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등과 같이 증거되어 있는 아래의 본문 말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그 누구에게 있어서도 당연히 약함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들 자체는 기쁨이 될 수 있거나 강함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그 누구라도, 아무리 대단한 믿음과 영성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러한 약함과 능욕들 등을 원치 않을 것이고, 환영하지는 더더욱 않을 것이며, 그렇기에 바울 같이 거의 최고로 귀하게 쓰였다고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일지라도 아래 본문 전에 이미 그와 같은 육체의 가시가 떠나가게 되도록 세 번이나 간구했을 정도로 싫었고 힘들었으며 절실했고 심각하기도 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인데..
사실상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서 이 험악한 세상에서 사는 한 모두가 그 자체로는 그러한 어려움들 가운데 힘들지 않거나 버겁지 않거나 부담되지 않거나 피하고 싶지 않거나 빨리 해결하고 싶지 않을 자 없을 것입니다..
다만 수많은 사람들이, 게다가 하나님의 백성들도, 심지어는 다윗이나 솔로몬,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과 같은 믿음의 대선배들도 가장 큰 안위와 화평, 승리와 축복의 때에 오히려 안일해 지고 미지근해 지며 방심하게 됨으로 인해 인간적인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에 우선을 두게 된 것을 발견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있을 수 없는 죄악들까지 범하게 된 것도 볼 수 있는 것으로..
그렇기에 어떤 면에서는 아래의 본문에서의 바울을 통한 고백과 증거에서도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그와 같은 약함과 능욕들 등과 같은 문제와 위기들이야 말로 제대로 된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 자들에 있어서는 선한 자극이 될 수 있고,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을 더욱 찾게 하며, 무엇보다 더 기도할 수 있게 하고, 실상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욱 더 치열해 질 수 있게 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질 수 있는 것이고, 정말 약한 그때가 곧 강함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모든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 어떠한 때에도, 가장 힘든 때에도, 참으로 인간적, 세상적으로 답이 안 보이고 방법들이 없을 때에도, 최고의 절망의 때에도, 심지어는 불가능인 상황에서도 더 크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고 또 중요한 것인데..
잘 통찰해 보면 그러한 기도라는 것은 본질적인 면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말씀인 것임 아닐 수 없는 것으로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고 말씀으로 보이시며 말씀을 통해 약속하시고 예비하신 일들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말씀이 육신이 되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의지하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고,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자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인한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으면서 간구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정말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오직 말씀 그대로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생생히 응답되며 예비되고 성취되어 지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사실은 말씀과 다르거나 자신의 소견, 또는 정욕대로 구하는 간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응답하시지도 않는 것이고,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기도 자체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서 부연하면 말씀과 함께 증거되어 있고 보이시며 예비하신 대로 홍해 바다를 가르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시며,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을 쓰러뜨리시고,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하시며, 광풍을 잠잠케 하시고, 오병이어의 역사를 일으키시며, 필요하면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까지도 다시 살리시고, 뿐만 아니라 구주 예수님의 이름 한 번으로 나면서부터 못 걸었던 자도 일으키시며, 빌립보의 감옥터도 뒤흔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그 어떤 문제와 위기와 절망들 등의 때에라도 말씀대로 믿고 의지하며 갈망하고 기대하면서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힘들수록 더 치열하고 처절하게 간구하며, 때로는 금식하고 철야하면서까지 부르짖음과 함께 시간과 공간들,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동일하신 하나님 아버지, 동일하게 말씀대로 응답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해, 또한 동일하신 구주 예수님에 의해, 직접적, 실질적으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와 함께..
근원적으로는 그렇듯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고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분, 게다가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해 말씀으로 보이시고 약속하시며 계시해 오신 대로 또 다른 모양들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전적으로 동일하게 사람이 할 수 없고 세상이 주지 못할 은혜와 능력과 역사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며, 그러면서 오히려 더 강해지게 되고 감당하게 되며 역전케 되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바꾸어서 본질적인 측면으로 단순하게 정리하면 약함과 문제들, 고난과 위기들 등으로 인해 말씀대로 역사해 오셨고, 이제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말씀 그대로 일하시는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절실하게 기억하며 사모하고 의지하면서 다시 한 번 더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더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더욱 치열하게 간구하는 것이고, 그와 함께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더더욱 덧입어서 모든 연약함들, 문제들, 시험들, 유혹들, 고난들, 위기들, 죄악들, 악한 세력들 등과 싸우는 것이고 극복하는 것이며, 동시에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말씀의 자리를 회복하고 갈급해 하며 결단하고 몸부림치면서 나아가고 또 나아가는 것인데..
바로 그때, 실제로 그와 함께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더 충만케 될 수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 말씀이 육신이 되신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의 기도에도 더더욱 합당하게 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뜻과 약속, 통치와 섭리, 응답과 이적들 등에도 가장 합당하게 되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응답과 승리와 역전과 열매들 등으로 가면 갈수록 넘치게 됨과 함께 오히려 더 강해지고 큰 복이 되며 실제로 하늘의 기쁨까지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린도후서12:7~10)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1월 26일(화)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