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현상(奸臣現狀)]
"무엇이 들었기에 그렇게 뚱뚱하냐?“
“폐하에 대한 충성심(忠誠心)이 들어있습니다.”
당(唐)나라 <현종>이 어느 날, <안록산>의 불룩한 배를 보고 묻자 그가 대답한 말입니다.
역사책에 묘사된 안록산의 모습은 200Kg가 넘는 거구였다고 하며 배가 무릎까지 덮을 정도로 뚱뚱했다고 합니다.
그런 뚱보의 저토록 순발력 있는 아부(阿附)가 참으로 가증스럽고 가소롭습니다. 안록산의 뱃속에 들어있는 것은 ‘충성심’이 아니라 사실은 ‘간심(奸心)’이라고 해야 옳기 때문입니다. 奸臣의 奸心은 奸行을 낳고 奸行이 성하면 세상이 파탄 납니다.
당(唐) <현종>은 치세 전반, 善政을 베풀어 역사상 ‘개원의 치(開元之治)’라고 불리는 聖代를 이룬 현군(賢君)이었으나,
<양귀비>를 만나고부터는 모든 政事를 奸臣 이임보(李林甫)에게 맡기고, 오로지 귀비와의 향락에 빠져 혼군(昏君)의 길을
갔습니다. 역사상 혼군과 간신의 만남은 늘 망국의 지름길로 들어서는 시작이었습니다. 간신들이 레이스를 벌였던 현종의 치세 후반도 그랬습니다. 그럼, 당시에 국정을 어지럽히고 농단한 간신들의 면면을 한 번 들춰볼까요?
첫 번째 走者는, 현종 집권기 40년 중 19년간을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 온갖 만행과 횡포를 일삼았던 <이임보>였습니다. 그는 구밀복검(口蜜腹劍)型 간신으로서, 가히 대간(大奸)이라 할 만큼 사악했지요.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그의 권력은 결국 자신의 죽음으로 끝났습니다. 두 번째 走者는, 양귀비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나타난 <양국충>입니다. 양귀비의 6촌 오라비였던 이놈도 권좌에 앉자마자 무소불위의 횡포를 부리며 농단하였습니다. 그러나 후일 ‘양국충 토벌’을 기치로 내걸고 반란을 일으킨 세 번째 走者 <안록산>에 의거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안록산은 현종을 겁박하여 양귀비에 자살명령을 내리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놈 역시 권력을 휘두르며 전횡을 일삼다가 맏아들 <안경서>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레이스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안록산의 부장이었던 <사사명>이 안경서를 죽이고 스스로 대연황제(大燕皇帝)라 칭합니다. 하지만 사사명 역시 황제노릇 3년 만에 맏아들 <사조의>에게 독살 당했습니다. 아버지를 죽인 사조의는 제위에 올랐으나 唐軍에게 밀리며 패전을 거듭한 끝에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것이 AD755~763년간에 있었던 <안사의 난>의 종말입니다.
그러나 난은 끝났어도 昏君時代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도 계속 국력은 쇠퇴하고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이윽고 전국 각지에서 농민 반란이 일어났는데, 조정에 가장 큰 타격을 가한 반란이 바로 <황소의 난>입니다. 황소軍의 장수 <주온>의 배반(투항)으로 난은 가까스로 평정되었지만 唐 왕조는 이로 인해 그로키 상태가 됩니다. 마침내 AD907년, 최후의 황제 애종(哀宗)이 선무절도사 <주전충>의 강요에 의거 천자의 자리를 그에게 선양합니다. 그가 국호를 ‘梁’이라 칭하니 이것이 바로 ‘後梁’입니다. 이로써 당 왕조는 20대 290년 만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상은 어리석은 군주와 간신들의 만남이 얼마나 역사와 나라와 백성들을 불행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입니다.
<이임보→양국충→안록산>의 奸行레이스는, 그들이 기생(寄生)한 宿主가 ‘昏君’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들의 奸行은 결국 본인도 宿主도 나라도 모두 망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아! 무도한 인간의 어리석음이여! 도대체 권력이 무엇이기에 그 무상함을 알면서도 저토록 탐하는가? 후세에게 주는 교훈이 적지 않다고 봅니다.
중국의 역사 속에는, 선량한 백성들을 아프게 하고 역사에 핏자국을 남긴 간신들이 많습니다. 춘추시대 초나라 평왕 때의 ‘借刀殺人’型 간신 <비무극>, 越과 내통하며 간첩질을 한 吳나라의 간신 <백비>, 진시황의 제국을 무너뜨린 간신 <조고>,
西漢 원제 때의 환관간신 <석현>, 東漢시대의 외척간신 <양기>, 당나라 고종 때의 ‘소리장도(笑裏藏刀)’型 간신 <이의부>, 남송시대의 매국노 간신 <진회>, 明朝시대의 지식인 간신 <엄숭>과 환관간신 <위충현> 등등.
개성파 간신들이 즐비합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동탁>과 수호지에 나오는 <채경>도 중국사에 이름을 올린 간신들입니다. 이들 뒤에는 하나같이 어리거나 어리석은 昏君이 있었습니다.
중국전문가 중의 한 명인 <김영수>교수는, 그가 쓴 <치명적인 내부의 적 奸臣>이란 책에서, 불사조처럼 시대마다 출현하는 간신과 그들이 끼치는 害惡을 역사적 사회적 현상으로 보고, 이를 “奸臣現狀”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이러한 현상이 만연해있음을 경고하며 奸臣百態를 이렇게 분류했습니다. ①政奸(정치판의 간신), ②言奸(政奸에 빌붙어 알랑거리는 언론계의 간신), ③學奸(曲學阿世하며 학문적 양심은 물론 자신의 영혼마저 저당 잡히길 서슴치 않는 간신), ④商奸(권력마저 돈으로 살 수 있다며 열심히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는 간신), ⑤武奸(武人의 본분을 망각한 채, 더러운 권력의 쓰레기 더미를 향해 쿵쿵거리며 달려가는 간신), ⑥牧奸(종교라는 권위에 빌붙어 세상을 밝히기는커녕 악취만 풍기고 다니는 가증스런 간신), 여기에다 ⑦‘딴따라 간신’(대중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던 딴따라가 하루아침에 권력자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아양을 떠는 간신) 하나를 추가했습니다.
이를 보니, ‘간신현상’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현상이며 세상이 복잡다단해질수록 그 유형도 늘어날 것이 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도, 위 七奸으로는 오늘의 대한민국 간신현상을 말하는데 부족합니다. 법조계, 교육계, 노동계, 문화예술계, 각종 NGO 등에 도사리고 있는 간신들도 추가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작 심각한 문제는 十奸이든 二十奸이든 種과 數를 불문하고 이미 국가 전체가 그들의 宿主가 된지 오래라는 점입니다.
김영수 교수는 또 ‘奸臣’을 ‘致命的인 內部의 敵’이라고 하였습니다. 새삼스런 말은 아니죠.
옛날 왕조시대의 간신은 <스타-플레이어>같은 일개 權臣이 奸行을 일삼는 형태였다면, 현대의 간신들은 서로 연대하고 집단을 형성하여 보다 조직적인 <시스템-플레이>형태로 奸行을 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간신’보다 더욱 치명적인 ‘간신집단’이 대두했다는 뜻입니다. 이를테면 ‘從北左派’가 그 한 예라고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독버섯 같은 敵들의 言行을 코앞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보고만 있는 것이 우리가 할 바를 다하는 것일까요?
지금 우리 사회에 창궐하고 있는 <내부의 적>은 좀비(Zombie)의 특질을 갖고 있습니다.
주술사(呪術師)가 마술적 방법으로 살려낸 屍體를 좀비라고 하죠. 낮에는 음습한 무덤 안에 있다가 밤이 되면 일을 하는데 불빛이 필요 없어 어둠속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듣지도 못하고 의지도 없습니다. 주술사의 지배하에 노예처럼 무보수 노역을 하는 게 일이죠. 이 좀비들을 퇴치하려면 지배자인 주술사를 색출해서 몽땅 불구덩이에 쓸어 넣어야 합니다.
다만 한 가지, 그들에겐 형상기억합금(Shape-memory alloy) 같은 복원력(復原力)이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이 합금은 高溫에서 제조된 최초의 형상(‘母相’이라고 함)을 기억하는 성질이 있어, 低溫에서 아무리 변형시켜도 가열하면 母相으로 복원 됩니다. 주술사의 母相이 만일 ‘종북좌파’라고 하면, 불구덩이의 온도를 용융점(鎔融點)이상으로 올려야 합니다. 완전히 녹여 없애야 하기 때문이죠. 이를 소홀이 하여 低溫에서 변형만 시키는 수준의 <솜방망이 처벌>로는, 加熱勢力의 도움으로 다시 복원되므로 좀비의 퇴치가 어려워집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간신현상, 창궐하고 있는 간신집단, 실종된 정치, 등등, 모든 비정상적인 것에 의거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나라꼴이 안타깝습니다. 요즘 북핵문제와 개성공단가동중단 등 안보위기는 물론 경기침체까지 겹쳐 나라 안팎이 시끄럽습니다. 外部의 敵이야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利敵질하는 內部의 敵까지 용인해서야 되겠습니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孟子의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봅니다. 같이 생각해 봅시다.
“國必自伐而後人伐之”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친 뒤에 남이 치느니라) (끝)
첫댓글 세상이 온통 간신들 천지이니, 경제적으로 약간 앞서 있은 들 정신적으로 황폐해 있으니 나라가 망할까 봐 걱정입니다.
사실 약 30% 정도는 망해 있는 지도 모릅니다. 개구리가 서서히 데워지는 물속에서는 죽고있다는 걸 모르다가 물이 끓을 때쯤 되어서야 알고 죽는답니다. 이런 식이면 큰일이 아니겠소!
대단한 글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언제 읽어봐도 그대의글은 흥미진진하고 유익한 글 + 논리정연하고 생동하는 :
감동과 찬사를 받으소서...
소생, 세계사에 매우 큰 흥미를 가지고 있는데,
안록산이 뚱보였다니 참 재미있네, 일종의 irony.
고마우이. 언젠가 나한테 물었지, 호가 없느냐고? 호라기 보다는 별명에 가까운 것 하나는 있지.
'虛野'가 바로 그것이오. 내가 참여하고 있는 한 모임에서만 쓰는 것인데, 해광이 묻기에 내놓게 되었구려.
늘 좋은 글을 E-메일로 받아보는 한 사람으로서 감사한 마음 가득한데 격려까지 해주니 고맙소.
건강하길 빕니다. 그래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