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교정
상강이 지났고 입동을 앞둔 십일월 초순이다. 중부 내륙 산간에는 영하권으로 내려간 수요일 아침이다. 아침밥을 일찍 지어 먹고도 미적대다 일곱 시가 지나는 무렵 와실을 나섰다. 요새는 아침 기온이 쌀쌀해 들녘 산책은 줄이고 학교로 곧장 향한다. 여섯 시 전후 와실을 나서려니 아직 어둠이 가시지도 않았더랬다. 해가 짧아지고 날씨가 추워지니 행동반경이 좁아지게 마련이다.
교정으로 드니 배움터지킴이와 생활안전부 동료들이 학생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급식소 아래 주차장으로 쓰는 지하 공간에서 가스난로를 켜 놓고 일찍 오는 학생들을 지도했다. 다수가 이용하는 통학버스는 여덟 시 되어 교정으로 드는데 시내버스로 등교하는 일부 학생들은 먼저 왔다. 그들의 발열 여부는 현관에서 체크하는데 교문에서는 세정제로 손 소독 후 들게 했다.
나는 앞뜰에서 서성이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매일 아침은 아니지만 몇 차례 뜰에 뒹구는 낙엽을 쓸었다. 오후 청소시간 역할을 배정 받은 학생들이 책임감 있게 잘 쓸었다만 나도 운동 삼아 손을 보탰다. 주말을 보내고 맞은 그제는 낙엽이 제법 보여 쓸어 모았다. 뒤늦게 행정실 주무관이 나타나 우리가 할 일을 선생님이 하셔 고맙다면서 함께 쓸어주니 너른 뜰이 금방 깔끔해졌다.
이제 뜰에는 낙엽이 더 이상 뒹굴지 않았다. 몇 그루 느티나무는 수령이 오래 되지 않아 떨어질 이파리가 적었다. 가을 가뭄이 심해 낙엽은 이미 조락해 나목이 되어갔다. 고작 몇 개 붙은 이파리는 감나무에 달린 까치밥처럼 보였다. 보도블록이 깔린 뜰에 낙엽이 서너 개 뒹굴었는데 빗자루로 쓸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었다. 무결점으로 너무 완벽하기보다 느슨함도 괜찮을 듯했다.
뜰에서 현관으로 드려는 즈음 보건교사가 나타났다. 누구보다 먼저 출근하는 코로나 방역담당이다. 현관 천정에 부착된 열화상 카메라를 감지하는 노트북 설치를 도와주고 2층 문화보건부실로 올랐다. 노트북을 켜 뉴스를 몇 줄 검색하고 수업에 들 시간표를 살폈다. 수요일은 오전에 든 두 시간 수업으로 끝이다. 점심시간은 급식소에서 동료들과 학생들의 질서를 지도하는 날이다.
1․ 2교시에 교실로 들어 학생들과 대면했다. 추워진 날씨 건강에 유념하고 수능일까지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자고 했다. 한 학생은 수시전형 결과가 나오는 날이라 초조한 기색으로 기다리는 듯했다. 학습 진도는 더 나갈 게 없고 스스로 시간을 잘 관리하도록 했다. 각자 문제를 푸는데 여념이 없고 일부 학생은 자료를 검색하기도 했다. 나는 서민이 지은 ‘기생충 열전’을 독파했다.
수업이 빈 3교시는 교정으로 내려가 봤다. 볼에 스친 기온은 차가워도 파란 하늘은 높기만 했다. 건너편 연사마을 뒤 앵산으로 가는 석름봉은 단풍이 엷게 물드는 기색이었다. 뒤뜰에서 앞뜰로 나가니 교정은 아침나절 햇살이 가득 퍼졌다. 뜰을 거니니 일광욕이 절로 되었다. 색깔이 다양한 소국이 가을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수목과 초본이 시드는 계절에 국화만이 단연 돋보였다.
교정 앞뜰 인공 연못에는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여름에서 가을로 건너오며 오래도록 피어 있던 수련은 꽃잎을 닫고 있었다. 낮에는 꽃잎을 펼치고 밤이면 오므려져 잠을 자는 연꽃이라 수련으로 불린다. 이제 수련 꽃은 날씨가 차가워지니 개화기를 끝내고 열매를 맺어갔다. 그럼에도 동그란 연잎은 윤이 나고 생기를 띠었다. 앞으로 된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얼면 시들기는 할 테다.
연못 가장자리 습지식물로 갈대 사촌쯤 되는 달뿌리풀이 이삭을 내밀어 일렁거렸다. 냇가에서 흔히 보는 달뿌리풀을 교정 연못가에서 보니 이채로웠다. 가을 산마루 평원에는 억새 이삭이 피면 은색 물결이었다. 낙동강 둔치 생태공원으로 나갔더니 군락을 이룬 물억새를 볼 수 있었다. 여기 연사들녘을 휘감아 흐르는 연초천 가장자리는 갈대와 달뿌리풀을 보기도 했다. 교정에서도. 20.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