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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실현-2] 여장군과 여성지도자의 출현 공사 | |||
-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그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예전까지만해도 우리나라에서 금녀지역으로 분류되었던 법조계 및 의학분야는 이미 남자를 추월할 태세이고, 교사나 공무원 및 판매영업직에서는 이미 여성들의 활약이 더 볼만합니다. 요즘(2004.3월 현재) 정치권도 한나라당의 총수가 된 박근혜 의원과 민주당의 대세로 인정받고 있는 추미애 의원이 특히 부각되는 가운데, 각개 각층에서의 여성엘리트들이 정치계에 속속 입문하고 있습니다. 머지 않아 우리나라에서도 여성대통령 및 사회 지도자들이 속속 나오는 날이 오려나 봅니다. 과거 신라의 선덕여왕 같은 훌륭한 임금이라면... 아무튼 여러정황들을 미루어 볼 때 정음정양의 새천지가 그리 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성장군이 나오다 ◆사진설명 : 건국 이후 첫 여성 장군으로 진급하는 양승숙 대령이 8일 오후 국군 계룡대 지구병원에서 간호장교로부터 축하인사를 받고 있다. /계룡대 양승숙(1950- ) 한국 최초의 여성 장군은 양승숙이다. 양씨는 1950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전남대의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뒤, 간호장교를 지원하여 간호후보 29기로 1973년에 소위로 임관하였다.1986년에 중령으로 진급하여, 국군 논산, 광주 병원 간호부장, 1군 사령부 간호관리장교 등을 역임하였다. 이어, 1994년 대령으로 진급하여, 국군간호사관학교장을 거쳐 육군본부 간호병과장으로 일하였다. 여성 군인은 남성 중심의군 조직에서 역할과 지위를 제한 받았기 때문에 이번 여성장군 물망에 올랐던 전투병과 여군대령들이 군경력 때문에 중도 탈락하기도 하였다. 여군은 그동안 주로 비전투 분야에 배치되는 바람에 이들 여성장군 후보들도 장군 진급에 필수적인 연대장 등의 지휘관 경력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막오른 여성장군 시대] 보수적 조직에 여성파워 씨 뿌려(2002.1.2) “저 개인의 영예가 아니라 2400여명 여군 전체의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건군 53년, 여군 창설 51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장군 진급예정자로 8일 발표된 양승숙(51·대령) 육군본부 간호담당관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98년부터 2년간 간호사관학교장을 지냈을 때가 가장 어렵고도 보람있는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현 정부 출범 직후 예산절감 차원에서 간호사관학교 폐지가 결정된 뒤 2년 동안 신입생을 뽑지 않았기 때문. 그는 폐교 반대 투쟁에 나서 지난 5월 국방부로부터 철회결정을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양 대령은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 부하 간호장교들의 신망을 얻었다. 그가 97년 의무사 의료관리담당관으로 근무할 때 만든 ‘진료지침서’는 군내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가족은 충남교육청 장학사로 있는 남편 이병웅(56)씨와 두 딸. 이씨는 양 대령에 대해 “집에 돌아오자마자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 준비를 하는 보통 주부”라며 “음식솜씨가 좋고 판단력이 뛰어나다”고 자랑했다. 진급통보를 받은 뒤 곧바로 남편에게 전화해 고마움을 표시한 양 대령은 “후배 여군들의 발전을 위해 여군정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전=임도혁기자 dhim@chosun.com)
여성대통령이 뜨고 있다. 파나마 대선에서 집권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미레야 모스코소 대통령(52),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 수카르노 대통령, 또 미국에서는 대선 출마의사를 밝히고 있는 엘리자베스 돌을 비롯한 차기 여성정치인들이 의욕을 다지고 있어 ‘여성대통령’은 벌써부터 21세기의 화두로 주목받고 있는 분위기. 여성대통령의 역사는 74년 아르헨티나 이사벨 페론에서 시작돼 올해로 25년째다. 하지만 여성대통령이 집중적으로 쏟아진 것은 90년대 이후. 영국의 대처총리를 비롯한 강력한 마스크의 여성정치인들의 부상과 함께 여성대통령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90년 이전에 여성대통령은 페론을 포함해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 아이슬랜드의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 세명 정도였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를 많이 누린 아일랜드의 매리 로빈슨과 그에게서 정권을 이양받은 매리 맥컬리스, 노조 총재출신의 독신여성인 스위스의 루트 드라이푸스, 급진개혁주의자인 가이아나의 재닛 제이건, 세계 최초의 여성총리를 어머니로 둔 스리랑카 반다라나이케 쿠마라퉁가, 그리고 지난 7월 취임한 라트비아의 베가 프라이베르가 모두 90년 이후 주목받은 여성대통령들이다.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는 93년 야당당수로 추대되기 전까지는 세아이를 키우는 조용한 가정주부였으며, 인도의 소냐 간디는 91년 남편 라지브 간디 전 총리가 암살된 뒤 극도의 정치혐오증을 보이다 98년에야 주위의 강력한 권고로 당수직을 맡았다. 87년 필리핀 민중항쟁의 꽃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코라손 아키노의 경우도 7·80년대 마르코소의 독재를 비판해 투옥됐다 암살된 남편 때문에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정치지도자로 변신한 경우. ‘모녀정치’로 유명한 스리랑카의 찬드리카 반다라나이케 쿠마라퉁가 역시 유력한 정치지도자였던 남편이 암살당하면서 대권에 도전했다. 쿠마라퉁가는 대통령 취임후 자신의 어머니를 총리에 임명해 화제를 뿌린 주인공. 엘리트 출신 유럽 여성대통령 대영제국을 번영으로 이끈 앨리자베스 1세, 빅토리아 여왕의 뒤를 이어 세계적인 여성지도자의 상징이 된 마거릿 대처 前 총리 상징적 직책 불구 국민지지 높아 유럽의 여성대통령은 가문을 잇는 정치인 부류는 아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오히려 ‘자수성가형’에 가깝다. 엘리트 여성들이 정치에 입문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경우가 많은 것. 하지만 대부분 내각제 국가의 대통령이기 때문에 중남미나 아시아 대통령처럼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대신 상징적인 위치에서 국민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으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공통점. 이들을 통해 여성대통령은 최고의 외교사절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90년 아일랜드 최초 여성대통령이되었던 매리 로빈슨과 그를 이은 매리 맥컬리스, 그리고 80년부터 네차례나 대통령에 뽑힌 아이슬랜드의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를 들 수 있다. 한때 유엔 사무총장감으로 거론된 적이 있는 유엔 고등판무관 매리 로빈슨은 아일랜드의 명문 트리니티대학 수석졸업생. 25살에 최연소 교수가 됐으며, 이듬해 대학 추대로 아일랜드 최연소 상원의원이 된 이후 20년간 선출됐고 국제문제 전문변호사로 명성을 떨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재임당시 국민의 93%의 지지를 얻었던 ‘행복한’ 대통령이었다. 북부 아일랜드 출신 최초의 대통령이기도 한 메리 맥컬리스 역시 모범생 출신. 73년 퀸즈 대학 법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한 뒤 변호사로 활동하다 75년 매리 로빈슨의 뒤를 이어 더블린에 있는 트리니티 대학교 형법학 교수를 역임했다. 94년엔 벨파시스트에 있는 퀸즈대학에서 최초의 여성부총장을 지냈다. 인구가 10만명밖에 되지 않는 아이슬랜드의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는 세계 최초 민선 여성대통령 기록을 가지고 있다. 80년 6월 아이슬랜드 네번째 대통령에 당선된 비그디스는 레이캬비크 극단 단장을 지낸 문화적인 인물. 비그디스는 85년 여성운동가들이 차별적 임금 등 성차별에 항의해 파업을 결정했을 때 자신도 대통령직을 스트라이크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서유럽에서 여성참정권이 가장 늦게 주어졌던 스위스의 루트 드라이푸스와 라트비아의 프라이베르가는 간선으로 대통령이 됐다. 스위스의 대통령 역시 정책결정권이 없는 상징적인 직책인데, 내각을 구성하는 일곱명의 각료가 나이에 따라 일년마다 돌아가며 대통령이 된다. 스위스 역사상 두 번째 여성각료를 지낸 루트는 제네바대학 조교수, 외무부 관료, 스위스연방 노조 총재를 지내고 89년 국회의원에 당선, 93년 내무부 장관에 선출됐다. 지난 7월 독립 라트비아의 2대 대통령에 취임한 프라이베르가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라트비아를 떠나 33년을 외국에서 보내고 지난해 영구귀국한 캐나다 몬트리올 대학 심리학 교수 출신. 영어, 독어, 불어 등 5개국어에 능통한 재원이다. 90년 이후 급속히 부상하기 시작한 여성대통령의 활약은 일단 성공적이라 평가할 만하다. 여성대통령은 무엇보다 여성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존재라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 신명순 연세대 정치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여성대통령 후보가 적극 논의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변화가 시작된 것"이라고 논평했고, 주준희 남가주대 교환교수는 “자기능력을 인정받아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여성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때가 온 것 같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20세기 여성대통령은 상징적인 위치였거나, 남편의 후광을 업고 최고 수반이 된 경우가 대다수였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과제는 분명히 남아있다고 봐야한다. 무엇보다 다음 세기 여성대통령은 여성정치력의 상징적 의미를 훌쩍 넘어, 자신의 커리어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국가 최고수반으로 자리매김하는 일이 과제일 것이다.
유럽 여성대통령 ‘위풍당당’ (2004.2.23) 유럽의 두 여성대통령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1997년 ‘올해의 유럽인’으로 선정됐을 만큼 성공적인 정치인 생활을 했던 메리 로빈슨에 이어 같은해 아일랜드의 두 번째 여성대통령이 된 매칼리즈는 이달초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88%라는 압도적 지지율을 기록했다. 올 가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현 추세라면 경쟁후보가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3일 제네바 국제노동기구(ILO)를 방문한 핀란드 최초 여성대통령인 할로넨의 인기도 이에 못지않다. 지지율이 90%에 달한다. 90% 내외의 지지율이라면 남녀, 연령, 정치성향을 가릴 것 없이 모든 계층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매칼리즈 아일랜드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환영을 받는 것은 취임 후 단기간내 개인적인 정치관과 대통령 역할 사이에서 훌륭한 균형감각을 선보인 덕분으로 현지 정치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아일랜드와 핀란드는 대통령이 상징적 역할을 하고있지만 위헌심판청구 외교정책 등에 대해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인권보호를 위해할로넨 대통령은 77년 헬싱키 시의회 의원이 되며 정치와 인연을 맺었고 각부 장관을 역임하다 2003년 3월 직접선거를 통해 임기 6년의 핀란드 최초 여성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지금까지 유럽 여성정치인으로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와 그로 하를렘 브룬틀란트 노르웨이 총리,아이슬란드의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 등이 있다. 〈이상연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