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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에서 인생을 먼저 다양하게 경험하신 분들의 지혜를 담은 말들 공유합니다. 사진 풍경이 아주 멋집니다. 본 내용은 카카오톡을 통해 일부 동문들에겐 이미 알려진 내용입니다. 이태리 출신 팝페라 가수 죠 아리아(Gio Aria , 본명은 죠르지아 푸만티 Giorgia Fumanti) 가 부른 Like a dream 도 소개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미리 누리는 천국이다. ★미련한 자는 자기의 경험을 통해서만 알려고 하고, ★ 지극한 즐거움 중에서 책 읽는 것에 비할 것이 없고, [명심보감] ★구원의 길은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통해 있지 않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마음으로 통한다. ★ 가장 큰 실수는 포기해버리는 것. ★ 어리석은 자의 특징은 타인의 결점을 드러내고, 자신의 약점은 잊어버리는 것이다. ★ 새로운 것을 보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 녹은 쇠에서 생기지만 차차 그 쇠를 먹어버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옳지 못하면 그 마음이 사람을 먹어버린다. ★ 인생에서 가장 큰 공백은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에 있다. ★ 정직한 사람은 모욕을 주는 결과가 되더라도 진실을 말하며, ★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춤을 추어라.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는 데 있다. ★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는 수천 가지 이유를 찾고 있는데, 한 가지 이유만 있으면 된다. ★ 설탕물 한 잔을 마시고 싶을 때 내가 서둘러야 소용이 없다. 마음대로 더 늘릴 수도 없는
★ 영원히 살 것 처럼 꿈을 꾸고, 오늘 죽을 것 처럼 살아라. ★피할수 없으면 즐겨라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당신이 그들과 전적으로 함께 있다는 느낌을 전하라. ★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놓여 있다. [러시아 속담] ★ 모든 일에 예방이 최선의 방책이다. 버릴 물건은 무거워지기 전에 빨리 버려라. ★ 결혼은 작은 이야기들이 계속 되는 기나긴 이야기다. ★동등하지 않은 관계를 동등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 ★ 보리 한 줌 움켜쥔 이는 쌀가마를 들 수 없고, 곳간을 지은 이는 곳간보다 큰 물건을 담을 수 없다. 평생 움켜쥔 주먹 펴는 걸 보니 저이는 이제 늙어서 새로 젊어질 때가 되었구나. ★ 희망이 도망치더라도 용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용기는 힘의 입김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흔히 삶의 소중함을 잊고 산다.
★ 제 아이를 남들에게 비교하지 않고, 제 아이의 오늘을 어제와 비교하지 마음은 곧 내 마음의 평화를 남의 *********************** 오늘은 아주 훌륭한 이태리 출신 팝페라 가수와 노래를 소개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가수라 그녀가 부른 여러 노래를 스마트폰에 담아가지고 있습니다. 이태리 태생의 Giorgia Fumanti (죠르지오 푸만티) 인데 1975년생 올해 37세입니다. 한국에선 예명인 죠 아리아(Gio Aria) 로 알려져 있는 소프라노 음역대의 팝페라 , 크로스오버 가수입니다.
Gio Aria 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으로 손꼽히는Cinque Terre의 소도시 Monterosso al Mare 에 거주하다가 10여년 전부터 캐나다에서 활동중입니다. 16살 때 Citta de Aulla Choir에서 전문적으로 노래를 시작한 Gio Aria는 곧 바로 감독의 눈에 띄어 솔로를 맡게 되고 2년 후 이탈리아의 La Spezia에서 고대 및 중세 음악으로 수 차례의 상을 고교 졸업 후 이탈리아의 권위있는 Music Conservatory of Parma에서 성악과 피아노를 공부했습니다. Gio Aria 가 부른 “Like A Dream”은 전자음악으로 유명한 반젤리스(Vangelis) 의 명곡 13곡을 그녀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앨범 대표곡이며, 이 노래는 스페인의 유명 소프라노 몽쉐라 카바예(Montserrat Caballe) 가 불러 유명해진 곡입니다.
풀어내는 듯 하며, 고음 처리가 환상적입니다. 죠 아리아는 2006년 호세 카레라스와 듀엣으로 한국을 방문 공연한바 있으며 전주 소리축제에도 참가했습니다.
죠 아리아 ( 죠르지오 푸만티)
몽쉐라 카바예 현존 세계 소프라노 가수중 최고로 평가받으며 전설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대를 이은 소프라노로 알려집니다. 스페인 태생이며, 만년에 체중이 엄청 나가 "여자 파바로티" 로 불립니다. 1933년생으로 79세입니다. 소프라노 조수미, 신영옥 씨는 한국등 일부 국가에선 지명도가 있지만, 몽쉐라 카바예의 명성을 따르기엔 솔직히 약해보입니다. 몽세라 카바예는 마리아 칼라스가 인정한 진정한 그녀의 계승자이며,그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벨칸토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 가수로 기교와 호흡이 뛰어난 벨칸토 창법으로 유명합니다. 수많은 추종자들이 20세기 최고의 디바로 추앙하고 있는 마리아 칼라스는 그녀의 후계자로 누가 가장 유력할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상당 히 민감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이런 질문에 대해 마리아 칼라스는 서슴없이 스페인 출신의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를 지 목했습니다. 그녀의 딸 몽쉐라 마티도 역시 유럽에서 소프라노로 음악 활동하고 있습니다. 몽쉐라 카바예의 젊은 시절에 얽힌 이야기 몽쉐라 카바예가 20대 초반일 때, 한 매니저에게 오디션을 받은 일이 있다. 그는 카바예의 노래를 듣고 “목소리도 재능도 없다. 고향으로 돌아가 집안 일이나 돌보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당시 그 매니저가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 든, 아니면 전혀 안목이 없는 무지한이었든, 카바예가 그의 얘기를 듣고 상심해 포기했다면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소프라노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카바예가 30대에 이를 때까지 무명의 가수였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목소리가 섬세하고 투명한 것에 비례해 음량이 작다 는 카바예 의 단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단점은 훗날에 카바예의 특기로 자리잡았다. 특유의 ‘메차 보체’(mezza voce; 반으로 줄인 음. 고음에서 음량을 줄여 여리고 부드러운 음으로 노래하는 것)가 그것이다.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21세 때 고향의 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56년에 본고장인 이탈리아로 갔지만 그곳에는 유난 히 ‘목소리 큰’ 사람들이 많았다. 그곳에서는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카바예는 바로 스위스 바젤 오페라 극장으로 옮겨 여러 단역과 조역을 맡던 그는 60년에 스칼라에 데뷔했다. 하지만 여전히 단역이었다. 65년은 32세가 되던 카바예에게 의미 깊은 해였다. 글라인드본 음악제에서 ‘피가로의 결혼’의 백작 부인과 ‘장미의 기 사’의 마샬린을 노래했고, 카네기 홀에서 열린 갈라 형식의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로 뉴욕에 데뷔했기 때문이다. 당시까지 는 목소리의 특성상 경쾌하고 가벼운 드라마티코 다질리타(dramatico d’agilita)로 분류되었다. 그리고 70년에 이르러 스칼라에 주역으로서 입성했다. 역시 ‘루크레치아 보르지아’였다. 이후 그녀의 음성은 급격히 무르 익었다. 성량도 풍부해져 드라마티코나 리리코 스핀토로 성장했다. 오늘날에도 카바예가 대기만성형의 성악가의 대명사 로 불리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벨리니의 ‘해적’(EMI), ‘노르마’(RCA),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필립스), ‘루크레치아 보르지아’(RCA), 베르디의 ‘군도’(필립스), ‘해적’(필립스), ‘루이자 밀러’(데카) 등의 우수한 음반을 남긴 카바예는 마리아 칼라스, 서덜랜드를 잇 는 19세기초 벨 칸토 레퍼토리의 최고의 가수로 70년, 80년대 세계 성악계를 지배한 소프라노 가수다. 몽쉐라 카바예가 부른 Like a dream 유투브 동영상 (이 노래는 몽쉐라 카바예가 67세 때 녹음한 노래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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