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기독교인으로
대연성결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예수전도단 제주 열방대학 성경연구학교장인 이지웅 목사님을 모시고 수련회를 시작했지요.
첫 강의에서는 구약의 제사가 신약의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떠한 패러다임 전환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에 의해 정립된 것이죠.
여기서 그런 것에 대해 쓰고 싶은 건 물론 아닙니다.
오늘의 강의가 저에게 재밌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보단 제 신앙과 우울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엄밀한 교리적 체계를 구축하고 그것의 논리로서의 진리담론은 필연적으로 외부를 배척하는 성격을 가집니다.
어릴 적엔 교회를 다니며 배웠던 것들이 마냥 이상적인 사랑의 메시지로만 여겨졌습니다.
그것이 너무 좋았고, 다들 그렇게 살면 모두가 즐겁고 행복하고 따뜻하고 착할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커가면서 교회에서 또 기독교 동아리 등을 통해 교리 교육을 받게 되었고, 그럴수록 무조건(사랑)이라는 조건(믿음) 혹은 사소한 차이에 대한 과대망상적 적대 따위를 접할 수 밖에 없었죠. 믿음의 영역은 의지나 노력의 산물로만 보기 어렵기 때문에 곤혹은 쉽게 가시지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쓴 신앙에세이 글 때문에 한 신앙인으로부터 우려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요. (http://cisiwing.blog.me/220013536273 참조)
조만간
'나의 신앙, 나의 우울'에 대해 좀 더 솔직한 썰을 나눌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첫댓글 그러고보면 저는 예전에 신앙과 회의 라는 주제로 참 고민을 많이했었는데~
변증학책도 많이 보았구요
저와 고민의 방향은 다르지만
두괴즐님의 신앙과 우울이란 주제의 나눔이 기대가 됩니다
아마 두괴즐님 가정환경과 은사 등등으로
비롯된 필연적 과정일 거 같아요~
저의 우울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는 사랑의 화신이고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지만, 그 공동체 외부에서는 누구보다 잔혹하고 무능한 하나님이라는 간극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경계를 강화하는 것이 면밀한 교리이고 충성이고요.
추신님도 신앙적 고민이 깊었나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