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론적인 설명은 그만하고 장 구성 순서대로 글을 쓰고자 합니다.
(앞서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제가 게재하고 있는 글들은 제가 따로 검증하지 못한 자료들이며 책의 내용을 옮겨드리는 것에 불과 합니다. 제의견을 피력할때는 ()를 이용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자와 영문 병기가 필요하다고 생각 되는단어는 ()를 생략하고 병기하겠습니다. 편한글쓰기를 위해 하오체를 사용하였습니다. 양해 말씀 부탁드리며 부족한 부분이나 자료에 오류가 있다면 지적부탁드립니다.)
대규모 해양무역이 이루어졌던 지중해 일대는 활발한 무역활동 만큼이나 해적행위 역시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지중해 해적 활동들은 로마 공화정 말기 폼페이우스의 대토벌 이전까지 3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며 지속되었습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BC. 2800년 경부터 배가 에게해를 항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역사상 최초의 해적들은 지중해에 근거를 둔 루카Lukka라는 해적집단으로 BC. 14세기경부터 미케네 문명의 발전과 함께 활발해진 에게해의 무역로를 노리고 키프로스와 이집트 등지를 습격하였으며 이들은 히타이트와 동맹을 맺고 '해양민족'에 동화되어 BC. 13~2세기 초까지 이집트를 습격하였다.
이집트의 연대기 사가들에 의하면 이들 해양민족은 에게해, 아드리아해, 서부 지중해에 이주했던 6개의 특정 부족들을 통칭하였는데 이들은 해적이기보다 공격적인 이주민으로서 부유했던 이집트를 노리고 소아시아일대에서 유입되었던 것 같다. 이들은 BC. 1120년을 전후하여 동부 지중해를 완전히 장악하고 배를 나포하고 도시를 점령하며, 무역과 함께 해적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이집트 공격은 람세스대제기의 황금기였던 당시 이집트가 잘 방어했으며 결국 BC.1186년 해양민족의 동맹과 함께 벌어졌던 나일 삼각주에서 해전을 끝으로 대규모 해적행위를 종식하였으나 점령지에 정착하였다.
이처럼 민족적 규모의 해적 행위 즉, 도시를 점령하여 민족이 정착하는 활동은 없었지만 배를 습격하거나 마을을 약탈하는 소규모의 해적들은 끊이질 않았다. BC. 10세기 그리스 도리아인들은 크레타섬을 거점으로 미노스문명을 침략하였으며, 이런 소규모 해적활동은 그리스 세계(동부지중해)에 있어 보편적인 활동으로서으로 도시국가마다 해적행위를 장려하거나 이를 방어하는 함대를 창설했다.
외딴섬을 은신처로 삼은 산발적인 해적행위는 BC. 6~5세기 강력해진 아테네 함대의 공격에 의해 저지되었고 아테네는 BC. 4세기 아나톨리아동맹을 형성하여 아나톨리아를 거점으로 경쟁국과 페르시아에 대한 해적행위를 장려하였다. 이들 아나톨리아 해적들은 아테네의 영향력이 약해진 BC. 3세기 에게해 연안을 약탈하였으나 이들은 BC. 192년 로마의 아나톨리아 점령 이후 실리시아로 이동하게 된다.
유명한 젊은 시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포로로 잡았던 해적들이 이 실리시아 해적들이다.
이 실리시아지방은 황페한 산악지형으로 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시리아, 이탈리아, 그리스의 해상무역로를 노리게 되었고 로마에 의해 밀려났던 해적집단들이 몰리게 됨으로서 지중해 최대의 해적거점을 형성하여 BC. 3~2세기 혼란했던 소아시대의 정치조건 아래에서 세력을 확대하였다.
이지역을 지배하게된 로마총독들 역시 숙련된 노동인력의 손쉬운 확보를 위해 이들을 암묵적으로 묵인하였다. 그러나 BC. 2세기말에 이르러 팽창된 해적세력은 에게해를 넘어 서부지중해까지 진출하였으며 무역품을 약탈하고 로마시민들을 포로로 몸값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약탈행위가 로마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자 BC. 101년 반해적법(제창자를 모르겠습니다.)을 통과시켜 소아시아지역의 항구에서 해적의 출입을 제한하였고, 이에 대한 반발로 해적들은 지중해 전역으로 약탈행위를 확대하였다. BC. 89년 폰투스의 미트리다테스는 로마의 보호령을 침공하고 로마의 해군력을 막기위해 이들 해적들과 동맹을 맺었으며 BC. 86년 해적함대는 로마의 전투함대를 격파하였다.
이들의 결합으로 인해 서부 지중해는 로마의 영향력에서 벗어났으며 술라가 미트리다테스의 군대를 격파하고 육지에 대한 로마의 영향력을 회복하였음에도 함대의 괴멸로 제해권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BC. 67년 로마는 제해권 확보를 위한 준비를 끝내고 폼페이우스에게 6천 탈렌트의 자금과 500척의 함대, 12만명에 대한 지휘권 80KM 내의 과세 및 징집권을 부여하여 해적을 토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