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르릉. 전화가 울린다.
점심을 먹으려고 준비하던 참이다. 아니 휴일이라 아침이 늦었다. 늦은 아침 겸 점심이다. 뛰어가 받는다.
"나다!"
익숙한 목소리가 건너온다. 아버지다. 낚시를 가셨단다. 김천으로 가셨단다. 보나마나 새벽에 나섰다가 지금 돌아가시는 길일 것이다. 오래도록 연락 없는 둘째 딸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서 전화하셨단다. 한 마리도 못 잡았다고 투덜대는 아버지 목소리 건너로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어머니다. 목소리만 들어도 근심 어린 표정이 선하다. 염려없다해도 언제나 걱정이 많은 어머니. 전화를 끊고 주방으로 돌아온다.
양념장을 만들던 참이다. 청포묵에 끼얹어 먹으려는 것이다. 묵은 하얗고 잡티하나 없이 깨끗하다. 그래서 그럴까. 청초하게 보인다. 사실 음식이 청초하게 보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흰빛 때문에 순수하고 깨끗해 보인다는 말이 옳다. 따지고 보면 묵에 특별한 맛이 있을 리 없다. 순전히 양념장 맛일 것이다. 양념이 지닌 특유의 고소한 맛이 그대로 살아나고 묵이 지니고 있는 산뜻함 때문에 사랑 받을 터이다. 묵을 싼 랩을 벗기려니 미얀마산이라는 딱지가 눈에 뜨인다. 미얀마라니..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그 흔하디 흔하던 묵마저도 외국에서 들여다먹는 시대가 되었는가. 중국산이야 하도 흔해서 별다른 느낌을 주지 않지만 미얀마는 여전히 낯설다. 아웅산 수지나 아웅산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을 뿐인데 그 미얀마에서 우리 고유 음식이라 할 수 있는 묵이 왔다. 아니 묵이 온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녹두를 미얀마에서 들여다 묵을 만들었다는 소리일 것이다.
포장을 벗겨낸 묵을 도마위에 놓고 납작납작하게 썬다. 간장에 찧은 마늘과 송송 썬 대파, 고춧가루와 참기름 그리고 깨소금을 넣어 만든 양념장을 수저로 떠낸다. 청포묵을 흰 접시에 가지런히 담고 그 위에 양념장을 뿌린다. 흰 묵 사이로 간장의 검은 빛과 고춧가루의 붉은 빛 그리고 파의 녹색이 어우러져 순간 추상화를 만든다.
가을이 되면 친정어머니는 도토리를 주워다 묵을 만드셨다. 며칠이고 흡족할 때까지 산에 찾아가 주워온 도토리를 일일이 골라내고 박박 문질러 씻어낸 다음, 빻아서 가루를 만들고 그리고는 하루 종일 걸려 묵을 만드셨다. 학교 갔다 오면 함지박 물 속에 갈색 묵이 담겨 있었다.
그 날 저녁상에는 도토리묵이 올라왔다. 그리 힘들여 만드셨건만 씁쓸한 맛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그 묵에 나는 젓가락도 대지 않았다. 며칠 동안 도토리묵은 계속 상에 올라왔고 아버지 혼자 드셨다. 도토리가 없어지면 동부콩을 갈아 묵을 만들었다. 며칠 간 삶아 찧은 콩이 방안에서 말랐고 그런 다음 하얀 묵이 되어 상에 올라왔다. 동부콩으로 만든 묵은 먹기가 한결 나았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어머니가 주워오고 사오던 도토리나 콩은 이제 외국에서 들여오는 시대가 되었다. 기계가 어머니 혼자서 씻고 빻고 우려내던 과정을 대신한다. 아무래도 쉽고 한결 더 양이 많을 것이다. 국제화, 자동화가 이 시대의 추세이니 앞으로 더 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머니 시대에는 누구나 만들었건만 이제는 만들 줄 아는 사람이 귀한 시대가 되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묵은 여전히 우리가 추억하던 그 맛일까. 정성 대신에 노고 대신에 지금 나는 편하게 수퍼에서 미얀마산 원료로 만든 묵을 산다. 귀찮은 과정 모두를 생략함으로 인해 나는 그 시간을 벌었다. 하루 종일 혹은 몇 일간의 수고를 벌었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얻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던 간에 나는 묵을 만들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내게는 많은 일이 있으므로...그렇다면 제프리 러프킨이 말하던 “노동의 종말”이 정말로 실현 된 것일까. 아니 그렇지는 않다. 그가 말하던 노동의 종말 시대가 오려면 아직 멀었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제 1 생산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 못마땅했다. 가장 밑바닥의 생산자 혹은 직접 생산에 종사해야 하는 제 3세계 노동자의 노고를 누락하고 선진국, 가진 자들에게만 가능한 노동의 종말을 다룬 것이 못내 찜찜했다. 결국 기계화 혹은 자동화로 인한 편의와 수고의 종말은 선진국의 특혜 받은 생산자에게만 해당되는 것 같아 서글펐다. 그때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내 주위의 삶, 여전히 제 1생산자인 나 자신과 가까운 이들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
지금 우리는 어디에 와 있는가. 그가 말하던 장밋빛 미래는 정말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정말로 노동은 끝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은 예전에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혹은 만들기 위해 투자하던 그 시간들을 기계화로 얻었지만 과연 그 시간들을 귀중하게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을까. 그렇다고 믿을 수 있을까. 우리 삶은 먹을거리를 얻는데만 바치기에는 대단히 귀중하다. 그러나 내게 귀중한 이 삶은 미얀마의 누군가에게도 귀중하지 않을까.
어머니는 많이 늙으셨다. 내가 이만큼 자라, 아니 이만큼 나이 먹고 늙어 씁쓸함이 어떤 맛인지, 그 맛을 그리워하게 된 만큼, 그 쓰던 도토리묵이 정말로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된 만큼 많이 늙으셨다. 입에 단 것만이 맛이 아니라 입에 쓴 것도 맛이라는 알게 될 정도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머니는 많이 아프셨다. 대수술 두 번에 허리는 옛날 그림에 나오는 할머니들처럼 기역자로 구부러지고 연골이 닳아 없어졌다고 해서 무릎 수술까지 한 터라 지팡이 없이는 걷는 것조차 힘들어 이제는 산이 아니라 밭에도 갈 엄두도 못 내신다. 그래도 어머니는 여전히 읍내 시장에서 도토리가루를 사다가 묵을 만드신다. 시골 장이니까, 시골장이니까 사람들이 순박할 것이라고 어머니는 믿으시는 걸까. 진짜 도토리 가루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시는 걸까. 아마 아실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머니는 도토리 가루를 사다가 묵을 만드신다. 일년에 한, 두 번 명절 때 만드는 그 묵이 이제는 왜 이리 맛있을까. 지난 설에도 어머니는 동부콩으로 묵을 만드셨다. 양념 풍성하게 얹어 커다란 접시에 담아 상에 올려놓은 그 묵은 순식간에 없어졌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입맛을 다셔가며 먹었다.
양념 넣어 무친 묵을 한 점 집어 입으로 가져간다. 말랑말랑하고 고소하고 상큼한 청포묵. 원산지 표시는 달라도 그 맛은 예전과 다름없는 것 같지만 한 접시로 족하다. 나는 남은 묵을 그릇에 담아 뚜껑을 덮어 냉장고에 넣는다. 차가운 냉장고 속에서 묵은 굳어져 딱딱해질 것이다. 생각나면 그 묵을 꺼내 뜨거운 물에 데치겠지. 뜨거운 물 속에서 묵이 도로 투명하고 말랑말랑해지면 꺼내어 식혀 양념을 만들어 끼얹을 것이다. 그 묵을 먹으면서 어머니를 생각하고 지나간 시절을 생각하고 그리고 이제는 먼 곳에서 수입해와야만 하는 우리의 현재를 생각하겠지.
지금 내가 먹은 것은 묵이다. 묵이라는 단순한 음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미얀마산 묵이다. 그 안에는 수많은 고리가 있다. 내 어머니와 그 간의 세월과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본다.
내게 묵은 묵이 아니다. 어머니의 젊음과 그 노고와 정성이 가져다준 산뜻함이 어우러진 추억이다. 그러나 묵은 여전히 묵이다. 순수하고 깨끗한 음식으로 혼자서는 맛을 낼 수 없는 음식이다. 무엇보다도 세계라는 고리가 한데 어우러진 음식이 될 것이다. 어디 묵 뿐이랴..내가 현대에 살고 있음을 드러내주는 음식 혹은 일이 좀 많겠는가.
예전 그 도토리묵이 그립다. 그 씁쓸한 도토리묵이 많이 그립다. 지금이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첫댓글토종 고사리를 산다고 일부러 직지사까지 갔다왔더니 중국산 고사리더라고...그런 시대에 우린 살고 있습니다. 그 쓰던 도토리묵이 정말로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인생을 살만큼 살게 된 걸까요? 저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요. 제 입맛도 세상 따라 변했거든요.^^
내가 먹는 모습에서 엄니는 아버지의 모습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도토리를 줍는 일부터 양념장을 만드신 그 과정 내내 그럴 것이다.... 희야님 말처럼 어머니의 노고와 정성을 먹는 것으로도 충분한 보상은 받은 셈이니....엄니의 추억을 뺏을 자격이 내겐 없으므로 ...
첫댓글 토종 고사리를 산다고 일부러 직지사까지 갔다왔더니 중국산 고사리더라고...그런 시대에 우린 살고 있습니다. 그 쓰던 도토리묵이 정말로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인생을 살만큼 살게 된 걸까요? 저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요. 제 입맛도 세상 따라 변했거든요.^^
돌아가신 아버님의 좋아하신 특별식이 도토리묵이어서 습관 탓인지 엄니는 아직도 해마다 손이 많이 가는 도토리묵을 만드시는데... 꾸역꾸역 주는대로 먹으며 그 도토리묵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를 못하고 있다.
내가 먹는 모습에서 엄니는 아버지의 모습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도토리를 줍는 일부터 양념장을 만드신 그 과정 내내 그럴 것이다.... 희야님 말처럼 어머니의 노고와 정성을 먹는 것으로도 충분한 보상은 받은 셈이니....엄니의 추억을 뺏을 자격이 내겐 없으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