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 사시 예불을 마치고 차를 청양쪽으로 달린다. 청양 가는 길은 시골길이라 한산해서 좋다. 벌써 길가엔 코스모스가 하나둘 피어 있다. 파아란 가을 하늘아래 한들거리는 코스모스는 언제봐도 청초하고 예쁘다.
얼마전에 연락이 왔다.
"오랜만이지? 우리 이제 좀 모이자"
대학 다닐 때 대불련을 열심히 하던 회장선배의 전화였다.
76년도에 졸업했으니 벌써 30여년이나 되었다. 그 선배는 그래도 가끔 만난 적이 있다. 결혼전에 그 선배가 만리포에 있을 때 철 지난 여름, 갈매기 가득한 몽산포를 꿈처럼 거닐었던 때도 있었고, 서로의 결혼식때 오가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후엔 아이들 키우고 직장 다니느라 서로 연락할 새도 없었다. 이제 아이들도 어지간히 크고 나이도 먹으니 옛날 사람들이 생각나고 만나고 싶어진다. 지난 번에 공주에서 모이고 이번이 두번째다.
청양을 지나 부여쪽으로 향한다. 한참 가다보니 은산이 나온다. 은산은 별신제로 유명해서 은산별신제 전수관이 있다. 어느해인가 그 전수관에서 공주교대 학생들과 함께 대금 연수를 한 적이 있다. 회원중에 교대출신 선생님이 있어서였다. 작은 딸애와 함께 은산 별신제 전수관을 물어물어 찾아가던 생각이 난다. 언제라도 별신제굿을 보러 오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와 본 적이 없다. 대개 추운 정월에 하기 때문에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은산 별신제는 백제의 패망한 장수들을 위로하는 굿으로서 바로 부여 사비성이 가까우니 한많은 백제 유민들이 장수들의 혼을 위로하는 굿을 했을 것이다.
부여에 다 가서 중학교에 있는 선배에게 핸펀을 하니 궁남지로 직접 가란다. 계백장군 동상을 지나 우회전의 표시를 보고 궁남지로 향한다. 궁남지는 참으로 한가로웠다. 부여가 원래 작은 소도시이지만 특히 이 궁남지는 몇개나 되는 넓은 연못이 많이 있고 그 사이를 걸을 수 있는 소로가 있고 곳곳에 작은 원두막이 있어서 이렇게 한가로운 풍경은 다시 없을 것처럼 그렇게 편안했다. 아마 주위의 논을 연못으로 만들었나보다.
주차장에 좀 있으니 선배들이 탄 차가 도착한다. 부여중학교에 있는 선배와 대천에 있는 선배가 모여서 온 것이다. 지난 번에 삽십년만에 처음 만났을 때 너무 반가웠다. 그들은 세월이 가도 별로 변한 것이 없이 다 고만고만한 삶을 살고 있었다. 대불련에 다니던 네명중에 한명은 성당, 한명은 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종교가 같으면 더 빨리 모일 수도 있었는데 종교가 다르니 이제야 만나게 된 것이고 언제나 넉넉했던 회장 선배가 건강이 안 좋은 한 분을 불러 내려고 더 모이자고 한 것이다.
오랫만에 만난 우리는 이구동성 학창시절을 이야기하며 깔깔 거렸다. 특히 대불련이니 방학때 절에서 수련회하던 추억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또 방학때 사찰순례하며 다닌 얘기들을 하며 깔깔 웃었다. 아무것도 두려움이 없던 시절, 배낭 하나메고 한달여를 전국의 유명한 절을 순례하며 큰스님 한테 가서 무턱대고 글 써달라고 해서 지금도 간직하고 있단다. 종교에 열심인 선배는 그때는 절에 들어 가서 비구니가 되려고 했는데 지금은 성당에서 종신서원을 했단다. 평신도가 수녀처럼 사는 것이란다.
한시가 넘었으니 우선 점심을 먹기로 했다. 궁남지 옆이니 연잎밥을 먹고 싶어 물어서 찾아 들어간 식당은 연못이 가까이에서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다. 지난 번에 홍콩 갔을 때 연잎밥이 나왔다. 남편은 아산 인취사에서 먹던 대로 어린 잎인줄 알고 잎까지 먹으라고 했지만 질겨서 먹을 수가 없었다. 또 홍콩의 연잎밥은 고기와 야채까지 넣어서 밥 하나만 먹으면 됐지만 여기의 연밥은 찰밥에 여러가지 잡곡을 넣어서 쪄서 연근장아찌, 연근 김치, 부침등 연으로 만든 반찬이 같이 나왔다. 연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더니 맞는 말인가 보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궁남지를 거닐었다. 연꽃종류도 다양해서 한쪽에서 큰 연꽃이 거의 지어가니 다른 연못엔 가시연과 수련이 피고, 노란 꽃이 피고 있었다. 한여름에 궁남지에 연꽃이 한창이라는 소리를 들었어도 일부러 올 기회가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모임을 하니 한가하게 올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 그때 연꽃이 너무 아름다웠어, 통근하느라 아침에 대전에서 오면서 이 곳을 한번은 꼭 들렀어, 혼자 보기가 아쉬워서 오라고 친구들한테 말은 했는데도 그냥 오기가 쉽지 않지, 오늘 이렇게 너희들이 오니 참 좋아"
부여에 직장을 갖고 있는 선배가 말한다.
"부여가 깨끗하고 참 좋아, 이곳에 있는동안 친구들한테 모두 보여 주고 싶어"
연못 사이에 난 작은 길을 거닐다 원두막에 앉아서 가지고 온 대금을 꺼내 불기 시작했다. 궁남지 연못가에서 불으면 좋을 것 같애서 아침에 챙겨 온 것이다. 우선 대금 산조를 불었다. 요즘에 새로 산 산조대금은 소리가 깨끗해서 자꾸 불고 싶어진다. 다음엔 정악 대금으로 청성곡과 상령산등을 불었다. 선배들은 '와! 멋있다, 좋다" 를 연발하며 부러워한다. 이런 때는 젊었을 때 짬짬히 시간을 내어 대금을 배운 것이 자랑스럽고 좋다. 한가지라도 악기를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은 자기의 재산이 될 수도 있다.
그때 공주 선배가 도착했다는 핸펀이 온다.
" 얘, 대금소리 따라 와, 숙이가 대금 불고 있어"
좀 있다가 대금 소리를 따라 공주 선배가 왔다.
" 멀리서도 대금 소리가 은은히 들리고, 참 좋다 얘"
" 한국악기는 가까이에서보다 멀리에서 더 잘 들리는 것 같애요, 자연에 있는 대나무와 갈대청등 자연에서 직접 채취해서 만들어서도 그렇고, 원래 산이나 물가의 정자에서 바람따라 멀리 가도록 연주를 해서 그런거 같애요, 우리의 창도 그렇고요, 대금은 두시간쯤 혼자 놀기 딱 좋아요"
" 그래, 우린 이제 혼자 노는 방법을 배워야 해, 항상 놀아줄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
" 네 남편한테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 하더라고 말해, 그렇게 공주에서 여기까지 데려다 주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나도 지난번에 집에 가서 남편한테, 내가 그래도 가장 시집을 잘 온것 같대........하니까 입이 벌어져서 싱글벙글하더라"
" 그래, 남자는 단순해서 조금만 치켜주면 흐뭇해 해, 그래야 다음에도 또 데려다 주지"
선배들이 늦게 온 이선배한테 코치한다. 그녀는 너무 집과 직장, 성당만 알고 살아 왔단다. 그러나 이제 건강도 안 좋고 모범 생활만 오래 하다보니 진력이 나고 짜증이 나서 견딜수가 없다고 한다.
" 이제 나도 좀 탈출해서 편하게 살고 싶어, 모범생활이 지겨워, 그런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친구도 없어, 지금이라도 너희들이 불러줘서 고마워"
"그래, 나이 먹으면 친구가 참 중요해, 서로 오가는 친구가 없으면 너무 외로워, 그러니까 무조건 나와"
부여선배는 부소산에 가서 낙화암도 보고, 백마강에서 배도 타는 여러가지 계획을 세웠지만 그곳은 다음에 가고 서동요 세트장을 가자고 한다. 요새는 드라마 세트장이 관광지로 인기이니 부여도 서동요 세트장을 관광지로 이용하기 위한 홍보가 대단한 것 같다.
시내 곳곳에 서동요 촬영지로 가는 길이 표시 되어 있다. 부여시내를 벗어나 한참 가서 세상에 이런 오지까지 올 일이 없을 것같은 끝자락 저수지 근처에 세트장이 있었다. 아직도 세트장은 마무리가 안되어 어수선했지만 천사백여년전 이 땅에서 백제인의 삶이 그랬을 것 같은 옹색한 집, 툇마루, 저자거리등이 재현되어 있었다. 아직 서동요 드라마가 시작되지 않아서 잘 모르나 백제의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라고 한다.
첩첩산지 오지마을에 사람들이 찾아왔고, 한쪽에서는 벌써 먹거리터가 생겨났다. 대궐인듯 보이는 큰 집안에서는 촬영이 한창이어서 사람들은 구경하는데 조용히 하라고 관계자들은 주의를 주고 있었다. 백제의 옷을 입은 단역배우들이 이쪽저쪽에서 무료하게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 저 사람이 그 유명한 피디야"
소근소근대며 사람들이 얘기를 한다.
"어제 이보영 왔었대" 근처 중학생인듯한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배우들이 있을법한 버스를 기웃거린다.
미국에 갔을 때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간 적이 있다. 모든 것이 컴퓨터화되어서 어떤 곳을 지나면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둑이 터져 물바다가 되고 태풍이 몰아치다가 그곳을 지나면 삼분만에 정상으로 돌아가고...........
또 어떤 곳은 총탄이 날아가고 수류탄이 터지고 기름탱크가 폭파되어 불바다가 되었다가 우리가 지나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고........... 참으로 그런 것을 보며 미국의 힘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영화 세트장도 그 정도 움직이는 세트가 되면 좋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서동요 세트장을 나와 시내로 오니 벌써 여섯시가 다 되어가나 아쉬우니 정림사지를 가자고 한다. 전에 정림사지에 왔을 때는 그냥 벌판에 백제 오층탑과 불상 하나만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이렇게 전각을 지어 부처님을 모신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스물일곱살일땐가, 실연의 쓰라린 아픔을 간직하고 동생과 같이 바람이나 쐬자고 부여에 온 적이 있다. 이 정림사 탑앞에서 그때 유행하던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찍은 사진이 있다. 아마 그때 허리를 조르고 졸라서 24인치 옷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
또 하나의 기억은 언젠가 가족들과 같이 부여에 와서 정림사지를 거닐며, 남편이 그때 중학교에 계시던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곧바로 나와서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하루 묵어가며 부여를 구경한 적이 있다. 그때 추어탕을 잘 끓이던 나와 동갑인 그의 부인이 암으로 돌아 가셔서 오늘 장례를 치르는 날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어제 남편이 상갓집에 갔다가 밤늦게 돌아왔다. 지난 번 병원에서 아이들의 혼사에 서로 다니자고 그렇게 약속을 했건만............
우리가 남은 날이 적어도 삼십년은 될거라고 막연히 생각하지만, 사실은 죽음이 언제 갑자기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그 부인도 끝까지 자기가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기는 4개월전까지 건강하게 직장에 다닌 사람이 어떻게 죽음을 실감할 수 있을까?
다시 궁남지근처로 가서 연냉면을 먹고 헤어져 돌아오는 길은 이미 어두워져서 조심해서 운전을 해야했다. 차 안엔 세상의 모든 음악이 감미롭게 흘러 나온다. 오늘은 남미음악인 안데스음악 특집을 하고 있었다. 안데스 산맥 깊은 산속에서 야크를 키우며 사는 사람들의 진한 외로움이 노래에 묻어있다.
해질녁 조용히 흐르는 안데스음악을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첫댓글 좋은 경험을 하셨군요. 저도 초 여름 궁남지 연꽃을 본 적이 있는데 가히 환상적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오랜만의 만남 또한 좋은 시간으로 흘러갔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덕분에 부여 구경 한 번 잘 했습니다.감사합니다.
산자락님 글은 들기름냄새가 절절해요 언제나...행복한 시간 많이 많이 만드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