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대성당 내부 5년여 만에 공개…마크롱 '감탄'
24-11-29
파리의 대표아이콘 노트르담 대성당
노트르담 대성당은 거의 3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12세기 대표적인 고딕 건축물이다.
최초 공사는 동쪽 제단과 성가대 건립을 시작으로 1200년 중앙 홀과 성당 앞면,
1245년 성당 앞면의 2개의 종탑 증축, 1250년 성당 측면 공사가 완성되고
마지막으로 1345년 동쪽 뒷면 공사가 끝났다.
앞면, 측면, 뒷모습이 마치 서로 다른 건물 같은 이유다.
성당의 앞면은 수직, 수평으로 각각 3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수평으로 1층 중앙 ‘최후의 심판 문’, 왼쪽 ‘성모 마리아 문’ 오른쪽 ‘성녀 안나의 문’이다.
종교의 세계로 인도하는 3개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과 2층 사이를 연결하는 곳에는 28개의 이스라엘 왕 입상이 나열되어 있다.
2층은 중앙의 장미창과 어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 양쪽으로 아담과 이브의 상이 서 있다.
3층은 종탑의 외양과 연결되어 조화를 이룬다.
대성당의 장미 창은 지름만 13m에 달하는 창으로, 스테인드 글라스가 정교하고 화려하다.
빛에 따라, 보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니 여러 번 살펴보자.
성당 안에는 기념 메달을 뽑을 수 있어,
기념품을 남기고 싶은 여행객들에게는 의미 있는 선물이다.
기념품숍은 종탑을 올라가는 부분에 있다.
성당 앞 포앵제로 Point zero는 현재 프랑스 도로표지의 중심점을 나타낸다.
여행객들 사이에선 포잉제로를 밟으면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니 꼭 밟아보자!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 소설에 나오는 종도 실제로 이곳에 있다.
종이 있는 곳이 파리의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기도 하다.
종탑에서 내려다 보는 파리의 모습은 에펠탑과 개선문에서 바라보는 것과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어 올라가는 줄이 항상 길다.
기본적으로 한시간 반에서 두시간은 기다려야 올라갈 수 있다.
뮤지엄패스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줄을 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자.
이곳에서는 뮤지엄패스를 가지고 있어도 다른 사람과 똑같이 줄을 서야 한다.
시간이 부족한 여행객이라면 아침 일찍 오픈 시간에 맞춰 가자.
입장시 모자는 착용 금지이며, 내부 사진촬영시 플래시는 꺼야 한다.
음식 및 캐리어, 삼각대는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
노트르담 성당은 850년 전부터 파리의 중심에 서서 시테섬을 지키고 있다.
고딕양식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노트르담 성당은
프랑스의 역사와 함께하며 어두운 시간 또한 함께했다.
중세시대부터 20세기까지, 노트르담 드 파리가 지나온 6가지 비밀의 과거를 알아보자.
시테 섬의 5번째 성당
노트르담 드 파리를 짓기 위해 1163년에 사용된 초석은 엄밀히 말하면 첫 돌이 아니다!
시테 섬에는 자그마치 4개의 성당이 존재했는데, 에티엔 성인을 기리며 4세기에 지어진
초기 기독교 교회, 메로빙거 왕조의 성당, 카롤링거 왕가의 성당, 로마 가톨릭의 성당이 차례로 세워졌다.
노트르담 성당을 지을 때 쓰인 돌과 장식품 가운데 일부는 바로 이 성당들의 잔해를 재사용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성녀 안나 대문 윗쪽에 있는 성모상은 로마시대의 작품으로 1140~1150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노트르담 성당이 19세기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단 사실을 알고 있는가 ?
프랑스 혁명 당시 엉망이 되어 버리고, 이성 철학자들의 집결지로 변모됐다가
창고로 전락해버렸던 성당은 그 모습이 너무도 처참해 완전히 없어져버릴 위기에 처했었다.
하지만 1804년 나폴레옹 1세가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황제 대관식을 올리고, 빅토르 위고가
소설 « 노트르담 드 파리 Notre Dame de Paris »를 1831년 출간하면서 성당을 구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1845년에는 건축가 외젠 비올레 르 뒥(Eugène Viollet-le-Duc)이
전체적인 복원작업을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 혁명 당시, 노트르담 대문 위에 있던 유태인 왕들의 동상 중 일부가 없어졌고,
남아있는 동상들은 머리가 잘려나갔다. 유태인 왕들을 상징하는 동상을
프랑스 왕들의 동상으로 착각한 과격 공화파들의 소행이었다.
1977년이 돼서야 28개의 사라진 머리 가운데 21개를 찾아냈다.
9구에 위치한 저택의 건설 현장에서 발견됐다.
훼손된 동상들은 복원작업을 거치며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고,
원본은 클루니 국립중세박물관(Musée de Cluny)에 전시돼있다.
노트르담 성당의 첨탑을 둘러싸고 있는 열두 사도의 동상은
비올레 르 뒥이 성당을 복원할 당시, 12세기 풍으로 새로 제작됐다.
이 때, 비올레 르 뒥은 과감한 시도를 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사도 성 토마스의 얼굴은 그를 만든 건축가의 이목구비를 띠고 있다.
게다가 12사도 동상 가운데 유일하게 첨탑을 바라보고있다.
본인의 작품을 감상하는 외젠 비올레 르 뒥인셈이다.
왜 성 토마스 상에 그의 얼굴을 넣었는고 하니,
성 토마스가 건축가들의 수호성인이라고 한다.
성당 지붕의 빗물을 배출 시키는 구멍 끝에 달린 괴상한 동물 석상이 중세시대에 만들어졌다면,
성당 높은 곳에 자리한 키메라(그리스 신화 속 괴물)조각상은 19세기 노트르담 대성당을 복원한
비올레 르 뒥(Viollet-Le-Duc)의 상상력과 독서에서 탄생한 것이다.
가장 유명한 조각상은 기괴한 악마의 형상을 하고 있는 "만족하지 못한 뱀파이어"를 뜻하는
'스트리주(Stryge)'이다. 음욕을 상징하며 샤를 메리용(Charles Meryon)의 판화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다.
이 석상은 현재 노트르담 성당하면 떠오르는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19세기에 완전히 새로 지어진 첨탑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는
수탉 모양의 풍향계는 여느 풍향계와는 다르다.
이 수탉은 1935년부터 성 데니스, 성녀 주느비에브의 성유골,
그리고 1239년 성 루이가 가져온 가시관의 일부를 품고있다.
당시 파리의 대주교였던 베르디에(Verdier)는 이 풍향계가
신도들을 지키는 정신적인 상징이 되길 바라며 이같이 했다고 한다.
[남쪽 측면 세느강에서 바라본 노트르담 대성당]
[서쪽 정문쪽에서 바라본 노트르담 대성당]
[동쪽 후문쪽에서 바라본 노트르담 대성당]
[노트르담 대성당 외벽의 조각작품들]
[노트르담 대성당 야경]
[노트르담 대성당 내부]
첫댓글 페키지 여행에 급하게 봤던 성당들 제각각 참많은 개성들도 가지고 있었건만
기념품은 포르투칼 광장앞 기념품가게가 생각나네요
패키지로 가면 그렇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가서 찬찬히 잘 훑어 보았습니다
정말 대단한 성당이란 생각이 들었었지요
감사합니다
외부 내부의 장식들
스테인드그라스의 창문
첩탑의 상징적인 동물상도
12사도의 얼굴에 조각
건축가의 얼굴이라니
독특한 발상도 역시 프랑스답네요
네 대단한 건축물입니다
지은 기간도 엄청 길더라구요
1163년 ~ 1345년 무려 182년...
프랑스가 세계의 화강국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