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이든가 모한 가수가 남편들도 빨래를 하자는 노래를 불러 크게 히트를 친 적이 있었다. 그날 이후, 가득이나 집안일에
소흘하다며 내게 불만이 많았던 아내는 퇴근시간에 맞추어 집안이 떠나가도록 음악을 틀어놓았다. 매일처럼 빨래하고
청소하고 접시 닦자는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한편으로 미안한 생각이 들면서도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아내 앞에서 한마디
했다.
“저 가수도 은퇴할 때가 다된 모양이군.”
“그게 무슨 말이어요. 얼마나 인기가 많은 가수인데``````.”
“가수가 실력으로 승부를 걸어야지. 여자들한테 점수나 따려고 집안일을 돕자고 하면``````, 어디 장가나 가고 나서 그런 말을
한다면 또 몰라. 남편들 밖에서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한데 위로는 못 할망정, 이다음 결혼하면 자기나 잘하지.”
내 악담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때 이후, 노래를 불렀던 가수의 활동이 한동안 뜸했던 것을 두고 아내가 얼마나 바가지를
긁는지,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직까지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딸들이 자라는 동안, 이다음 결혼을 한 다면 꼭 아빠처럼 자상한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단다. 나는 그때 마다 아내 앞에서
“당신, 나 같은 남자 만난 것을 복으로 생각해야 돼.” 자랑하며 어깨를 으쓱인다.
그랬던 것이 이번에 결혼한 사촌언니 집에서 한 며칠 지내다 돌아온 딸들한테 참으로 황당한 말을 듣게 되었다. 사연인즉슨
자신들은 결혼하면 형부처럼 아내를 위해주는 신세대남편과 살고 싶단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집안 청소는 물론이며, 아기를
보살피며 설거지에 빨래까지, 더욱이 휴무 날에는 시장까지 보아온단다. 그래도 이정도면 애교로 봐줄만하다. 종종 근사한
편지와 함께 꽃을 사들고 깜짝 이벤트를 펼친다고 하니, 아내 앞에서 내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딸들은 이제 한술 더 떠 아빠도 이참에 변해야 한다며 열변을 토한다. 그동안 집에 돌아오면 자신들과 놀아주지 않고, 글을
쓴답시고 컴퓨터랑 씨름하는 내게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때를 놓칠세라 딸들의 응원에 힘입은 아내의 반격으로 즐거워야
할 저녁식사시간이 내겐 악몽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당하고만 있을 내가 아니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굉장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딸에게 물었다.
“아빠, 엄마가 결혼 한지 얼마나 되었지?”
“한 20년 정도``````?”
“그럼, 형부랑 언니가 결혼한지는 얼마정도 되었지?”
“이제 일 년 조금 더``````.”
“언니랑 형부랑 앞으로 한 십년정도 결혼 생활을 하고 난 다음, 그때에도 지금처럼 잘한다면 아빠도 인정을 하겠어. 그렇지만
이제 갓 결혼한 신혼부부를 두고 무슨 섭섭한 말씀을``````.”
결과야 어찌되었던 철부지 조카사위 때문에 내 처지가 말이 아니게 되었다. 그날 이후,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던 차에
4월 3일 결혼기념일을 맞아 케이크와 스무 송이의 장미꽃을 준비했다. <물론 그동안 결혼기념일을 소흘히 보냈던 것은
아니지만, 바쁜 와중에도 아이들에게 부탁하지 않고 손수 했다는 것에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나는 집에 들어오다가 아이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아내에게 꽃을 안겨주며 그동안 고생
많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런데 환호성을 지르던 아이들의 표정이 무척이나 실망한 뜻한 모습이다.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하던
차에 아내가 어서 빨리 축하파티를 열자며 재촉하는 바람에 그 일은 곧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 전, 대학을 다니는 둘째딸이 기숙사에 들어가는 날이라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을 한 다음, 큰맘 먹고 꽃집에
들렸다. 그리고는 장미 열 송이와 안개꽃 한 다발을 곱게 포장을 했다. 그랬더니 큰딸과 막내가 궁금한 듯 쳐다보았다.
“엄마가 그동안 너희들 키우느라 고생 많았잖니. 그런데 둘째딸이 숙사에 가는 것을 보고 왠지 엄마가 슬퍼하는 것 같아서.
이럴 때 아빠가 챙겨주지 않으면 얼마나 섭섭해 하겠니.”
꽃을 안고 현관을 들어서는데 큰딸이 갑자기 지난일이 생각난 듯, 귀에다 소근 거린다.
“아빠. 저번처럼 꽃을 휙 던지지 말고 내가 하는 것처럼 이렇게 무릎을 꿇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면서 전해야 해요.”
에고, 이럴 수가``````." 머리가 희끗희끗한 반백의 나이에 아내한테 꽃을 전하며 낯간지러운 말을 하려니 괜히 얼굴이 붉어진다.
하지만, 어쩌랴. 아이들 부탁인데, 무릎을 굽히고 정중히 꽃을 건네는데 부끄러운 마음에 말까지 더듬거린다.
아내는 지금 그 꽃을 화분에 꽃아 두고 매일처럼 친구들에게 자랑한다. 나는 그때마다 작은 선물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기쁨이 된다는 것을 깨달으며 시간이 허락한다면 자주 꽃을 선물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첫댓글 참으로 소중한 깨닮음을 얻으셨네요..ㅎㅎㅎ 재미난 글에 머물다 갑니다.
바쁠텐데도 언제 글을 또 썼네요. 선물이란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니 가끔은 필요할때도 있는가 보네요...
선물이란 누가해야된다는 규칙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물이란 받으면 기분좋은거아닌가요 그래서 여자들은 받기만원하지말구 똑같이 선물을 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이 가정에 평화를생각해 하기힘든 모션까지 취했다면 치소한 여자도 가벼운 입맞츰이라도 할수있는 센스가 있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