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중근날>에 아직도 진실을 말하기가 힘든 대한민국
<안중근 날>에 아직도 진실을 말하기가 힘든 대한민국
김일성 유일 수령화가 한창이던 1970년 초이다.
김일성 혁명 역사 강의 때 한 대학생이 순수한 질문을 하였는데
그 한마디에 그는 물론 온 가족이 사라졌다.
질문 내용은 1940년대 항일 투쟁 사가 왜 적은 가 였다.
날조에 달인인 북한도 소련으로 도피한 그 시절의 김일성 행적을
부풀리기 어려웠던 것인데 이 점을 건드린 것으로 되었던 것이다.
북한은 60년이 지난 현재에 보다 더 엄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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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남한은 너무나 자유로워 진실이 강물처럼 넘쳐 날까.
아니라고 본다.
북한처럼 육체적 처형이 없을 뿐이지 오십 보 백 보가 아닌가 한다.
이는 <가수 나얼, SNS에 영화 '건국 전쟁' 인증 샷 올렸다가 공격 당해>라는 기사를 보면 확인된다.
대한민국을 세운 국부를 국부대로 반영한 영화를 놓고도 이럴 지언데
반일 독립 운동 분야에서는 더 말할 것이 못 되는 것이 현실이다.
김구, 김좌진, 홍범도, 이완용, 윤치호, 이광수, 봉오골, 청산리 전투, 자유시 사건 등 많은 인물과 사건들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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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안중근이 사형 당한 날로서 혹자는 발렌타이 데이 날이라 보다
<안중근의 날>이라 하자고 한다.
안중근 하면 이등방문은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인물이다.
남북이 알고 있는 이등방문은 조선을 식민지화한 원수의 원흉이다.
초대 통감을 했으니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실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진실의 전모를 알려고 하지 않고 알리면 역적 취급하는 정서라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혁명이라고 한 조지 오웰의 말이 상기될 정도이다.
혁명이라고 할 정도로 말하기 힘든 이등방문에 관한 진실은 뭘까.
이등방문은 조선병합이 아니라 자치를 도와 연방하는 것을 주장한 친한파였다는 사실이다.
한반도 상황이 나쁜 것은 국민 때문이 아니라 정치라고 보았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조선 민족을 병합하는 것은 무리라고 보았다.
더구나 러일전쟁 직후의 재정난 속에 병합도 무리라고 보았다.
독일 연방 알덴브르크와 같이 한국을 지도하여 세력을 육성하고 재정경제교육을 보급해 연방정치를 하는 것이 일본의 이익이라고 주장하였다(1909년 인터뷰 발언)
실제로 이등방문은 초대 통감으로 부임 된 후 교육 의무화를 추진했고 이는 <보통학교령>에서 확인된다(1906년 8월 30일 대한제국 관보 제3546호).
농업 국가였던 대한제국의 형편에 맞게 안산공립농업학교와 같은 것을 각 곳에 설립하였다.
한편 보건의료체계를 세웠고 최초의 국립병원 <대한의원>을 설립하였다(1907년).
1906년 조선 통감부의 10 개년 계획을 보면, 도로와 철도 개설, 수력전기, 농수산, 축산 보호와 장려, 산림 조성과 치수, 교육, 위생, 재판 제도, 공공 오락 시설 건립 등이 들어있다.
이러한 이등방문의 행보는 강경파를 물리치고 진행되는 것이었다.
강경파에 해당하는 정한파(가쓰라 다로, 고무라 주타로, 야마카타 아리토모, 데라우치 마사타케 )들은 막강하였다.
하지만 4차례나 총리 직을 한 이등방문의 무게로 인하여 견제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견제는 1909년 안중근의 암살로 인하여 무너진다.
이등방문은 만약 조선을 꼭 병합해야만 한다면 그 시기는 1918년 쯤 되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없자 강경파의 득세로 병합은 1년 후인 1910년으로 앞당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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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모든 것은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그러면서 불쑥 몇 마디 남긴다.
이승만이 폭력대신 외교적 독립 방법을 택한 것은
당시 700 여 만 일본 군대에 비해 우리 독립군은 단지 2000여명 내외로 인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안창호 역시 폭력 대신 실력 배양을 주창하였다.
망국은 이완용이나 일제 때문이 아니라 국력이 약해서라고 했다.
윤치호는 조선은 아일랜드가 아니라 영 연방의 스코트랜드와 같은 나라가 되야 한다고 했다.
안중근은 사형 직전 이등방문 유가족에게 사과의 말을 남겼다.
안중근 아들은 이등방문 아들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나누었다.
(사)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장 이민복(선교사)
010-5543 2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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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풍선참여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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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