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흥봉 1942년 경북 의성 출생.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보건사회부 보험제도과장과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거쳐 1999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1999~2000년 보건복지부 장관을 각각 지냈다. 한국노년학회 회장과 한국사회복지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2011년부터 사회복지협의회 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
-복지에서 특히 건강보험이 중요한데.
“북한과의 경쟁으로 인해 의료보험제도가 탄생했다. 63년 의료보험법이 통과됐지만 시행되지 못했다. 그런데 72년 서울에서 남북적십자회담이 열렸을 때 북한 측이 ‘우리는 돈이 없어도 병원에 갈 수 있으나 남측은 돈이 없으면 못 간다’고 주장했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방송에서 말이다. 우리 정부가 자극을 받은 건 당연하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
“그 직후 박정희 대통령이 신현확 보건사회부(현재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전 국민 의료보장제도를 연구하라’고 직접 지시했다. 경제 부처들은 오일쇼크와 경기침체를 이유로 반대했지만 박 대통령은 강하게 밀어붙였다. 당시 신현확 장관실에 가면 외국의 건강보험 자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김종인 전 청와대 수석 등 유럽 유학파 인사들이 미국식 대신 유럽식 보험제도를 주장했는데.
“그렇다. 미국의 건강보험은 실패한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유럽식 가운데 중간형인 가입형 보험제도를 채택했다. 독일과 프랑스·네덜란드·일본의 사례를 참고했다. 정부 예산으로 비용을 대는 영국의 좌파식 제도는 제외했다. 73년 보사부 국민연금국에서 연구를 시작한 끝에 4년 만인 77년 한국형 건강보험제도가 시작됐다.”
-현 시점에서 건강보험은 어떻게 개선돼야 하나.
“보장성이 확대돼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평균 보장률이 80% 수준인데 우리는 65% 수준이다. 보험 혜택이 없는 분야를 줄여 나가야 한다. 또 국민 개인의 보험료 부담률이 35%선인데 이를 20%까지 줄여야 한다. 이와 함께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월급 가운데 보험료 부담률이 6.5%이지만 9%까지 올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재 5~6% 수준인 정부의 지원비율을 높여야 한다. 저소득층과 농민들을 위해서다.”
-소득만큼 보험료가 부과돼야 한다는 차원에서 지역건보 운영은 문제인데.
“능력대로 부과되는 게 원칙이다. 소득을 기준으로 단일 부과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문제는 월급쟁이의 경우 소득 파악이 분명한데 지역 가입자는 파악이 어렵다는 거다. 현재는 재산과 자동차, 그밖의 경제능력을 합산해 소득을 결정한다. 국세청이 더 노력해야 한다.”
-의료산업은 미래 산업인데.
“노인 친화 의료산업을 개발해야 한다. 세계에 60세 이상이 현재 8억 명이지만 2050년께 20억 명이 된다. 수명 100세 시대에는 노인들의 의료 수요가 폭증할 것이다. 서울에 월드 에이징 센터를 세워 대비해야 한다.”
-영리 의료법인을 도입하자는 주장은 어떻게 보나.
“일각에서 외국인 환자 유치 확대를 위해 영리법인 도입을 주장하지만 신중해야 한다. 현재 보험체계를 무너뜨려선 안 되기 때문이다. 다만 성형외과처럼 보험 대상이 아니거나,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첨단의학 분야엔 영리법인 도입을 검토할 만하다.”
-우리 제약회사들이 신약 개발에 뒤처지는 이유는.
“미국이나 유럽의 다국적 제약회사 규모가 워낙 크다. 우리 업체의 100배 크기다. 신약 하나에 수조원을 투입한다. 영세한 우리 업체로선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우리 국민이 머리가 좋다고는 하나 기초과학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요인이다.”
-의료기기 분야는 어떨까.
“이 분야는 성공 가능성이 높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돼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원격 진료나 로봇을 활용한 치료기술에서 성공작을 낼 수 있다고 본다.”
-국민들은 A병원에서 한 검사 결과를 B병원에서도 쓸 수 있기를 바라는데.
“맞다. 병원 갈 때마다 똑같은 피 검사를 반복하면 돈이 많이 들고, 환자도 힘이 든다. 병원끼리 검사결과를 공유하는 시스템이 필요한데 병원 입장에서 수지가 안 맞으니 안 되는 것이다. 검사 결과를 공유해도 병원마다 이익이 돌아갈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 양·한의사 간에 협진이 안 되는 유일한 나라인데.
“해결이 가장 어려운 난제다. 서양의료가 도입된 이래 130년 동안 세 가지 과제가 있었다. 건강보험 도입과 의약분업 그리고 양·한방 통합이다. 앞의 2개는 해결됐다. 그러나 양·한방 통합은 요원하다. 의대에서 양·한의학을 같이 배우는 일본이나 의대에 진학한 뒤 양·한의학을 선택할 수 있는 중국의 예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현행 국민연금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연금 사각지대가 문제다. 국민연금엔 현재 약 2000만 가구가 가입해 있다. 돈을 못 내 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가 500만 명에 달한다. 또 65세 이상 국민 가운데 30%만 국민연금 혜택을 받고 있다. 노인 400만 명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거다. 또 국민연금은 시작한 지 25년밖에 안 돼 축적된 기금이 적고, 받는 돈도 너무 적다. 국민연금만으로 노후생활이 가능해지도록 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에 국민연금위원회를 만들고 여야가 합의를 이뤄 민생의 백년대계를 세워야 한다.”
-65세 이상 노인 전원에게 기초연금으로 20만원을 지급하려다 재정부족으로 제동이 걸렸다.
“기초연금은 정부 재정으로 하는 것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연금이 아니고 노령수당으로 봐야 한다. 2050년이 되면 65세 이상 인구가 1800만 명에 달하게 된다. 이들에게 정부 재정으로 기초연금을 줄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자식을 키우느라 노후 대비를 하지 못한 노인들을 국가가 도와야 하지 않나.
“맞다. 따라서 한시적으로 기초연금 일몰제도를 도입하되 지금의 노인들만을 대상으로 운영해야 한다. 당장 형편이 어려운 노인이나 농민에겐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게 맞다. 그러나 미래에 노인이 될 사람들은 국민연금에서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적으니 직장에서 은퇴하면 다들 자영업을 하다 망하곤 한다.
“노인 의무교육 제도를 만들어 직장인들이 은퇴 후 어떻게 살지 가르쳐야 한다. 또 정부와 기업 합작으로 미국의 은퇴자협회(AARP) 같은 수익형 재단을 세워 조기 퇴직한 엘리트들이 국가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복지국가가 되려면 정부의 복지전달체계도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복지 업무가 중앙에서 지방 정부로 넘어가고 있다. 복지는 국민의 물적인 필요에 앞서 그들의 마음을 돌보는 것이다. 그런데 지방 공무원들은 복지에 대해 전문성이 부족하다. 지방자치체 업무의 50% 이상이 복지분야인데 시스템이 안 돼 있다. 자연 국민들의 체감 복지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고 복지 사각지대나 중복지원 등 비효율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1만2000명 수준인 사회복지사와 전담 공무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보건소도 더 늘려야 한다. 또 지방 공무원에게 사회복지교육을 시키고 구·군청의 복지 전달 조직을 늘려야 한다. 이와 함께 읍·면·동을 복지 전달 위주의 행정체제로 재편해야 한다. 주민센터도 복지센터로 전환해야 한다. 또 시·군·구별로 사회복지협의회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