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다. <세종 이응다리 – 국립세종수목원 – 대통령기록관>
여행은 목적지의 풍경과 추억도 좋지만 우선 나 자신을 확인하는 시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즉 여행의 깊이와 맛이 돈으로 결정되지 않고 순간을 받아들이는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한편 에너지를 품어 내는 도시와 여유를 느낄 수 있는 한적한 자연 속으로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움직이는 여행의 루틴도 결국은 출발했던 곳, 즉 둥지까지 무사히 돌아오기까지의 소화력이다. 여행은 떠난다는 설레임이 반이다. 초행길이라서 새롭고 그곳이 처음이라 신비할 것이라는 기대를 보듬고 달리는 것이어서 떠나는 마음은 돌아오기까지 여행자의 일정을 온통 지배하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은 그렇게 무사하지를 못했다. 다녀온지 사나흘이 지났건만 그 끔찍한 순간이 떠오르는 순간마다 다시 머리는 하얗고 가슴이 쿵쾅거린다. 어쩌면 이번 여행의 일정은 출발부터 사고를 포함한 도착까지 이미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떠날 때마다 파고 들었던 활력이 아니라 고속도로를 진입하면서도 까닭 없이 불편했던 마음을 다잡으며 출발했었다. 특별한 고민이 있는 것도 아니며 할 일을 미뤄둔 것도 아닌데 자꾸 불안한 순간이 반복되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드문드문 보이는 자동차가 아니면 온통 나 혼자 고속도로를 차지하고 달리는 기분이 그토록 좋았건만 그러한 풍경마저 쓸쓸하거나 허전한 마음까지 품고 세종시 투어를 위해 출발하였다.
2000년대는 세종특별자치시[행정중심복합도시] 태동의 시기라 한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공약으로 시작된 충청권 신행정수도로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가 정식으로 출범하였다. 세종시는 충청권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행정중심복합도시 계획에 따라 현 세종특별자치시에 정부세종청사가 새로 건립되었다. 한편 오늘은 이곳에 세종대왕께서 훈미정음을 반포한 해(1446년)을 기념하는 의미를 두어 1,446m의 이응다리를 걸어볼 생각이다. 집에서부터 약 300km에 가까운 거리이니 만큼 새벽에 출발하여 도착하였으니 아직 이른 시간이라 간혹 아침 운동하는 세종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응다리 위를 올라보면 서쪽은 정부종합청사가 있고 동쪽엔 세종특별자치시청이 있다. 세종시의 상징 다리답게 세종대왕의 정신과 한글 창제의 뜻을 품고 있는 특별한 구조물이다. 한편 이응다리는 세계최초 시간 테마형 다리로 설계되어 다리전체가 1시부터 12시까지 총 12개 죤으로 나눠져 있어서 다리 위를 걸어가면서 시계의 12시간을 상징하는 구간을 차례로 지나가게 된다. 즉 죤(ZONE)별 다른 주제의 전시와 조형물 그리고 체험공간이 배치되어 있어서 단순히 그냥 걷는 다리가 아니라 문화 체험형 산첵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응다리를 걸으면 하루 12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여행을 하는 느낌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금강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스카이워크에 올라 보지만 이응다리의 전체를 카메라에 담을 수 없어 아쉬웠다. 다만 인터넷에서 만나 실제 찾아와 보니 사실 굳이 이곳을 목적으로 정하여 찾기보다는 지나가는 길에 한번쯤 들러 볼만한 곳이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이응다리에서 내려와 이곳에서 약 2km떨어진 국립세종수목원으로 향한다. 날씨가 추우니 수목원 온실투어를 즐겨 볼 참이다. 겨울은 하늘이 파란 날이 더 춥다. 실내수목원 티켓팅을 자동으로 발권하여 들어섰다. 시즌별로 여러 행사가 있을 법하건만 날씨 탓인지 웅크린 사람들만 오갈 뿐 밖은 고요하다. 열대온실과 지중해온실 그리고 테라리움 정원 전시장까지 밖에서는 볼 수 없는 꽃이 지천이니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과 어르신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하였다. 멀리서 왔으나 일찍 서두르다보면 어디를 가든지 분위기까지 여유롭다. 야외 산책코스도 너무 좋아서 날씨가 풀린다면 더욱 신나게 돌아보고 싶은 욕심을 품어보며 다음 코스인 대통령 기록관으로 향한다.
대통령기록관으로 가다보면 세종정부청사 건물이 기록관과 마주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종시 대부분의 건물들이 정부청사와 관련된 것처럼 보였다. 알맹이는 어떠할지라도 어마어마한 건물들 속에 세종이라는 도시가 자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대통령기록관으로 들어선다. 대통령기록관은 대한민국 대통령과 관련된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수집, 보존, 관리, 활용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니 만큼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관련된 모든 기록물은 물론 대통령 개인과 관련된 자료까지 폭넓게 수집하여 보존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록물들은 대한민국의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다양한 교육 및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기록관 층별 구성 1층은 대통령 상징관 으로, 대통령 직무의 상징과 권위가 시각적으로 구현되어 있었다. 2층 대통령 자료관은 대통령과 관련한 주요 기록과 서면, 선물 등 아카이브 성격의 전시가 이루어져 있었으며 3층 대통령 체험관으로 모의 선거, 법률 공포 등 대통령의 역할을 시민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4층 대통령 역사관은 각 대통령의 시대적 맥락과 정치 흐름, 그리고 그들이 남긴 유산과 과오를 담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4층부터 관람하도록 되어 있어서 편안하고 꼼꼼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어쩌면 이곳은 전근대 왕조시기의 종묘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다. 어진들을 모시고 역대 왕들의 업적을 기린 종묘처럼 대통령 초상화들을 모시고 역대 대통령들의 업적을 기리고 있었기에 말이다. 세종시 투어를 계획할 때에는 대통령기록관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었는데 이번 여행 중 가장 의미 있고 값진 소득이었다. 바로 앞 건물이 정부청사인데 정부청사 옥상정원이 기네스북에 올려 질 만큼 잘 되어 있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다시 둥지를 찾아 먼 길을 되돌아가야 해서 아쉽게 발길을 돌린다.
해가 많이 길어졌지만 해질녘 휴일의 여유라도 만끽해보자는 생각으로 일찍 출발하여 새벽길을 달려갔던 길을 서둘러 되돌아가기로 한다. 그런데 왠 걸? 둥지까지 약 20km를 남겨두고 교통사고를 내고야 말았다. 그렇다. 교통사고란 시간과 거리, 그리고 나머지 모든 것이 예측할 수 없는 일이라서 자동차가 부딪히는 순간까지 하얗게 지워져버리는 엄청난 일이었다. 오늘 알뜰하게 둘러보고 화려했던 여행의 끄트머리에 이 같은 사고는 추억도 혹은 아름다웠던 기억도 모두 지워져버리고 사고의 기억만 아찔하게 남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여행은 떠나는 것”이라 말하지만 진정한 여행은 떠남이 아니라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나마 인명피해 없이 마무리 되었으니 다행스러움과 감사의 하루를 조심스레 접는다.
* 이응다리(금강보행교) -세종특별자치시 세종동 29-87 * 국립세종수목원 -세종특별자치시 수목원로 136 * 대통령기록관 -세종특별자치시 다솜로 250 지하1층, 1-4층 (우)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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