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3시간 넘게 걸려 도착한 경북 영주시, 발걸음을 재촉해 영주의 명물 정도너츠 가게로 들어간다. “모듬 세트 하나요” 주문만 했을 뿐인데, 생강과 도너츠의 쌉싸래하면서 달달한 조합이 입안에서 느껴진다. 영주의 명물 ‘정도너츠’를 가방에 넣자 미소가 번지고, 발걸음이 가볍다. 행복한 이유는 따로 있으니, 다음 목적지 ‘죽령 옛길’로 가보자.
경북 영주시에 진입하면 어디에서도 눈에 띄는 것이 있다. 고운 산세가 가까운 듯 멀리 형성된 소백산맥이다. 죽령 옛길의 출발점 ‘소백산역’에 가까워질수록 소백산맥의 압도적인 분위기에 기가 죽는다. 평지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듯한 생김새와 그 위세가 여실히 드러난다. 영화 속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전달할 때 쓰이는 풍경과도 비슷하다. 산 등줄기 아래로 뻗친 여맥에서 태고적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산등성이를 따라 시선을 움직이다 보면, 갑자기 뚝 떨어지는 지점이 있다. 그곳이 죽령이다.
[왼쪽부터]영주시 풍기읍 수철리 소백산역 / 수철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죽령 옛길 이정표
소백산역(구 희방사역)에 도착. 역이 형성된 마을치고는 인적이 뜸하다.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격전지, 길손으로 붐비던 주막거리 등 천년이 넘는 역사동안 대소사가 끊이질 않았던 이곳이, 바람소리로 가득하다. 이제야 평온함을 되찾은 것일까. 과거의 영광에서 조금은 빛바랜 현 모습일까. 아니면, 다시 활기를 띄기 위한 도약기일까.
궁금증에 지도를 펼쳐 이곳 지리를 살펴봤다. 죽령은 교통의 요지로 다양한 구실을 한다. 5번국도, 중앙고속국도, 철도 등 다양한 교통시설이 죽령에서 교차한다. 게다가 옛길까지 교차하니 예부터 지금까지 이곳을 통해 이동한 사람과 물자는 다른 고갯길보다 상당히 많았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인 1941년 중앙선 철로가 죽령을 지나게 된다. 개통과 함께 죽령 인근의 지하자원이 개발되고 석회분말, 시멘트 등 관련 공장이 생겨난다. 이때부터 죽령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해, 1960년대 5번 국도를 통해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가 이어지면서 옛길은 그 기능을 대부분 상실하게 된다.
죽령 옛길 시작점 풍경
죽령 옛길 초반부, 우뚝 솟은 고속도로 다리와 중앙선 철로 사이로 작은 길목을 걷고 있자니 조금은 애잔한 느낌이다. 국내 최장이라는 4.6㎞의 죽령터널과 연결된 다리,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철로 등 주위 풍경이 죽령의 현재라는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위치를 옮기며 죽령 옛길 초반구간의 자연 풍경을 담아보지만 인공물을 피해 담아내기가 쉽지 않다.
[왼쪽]도로 공사 후 남은 잔재물을 이용해 작은 돌탑을 세웠다. 여기부터 시원한 풍경을 즐기며 옛길로 들어간다
[오른쪽]“아니 어떻게 알았지?” 놀란 것처럼 보이는 장승
고갯길 대부분은 3부 능선까지 편안히, 여유롭게 즐겁게 오를 수 있다. 중반부를 지나 산골 깊숙이 들어가고, 약 5부 능선에 이르면 산기슭 그대로 오르는 경사를 타게 된다. 이것이 고갯길을 오르는 본 코스다. 고갯길 옆, 숲이 우거진 사이사이로 옛 전설이 들려온다.
서기 158년 신라 아달라왕 재위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자. 삼국통일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소백산맥 너머 북쪽으로 진출할 길을 만들라는 왕명이 죽죽에게 내려진다. 기록에 따르면 죽죽은 고갯길을 만들고 난 후 기력이 다해 죽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이 고갯길의 이름이 ‘죽령’이다. 이후 죽령 일대는 고구려와 신라의 치열한 격전지 무대로 바뀌고 삼국시대는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간다.
죽령마루, 50m 거리를 두고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 표지판이 세워졌다
때는 바야흐로 서기 551년, 신라의 군사들이 산길을 따라 죽령을 오르고 있다. 칼과 방패를 찬 선발대가 앞서고, 궁사들이 뒤를 따른다. 고개 너머, 고구려의 땅 단양을 치려는 계획이다. 삼국통일의 단초를 마련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죽령 건너편, 고구려의 진영에서는 바위 뒤에 군사들을 상시 매복시켰다. 이곳을 빼앗길 수 없다는 의지를 다진 것이다. 결국, 진흥왕 12년에 신라가 백제와 연합해 죽령의 북쪽 열 고을을 탈취. 후퇴한 고구려에서는 온달 장군이 나서서 “죽령 이북의 잃은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며 다시 출장에 나선다.
이 같은 기록이 <삼국사기>에 남아 있어 당시 죽령이 삼국시대 흐름에 중요한 위치였음을 알 수 있다. 고갯길 중 유래나 개척 시기가 정확하게 역사에 기록된 것이 드물다는 점에서 죽령의 가치는 남다르기도 하다.
통일신라 이후 천년이 넘도록 기호지방과 영남지방의 교류, 마찰이 끊이질 않았던 죽령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한양에 청운의 뜻을 품은 선비가 이 험한 고갯길을 넘었고, 영남지방의 특산물이 죽령을 통해 다른 지방으로 퍼져 나갔다. 길손이 몰리니 죽령 일대는 주점과 마방이 꽤나 몰려있었다. 당시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려워 다소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볕이 잘 든 양지의 산기슭과 음지의 골짜기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표정은 산책의 재미를 배가한다. 더불어 사진 찍는 재미도 쏠쏠하다. 해빙기임에도 눈이 녹지 않고 기상천외한 모습을 선사한다. 가을부터 떨어진 낙엽이 계속 쌓이는 구간도 있다. 푹신한 눈길에 이어 폭신하면서 바스락 소리가 기분 좋다.
[왼쪽부터]푹신한 눈길 위로 낙엽이 쌓였다 / 음지의 한 벤치, 바람이 독특한 형상으로 눈을 조각했다
바람이 좀 더 거세진 것으로 보아 정상이 가까운 모양이다. 동서로 뻗은 산맥 중 특히 오목하게 파인 죽령은, 산을 타고 오르는 바람이 모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정상을 앞두고 한 벤치에 쌓인 눈이 조금 이상하다. 목재 사이로 바람이 돌아, 쌓인 눈의 아래가 패였다. 그 모습이 마치 건축디자인 대회 출품작 같다.
마지막 500m 정도, 높은 경사의 절정이다.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으며 죽령 마루에 설치된 ‘죽령루’ 정자에 섰다. 선비는 아래 풍경을 바라보며 시를 읊조렸을 것이고, 짐꾼은 땀을 닦으며 그늘에 몸을 기댄 채 노래 한 소절 불렀을 것이다. 정도너츠가 가장 맛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죽령루
죽령루에서 보이는 풍경
소백산역에서 죽령 마루까지의 거리는 약 2.0㎞, 소요시간을 넉넉하면 잡으면 한 시간 정도다. 가벼운 산책에 적당하며, 굳이 등산장비가 없어도 될 무난한 길이다. 내심 옛길이 짧아 아쉽다면 연화봉 또는 도솔봉으로 이어지는 코스가 마련돼 있다. 이 길은 소백산맥의 주능선을 타고 오르기 때문에 해빙기가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는 등산 장비 착용이 필수라는 점 참고해야겠다.
글, 사진 : 한국관광공사 국내스마트관광팀 안정수 취재기자(3Dahn856@gmail.com" target=_blank>ahn856@gmail.com)
TIP
[영주 가는 방법]
자가용
* 서울/인천/경기 방면
중부고속도로 → 영동고속도로 → 만종분기점 → 중앙고속도로 → 풍기IC
* 부산/대구 방면
호남고속도로
* 목포
경부고속도로(금호분기점) → 중앙고속도로 → 영주IC 또는 풍기IC
* 광주(전남) 방면
88고속도로(금호분기점) → 중앙고속도로 → 영주IC 또는 풍기IC
대중교통
* 버스
동서울 터미널 ↔ 영주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 영주
동대구 중앙고속터미널 ↔ 영주
대구 북부정류장 ↔ 영주
부산 ↔ 영주
* 기차
청량리 ↔ 풍기·영주 (새마을호, 무궁화호 : 중앙선)
서울 ↔ 천안 ↔ 제천 ↔ 영주 (무궁화호 : 경부선)
대구·동대구 ↔ 영주 (무궁화호 : 중앙선)
부산 ↔ 영주 (무궁화호 : 중앙선)
강릉 ↔ 영주 (무궁화호 : 영동선)
대전·김천 ↔ 영주 (무궁화호 : 경북선)
[소백산역 가는 방법]
풍기IC → 지방도931호선(풍기읍방면) → 국도5호선(단양방면) → 소백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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