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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문고 동문 산악회를 이번 호 고교 동문 산악회 탐방대상으로 택했다. 휘문고는 1904년 민영휘 선생이 광성의숙이란 이름으로 창립한 교육기관을 모태로, 1906년 고종황제의 칙명에 따라 교명을 휘문의숙으로 바꿔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학교 역사가 100년을 훌쩍 넘긴 전통 명문 사학이다. 졸업생들도 어느 고교 못지않게 많이 배출했다. 3만여 명에 달하는 졸업생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학교 명예를 드높이고 있다. 이들도 여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등산동호회를 만들어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산악회를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으며,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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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두산 첫 해외원정에 만주벌판을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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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문고는 역사는 오래됐지만 동창회 활동은 미약했다. 1950년 동창회가 조직된 이래 초대 백두진, 2대 최영희 동창회장이 취임하여 90년까지 역임했으나 조직의 기초를 다지고 구성원들을 집결시키는 데 의의를 두어야 했다. 90년 3대 채희병 회장이 취임하면서 조직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채 회장은 93년 집행부가 모인 자리에서 “교우회 활성화 방안을 찾아보자”고 제의했다. 휘문고는 다른 학교와 달리 동문회를 교우회라 부른다. 이에 임원진들은 동문들을 단합시킬 가장 좋은 방법으로 여러 동호회를 만들어 체육대회를 개최하자고 했다. 93년 즉시 체육대회가 열렸고, 각종 동호회도 만들어졌다. 산악모임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침내 8월22일 북한산으로 첫 산행을 했다. 이름도 없었고, 집행부도 구성이 채 안된 설익은 모임이었지만 휘문 교우회의 활동 중심이 되는 구심점 역할을 하기로 다짐했다. 그해 11월21일 네 번째 산행에서 휘문교우산악회를 ‘휘산회’라 부르기로 하고, 매월 셋째 주 일요일에 정기산행 하기로 해 진용과 모양새를 제대로 갖췄다.
이어 바로 며칠 뒤인 11월27일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교우회 산악모임에서 총무 이강우(53회), 부총무에 민병우(69회) 교우를 선임했다. 이강우 총무는 이듬해 북한산 시산제에서 채희병 교우회장 등 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휘산회 초대회장에 만장일치로 추대됐고, 초대 산행대장엔 황경연(56회) 교우가 임명됐다. 정기산행도 매월 셋째 주에서 첫째 주로 옮겨 실시키로 했다. 이젠 집행부도 완전한 진용을 갖춰 본격 출발했다.
불과 10년만에 참석인원 10배 늘어
94년 6월엔 휘문고가 개교 이래 처음으로 청룡기 야구대회 우승을 기념하는 설악산 종주를 감행했다. 이후 해외 산행, 무박 산행 등 각종 산행이 계속 이어져 왔지만 첫 기념 산행에 조난 수준으로 고생한 추억을 모두 잊지 못했다. 아침 6시40분에 떠난 등산팀이 공룡릉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밤 8시가 넘어서야 갔던 길로 다시 되돌아오는 고생담은 두고두고 교우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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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레기를 많이 수거한 교우에게 집행부가 시상하고 있다. / 2006년 지리산 삼도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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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우 회장과 황경연 산행대장이 기반을 닦은 휘산회는 이종성(56회) 회장과 안영원(65회) 산행대장이 맡고나서부터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해외산행을 기획하고, 다양한 코스를 개발하고, 각종 이벤트를 만드는 등 교우들의 관심을 끌만한 모임으로 변모시켰다.
90년대엔 40여 명에서 100명을 넘지 못하던 산행 참석인원이 이들이 맡고나서부터 평균 100여 명으로 늘었다. 산행 시 버스도 한두 대에서 지금은 기본 석 대는 이미 예약돼 있는 상태고, 인원을 보고 한두 대 늘리는 정도로 발전했다. 94년 40명이 참석했던 북한산 시산제에 비해 2003년부터는 그 10배 가량 되는 400명 내외로 비약했다.
이어 각 기수별로 산행모임도 잇따라 생겼다. 볼재산악회(61회), 휘마루(62회), 휘선회(63회), 볼재산우회(64회), 휘봉회(65회), 육산회(66회), 휘공회(67회), 휘슬회(68회), 휘파람산악회(69회), 휘솔회(70회), 한티산악회(71회), 망통산악회(73회), 휘오름산악회(74회), 막강산악회(82회) 등 각 기수별 모임도 휘산회와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매월 첫째 주는 휘산회 산행이고, 셋째 주는 기수별 산행모임을 가진다.
참석인원이 많아지자 집행부 할 일도 갈수록 많아졌다. 휘산회의 정해진 행사준비만 해도 바빴다. 매년 음력 정월에 시산제, 7월엔 가족에 봉사하고, 8월엔 해외 산행, 연말엔 선배 원로를 모시는 일정이 기본으로 짜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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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06년 원로 선배 초청 및 휘산회 송년회. / 2 2004년 시산제 직전, 94년과 비교해서 참석인원이 크게 늘었다. / 3 94년 첫 시산제에서 교우회장과 휘산회장 등 임원진과 교우 40여 명이 참석했다. / 4 2006년 북한산에서 휘문 산사랑 운동을 펼칠 때의 교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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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부터 매년 12월 셋째 주 화요일 휘산회 송년회 때 원로 선배 초청회도 겸해서 행사를 치른다. 조촐한 행사지만 원로 선배 모두가 기다리는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송년회 때 참석한 수백 명에게 휘산회 로고가 새겨진 등산모자와 배낭 등 각종 장비를 제공한다.
2003년부터는 3대 이종성 회장의 제의로 매년 한 번씩 해외산행에 나서기로 했다. 그 첫 대상으로 우리 민족의 성지인 백두산에 다녀왔다. 교우 60여 명이 참석했다. 93년 첫 산행 때 40명이 참석했던 모임이 불과 10년만에 국내 산행이 아닌 해외 산행에 그보다 많은 인원이 참석할 정도로 비대해졌다. 또 휘산회 가족의 안전한 등산을 위해 4년 전부터 산행 참석자들은 자동으로 여행자보험에 가입되는 조치를 취했다. 교우들의 모든 인적 사항은 이미 집행부가 파악하고 있는 상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또 매년 휘산 캘린더를 만들고 있다. 전년 10월까지 다음해 산행 계획지가 잡히면 사진과 함께 휘산회 모든 일정을 새겨 회원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매년 2,000부 정도 만들어 산행지 음식점에도 기념으로 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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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쓰레기 수거 ‘휘문 산사랑 운동’ 펼쳐
뿐만이 아니다. 이종성 회장과 안영원 산행대장이 일복이 많아서인지, 일을 좋아해서인지 많은 행사와 겹쳐 많은 일을 대과 없이 훌륭히 해내는 능력을 과시했다. 2002년 11월엔 휘산회 100회 산행을 맞아 영남알프스로 130여 명이 다녀왔다. 지난 2006년엔 휘문고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휘산회도 모교의 개교 100주년을 맞아 뜻있는 행사가 필요했다. 집행부는 ‘휘문 산사랑 운동’을 기획했다. 쓰레기봉투 2만 장을 만들어 사전에 참석자 전원에게 배포했다. 정릉, 구기동, 우이동, 북한산성 등 네 코스에서 각자 원하는 방향으로 올라 북한산 대피소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집중식 등산을 했다. 쓰레기를 많이 주워 온 사람에게 시상은 당연히 주어졌다. 이후 이들은 지금까지 어느 산에 가더라도 쓰레기봉투는 어김없이 휘산회 모든 회원들의 배낭에 담겨져 올라갈 때의 배낭보다 더 큰 짐을 지고 내려오는 게 정례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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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2월 한라산 적설기 산행. / 2008년 4월 황매산 진달래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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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문 산사랑 운동의 ‘아니온 듯 다녀가시옵소서’라는 문구는 안영원 대장이 선운산에 갔을 때, 인근 암자를 지나면서 보고는 ‘언젠가 한 번 써 먹어야겠다’고 다짐한 게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와 맞아떨어져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특히 안 대장은 배낭에 쓰레기봉투와 함께 쓰레기 수거용 집게도 스틱과 함께 꽂혀있어 등산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집행부는 이 날 행사 참석인원을 1,000명 정도로 잡고 있었으나 갑자기 비가 내려 400여 명이 참석하는 데 그쳐 안타까워했다.
잊지 못할 추억의 산행도 많다. 지난 2004년 정선 민둥산(1,118m)으로 갔을 때 일이다. 산행 마치고 내려오니 강원랜드에 근무하고 있는 교우들이 태백시의 이름 있는 한우집을 5군데나 예약한 상태였다. 참석 인원이 201명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그 날 먹은 식사비 총 700만 원도 이들 교우들이 부담했다. 포식하긴 했지만 집행부는 미안한 마음에 금일봉만 기증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휘문교우회의 끈끈한 관계를 과시한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까지 167회 산행에 13,300여명 참석
백두산 첫 해외산행 때도 아찔한 순간을 겪었다. 둘째 날 북파코스로 천문봉까지 오를 예정이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일반 관광객은 지프로 천문봉까지 올라갔지만 휘산회 62명은 입구부터 산길을 따라 일렬로 걸어갔다. 절반 정도 올라가 흑풍구에 다다르는 순간 바람이 너무 거세 1분에 5m 이상 나아가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때마침 옆을 지나는 지프의 본넷이 바람에 날아갔다. 후미와 연락을 취하려고 무전기로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산행대장 직권으로 하산을 결정하고 내려왔다. 아마 무리해서 올라갔다면 분명 사고가 나지 않았을까 싶은 순간이었다. 안 대장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결정이었다고 떠올렸다.
93년 휘산회 창립 이래 9월 현재까지 총 167회의 산행을 다녀왔다. 참석인원이 총 13,300명이다. 올해 산행 일곱 번에 1,284명이 참석했고, 한번 갈 때 평균 183명이 참석한 셈이다. 이들이 이 정도 산행하기까지 날씨의 도움도 컸다고 한다. 일기예보에서 비가 내린다고 했고, 실제로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가 실제로 산행 시작지점에서는 거짓말같이 비가 멎은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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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남알프스 해외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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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산행 대상지를 잡는 기준은 100대 명산 중심으로 각 도를 대표할 만한 산을 빼놓지 않고 선택한다. 전국을 훑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산하를 조망함은 물론이고 산행하면서 국토의 소중함도 동시에 느끼며 일깨우고 있다.
현재 이수철(60회) 6대 회장은 “나이가 들수록 야, 자 하던 시절로 돌아가 옛날 추억을 되살리고 싶은 게 인간”이라며 “등산을 통해서 정신적으로 옛날 친구들을 만나 즐겁고, 육체적으로도 건강해지는 계기가 마련되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강조했다.
연동철(65회) 총무도 “휘산회를 통해 전국 각지를 다니며 우리나라 자연을 맘껏 즐기고 감상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린다”며 “특히 산을 좋아하는 마음 맞는 사람끼리 다니면서 전국의 맛있는 음식까지 맛보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냐”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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