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호김일호
세상구경6
김일호
멀리 갈 것 없다
멀리 가버린 사람
다시 부를 것도 없다
한 걸음 문밖에 나서면
가을꽃들 아낌없이 반겨준다
정치꾼들이나
사기꾼들이나
협잡꾼들이나
저들이 흐려놓은 세상 길
멀고 험난하여도
노여워하거나 슬퍼 울거나
주저앉을 것 없다
깊어가는 가을
누구 한 사람 붙잡고 시비하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길 따라
피고 져도 아름답고 향기로운
꿈 같은 세상
첫눈 내리기 전 마음껏
구경해 볼 일이다
가을비
몇 날 며칠 꿈길에서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첫눈이 녹아
늦가을 비로 내리네
첫눈 내리는 날 손꼽아
누군가 만나기로 했던
약속의 자리 공원 벤치 위에도
조금만 더 있다 가라고
애써 붙잡아 두었던
울긋불긋 곱던 단풍에도
새들 눈길조차 주지 않던
붉게 물든 산수유 알몸에도
쉬엄쉬엄 내리는 비
까닭이 있겠지
겨울로 가는 그림자를 씻어낸 후
새하얀 눈으로 덮으려는
하늘의 속셈 그 뜻이겠지
들국화
낯이 익다
어디서 본 듯하다
전생에 스쳐 간 인연이었을까
가물가물한 꿈속에서 한 번쯤
만난 적 있을까
그 꽃대 하나 세우기 위해
까치발은 몇 번 들었을까
무엇이 그리 못 미더워
겹겹이 한 몸으로 얼싸안고 피었을까
무서리 찬 바람에도
꺾이지 않기 위한 몸부림으로
어느 세월 붙들고 살아왔을까
나도 그랬다
이제 시리다 못해 아프다
너를 보는 나의 마음 가엾다
알 수 없는 눈물이 울컥 솟는다
12월에 쓰는 편지
당신 아직 거기 있나요
세찬 바람
텅 빈 가슴 그 창가에 스며들면
더욱 그리운 당신 모습
그 사랑입니다
언제나 겨울이 오면
하늘이 빚어낸 햇살처럼
찬 바람도 쉬어가던 처마 아래
웅크린 채 빛나던
당신이 아니었던가요
하루해 저물면
다시 밝아올 새날 가깝고
한해가 기울면
새해의 꿈 더 가까이 온다는 것은
잊을 수 없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날 며칠 지나고
어둑어둑해지는 첫눈 내리는 밤이면
별빛 같은 가로등 밝은 길 찾아
약속한 그곳 새하얀 대지 위에
마냥 기다리고 있을게요
시국선언
시절이 하수상하니
가녀린 처자들 때를 잊은 채 미친 듯
찬바람에 춤을 춘다
겨울의 길목에
계절의 시간을 거꾸로 돌려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올 듯 말 듯 불확실한
기적을 부른다
봄 처녀란 이름
개나리, 영산홍, 오월 장미까지
이 겨울 버선발로 뛰어나와
찬란한 눈빛으로 외친다
무심하도록 파란 하늘 아래
위태롭게 나부끼는 마지막 잎새가
어디로 갈까 주춤거린다
칼바람 앞에 저절로 누워
처절하게 밟히지 않으려는 오늘에
할 말은 해야 한다는 이구동성이
기상이변의 산천을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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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출생,1991문학세계 신상,전)연기문학회장,전)세종문학회장,전)소금꽃시문학회장,전)한국문협세종지회장,전)세종시인협회장,한국문인협회회원,백수문학회장,제11회연기군민대상 수상,국민훈장목련장 수훈,시집<노을에 젖다><세상구경>,공저<모시울 가는길>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