많은 산기슭에 많이 보였고 구절초는 해발고도가 점차 높아진 바위틈에서도 잎줄기를 키워 꽃을 피웠다. 둘은 가을이 이슥하도록 공존 공생했다.
서북산이나 여항산에 무서리가 내리면 쑥부쟁이나 구절초는 절정에서 내려왔다. 서리를 맡고도 의연하게 기품을 드러낸 꽃이 노랗게 핀 산국이었다. 향기가 짙은 만큼 날씨가 추워지는데도 벌들이 찾아와 윙윙거렸다. 녀석들은 꿀이 아닌 꽃가루를 모아 겨울을 날 식량으로 삼을 모양이었다. 감재나 미산령을 넘으며 본 산국 향기 여운은 오래 간다. 내년 봄에 야생화가 피기까지 … 20.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