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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강화도호부[江華都護府]
건치연혁[建置沿革]
본래 고구려[高句麗] 혈구군[穴口郡]인데 갑비고차[甲比古次]라고도 한다. 신라[新羅] 경덕왕[景德王]이 해구[海口]라 고치고, 원성왕[元聖王]이 혈구진[穴口鎭]을 설치하였다. 고려[高麗] 초에 지금 이름으로 고쳐서 현[縣]으로 만들었다. 현종[顯宗] 9년에 현령[縣令]을 두었다. 고종[高宗]이 몽고병[蒙古兵]을 피해 들어가 도읍[都邑]하고 군[郡]으로 승격시키고 이름을 강도[江都]라 했다. 원종[元宗] 원년[元年]에 다시 송도[松都]로 돌아왔다. 충렬왕[忠烈王] 때에 인주[仁州]에 합병하였다가 곧 복구시켰다. 신우[辛禑] 3년에 부[府]로 승격시켰다가 본조[本朝] 태종[太宗] 13년에 도호부[都護府]로 고쳤다. [중략]
군명[郡名]
혈구[穴口], 갑비고차[甲比古次], 해구(海口), 강도(江都), 심주[沁州)
형승[形勝]
안으로 마리[摩利], 혈구[穴口]를 점거하고, 밖으로 동진[童津], 백마(白馬)를 경계로 했다.
고려[高麗] 최자[崔滋]의 삼도부[三都賦]에,
이에 서도[西都]와 북경[北京]의 두 손님이 수염을 흩날리며 불쾌해하면서 한편으로는 노하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워하면서 말하기를, 저희들이 종일 말하되 대부[大夫]께서 모두 꺾으니, 그러면 강도[江都]에 대한 말을 듣고 싶습니다. 하니 대부[大夫]가 말하기를, 두 분이 어찌 또한 일찍이 강도[江都]의 일을 들었겠는가 ? 한 끝을 대강 들어 토론하여 보리다. [중략]
동해[東海] 바다의 크기는 아홉 강[江]과 여덟 하수[河水]를 겨자씨처럼 삼켜 구름과 해를 불락 삼키락 출렁 왈랑거리는데, 그 가운데 화산[花山] 이 있어 금오[金鼇]가 우뚝 치받쳤다. 물가와 언덕이 잎처럼 가지처럼 붙었는데, 그 가지와 잎에 붙어 올망졸망한 것들은 강상[江商], 해고[海賈], 어옹[漁翁], 소금구이의 집들이요, 꽃송이 같은 신악[神岳]과 꽃받침 같은 영악[靈岳] 그 꽃송이와 꽃받침을 걸쳐 날아가는 듯 솟아 있는 것은 황실[皇室], 궁궐[宮闕]과 공경[公卿], 사서[士庶]들의 저택일세. 안으로는 마니[摩尼], 혈구[穴口] 의 첩첩한 산이 웅거하고, 밖으로는 동진[童津], 백마[白馬]의 사면 요새[要塞]에, 출입을 단속함에는 동편의 갑화관[岬華關], 외빈[外賓]을 맞고 보냄엔 북쪽의 풍포관[楓浦館]이니, 두 화[華], 화산[花山]가 문턱이 되고 두 효[崤]가 지도리[樞]가 되니, 참으로 천하[天下]에 중심[中心]이네. [중략]
이에 안으로 자주[紫朱]빛 성[城]을 둘러쌓고 밖에는 분첩[粉堞]으로 싸니, 물은 도와 둘렀고 산은 다투어 드높아서 굽어보면 오싹하게 연못이 깊고, 우러르면 아찔한 절벽이라. 오리나 기러기도 다 날아들지 못하고 늑대와 범이 엿보지 못하는지라, 한 사람이 금지시키니 만 집이 편안히 잠을 자네. 이는 금성탕지[金城湯池]로 만세[萬世]토록 제왕[帝王]의 도읍[都邑]이로다. 하자 두 손이 말하기를, 나라를 견고[堅固]하게 하는 것은 산하[山河]로써가 아니니, 덕[德]에 있고 험난[險難]함에 있지 않도다. [중략]
능묘[陵墓]
고려[高麗] 고종릉[高宗陵] 부[府]의 서[西]쪽 6리에 있는데, 이름은 홍릉[弘陵]이다. 원덕태후릉[元德太后陵] 부[府]의 남[南]쪽 23리에 있는데, 고려[高麗] 고종[高宗]의 비[妃]로 이름은 곤릉[坤陵]이다. 고려[高麗] 희종릉[熙宗陵] 부[府]의 남[南]쪽 21리에 있는데, 이름은 석릉[碩陵]이다. 순경태후릉[順敬太后陵] 부[府]의 남[南]쪽 24리에 있는데, 고려[高麗] 원종비[元宗妃]로 이름은 가릉[嘉陵]이다. 이규보[李奎報] 묘[墓] 진강산 동[東]쪽 기슭에 있다. [중략]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연혁[沿革] 고종[高宗] 32년 군[郡]으로 고치고, 33년에 부[府]로 다시 고쳤다.
대동지지[大東地志]
연혁[[沿革] 인조[仁朝] 5년[五年] 2월에 후금[後金]의 군사를 피하여 이곳에 거둥하여 4월에 환도[還都]하였으므로, 유수부[留守府]로 승격시켰다. [중략]
사원[祠院]
이총병사[李摠兵祠], 갑곶진[甲串津]에 있다. 총병[摠兵] 이여매[李如梅]이다. 자손[子孫]이 만수산[萬壽山] 남[南]쪽에 우거하는데, 그 동[洞]을 보명[保明]이라 칭[稱]하였다. 영종[英宗] 을해[乙亥]년에 특명으로 이 사당[祠堂]을 세웠다. 이성량[李成樑] 자[字]는 여계[汝契]로, 본래 조선[朝鮮] 사람이다. 벼슬은 태부 영원백[太傅寧遠伯]이다. 이여매[李如梅] 자[字]는 자청[子淸]으로, 성량[成樑]의 아들이며, 벼슬은 첨서 좌부[僉書左府]이다. 선조[宣祖] 임진난[壬辰亂] 때 우리나라에 와서 왜[倭]를 치는 데 공이 있었다. [중략]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강화 도호부[江華都護府]
江華 都護府 本高句麗 穴口郡 新羅改爲海口郡 高麗改爲江華縣 顯宗戊午 置縣。 高宗十九年壬辰 宋理宗紹定五年 避蒙古兵入都 陞爲江華郡 號江都 元宗元年 元世祖 中統元年 復還松都 今府東十里松嶽里 有古宮基 [중략]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혈구군[穴口郡]인데, 신라[新羅]가 해구군[海口郡]으로 고쳤고, 고려[高麗]가 강화현[江華縣]으로 고쳐, 현종[顯宗] 무오[戊午]에 현령[縣令]을 두었다. 고종[高宗] 19년 임진[壬辰]에 송[宋]나라 이종[理宗] 소정[紹定] 5년, 몽고병[蒙古兵]을 피하여 이 고을에 들어와서 도읍[都邑]을 정하고, 강화군[江華郡]으로 승격시켜 강도[江都]라 하다가, 원종[元宗] 원년[元年]에 원[元]나라 세조[世祖] 중통[中統] 원년[元年] 다시 송도[松都]로 돌아왔다. 지금의 부[府] 동[東]쪽 10리 되는 송악리[松岳里]에 옛날의 궁[宮]터가 있다. [중략]
洪武丁巳 陞爲府 本朝太宗癸巳 例改爲都護府 屬縣二 鎭江縣 本高句麗 首知縣 新羅改名守鎭 河陰縣 本高句麗 冬音柰縣 新羅改名沍陰 皆爲海口郡領縣 高麗改今名 仍屬江華任內 [중략]
홍무[洪武] 정사[丁巳]에 부[府]로 승격시키고, 본조[本朝] 태종[太宗] 계사[癸巳]에 예[例]에 의하여 도호부[都護府]로 고쳤다. 속현[屬縣]이 2이니, 진강현[鎭江縣]은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수지현[首知縣]인데, 신라[新羅]가 수진[守鎭]으로 고쳤으며, 하음현[河陰縣]은 본래 고구려[高句麗]의 동음내현[冬音柰縣]인데, 신라[新羅]가 호음[冱陰]으로 고쳐서 모두 해구군[海口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고, 고려[高麗]가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이내 강화[江華] 임내[任內]에 붙였다. [중략]
鎭山 高麗摩利山 在府南 山頂有塹星壇 壘石築之 壇高十尺 上方下圓 壇上四面 各六尺六寸 下廣各十五尺 世傳朝鮮檀君祭天石壇 山麓有齋宮 舊例 每春秋遣代言設醮 今上十二年庚戌 始遣二品以上 [중략]
진산[鎭山은 고려[高麗] 마리산[摩利山]이다. 부[府] 남[南]쪽에 있다. 꼭대기에 참성단[塹星壇]이 있는데, 돌로 쌓아서 단[壇]의 높이가 10척[尺]이며, 위로는 모지고 아래는 궁글며, 단[壇] 위의 사면[四面]이 각기 6척[尺] 6촌[寸]이고, 아래의 너비가 각기 15척[尺]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조선[朝鮮]의 단군[檀君]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석단[石壇]이라. 한다. 산기슭에 재궁[齋宮]이 있는데, 예로부터 매년 봄·가을에 대언[代言]을 보내어 초제[醮祭]를 지내었다. 금상[今上] 12년 경술[庚戌]에 비로소 2품 이상의 관원을 보내기 시작하였다. [중략]
齋宮壁上 有東字韻詩 太宗潛龍 嘗爲代言 齋宿于此 次韻 今刻于板上 以金塡之 傳燈山一名三郞城 在塹城之東 世傳朝鮮檀君使三子築之 府在海中 直通津縣之西 海豐郡之南 東西三十二里 南北六十四里 [중략]
재궁[齋宮] 벽 위에 동[東]자 운[韻]의 시[詩]가 있으니, 태종[太宗]이 잠룡[潛龍] 때에, 일찍이 대언[代言]이 되어서 이곳에서 재숙[齋宿]할 때 이 시[詩]를 지은 것인데, 지금 널에 새기고 금[金]으로 메웠다. 전등산[傳燈山]은, 일명[一名], 삼랑성[三郞城]이니, 참성[塹城] 동[東]쪽에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조선[朝鮮] 단군[檀君]이 세 아들을 시켜서 쌓았다. 고 한다. 강화부[江華府]는 해중[海中]에 있으니, 곧 통진현[通津縣]의 서[西]쪽이요, 해풍군[海豐郡]의 남[南]쪽이다. 동서[東西]가 32리[里], 남북[南北]이 64리[里]이다. [중략]
鹽所十一 牧場 鎭江山 吉祥山 相連築場 周回四十三里, 放國馬一千五百匹 井浦 在府西 水軍萬戶守禦 甲串津 在府東 有渡船 渡頭有燕尾亭 寅火石津 在府北 有渡船 [중략]
염소[鹽所]가 11곳이다. 목장[牧場]은 진강산[鎭江山]과 길상산[吉祥山]이 서로 연[連]한 데에 축장[築場]하였다. 둘레가 41리[里]인데, 국마[國馬] 1천 5백 필을 놓아 먹인다. 정포[井浦] 부[府] 서[西]쪽에 있는데,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수어[守禦]한다. 갑곶진[甲串津] 부[府] 동[東]쪽에 있다. 나룻배가 있고, 나루머리[渡頭]에 연미정[燕尾亭]이 있다. 인화석진[寅火石津] 부[府] 북[北]쪽에 있는데, 나룻배가 있다. [중략]
강도[江都]가 역사[歷史]의 전면에 드러나는 당시[當時]의 기록[記錄]을 보더라도, 지금의 한국[韓國]에 있는 강화도[江華島]는 역사[歷史]속의 강도[江都], 강화도[江華島]가 아니다. 강도[江島]가 해중[海中]이라고 하는 기록[記錄]은, 오늘날 바다를 지칭[指稱]하는 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강화[江華]가 섬이라고 하는 것은, 이는 조선사[朝鮮史]에 있어서, 역사[歷史]의 진실[眞實]이 절대 아니다. 많은 분들이 강도[江島]를 찾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나, 수 많은 설[說]과 추정[推定]과 가설[假說]만이 난무[亂舞]할 뿐 무엇하나 확실[確實]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고려[高麗]와 원[元]나라의, 전란[戰亂]과, 조선[朝鮮]의 병자호란[丙子胡亂]을 겪으며 천하[天下]의 도읍지[都邑地]로서 또한 천하[天下]의 요충[要衝]지로 떠오른 강화[江華]의 강도[江島]는, 역사[歷史]의 기록[記錄]대로 장강[長江]의 천험[天險]을 지닌 곳에 위치[位置]하고 있으리라. 이 강도[江都]의 강화[江華]를 명확히 찾는다면, 고려[高麗]의 개경[開京]과 조선[朝鮮]의 한양[漢陽]과 경도[京都]를 찾아가는데, 있어서, 광명[光明]의 등불이 될 것이다.
소위 대륙사[大陸史]에 기록[記錄]된 왕조[王朝]들은 모두 황제[皇帝]를 잠칭[僭稱]하고 있으며, 조선사[朝鮮史]의 역사서[歷史書]는 조선사[朝鮮史]의 역대[歷代] 왕조[王朝]들을 속국[屬國]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러한 것이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우리의 역사[歷史]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역사[歷史]의 진실[眞實]일까 ? 나라를 세우고 수[數] 십년[十年]만에 망하고, 제위[帝位]에 오르고 몇 년만에 죽은 자들이 부지기수인 것이 대륙사[大陸史]의 왕조[王朝]들이다. 이러한 자들이 오백년[五百年] 천년[千年]을 아우르는 조선사[朝鮮史]의 역대[歷代] 왕조[王朝]들을, 조그마한 나라의 속국[屬國]으로, 제후국[諸侯國]으로 수[數] 천년[千年]을 사대[事大]한 나라로 그리고 있음은, 그야말로 역사서[歷史書]를 왜곡[歪曲]하고 조작[造作]한 자들의 거짓과 위선[僞善]의 극치[極致]일 뿐이다.
역대[歷代] 조선사[朝鮮史]의 역사[歷史]의 진실[眞實]을 찾으며 하나씩 드러나는 사실[事實]은, 고금[古今]을 오르내린 조선사[朝鮮史]의 역대[歷代] 왕조[王朝]들은, 모두 천자국[天子國]으로서 사해[四海]를 통치하며 호령하고, 천하[天下]에 그 위엄[威嚴]을 드날린 어느 국가[國家]도 감히 넘보지 못하고, 따라 올수 없는 천하[天下]의 위대[偉大]한 지존[至尊]의 천자국[天子國]이었다는 사실[事實]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원[元]나라에 고려[高麗]가 일시적으로 무릎을 꿇었지만 원[元]나라 또한 고구려[高句麗]의 내지[內地]에서 일어난 나라가 아닌가 ?
병자호란[丙子胡亂]을 일으킨 청[淸]나라 역시, 조선[朝鮮]의 내지[內地]에서 일어난 조선사[朝鮮史]의 일원일 뿐이다. 그러함으로 조선사[朝鮮史]는, 그러한 전란[戰亂]들을 란[亂]으로 적고 있는 것이다. 천자[天子]의 대[代]를 잇는 것을 종[宗]이라고 한다는 역사[歷史]의 기록[記錄]은 정말 맞는 말이다. 비록 역사서[歷史書]는 누더기가 되고, 치욕[恥辱]의 기록[記錄]으로 뒤덮여 있지만, 역사[歷史]의 진실[眞實]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조선사[朝鮮史]의 역사[歷史]를 이리 만든 자[者]들의 더러운 거짓과 가증[可憎]스러운 위선[僞善]과, 간교[奸巧]하고 사악[邪惡]한 실체[實體]는 드러나고, 역사[歷史]의 준엄[峻嚴]한 진실[眞實]앞에, 서서히 천하[天下]에서 소리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원[元]나라의 세조[世祖]가 원사[元史]에서 이르기를, 세조[世祖]가놀라고 기뻐하며, 고려[高麗]는 만리[萬里]의 나라요, 당[唐] 태종[太宗]이 친히 정벌하고서도 항복받지 못하였다. 이제 세자[世子]가 스스로 찾아와 나에게 귀부[歸附]하니 이는 하늘의 뜻이다. 라고 했으니, 고려[高麗]가 어찌 반도[半島]의 한국[韓國]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
원사[元史]의 기록[記錄]에서, 대덕[大德] 4년 2월에, 정동행성평장활리길사[征東行省平章 闊里吉思]가 말하기를, 그들의 큰 모임에 고려[高麗]의 왕[王]은, 손잡이가 굽은 곡개[曲蓋]와, 용[龍]을 그린 용의[龍扆]를 갖추고, 거동할 땐 사람들이 다니지 못하게 하고, 여러 신하[臣下]들은 춤을 추며 만세[萬歲]를 불러 한결같이 원[元]조정의 의례[儀禮]와 같이하여 참람됨이 너무 심합니다. 하였으니, 이러한 기록[記錄]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 바로 고려[高麗]는 사해[四海]의 천자국[天子國]이었다는 사실[事實]을 증명[證明]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원[元]나라에 일시적으로 항복한 시대에도 고려[高麗]의 위상[位相]은 흔들리지 않았다. 충렬왕[忠烈王] 2년[二年] 갑신[甲申]일에, 원[元]의 달로화적[達魯花赤]이 왕[王]에게, 선지[宣旨]라느니 짐[朕)이라느니 사[赦]라고 칭[稱]하는 것은 분수에 넘는 일이 아닙니까 ? 라고 힐문했다. 이에 왕[王]이 첨의중찬[僉議中贊] 김방경[金方慶]과 좌승선[左承宣] 박항[朴恒]을 시켜, 감히 분수에 넘는 짓을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다만 조종[祖宗] 때부터 전해오는 관례[慣例]에 따랐을 뿐이니 당장 고치겠소. 라고 해명한 후 선지[宣旨]를 왕지[王旨]로, 짐[朕]을 고[孤]로, 사[赦]를 유[宥]로, 주[奏]를 정[呈]으로 각각 고쳤다.라고 했으니, 고려사[高麗史]의 이러한 기록[記錄]들은, 원사[元史]와 그 맥[脈]을 같이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록[記錄]들이 시사해 주는 것은, 지금 우리의 앞에 놓여져 있고, 지금 우리가 보고있는 조선사[朝鮮史]의 역사서[歷史書]는, 역대[歷代]의 조선사[朝鮮史]를 역사[歷史]에서 지워버리고, 다시는 고려인[高麗人]들이 후대[後代]에 일어나지 못하게 말살[抹殺]시키려는 침략자[侵略者]들의 조작[造作]과 왜곡[歪曲]의 산물[産物]일 뿐이다.
지금은 양자강[揚子江]이라고 불리는 장강[長江]의 하류[下流]에 있는 남경[南京]에는 충렬왕[忠烈王]의 묘제[墓制] 석상[石像]이 장강[長江]을 굽어보고, 남경[南京]을 내려다보며 말없이 옛일을 상고[相考]하고 있다. 그리고 남경[南京]의 남[南]쪽에는 고대[古代]의 왕릉[王陵]인 순릉[順陵]이 오는 객들을 쓸쓸히 맞이하고 있다. 순릉[順陵]은, 고려[高麗]의 2대[代] 혜종[惠宗]의 능호[陵號]이다.
고려사[高麗史]에는, 謚曰義恭, 廟號惠宗, 葬于松嶽東麓, 陵曰順陵. 穆宗五年, 加謚明孝, 顯宗五年, 加宣顯, 十八年, 加高平, 高宗四十年, 加景憲. 시호[諡號]를 의공[義恭]이라 하고 묘호를 혜종[惠宗]이라 했으며 송악산[松嶽山] 동쪽 기슭에 장사지내고 능호를 순릉[順陵]이라 했다. 목종[穆宗] 5년에는 명효[明孝]를, 현종[顯宗] 5년에는 선현[宣顯]을, 같은 왕[王] 18년에는 고평[高平]을, 고종[高宗] 40년에는 경헌[景憲]을 시호[諡號]에 덧붙였다. 고 기록[기록]하고 있다.
현지[現地]에서는, 충렬왕[忠烈王] 묘릉[墓陵] 석상[石像]에 대하여, 양[梁]502 ~557년[年], 양파양충렬왕소회묘석각[梁鄱阳忠烈王萧恢墓石刻]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순릉[順陵]에 대해서는, 오대남당이릉[五代南唐二陵] 순릉[顺陵], 남당[南唐] 937년[年] ~ 975년[年], 이라고 설명[說明]하고 있는데, 남경[南京]에는 없는 역사[歷史]를 꿰어 맞추다보니 역사서[歷史書]와는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矛盾]된 설명[說明]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사[高麗史]와 원사[元史], 그리고 왕조실록[王朝實錄]과 조선사[朝鮮史]의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고려[高麗], 조선[朝鮮]의 대신[大臣]들과 선유[先儒]들의 문집[文集]을 포함하여, 대륙사[大陸史]에 나타나는 역사[歷史]의 진실[眞實]을 담은 내용들은, 오늘날 우리가, 조선사[朝鮮史]의 역사적[歷史的] 진실[眞實]을 찾고 우리의 역사[歷史]를 바로 세우는데 있어서, 선대[先代]들의 숨결과 혼[魂]을 가슴에 담게하고, 광명[光明]의 서기[瑞氣]를 조선사[朝鮮史]의 후예[後裔]들에게 비추어 주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현재 드러나고 있는, 남경[南京]에 있는 왕릉[王陵]들의 위치[位置]와 방향[方向]이, 역사서[歷史書]에서 말하는 지형[地形]과 지리[地理]가 일치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남경[南京]에 있는 효릉[孝陵]이 주원장[朱元璋]의 릉[陵]이라고 하는데, 이는 어림도 없는 말이다. 지금의 북경[北京]이 명[明]의 연경[燕京]이 될수 없는데, 지금의 남경[南京]이 어찌 명[明]의 남경[南京]이 될수 있으며, 효릉[孝陵]이 어찌 주원장[朱元璋]의 릉[陵]이 될수 있겠는가 ?
지금 이글에서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지금의 남경[南京]은, 고려[高麗]의 강도[江都]이며, 고려[高麗]의 강화[江華]이고, 조선[朝鮮]의 강도[江都]이며 왜곡[歪曲]된 강화도[江華島] 이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당시[當時]의 상황을 보면, 고려[高麗]의 강화[江華]로의 천도[遷都]와 지형[地形], 지리[地理], 환경[環境]등이 일치하고 있다. 혹자[或者]는 조선[朝鮮]이 반도[半島]로 명[明]나라에 쫓겨 들어왔다는 설[說]로부터, 반도[半島]의 조선[朝鮮]설이 난무[亂舞]하고 있지만, 이는 역사[歷史]의 진실[眞實]과 거리가 먼 추정[推定]과 가설[假說]일 뿐이다.
오늘날 조선사[朝鮮史]의 진실[眞實]을 찾는 일은, 사료[史料]가 멸실[滅失]되고, 그나마 남은 사서[史書]는 변질[變質]되어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나 왜곡[歪曲]과 조작[造作]의 손이 닿지 않은 기록[記錄]들을 따라서, 그것이 맞는 기록[記錄]인가를, 그 가리키는 지역[地域]을 찾아서, 그 지역에 남아 있는 문헌[文獻]과, 유적[遺跡], 유물[遺物], 지형[地形], 지리[地理], 환경[環境]등을 정밀[精密]히 조사하여, 모든 사실[事實]들이 일치한다면, 그 기록[記錄]은 역사[歷史]의 진실[眞實]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개인이 하기에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조선사[朝鮮史]의 진실[眞實]을 찾아가는 길은, 이렇게 어려운 것임을 어찌 말로서 다할수 있으랴 !
한국[韓國]의 수원[水原]에 있는 수원화성[水原華城]은, 조선[朝鮮]의 정조[正祖]가 축조[築造]했다고 하는데, 무엇 때문에 성[城]의 명칭[名稱]을 화성[華城]이라고 했을까 ? 그리고 또 하나, 조선왕조[朝鮮王朝]가 반도[半島]의 한국[韓國]에 있었다면, 임진왜란[壬辰倭亂]때 불에 탔다는 조선왕성[朝鮮王城]의 경복궁[景福宮]에 있는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도 다시 세우지 못하면서, 수원[水原에다 왕성[王城]을 축조[築造]했다는 것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이다.
지금의 반도[半島]땅, 한국[韓國]에 대하여, 반도[半島]땅은 조선사[朝鮮史]에 있어서 무엇이었느냐는 별의별 해괴한 잡설[雜說]들이 난무[亂舞]하는 것은, 조선사[朝鮮史]를 바로 세우는 길을 어지럽히고 있을 뿐이다. 현재[現在] 한국[韓國]에 있는 고대[古代]의 유적[遺跡]과 유물[遺物]만을 보더라도, 조선사[朝鮮史]의 역사[歷史]에서 차지하는, 그 역사[歷史]의 무거움과 비중[比重]을 충분히 알 수 있는 데도, 해괴한 잡설[雜說]이 횡행[橫行]하는 것은, 참으로 알수 없는 일이다.
지금은 우리의 역사[歷史]인 조선사[朝鮮史]의 진실[眞實]을 찾아 바로 세우는 일은, 천하[天下]의 암흑[暗黑]속에서 작은 등불을 하나 들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 선대[先代]와 조상[祖上]님들의 역사[歷史]가 잘못 되었음을 알고 있음에, 그 후예[後裔]로서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
그러나 근원[根源]이 깊으면 물이 흐르고, 물이 흐르면 대하[大河]가 되어 사해[四海]를 이루듯, 조선사[朝鮮史]의 근원[根源]은 깊고도 깊으니, 역사[歷史]의 진실[眞實]은 광명[光明]이 되어, 미래[未來]의 후손[後孫]들에게 천하[天下]를 웅위[雄威]하는 서기[瑞氣]를 비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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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환국고려님의 해설에 감동이 절로 이는군요. 그렇지요. 조선(총칭)사는 근현대에 왜곡되고 조작되어 반도 모퉁이에 쳐박혀 있지만, 원래의 모습을 찾을 날이 기필코 올 것입니다. 대륙조선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우리들의 노력에, 여러 곳에서 방해공작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장난질에 물러선다면 어찌 잃어버린 조선사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하나 둘 진실의 문 앞으로 바짝 다가서는 우리들을 누구라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감동어린 글을 주셨습니다. 자주 뵙기를 청하며,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남경이 강화요, 강도라!
그곳에 고려의 황릉이 있다!
그저 정황으로 보아 그럴 것이다라는 추정만을 하고 있었는데, 확실한 증거를 말씀하시니..........대륙사는 곧 조선사이며, 현 대륙사는 <조선왕조>를 숨기기 위한 가공의 왕조들로써, 제후들의 조그마한 이야기라고 한다면 크게 벗어날 것 같지 앟는군요.
당의 몰락후...고려가 송나라는 후대엔 형식상의 당을 이은 황제국으로 명칭했을 뿐...
고려는 엄연한 만리대국 황제국으로 탄생하고..
그 제도와 예법도 황제국에 맞게 정한건...몽고사(원사)로도 이미 증명돼는데...
그 내용과 함께...분명 고려는 어느시기부터 몽골(원)의 무력에 굴복해...
그 황제를 상징하는 용어와 관례들을 일부 폐지하고...엄연히 몽골(원)에 입조했음도 명기됐으니...
그때부턴 고려는 세계의 천자국은 아니였단 반증도 돼겠습니다...?
왜곡자들이 고려사를 왜곡하려면 만리대국의 황제제도를 계승했단 구절도 뺏어야 정상이니...
그 기록중 몽고(원)에 굴복해 입조했단 기록만 왜곡했다 할 순 없는 이치니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동주(東周)시대엔 과거의 주(周)의 강력한 힘은 없었으나, 사해의 제후들이 "동주"를 천자국으로 인정, 그 위상을 대우해 주었습니다. 고려 역시 천자국으로 이어오다가 몽고의 강력한 힘으로 잠시 은둔의 세월을 보냈으나, 원을 몰아내고 다시 천자국의 지위를 복원시킵니다. 이것은 사서의 기록으로 봤을 때 얘기구요. 사서의 기록이 일부 왜곡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몽고는 다른 침략지역에서는 개미새끼 한마리도 살아남은 것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무자비한 살륙전을 전개했는데, 고려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다는 것은 스스로 천자의 나라를 인정하되, 딸을 시집보내 혼인으로 결속시켰다고 보아집니다
말씀하신대로...발해,거란,금나라,몽골과 청나라는...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를...왕건고려와 마찬가지로 같이 계승했던 북방족이고...
실제로도 그 전성기 영토는 오히려 부여와 고구려의 대부분인 대륙중북부영토이고 보니...
왕건고려만이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의 유일한 계승국였다는 얘기도 성립이 돼지 않는다고 전 봅니다.
고려와 몽골의 전쟁...조선과 청의 전쟁은...
크게 보면...그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의 천자권을 누가 가져가느냐를 두고...
고조선의 후예인 부여 고구려 삼한,발해 후손들간에 벌인 내부 권력싸움으로 보면 됀다고 전 봅니다.
강도(江都)..진강(鎭江)...해구(海口)등의 강화도를 뜻하는 용어들은...
고지도들에도..말씀하신대로...늘상 현 남경일대의 강소성일대에 수도없이 표기됀 지명이라...
저도 이전부터 거기가 원 강화도요...그 동부 여러 섬들 중 몇개가...마니산 참성단이 있는자리로...
현재도 그 흔적이 유적지로 있다 했는데...
별반 관심들이 없으시더군여...
고려와 조선은 서역에 있어야 하기에...^. .^
그런데 저는 어쩜 그 남경과 강도(江都)도...어쩜 왜곡자들의 왜곡지도일수 있단 생각을 해 봅니다.
고지도들엔...동정호 북쪽의 삼각주지대에도...늘상 ..고려 남경인 한양(漢陽)이란 표기를 했거든요...
왕건 (고려태조)의 옮겨진 능은 현 성도의 촉왕 왕건릉이라 왜곡됀 능일수도 있고...
그 주변지인 한양(무한)이...원 고려 남경이자...원조 강화도는 아닐지..요즘은 의심이 갑니다.
뻔히 고지도들에도 수도 없이 현 강소성일대와 남경일대가 강도,진강,해구로 나옴이...
왜곡자들이 숨겨논 역사진실 술래잡기에선...너무 쉽고...명확하기에...
이렇게 찾기쉽게 해 놨을까...?...좀 의심스럽거든요...
그 한양이란 동정호의 표기도 왜곡일수 있고...그 한양(무안)은 강화도(강도)이고...
원 기록의 삼각산과 화산 남쪽의 한양(한성)은...
그 동정호 삼각주평원(강화도?)의 양자강의 서북줄기인...한수(漢水)의 상류...한중(漢中)지역의...
안강시 정도라 뵙니다.
한중엔 지금도 한강이니 한강대교니의 용어가 수두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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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은 인간 답게 행동할 때 보장 받지요.. 환국고려님이 무슨 신인가. 할 수 있는걸 부탁하시오.
내 당신이 끼실줄 알았습니다.
환국고려님은...중원이 고려와 대륙조선의 중심지임을 증명하셨으니...
그 중심지의 상대적 동부인 현 한반도는 당대 고려나 조선의 어떤 지방이고 어떤 부족들이 주류였다고 생각하시는지...
지도도 부탁드립니다.
강도에서 피신중인 왕이 봉은사를 다녀왔다하니 봉은사가 강도와 지근거리에 있었군요! 그리고 고려의 강화도와 이조의 강화도 동일 하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 비로소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