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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학교 안양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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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든든하게 스크랩 복과 기도(福과 祈禱)(역대상 4: 9-10)주일 낮 예배 설교문
장덕수 추천 0 조회 307 18.12.12 06:2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담임목사 김종웅

복과 기도(祈禱)

역대상 4: 9-10

2018 12 1일 주일 낮 예배

                                                                                                                                          No. 395

9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10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아멘

 

야베스는 사사시대 혼돈의 시대에 기도의 사람이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음이라.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 정의가 뒤로 물리침이 되고, 공의가 멀리 섰으며, 너희 사회의 공의와 정의 이런 것들은 볼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참 우리가 지금 시대를 보면은 답답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거잖아요. 특히 영이 살아 있고 깨어난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은 답답해야 되요. 그래서 지난 주일 이 야베스의 기도가 오해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의가 실현되지 않는 것에 너무 답답함에 있어서 제가 10년 만에 정말 저는 목소리는 크거든요, 그래서 군대에서 신고는 항상 제 몫이었는데, 큰 소리로 설교를 했더니만 교인들의 반응이 뭐냐 하면 목사님 얼굴이 붉어서 넘어질까 봐 두려웠다고, 그런 이야기를 해서 아 큰 소리로 한다고 들리는 게 아니구나, 오히려 소리는 말씀은 안 듣고, 다른 생각하는구나 이래서 다시 조건 조건 하게 설교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내용의 심각성은 좀 생각하며 들었으면 합니다. 이사야 59장에 보면은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으니 너희 죄가 너희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이런 말씀은 아마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면은 기도에 관한 말씀임을 다 잘 알리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의 손이 짧아서 우리를 구원 못하심도 아니고 귀가 둔하여서 듣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죄악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 놓아서 내 기도가 응답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들었을 거에요. 그래서 혹시라도 기도의 응답이 안 되는 것은 내가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안 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 하고 스스로 자책하는 기도를 많이 합니다.

 

1. 열심히 일한 자에게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고,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는 공의로운 나라가 되지 못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그런 죄악이 관영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를 보면서 한탄을 해야 되는데 그런 것을 보면서도 그런 사람이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상히 여기셨다.

 

그것도 자책을 기도의 응답을 위해서 하는 경우를 참 많이 봐요. 그러다 보니까 정말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 속에 나타나지도 않고, 생명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지도 못해요. 이사야의 이 말씀이 어떤 말씀이냐, 이스라엘의 공동체에 하는 말이에요. 너희 나라가 이런 나라가 되지 못하는 것은 이런 나라라는 것은 열심히 일한 자에게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고, 또 사회적인 지위나 돈이 있거나 없거나 와 상관이 없이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는 공의로운 나라가 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이 짧아서 그런 것도 아니고, 너희들이 기도를 적게 해 가지고 하나님께서 귀가 먹어서 너희 기도를 듣는 것도 아니고, 너희 이스라엘에게 죄가 나와 너희 사이를 갈라 놓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는 거야, 이런 말이거든요.

 

여러분들이 개인적으로 뭐 좀 잘못한 것을 하나님 그것 때문에 기도의 응답을 하지 않는 하나님이라면은 우리 부모보다도 못하잖아요.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좀 부족해도 더 사랑하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세요. 그런데 하나님의 기도의 응답이 없는 것은 이스라엘의 그런 공의로운 나라가 되지 못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그런 죄악이 관영 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에요. 그래서 그 뒤에 보면은 이런 말을 하는 거에요,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하고,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에는 악독을 냄이다. 그리고 공의대로 소송을 하는 자가 없다. 재판에 정당한 판결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사람마다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짠다.

 

어떻게 하든지 사람들은 남을 헤치려는 생각만 있고, 남을 올무에 걸려들어서 먹이 거리로 만들려고 하는 것만이 가득하다. 그래서 너희 사회가 정의가 멀고, 공의가 미치지 못하고 어두움밖에 없다. 너희들이 그래서 맹인같이 담을 더듬으며 눈 없는 자같이 두루 더듬으며 낮에도 황혼 때같이 넘어진다. 강장한 자 중에서 죽은 자같이 된다. 너희가 곰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우나 정의를 바라는 것이 없다, 이런 말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 정의가 뒤로 물리침이 되고, 공의가 멀리 섰으며, 너희 사회의 공의라든지 정의라든지 이런 것들은 도저히 볼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여러분들이 알아듣기 쉬운 말로 하면은 열심히 일한 자에게도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지도 않고, 재판에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지 안 해서 억울함이 가득한데,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은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한다. 제대로 살고 열심히 살려고 하는 사람들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까지도 다 빼앗기는 이런 불의한 사회인데도 사람이 없음을 보시고,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이런 사회를 보면서도 왜 이런 사회가 되었는가 한탄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에요.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은 그런 사회를 보면서 한탄을 해야 되는데 그런 것을 보면서도 그런 사람이 없는 것을 하나님이 이상히 여기셨다는 거에요.

 

2. 공의가 상실된 사회 속에 주님이 오셔서 열심히 일한 자에게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고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너희에게 메시야를 보내어 주겠다. 야베스는 왜 에스라가 야베스를 역대상의 족보에 누구누구의 아들 했는데, 이렇게 주석을 단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고,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공의를 갑옷으로 삼으시고 구원을 자기 머리에 써서 투구로 삼으시며, 보복을 속옷으로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며 그 원수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응하실 메시야를 내가 너희에게 보내어 주겠다, 이런 말이에요. 다른 말로 하면은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는가, 나 하나 잘 먹고 잘 살라고, 우리 교회하나 잘 되라고, 이게 아니라는 거에요. 이 세상이 공의가 상실 되어졌는데 정의가 없는데 이런 공의가 상실된 사회 속에서 한탄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주님이 오셔서 열심히 일한 자에게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고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그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내가 너희에게 메시야를 보내어 주겠다, 이런 말이에요.

 

오늘도 여러분들이 이 대강절에 우리가 어떤 마음이 있어야 되는가,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서 가슴이 먹 먹하고 답답해야 되요. 그래서 정말 기도가 턱턱 막히는 이런 현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성탄절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좀 더 공의로운 사회가 되도록 성탄절을 주셨구나, 그 성탄절에 예수님이 오심을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이런 그리스도인이 하나 둘 늘어나야 되요. 여러분 제가 그래서 야베스를 여러분들과 함께 묵상하는 이유 말했지요. 야베스는 왜 에스라가 야베스를 역대상에 쭉 여러분 족보들 가운데 누구의 아들 누구의 아들 했는데 여기에 이렇게 주석이 달린 사람, 여러분들에게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야베스라는 이름을 이렇게 해 놓았는가 야베스는 사사시대라 했잖아요.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는 시대, 그래서 혼돈과 무질서의 시대 사사시대는 한마디로 이야기하면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더라.

 

오늘날 교회도 보세요, 자기가 옳다고 하는 것이 진리라고 마음대로 말을 해요. 우리는 내가 옳다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말하는 것이 뭔가를 말하는 사람이어야 되거든요. 우리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사는 자이어야 되거든요. 우리는 내가 이익이 되고 손해가 되는 것이 내가 선택의 기준이나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헤아리면서 가치판단하고 선택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데, 교회들마저도 그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말을 하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느냐, 아니냐를 따지고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해 버린다고요.

 

그러니까 우리 사회가 이렇게 무질서 하고, 혼돈하고, 미래가 별로 희망이 없는 소망이 없는 사회가 되어져 버렸는데도 설교에 보면은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복 주어서 여러분들을 복 주어서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 할렐루야 아멘, 이런 것을 보면서 이상히 여기지도 않는다는 거에요. 그것을 이상히 여기라고 대강절을 주시고, 크리스마스를 주신 거에요. 여러분들이 우리 사회를 지금 한번 보세요, 얼마나 젊은 사람들이 탄식을 하고 직장이 없습니까, 정말 올바른 가치관을 축적해야 할 청소년 시절에 경쟁의 희생물이 되어져 버리고, 가장 정의롭고 공의로워야 되는 사법부는 엉망진창이고, 그런데도 뭐 정부가 정책을 잘못했니, 소득주도형 정책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 모양 이 꼴 경제가 엉망진창이니, 자기 소견의 옳은 대로 다 판단하는 거에요.

 

3. 내 힘으로 복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도록 믿으라는 것이다.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이게 헌금의 정신이다. 내가 조금 여유가 있을 때, 이 여유를 가지고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 이게 야베스와 같은 사람이다.

 

여러분 소득 주들 개인들의 호주머니를 부유하게 해서 소비를 진작해서 경제를 잘 살린다는 게 뭐 잘못되었어요, 또 여러분 또 한편에서는 기업이 기업을 할 만큼 힘을 주고 신나게 해야지 그 말이 뭐 잘못 되었어요. 둘 다 옳은 말이지요. 잘못된 것은 뭐에요, 법인세 깎아 주어 가지고 기업에게 많은 이윤을 남기게 하니까 그것을 가지고 투자하지 않고, 은행에 위기를 위해서 저장해 놓은 돈이 천조거든요, 그런 기업을 욕하는 사람이 없는 거에요, 저는 화가 나요, 세금 깎아 주고 여러분들의 세금을 더해 가지고 기업 살려 놓았는데 투자는 하지 않고 전부 쌓아 놓고, 그런대도 좀 투자하라고 소득주도형 하니까 이게 잘못되었다고, 우파의 주장도 맞고, 좌파의 주장도 맞아요, 성경적으로 보면,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 탐욕에 가득 찬 기업의 생각이 잘못된 거지요.

 

그래서 탄식하는 대도 교회가 이것 조차도 모르고 그저 우파 지지하고 좌파 지지하고, 자기에게 복음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선전하고 있는 거잖아요. 여러분 오늘 야베스의 기도를 보면은 자 이 말이 여러분들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어야 되요. 10절에 보세요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요 부분을 오늘 설교할 거에요. 야베스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주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려거든 인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은 나에게 라고 강조해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옵소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옵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 강조가 되어져야 되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복 받지 말라 이 소리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복 된 삶을 사는데 그 복이 하나님께로서 온 것을 믿으라는 거에요. 내 힘으로 복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도록 믿으라는 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없이 나에게만 있는 거에요. 이게 기복 신앙이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만 복 주어야 됩니까,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셔서 나에게 주신 복이 모든 사람에게 복 되게 해야지요. 하나님께서  이전 대통령 정부시절에 법인세를 깎아서 기업을 복 되게 하셨으면 기업이 그 복을 가지고 모든 사람에게 복되게 하라 이것이 야베스의 기도에요. 여러분 헌금도 그래요, 헌금은 하나님의 복의 통로다, 좀 심한 이야기 할게요, 목사님들이 자기 야망에 의한 거에요. 성경에 어디에 그래 있어요?

 

고린도후서 8 14절에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이게 헌금의 정신이에요. 네가 가지고 있는 여유를 가지고 상대방의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이 헌금이래요. 이게 세금이고요. 성경은 헌금을 많이 하는 자는 복 받는다, 그게 아니에요. 그래서 투기하듯이 헌금하는 게 아니에요.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셔서 남들보다 내가 조금 여유가 있을 때, 이 여유를 가지고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 이게 야베스와 같은 사람이에요. 법인세를 깎아서 우리 대기업이 좀 더 부유하게 되었을 때, 내 하청 업체에 단가를 좀 올려 주는 것, 그게 헌금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이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고, 야베스와 같은 사람이 되는 거에요.

 

4. 어떻게 내 호주머니를 채우나 하면서 하나님께 복 달라는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이 있을 것을 성경은 말한다. 야베스와 같이 어려운 시대에 성공해야 하는 이유는 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이 복 되도록 하는 것이다. 상황과 현실을 바꾸는 게 아니라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이런 마음으로 신앙 생활하고 이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 설교를 듣고, 이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 예수 믿느냐 말입니다. 그저 남은 죽든지 말든지, 선지서의 말씀대로 사람을 보면은 가죽을 벗겨서 살을 도려내서 먹으려고 그러고, 남아 있는 뼈까지 고아서 먹는 시대, 그게 선지서에 있는 말이에요. 그저 사람만 보면은 그 사람의 껍데기를 벗겨서 어떻게 내 호주머니를 체울가 하는 이런 생각을 가지면서 하나님께 복 달라고 기도하는 것, 오늘도 여러분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저주와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성경은 말해요. 하나님의 그 심판은 이미 받은 심판은 성경에 뭔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았다는데, 벌써 심판이 뭐냐 하면은 우리가 그렇게 부유한대도 90%의 사람이 먹고 사는 것에 허덕이는 이 현실은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우리 속에 있는 거에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이래야 되는 거에요. 우리 사회가 이렇게 세계 경제 10대 대국에 들었는데도 모두다 허덕이는 것은 정책이 잘 못되고, 정치가 잘못되고가 아니에요. 예수를 잘못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우리 가운데 임하여서 고통을 당하는 데도 이상히 여기는 사람조차 없다. 헌금은 너희 유여한 것을 가지고 저희의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함이다. 창세기 12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를 때에 봐라, 아브라함을 불러서 만복을 그에게 주셨다, 사기입니다. 창세기 12장에 3절에 보면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너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을 해서 부자가 되고 성공해야 되는 이유는 야베스와 같이 그 어려운 시대에 성공해야 하는 이유는 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이 복 되도록. 이제까지 여러분들이 이런 설교를 얼마나 들어 봤느냐 말입니다.

 

기도하고 열심히 예수 잘 믿으면은 하나님이 복 준다고 이야기만 들었지. 우리가 또 요셉을 얼마나 잘못 이해해요, 창세기 39 23장을 보면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였더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은 우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된다고, 사기입니다. 객관적으로 여러분들이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요셉은 채색 옷을 입었든 사람입니다. 노동을 안 했든 사람이에요. 아버지 말 듣고, 고생하는 형님들 도시락 갖다 주다가 형님들에 의해서 노예로 팔려 갔어요. 여러분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러려면 뭐해요, 하나님 내가 뭐 잘못했는데, 여러분 육체의 노동을 안 한 사람들은 육체 노동은 정말 지옥과 같아요.

 

저는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것은 잘하지만, 노동은 못해요. 요셉은 노동을 안 사람이 노예가 되었어요, 그런데 그는 그 노예들 중에 제일 성실히 최선을 다해 일해서 여러분 집사장이 되었대요. 여러분 어떻게 해서 요셉이 그랬는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내가 왜 아버지 집에서 그 호의 호식하다가 이 노예가 되었는가, 하나님이 왜 그랬는지는 몰라요, 하나님을 이해 하려고 했든 게 아니에요. 하나님을 믿었든 거에요. 그래서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한 거에요.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은 상황과 현실을 바꾸는 게 아니라 내 자신을 바꾸는 거에요. 이 노동의 현장에서 다시 노동하지 않는 현실로 기도해서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동안 손에 물 안 묻히든 나에게 손에 물 묻히게 한 것은 하나님의 무슨 뜻이 있을 거야, 집사장이 된 거에요.

 

5. 2년의 세월,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형통했다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그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어떤 환경에서도 자기가 최선을 다했다. 내가 국무총리 된 것은 주께서 나에게 복을 주어서 국무총리 된 것이다,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라고 이게 성경이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해 안 되는 것이 있을 때 하나님을 이해할라 하지 말고, 하나님 무슨 뜻이 있겠지, 하나님을 믿으라 이게 믿는 거라 그랬잖아요. 여러분들이 인간 관계에도 부부지간이고 사람 관계에도 대화해서 이해하려 하지 마세요, 오해 생깁니다. 그분이 그럴 때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 꺼야, 이게 믿음이에요. 이 믿음이 우리를 구원에 이른다고요. 요셉은 집사장이 되어 가지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쳤어요, 그것도 사춘기 때에요. 얼마나 육체적으로 강한 그런 때에 물리쳤어요. 결과는 뭡니까? 오해를 받아서 감옥에 가는 거에요. 하나님 이럴 수 있습니까 내가 뭘 잘못했는데, 그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쳤는데 나를 감옥에 보내? 안 했어요. 하나님께서 이 자리로 가게 한 것도 무슨 뜻이 있을 꺼야.

 

그래서 그 감옥에서 제일 수용 생활을 잘 했어요. 그래서 전옥이 그에게 열쇠를 맡겼어요. 그러다 보니까 정치범으로 몰린 떡 맡은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 오늘날로 치면은 범털을 만나게 된 거에요.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아마 왕 독살 하려다가 둘 중에 다 온 것 같아, 술 맡은 관원장은 곧 그것이 풀릴 것 같다고, 그래서 당신이 석방 되거든 나를 좀 억울 한 것을 이야기 해 달라고 그랬다고, 그런데 이 사람이 화장실 가기 전하고, 화장실 갖다 오고 난 뒤 마음이 다르잖아요. 술 맡은 관원장이 나가더니만 요셉의 이야기를 까마득하게 잊고 2년을 지난 거에요. 여러분 성경을 볼 때에 그 요셉의 2년의 세월이 어떻게 했는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해가 안 되거든 감옥에 한번 가보세요.

 

여러분 하루가 천년 같은 그 세월을 2년 동안 기다렸어요. 거기에서 이럴 수 있느냐고, 하나님이 살아계셨으면 이랬으면 요셉은 독방에 갔든지 아마 안 그러면은 사고쳐서 사형을 당했든 했을 겁니다. 2년의 세월,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형통했다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그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았다는 거에요. 어떤 환경에서도 자기가 최선을 다했다는 거에요. 그래서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자기에게 주어진 힘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은 요셉은 자기 형과 아버지를 잘 거두어 드렸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죽자 형들이 자기 수준의 생각하는 거에요.

 

이제 아버지가 죽었기 때문에 요셉은 우리를 분명히 보복할 거다, 그럴 때에 요셉에게 무릎 꿇고 와서 이제 우리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하니까 요셉이 울면서 그래요, 형들 나를 어떻게 보는 거요, 내가 잘나서 국무총리 된 줄 알았어요, 주께서 나에게 복을 주어서 국무총리 된 거에요. 주께서 나에게 왜 복 주신 줄 알아요,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라고, 이게 성경이에요. 왜 법인세를 깎아서 우리 기업을 이렇게 수조를 은행에 하나님께서 넣게 했는가, 고민하고 비틀거리는 청춘들을 보살피라고, 내 하청 업자의 얼굴에 웃음꽃 피라고, 그 말이 그런 말이에요. 야베스의 기도가 그런 기도에요.

 

6.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준다고, 환난 중에도 우리는 즐거워하는 자라고,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고, 내가 고난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고난 당한 이후에 주의 윤례와 규례를 지켰노라.

 

여러분들이 이 설교를 들어야 할 이유가 그런 사람이 되라고요, 우리는 요셉의 그런 삶은 보지도 못하고, 도깨비 방망이 가지고 국무총리된 것만 이야기해요. 그것은 사탄이지요. 그건 우상 숭배자이지요.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해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준다고, 환난 중에도 우리는 즐거워하는 자라고,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고, 내가 고난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내 혼자 잘난 줄 알았고, 못난 놈들은 원래 게으르고 못나서 그런 줄 알았더니, 이게 그릇 행하였더니요. 네가 아버지 잘 못 만나서 너 그런 거야. 그릇 행하였더니 내가 고난 당한 이후에 주의 윤례와 규례를 지켰노라.

 

내가 그 사람이 나의 사랑의 대상인 줄 알았노라. 내가 고난 당하기 전에는 모든 사람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고 하나님도 나를 위해서 존재 해야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고난 당한 이후에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정말 12년 동안 많은 고난이 있으면서 아 개척 교회 하는 사람들의 고난을 비로서 이해하게 되어서 그들의 마음을 헤아렸다고. 그래서 우리 교회 다녔다가 영원 교회 간 것 축복해 주어요. 하나님이 잘 되나 두고 보자 그런 게 아니에요. 똑 같은 고난을 경험해도 사단의 역사가 있고,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어요. 사단의 역사함은 내가 그렇게 고난을 겪었는데, 나에게 고통을 준 놈들 나중에 한번 봐라. 거들먹거리는 것, 고난 당하는 사람에게 그 모양으로 사니까 당신은 평생 그래 살지, 사탄이 주는 생각이에요. 죄송한 이야기지만 여러분들에게 이런 것은 좀 본 받으세요.

 

저는 신학을 하는 동안에 교회에서 한번도 등록금을 주는 교회에 사역을 못 해봤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 교역자들이나 우리 교회 어려운 사람들에게 우리 교회가 능력이 되는 만큼은 제가 하려고 해요, 지나치게 안 해요, 왜 그러면 여러분들 호주머니 틀어야 되잖아요, 이제 내 호주머니 다 틀어서 없기 때문에 내가 못 받았다고, 너도 그래 살아라 이게 아니에요. 그때 내가 교회의 서운한 마음, 우리 부 교역자들에게는 안 가지게 해야지, 여러분들 저에게 이야기해 줘도 되요, 이 말이 틀리면은, 저는 우리 교회의 장로님이나 집사님이나 누구 얘들이 뭐 유학 가고 뭐하고 하면은 내 호주머니에 있는 한에는 그냥 보낸 적이 없어요.

 

우리 아이들 뭐 한다고 해서 호주머니에 찔러 주는 교인들은 없어도요, 왜 저는 동부 교회 있을 때 우순열 권사나 대학 교회 있을 때 장병용 목사가 우리 얘들 뭐만 있을 때 불러 가지고 봉투 준 게 너무나 고마웠거든요, 그래서 아 이게 기쁨이구나, 나의 유여함이 저의 부족함을 채우는 거구나. 그래서 제가 그러는 거에요, 내 잘났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주께서 나에게 복을 주옵소서, 나에게 가 강조가 아니에요, 주께서 나에게 복을 주신 것이다. 나를 축복하옵소서가 아니에요, 나를 축복으로 삼으소서. 오늘부터 여러분들의 기도가 나를 축복하옵소서 하지 말고, 나를 축복으로 삼으소서. 나를 축복의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만 복 주어야 되요. 나를 통하여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해야지요.

 

7.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상대방에게 주는 도구가 되도록 이게 야베스의 기도이고, 아브라함이 그런 사람이었고, 요셉이 그런 사람이었다. 복의 근원인 하나님이시고,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요셉을 통해서 모든 인류가 생명을 얻는 일이 일어났다.

 

내가 받고 싶은 그것을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상대방에게 주는 도구가 되도록 이게 야베스의 기도에요.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만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까, 내가 복의 사람이 되어야지요. 아브라함이 그런 사람이었고, 요셉이 그런 사람이었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 준 것이기 때문에 내가 주고도 행세 안 하는 거지요, 빚진 마음을 가지는 거지, 왜 이런 것이 일어나지 않는가, 기도가 잘못 되었어요, 가장 하나님과의 중요한 관계의 통로가 기도인데, 한국의 교인들은 기도를 무엇을 얻는 수단인 줄 알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부흥사 이런데 사기에 넘어가지 마세요. 기도는 여러분들의 무엇을 얻는 축복의 통로다 사기입니다.

 

우리 교회는 특별 새벽 기도를 통해서 이렇게 응답 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전부 천지신명에게 기도한 것 하고 똑 같아요.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에요. 복의 근원인 하나님이세요.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에요 보이지 아니하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는 대화에요. 그래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되어져요. 그래서 기도를 제대로 하면은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되어져요. 여러분 저도 우리 교회에 이래 보면은 나한테 뭐 의문이 나고 이러면 나한테 대화해야 되는데 자기가 이럴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은요 저하고 관계 회복이 안 됩니다. 나한테 물어야지요.

 

저도 여러분들이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할 때에 그 사람 불러서 대화를 하면은 관계가 회복이 되는데, 내 혼자 장로가 왜 저래 집사가 왜 저래, 이래면은 관계 회복이 안 됩니다. 관계가 회복이 안 되면은 불행이에요. 관계 회복 없이 살아가는 게 얼마나 불행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 없이 신앙 생활하는 것은 저주지요. 왜 안 됩니까, 일방적으로 말만 하는 거에요, 하나님께 물어야 되는데, 그래서 제가 묻는 기도하라는 거에요. 하다 보면은 요셉의 성경이 새로 보여요, 아 하나님께서 요셉을 사람 되게 하려고, 그를 축복의 통로로 삼으시려고, 그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되게 하려고, 그 고난을 주었구나, 그 고난 속에 요셉은 하나님 믿습니다 주시옵소서 안 하고, 하나님 내가 무얼 잘못했는데 이런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서 그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구나.

 

그래서 그는 자기가 힘을 가지고 있을 때에도 힘을 남용하지 않고,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는 일을 함으로 말미암아, 요셉을 통해서 모든 인류가 생명을 얻는 일이 일어났구나, 하나님 앞에서 왜 하나님 우리 기업의 법인세 깎아서 이렇게 기업 잘 되게 했습니까, 옛날에 내가 왜 기업을 할 때에 그렇게 힘들었습니까, 내가 하청 하면서 원 청에게 단가 후려치기 당할 때 고통을 당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고통 속에서도 내가 다시 원 청 업체가 되게 한 것은 하청 업체의 고통을 이해해서 함께 나누라고, 이런 일들이 회복이 있는 교회에서 기도할 때만이 가능하게 일어나는 구원이다 이 말입니다.

 

8. 감사는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 준다. 기도는 내 삶의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꾸는 것이다. 내 생각으로 측량하지 못하는 하나님을 알 때 이게 은혜다. 야베스가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의 도구로 삼으소서, 그래서 나의 성공이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데에 사용되도록.

 

기도는 자기의 것을 얻는 수단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면은 내 수준의 하나님을 생각 안 해요.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어져요. 어떤 일에도 하나님의 무슨 뜻이 있겠지 라고 믿게 되어 질 때에 자유가 일어나요. 여러분들에게 제가 얼마나 자주 이야기해요, 선물이 보이면은 어린 신앙 입니다, 성숙되면은 선물을 보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요. 여러분 가나안 농군 학교 김용기 장로 아들 김범일 장로가 80년대 신영광 교회 왔을 때 효의 특강을 했습니다. 그분이 효에 관한 전도사거든요, 오늘 우리 한국의 왜 효가 무너졌는가, 돈이 잘못 되었대, 옛날의 엽전에는 구멍이 있어 가지고 돈줄 때 부모 얼굴이 보였는데 요즘은 구멍이 없어 가지고 돈만 보이지 부모가 안 보인대요.

 

돈만 보이면은 좋다 하지만은요, 돈을 주는 부모의 얼굴이 보이면은 감사 하다 해요, 굉장히 달라요. 좋다는 것은 곧 사라지지만은 감사는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성경은 기도는 내 삶의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꾸는 거에요. 어떻게 나를 바꾸는가, 내 생각으로 측량하지 못하는 하나님을 아실 때 이게 은혜에요. 부루스 윌킨슨의 야베스의 기도 책 보지 마세요. 야베스의 축복의 원리라는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 하고 있어요, 똑 같은 본문을 가지고, 어떤 산악인이 산 속에서 폭우를 만났어요, 물이 점점 차 올라오니까 하나님께 기도한 거에요. 하나님 이 폭우에서 나를 건져 주옵소서. 기도하는데 트럭이 하나 지나가면서 빨리 타세요 큰일 납니다, 그래 이 사람이 하는 소리가 나는 하나님이 건져 주실 거야 그냥 가시오, 트럭이 휙 지나갔어요.

 

비가 더 점점 와서 이제는 어디에도 발 디딜 틈이 없는 침수가 일어났어요. 헬기가 다다다다 오면서 구명 줄을 내려 주면서 이 줄 잡아서 빨리 탈출하세요 하니까, 오 하나님이 나를 이 폭우 속에서 구해 줄 거야 쓸모 없어 가세요, 꼬로록 익사 했어요. 천국 문에 턱 가니까 베드로가 앉아서 있는 거에요.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다고 했는데 구하면 얻지 못함이 없다고 했는데 구하지 안 해서 얻지 못했지,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좋은 것 주신다 했는데 왜 나는 트럭과 헬기를 다 거부하고 하나님 건져 달라고 믿음으로 기도했는데 나를 이렇게 죽게 만들었소 이러니까, 베드로가 한다는 소리가 야 이놈아 하나님이 너 구하려고 트럭 보내 주고, 헬기 보내 주었는데, 너는 그것 안 잡고 무엇 했냐.

 

여러분 여러분들이 오늘날까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을 여러분들에게 보내어서 있는 거에요, 내가 기도해 가지고 뭔가 하나님의 기적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은 오늘 내가 있도록, 오늘 유치원 원장들이 내가 오늘 이 유치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수많은 학부모들의 손길을 통해서 우리 유치원이 있게 된 것을 알게 된다면은 절대로 저런 말 안 하지요. 여러분들이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이 하나님이 헬기, 트럭 보내 준 거와 같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을 통해서 보내 주시는데, 여러분들은 모두가 나에게 그렇게 보내어 주기를 바라는 것 보다 여러분들이 헬기가 되고, 트럭이 되어야 된다는 거에요.

 

9.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정당한 대가가 주어져야 되고,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된다. 야베스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되고, 요셉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된다. 사회가 점점 나빠지는 것은 바울의 말대로 천사도 저주를 받을 사탄의 말을 전하기 때문이다.

 

야베스가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의 도구로 삼으소서. 그래서 나의 성공이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데에 사용되도록. 오늘도 여러분 이 설교를 들으면서 야베스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야베스와 같은 사람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면 안 되요. 야베스와 같은 사람을 아는 사람이 참 많아요, 야베스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되요. 요셉을 아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요. 요셉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되요. 그러기 위해서 겸손해야 되요. 왜 안 변하는가, 제가 수요일 날 이야기 했습니다, 저도 이제 나이가 좀 들어가다 보니까 젊은 사람 보면 답답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또 나이든 사람보고 캐 캐 묵었다 하잖아요. 그러면 연세 드신 분들이 하는 소리 있지요, 야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다, 늙어 보도 안 한 게 젊어만 본 게 늙은 사람 탓 한다고.

 

교인들 중에서요 목사님 왜 그런 말씀 하세요, 나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 다 경험 해보고 이게 아니다 해 가지고 이 말씀 전하는 거요, 그런데 자기 생각이 옳대, 자기는 옛날부터 이래 믿어 왔대, 오늘부터 생각 바꾸세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을 저는 배속에서부터 예수 믿었고요, 아버지가 목사여서 다 경험 해 보니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은 거에요.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많아 지면은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정당한 대가가 주어져야 되고요,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되는데, 오늘 수많은 설교가 있고, 기도가 있고, 교회가 세워졌는데 사회가 점점 나빠지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이야기한 대로 천사도 저주를 받을 사탄의 말을 전하기 때문이에요.

 

앞으로 여러분 자기의 관습과 전통을 가지고 설교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거든 그러세요, 목사님이 몰라서 그런 설교하냐, 우리 복 받지 말라고 하냐, 내가 진짜 복 받아서 나에게 주어진 것이 많은 사람에게 복이 되는 그런 은혜로운 삶을 사는 내가 되고 교회가 되기를, 그러려면 여러분 자꾸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에서 헬기 트럭을 보내 주기 보다는 내가 하나님이 보내는 트럭이 되고, 내가 하나님이 보내는 헬기가 되어져서 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 그런 은혜로운 삶이 여기 모인 사람들만이라도 일어난다면은 정말 달라질 거에요. 그러려면은 이 대강절에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계시되는 그 하나님을 믿으세요.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리는 나를 안 버리고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그 하나님을 알아서 여러분들의 주어진 환경이 여러분들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여러분들이 그 환경을 지배해 나가는 그런 생명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저와 함께 걸어가는 신앙의 길동무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봉헌 기도◈

 

너희의 유여 함으로 저희의 부족함을 보충함은 오늘도 헌금을 축복의 수단이라 생각해서 투기하듯이 드리지 아니하는 쉼과 회복이 있는 교회가 됨을 감사 드립니다. 내가 좀 아껴서 내가 좀 여유가 있는 부분을 가지고 부족한 사람들을 채워 나갈 수 있는 이런 헌금이 되어져서 오늘날까지 교회가 한걸음 한걸음 든든히 세워져 감을 감사 드립니다. 이제는 우리 교회가 좀더 부족한 자에게 좀 더 큰 힘을 더하여 주는 교회가 되어지고 우리 이웃에 있는 약한 교회에게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기 보다는 그들의 월세라도 좀 내줄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아버지 하나님 우리 성도들의 생업을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들의 삶이 유여함이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제는 아버지 하나님 나에게 복을 달라기보다 복을 주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제는 내가 무엇을 얻는 수단으로서의 기도보다는 하나님을 깊이 알아 가는 기도를 할 수 있도록 그래서 요셉과 같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신앙이 아니라,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서 어떤 역경에도 그 환경과 역경이 나를 침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경과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생명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오늘도 이른 자들의 모임인 교회를 선물로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중한 고난을 겪으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성령을 주심을 감사 드리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축도◈

 

저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함으로 말미암아 공의를 찾아볼 수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런 세상을 보면서 이상히 여기는 사람조차 없는 세상 속에서 대기업의 부유함이 하청 업체의 부유함으로 대기업의 부유함이 젊은 사람들의 한숨을 거두어 드리는 대로 사용하도록 나에게 복을 주신다고 믿는 우상숭배적 신앙이 가득한 세상에 너에게 준 복은 주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계시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한하신 은혜와 재판이 불공정하고 한쪽에서는 수많은 자본이 싸이고 그러는 가운데에서도 가죽을 벗겨서 살을 먹고, 뼈마저 고아 먹는 세상 속에서 그가 너와 함께 창조한 가족임을 알도록,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과 우리 가운데 내주하여서 복음을 평가하고 전통과 관습을 통해서 자기가 아는 것을 통해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자에게 나는 젊어 봤다, 너 늙어 봤니, 이 말이 가슴의 폐부를 찔러서 복음에 굴복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의로운 세상이 한 발작 더 나아가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동하심이 오늘도 나에게 복을 달라는 신앙에서 주께서 나에게 복을 주셨구나 라는 신앙으로 변모 되어져서 하나님과 모든 사람이 나를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신앙에서 내가 하나님과 모든 사람을 위하여서 존재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믿음의 권속들과 이들을 그런 정글의 세상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선물로 주신 주님의 몸 된 교회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그날까지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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