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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중국 최고의 미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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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골증준(風骨?峻) - 유여시(柳如是)
그녀는 중국 명나라 말기의 유명한 기녀로 성격이 매우 도도하고, 강직하여 매력적인 여자였다고 한다. 본명은 유애류(柳愛柳)로 여시(如是)는 자(字)이다. 이는 그녀가 다음과 같이 읊은 데서 연유했다고 전해진다. 我見靑山多?媚,料靑山見我應如是 내가 청산을 보며 아름답다고 여기니, 청산도 나를 보면 똑같이 느끼겠지. 우리나라에서는 명나라가 망하자 남편인 전겸익(錢謙益)에게 자살을 권한 것과 허난설헌의 작품에서 표절한 부분을 지적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경국명희(?國名姬) - 진원원(陳圓圓)
그녀는 가난한 노점상인의 딸로 태어나 겨우 7살에 은전 2냥에 기루로 팔렸다고 한다. 원래 성은 형(邢)이고 이름은 원(沅)으로 진(陳)이라는 성은 기루로 팔려 갔을 때의 양모인 진씨(陳氏)로부터 물려 받은 성이라고 한다. 그녀는 명말청초의 오삼계(吳三桂)가 명을 배신하고 청이 중국을 통일하는데 협력한 이유가 바로 그녀에게 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명나라 말기 최고의 명장 오삼계는 북경 방문 도중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 첩으로 들였다. 그러나 청과의 관문인 산해관으로 파견된 오삼계는 그녀를 북경의 집에 나둔 채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농민반란을 일으킨 이자성이 북경을 함락시키고 이자성 휘하의 장수 유종민이 그녀를 가로챘다는 소식을 전해듣는다. (혹은 이자성이 그녀를 차지했다고도 전해진다.) 이에 격분한 오삼계는 청나라에 투항하여 이자성을 공격하는 데 선봉에 나선다. 오삼계는 그 공으로 청나라의 제일 가는 공신이 되었고 그리하여 명나라는 그녀 때문에 망했다고 사람들은 말하게 되었다. 오삼계가 왕으로 봉해졌을 때 그녀를 왕비로 삼으려 했으나 거절하고 절로 들어갔으며, 훗날 오삼계가 숙청 당했을 때 절에 있는 연못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고 전해진다.
염염풍진(艶艶風塵) - 동소완(董小宛)
협간의담(俠肝義膽) - 이향군(李香君)
당완(唐琬)
송대 시인 육유(陸游)의 사촌여동생이자 처. 원래 육유와 금슬이 좋았지만, 시어머니의 미움을 사, 서로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훗날, 절강성(浙江省) 소흥(紹興)(옛지명 : 회계(會稽))의 심원(沈園)을 들렸다가 둘은 우연히 해후를 하여 서로 이별의 아픔을 노래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그녀는 시름시름 앓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뜨고 말았지만 육유는 96세까지 장수하였으며 만년에 이 심원에 들러 그녀를 그리는 수많은 글을 지었다고 한다. 육유는 수많은 시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여 지금까지 남아 있는 시만도 9,200여수나 된다고 한다. 그 중 그녀를 기린 시는 얼마나 될련지.... 다음은 심원에서 육유가 지은 시에 그녀가 회답한 시라고 합니다. 世情薄, 人情惡, 雨送黃昏花易落. 曉風干, 淚痕殘. 意緘心事, 獨語斜欄. 難, 難, 難! 人成各, 今非昨, 病魂常似秋千索. 角聲寒, 夜?珊. ?人詢問, 咽淚?歡. 瞞, 瞞, 瞞! 세정은 야박하고, 인정은 악합니다. 비는 황혼의 꽃을 쉬이 떨어뜨리고,새벽바람 불어와 눈물자욱을 남기네요. 마음을 적어보내고 싶지만 난간에 기대어 혼잣말만 합니다. 힘들고, 힘들고, 힘듭니다. 사람은 각각이 되었고, 오늘은 어제가 아닙니다. 병든 마음은 그네끈처럼 길고, 뿔피리 소리 차가워 밤을 깊어가게 하네요. 누군가 물어볼까 두려워 눈물화장 삼키고 기쁜 척 합니다. 감추고, 감추고, 감춥니다.
주숙진(朱淑眞)
그녀 나이19세때 부모님의 중매로 어떤 상인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남편은 오랫동안 외지을 돌아다녔기에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서 남편을 그리워하며 사를 짓고, 편지를 보내며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어느날 남편은 그녀의 편지를 받고 봉투를 뜯어보았는데 편지지에 글자 대신 크고 작은 동그라미들만 가득했더랍니다. 남편이 그 의미를 알 수 없어 고심하던차, 때마침 바람이 불어 편지지가 바닥에 떨어지자 편지지의 뒷면에 조그맣게, 그리고 또박또박 적힌 글자를 발견하게 되었다네요. 바로 동그라미 편지에 대한 해석이었는데, 바로 <권아사(圈兒詞)>라는 사라고 합니다. 얼마후 그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남편은 그녀의 묘비명에 이시를 새겨 넣었다고 합니다. 훗날에 후인들이 그녀의 작품 200여편을 모아 <단장집(斷腸集)> 이라는 시집을 내었다고 합니다. <권아사(圈兒詞)> 혹은 <상사사(相思詞)> 相思欲寄無從寄, 畵個圈兒替. 話在圈兒外, 心在圈兒裡. 그리운 마음 기댈 곳 없어, 동그라미 그리며 달래봅니다. 하고픈 말 동그라미 밖에 있고, 드리고 싶은 마음 동그라미 안에 있습니다. 單圈兒是我, 雙圈兒是?. ?心中有我, 我心中有?. 동그라미 하나는 저이고, 동그라미 두개는 당신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저에게 있고, 제 마음은 당신께 있습니다. 月缺了會圓, 月圓了會缺. 整圓兒是團圓, 半圈兒是別離. 달은 기울었다가 다시 차고, 찼다가는 다시 기웁니다. 완전한 동그라미는 우리가 만난 것이며, 반만 그린 동그라미는 헤어진 것입니다. 我密密加圈, ?須密密知我意. 제가 두 개의 동그라미를 아주 가깝게 그렸기에, 당신은 저의 마음을 아실 것입니다. 還有數不盡的相思情, 我一路圈兒圈到底. 말로 다하지 못하는 그리움에 저는 그저 동그라미를 그리고 또 그립니다.
반첩여(班??) 첩여(??)
: 중국 한대(漢代) 궁녀의 관명. 반첩여(班??)와 조비연(趙飛燕)은 한(漢) 성제(成帝)의 후궁으로, 성제는 처음에는 반첩여를 매우 총애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조비연에게로 사랑이 옮겨 갔다. 사랑을 잃은 그녀는 임금과의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였는데 문득 가을이 되면 쓸모없게 되는 부채와 자신의 처지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원가행(怨歌行)(혹은 단선시(團扇詩)라고도 함》이라는 시를 지었다고 한다. 이 시는 중국 육조문화(六朝文化)를 대표하는 시문선집인 《문선(文選)》에 전해지고 있다. 新裂齊紈素 새로 자른 제나라 흰 비단이 鮮潔如霜雪 서리나 눈과 같이 선명하고 깨끗하여 裁爲合歡扇 재단해서 합환선을 만드니 團圓似明月 고르게 둥근 것이 보름달과 같구나 出入君懷袖 님의 소매 속에 드나들며 動搖微風發 흔들려져 미풍을 일으켰지만 常恐秋節至 항상 두려운 것은 가을이 되면 凉飇奪炎熱 차가운 바람이 더위를 앗아가 棄捐??中 대나무 상자 안에 버려져 恩情中道絶 은정이 도중에 끊기는 것이다 여기서의 부채는 임금의 총애를 잃은 반첩여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자신의 처지를 철이 지나 쓸모없게 된 물건으로 비유한 것이다. 이후로 '추선(秋扇 : 가을철의 부채)'은 남자의 사랑을 잃은 여자를 이르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견황후(甄皇后) 문소황후(文昭皇后).
본명 복(宓). 원소의 아들 원식의 처였다가 후에 조비의 처가 되었다. 삼국지 등장 여인중 미색으로 치면 초선 다음이요, 재주로 치면 따를 이가 없었다고 한다. (초선은 삼국연의의 허구의 인물이기 때문에 폐월은 견씨를 칭하는 말이라는 설도 있다.) 어려서 집안의 뜻에 따라 원소의 집안으로 출가를 했고 자라서는 단지 아름답기 때문에 마치 전리품처럼 조조의 집안으로 끌려간 비운의 여인. 의처증이 심했던 조비는 아들 조예와 딸 동향공주가 평범하게 생긴 자신과는 달리 너무 아름다워 자식들의 모습에서 그녀를 흠모하였던 동생 조창과 조식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 둘을 박해하더니 조창은 독살을 하기에 이르렀고 후에 첩인 곽씨의 모함에 혹해 그녀 또한 죽임을 당하게 된다. 조식은 사랑하는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 강에 뛰어들려고 하였는데 그 때 홀연히 여신의 모습을 한 그녀가 나타나 조식을 말리는 환상을 겪었다고 한다. 이 내용을 노래한 시가 바로 조식을 이백,두보와 더불어 중국의 3대 시성으로 만든 낙신부(洛神賦)다. 원제는 감견부(感甄賦 : 견씨를 느끼며 지은 부)였으나 그렇지 않아도 아버지의 의심으로 죽임을 당한 어머니를 항상 애통히 여겼던 조예가 어머니의 명예를 그리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 낙신부(洛神賦)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遠而望之 皎若太陽升朝霞 멀리서 바라보면 태양이 떠오르는 새벽 하늘처럼 빛나고, 迫而察之 灼若芙?出?波 가까이서 보면 흰 연꽃이 녹빛 물 위에 피어난 것 같네. ?纖得衷 修短合度 몸매는 날씬하고 키도 적당하며 肩若削成 腹如束素 어깨선은 깎은 듯 매끄럽고 허리는 흰 비단을 두른 것 같다. 延頸秀項 皓質呈露 목덜미는 길고 갸름하며 흰 살결을 드러내고 있다. 芳澤弗加 鉛華弗御 향기로운 연지를 바르지도 않고 분도 바르지 않았다. 雲?峨峨 修眉聯娟 구름같은 모양으로 머리는 높직하고, 길게 그린 눈썹은 가늘게 흐른다. 丹唇外朗 皓齒內鮮 빨간 입술은 선연하게 눈길을 끌고 하얀 이는 입술 사이에서 빛난다. 明眸善? ?輔承權 맑은 눈동자로 때로 곁눈질 치고 보조개는 귀엽기 그지없도다. '침어낙안 폐월수화'와 더불어 미인을 칭하는 단어인 '명모호치(明眸皓齒 : 맑은 눈동자와 하얀 이)'가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화예부인(花?夫人)
혜비(慧妃) 서씨(徐氏). 중국 오대십국(五代十國) 후촉(後蜀)의 왕 맹창(孟昶)의 처. 시사에 정통하였고 재모겸비하여 화예부인(花?夫人)이라 불렀다. 건덕 2년 11월 송태조(宋太祖) 조광윤(趙匡胤)은 충무절도사(忠武節度使) 왕전빈(王全斌)으로 하여금 군사 6만을 이끌고 촉으로 진공하도록 명령하였다. 14만이나 되는 군대를 지닌 촉이었지만 맥없이 지고 만다. 이에 맹창은 화예부인에게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우리 부자가 사십년을 풍족하게 병사를 길러왔지만 일단 적을 만나니 동쪽을 향해 화살 한 발 쏘지 못하는구려!" 맹창이 죽자 송태조는 화예부인이 사작(詞作)에 능함을 전해 들었기에 그녀를 불러 시를 짓게 했는데 그녀는 당당하게 망국의 한을 ?읍駭鳴? 전해진다. 君王城上樹降旗 군왕이 성 위에 항복 깃발 세웠다지만 妾在深宮那得知 첩은 깊은 궁에 있어 알 길이 없었네. 十四萬人齊解甲 14만명이 모두 갑옷을 벗었다 하니 寧無一個是男兒 남아는 하나도 없었던 것인가! 오히려 굳은 충정에 크게 감명한 송태조는 그녀를 비로 삼았는데 후에 그녀는 조광윤을 죽이려 하였으나 이를 실패하자 스스로 자진하였다고 한다.
측천무후(則天武后)
이름 조(照). 후에 조(?)라는 글자를 새로이 만들어 이름을 바꿈. 당나라 창업에 공헌한 무확(武朕)의 딸. 뛰어난 미모로 14세 때 태종(太宗)의 후궁이 되었으나, 황제가 죽자 고종(高宗)의 눈에 띄게 되어 총애를 받게 되었다. 그후 간계를 써서 황후 왕씨(王氏)를 쫓아내고 655년 황후가 되었다. 수년 후 고종의 건강을 핑계 삼아 스스로 정무를 맡아보며 독재권력을 휘둘렀으며, 문예와 이무(吏務)에 뛰어난 신흥관리를 등용하여 세력을 구축하고 구귀족층을 배척하였다. 683년 고종이 죽자 자신의 아들 중종(中宗)·예종(睿宗)을 차례로 즉위시키고, 그녀에게 반항하여 난을 일으킨 서경업(徐敬業)과 당나라의 황족 등을 무력으로 탄압하였다. 690년 국호를 주(周)로 개칭하고 스스로 황제라 칭하며 중국사상 유일한 여제(女帝)로서 약 15년간 전국을 지배하였다. 705년 장간지(張柬之) 등이 정변을 일으켜 중종이 복위되고 당왕조가 부흥하였다.
상관 완아(上官婉兒)
측천무후의 폐위를 도모하려다 살해된 상관의(上官儀)의 손녀. 시적 재능이 풍부하여 측천무후가 종종 시제를 내어 신하들에게 시를 짓게 하고 그 우열을 정하게 하였는데 여기서 심사를 담당한 이가 상관 완아였다고 한다. 시적 재능과 함께 정치적 재능도 뛰어났던 그녀는 측천무후의 조카인 무삼사와 애인 관계였다고 하며 둘은 함께 측천무후의 좌우를 맡아 당대의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된다. 상관 완아가 14세 때 무측천은 그녀를 불러 할아버지, 아버지를 죽인 자신을 미워하느냐고 묻자 "원망하면 불충(不忠)이요, 그러하지 아니하면 불효(不孝)가 됩니다"라고 답했다 한다. 이때 무측천은 목숨을 부지하게 해주고 길러준 은혜를 모른다하여 문신의 형을 내렸다고 한다. 청사와 주사를 이용하여 볼에 매화형상을 문신으로 새겨 넣었는데 상관완아는 이 때문에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끄러워 하는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던 모양인지 이것이 일종의 미를 꾸미는 장식이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분분히 분을 뭍혀 모방하고,연지(?脂)를 이용하여 붉은 점을 찍었는데 지금까지도 시집을 갈 때 연지를 찍어 홍점을 그리는 것이 이러한 연유라는 설이 있다.
반소(班昭)
《한서(漢書)》의 편찬자 반고(班固)와 서역 경영에 활약한 무장 반초(班超)의 누이동생으로 박학다식한 그녀는 반고가 《한서》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자, 화제(和帝)의 명을 받고 그 일을 계승하여 《한서》 중 8편의〈표(表)〉와 〈천문지(天文志)〉를 완성함으로써 《한서》 편찬을 완결하였다. 그 후 그녀는 궁중에 초빙되어 황후를 비롯한 여러 부인들의 교육을 담당하였으며, 또 그녀가 지어낸 《여계(女誡)》 7편의 저서는 정숙한 부녀의 도(道)를 논술(論述)한 것이다. 그 외의 저서로, 여행 체험에 의거하여 지어낸 《동정부(東征賦)》가 있고, 부(賦)ㆍ송(頌)ㆍ명(銘)ㆍ뇌(?)ㆍ문(問)ㆍ주(注)ㆍ애사(哀辭) 등을 합하여 16편이 있다.
문희(文姬)
꿈을 사서 왕비가 됐다는 신라시대 문명왕후(文明王后) 문희(文姬)와 구별하려는 건지 아니면 게임 삼국지의 영향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채염(蔡琰)이라는 본명이 더 잘 알려져 있다. 혹은 성을 붙여 채문희(蔡文姬)라고도 한다. 후한의 유명한 학자 채옹(蔡邕)의 딸로 흉노병에게 납치되어 흉노의 좌현왕에게 바쳐졌다. 후에 조조(曺操)가 거금을 주고 그녀를 돌아오게 하였다. (AD208년) 이 때 지은 곡이 《호가십팔박(胡?十八拍)》으로 머나먼 타향에서 그리워하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쁨과 흉노에 사는 동안 낳은 두 명의 아이들과 이별하는 슬픔의 갈등을 담았다. 《호가십팔박(胡?十八拍)》은 중국 2대 금곡(琴曲)으로 손꼽히는 명곡이기도 하다. (또 다른 중국 2대 금곡(琴曲)은 《광릉산(廣陵散)》으로 곡에 얽힌 이야기가 그녀의 아버지 채옹(蔡邕)이 저서인 《금조(琴操)》에 수록되어 있다.) 그녀는 후에 조조의 부탁으로 전쟁 중 소실된 채옹의 저서를 400여권이나 기억해 복원했다고도 한다.
탁문군(卓文君)
중국 미인의 조건인 원산미(遠山眉 : 먼 산의 능선 같은 눈썹) 연화협(蓮花頰 : 연꽃 같은 뺨) 부용부(芙蓉膚 : 부용꽃 같은 피부)가 그녀로부터 비롯되었을 정도로 절세미인이자 당시의 도덕률과 체제를 뛰어넘는 분방한 행동과 글재주로 유명한 반체제 여류시인이었다. 한나라 제일의 문장가로 손꼽히는 사마상여(司馬相如 )와 사랑의 도피행각으로도 유명하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17세 청상과부가 된 그녀는 아버지 탁왕손(卓王孫)이 열었던 잔치의 손님으로 온 사마상여와 사랑에 빠져 성도(成都)로 도망친다. 이를 반대하는 아버지는 그녀에게 한 푼의 재산도 주질 않았으나, 그녀는 가난을 면하기 위해 시장바닥에서 주막을 차려놓고 손님들에게 술을 따르며 아버지에게 보란 듯이 체면 깎이는 일도 서슴지 않으니, 그녀의 아버지는 이를 보다 못해 결국 훗날 재산을 나누어주어 그들을 용서했다고 한다. 그녀의 행위는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파격적이고 용감무쌍하였다고 평가되고 있다. 일설에는 남편인 사마상여가 훗날 첩을 들이려고 하자, 변심한 남자 곁에는 있을 수 없으니 떠나겠다는 내용의 《백두음(白頭吟)》이라는 시를 지어 남편의 뜻을 꺾었다고도 한다. 훗날 사마상여가 당뇨병으로 병사하자 그녀는 손수 남편의 조문(弔文)을 작성하였으며 마지막까지 정절을 지쳤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사도온(謝道?)
명재상 사안(謝安)의 질녀이며 왕응지(王凝之 : 왕희지(王羲之)의 차남)의 처로 총명하고 재변이 있기로 유명하였다. 《진서ㆍ왕의지처사씨전(晋書ㆍ王凝之妻謝氏傳)》의 고사를 따르자면 친척들이 모인 어느 날 갑자기 내리는 눈을 보고 사안(謝安)이 묻기를 "쉴 새 없이 내리는 흰 눈은 무엇을 닮았는가?(白雪紛紛何所似)"라 하자 사랑(謝朗)은 "공중에 소금을 뿌린 듯 하옵니다.(散鹽空中差可擬)"라고 하였으나, 그녀는 "(하지만) 바람에 일어난 버들개지만 못 하옵니다.(未若柳絮因風起)"라고 하여 사람들이 크게 탄복하였으니 이후 그녀는 영서재(?絮才)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시(詩)·송(頌)·부(賦)·뇌(?)등을 지었으나 현존하는 것은 매우 드물어 《등산(登山)》, 《의혜중산영송(擬?中散詠松)》등의 시만 전해진다. 버들개지 : 버드나무의 꽃. 솜과 비슷하며, 바람에 날려 흩어짐. 柳絮 : 한문으로 직역 풀이하면 '버드나무(의) 솜'으로, 중국어로 버들개지라는 뜻이다 동진(東晋)의 . 영서재(?絮才) : 버들개지[絮]를 노래한[?] 재녀[才] 라는 뜻.
첫댓글 음.....꿀꺽...음........
ㅋㅋㅋ...화중지병인 거 같습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제눈에 안차는 걸 보니..아마 제 눈은 눈썹위에 달렸나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