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문지기가 좋사오니
시 편 84 : 1 - 12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불행한 사람입니까? 집도 부모도 없는 고아가 매우 불행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매우 불행합니다. 배신을 당했다든지,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애인으로부터 혹은 사회로부터 속기만 한 사람들은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다’고, 자신조차도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믿을 것이 없는 사람은 매우 불행한 사람입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소망도 없습니다. 그래서 살았으나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성도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매우 큰 행복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엡2:8).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는 것은 무한한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리고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불행합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서 하루를 지겹게 지내고 있습니다. 봉사의 대상이 없는 사람입니다. 일거리나 섬길 수 있는 대상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참으로 불행합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내 자신을 바치고 수고하는 희생에서 최고의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봉사하고 수고하므로 맛보는 기쁨을 모르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0절에 “주의 궁전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서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행복하다는 말씀입니다.
시편 84편은 ‘고라의 자손의 시’입니다. ‘고라’는 레위의 증손으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여호와께 반역하다가 땅이 그 입을 벌려 삼킬 때 250명이 죽었습니다. 그때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않고(민26:11) 성전 문지기와 전병을 굽고 진설하는 떡을 만드는 일을 하였습니다(대상9:19,31,32). 고라의 자손들은 성전에서 찬양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고라 자손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므로 행복했습니다. 고라 자손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귀담아 들으며 그 말씀에 은혜를 받는 성도가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봉사하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시편 기자는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10)라고 노래하였습니다. ‘문지기’란 가장 낮은 직분입니다. 성전 문지기란 성전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살피는 봉사직분 입니다.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을 가장 큰 기쁨이요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대통령을 서로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행복을 느끼기보다 괴로운 것입니다. 여기 저기 비난의 소리가 들려오지요, 잘하느니 못하느니 온갖 비난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하물며 죽이려고 하는 음모도 있기 때문에 맘대로 다니지도 못합니다. 잠도 마음 놓고 잘 수 없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봉화 마을에 들어와서 첫 마디가 ‘야 좋다’라고 외쳤습니다. 상당한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좋다는 것도 며칠이 못되어 죽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였습니다. 왕이란 최고의 직위입니다. 그러나 왕위가 그렇게 행복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대적이 많았습니다. 하물며 아들 압살롬이 왕이 되고자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차마 아들과 싸울 수 없어 왕위를 내놓고 피난을 했습니다. 이산 저산을 방황하며 숨어 다녀야 했습니다. 밤이면 광야에 누워 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그리운 것은 왕궁이 아니라 성전이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1). 주의 장막 성전이 그리웠습니다. 당시 ‘주의 장막’은 솔로몬의 성전과 같은 웅장한 성전이 아닙니다. 해달의 가죽으로 만든 천막입니다. 그 안에 법궤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는 그 주의 장막이 그리웠습니다. 화려한 왕궁을 사모하지 않았습니다. 성막을 사모했습니다. 성막에 들어가서 제사지내는 것이 소원이였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보면 시골 마을 한 가운데 십자가를 높이 세운 교회당을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특별히 중국을 처음 여행했을 때 생소한 경치를 눈여겨보다가 마을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교회당을 보고 매우 반가웠습니다. 누군가 저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을 생각할 때 성전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장막을 사모하여 쇠약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3)라고 하나님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그리고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다’(4)고 했습니다.
‘주의 집에 사는 자’는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나와 여러분들입니다.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나와 여러분들이 복이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주의 집에 사는 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도들입니다. 성전에서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기 때문에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있고, 기도가 있고, 하나님의 응답이 있으니 우리의 영혼이 살아 숨 실 수 있는 곳입니다.
북한에 성도들은 성전도 없이 지하에서 숨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 올라와 하나님을 찬송하며 예배드리는 우리들을 보고 복있는 자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들은 날아다니는 제비도 제 집이 있는데 자신들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성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며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성전에 올라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자신이 복있는 자라는 것을 알고 감사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전에 올라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올라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나 자신이 복있는 자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의 집에서 주를 찬송하기 때문에 주의 집에 사는 자가 복입니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4)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찬송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불러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찬송은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십니다. 입술에 발린 찬송은 하나님께서 역겨워하십니다.
우리 교회는 예배시간에 불러드리는 찬송이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몇 분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가 보기에는 찬송을 근성으로 부르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찬송은 찬송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께 찬송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이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의 집에서 주께로부터 힘을 얻기 때문에 복입니다. “주께 힘을 얻고”(5),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지친 몸과 영혼이 성전에서 다시 힘을 얻고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세상을 살며 지친 성도들에게 성전은 에너지를 보충하는 곳입니다. 자동차가 기름이 떨어졌을 때 기름을 가득히 채워주는 주유소와 같습니다.
주의 집에는 시온의 대로가 있기 때문에 주의 집에 사는 자가 복입니다.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5). ‘시온의 대로’란 천국으로 가는 길입니다. 성전은 천국으로 가는 대로가 있습니다. 교회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대로입니다. 교회를 통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지금 나와 여러분은 시온의 대로가 있는 주의 집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기 때문에 축복입니다.
주의 집에는 복을 채워주는 이른 비와 많은 샘이 있기 때문에 복입니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6).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성도들이 삶 속에서 수없이 부딪히는 고난과 그로인한 고통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이 눈물 골짜기를 지나가는 것처럼 고난을 당하지만 주의 집에 많은 샘물이 있고 이른 비로 복을 채워주시기 때문에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입니다.
성경에는 ‘비’를 복의 상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즘 가뭄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농작물이 말라 죽고, 마실 물도 없다고 합니다. 이럴 때 비가 오면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축복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기갈을 당할 때 주의 집에서 많은 샘물과 이른 비로 복을 채워주시기 때문에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의 집을 ‘주의 궁정’이라고 했습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10)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궁정이라고 해서 왕궁처럼 크고 웅장한 것이 아닙니다. 해달의 가죽으로 덮은 성막입니다. 광야에 부는 바람으로 모래 먼지가 덮인 성막 안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궤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죽으로 덮인 성막은 하나님의 집이며 주의 궁정입니다.
‘주의 궁정’과 ‘다른 곳’, ‘한 날’과 ‘천 날’, 그리고 ‘악인의 장막’과 ‘성전 문지기’라는 대조를 하므로 하나님의 전에 살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어떤 영예를 누림보다 비록 미천하고 보잘 것이 없는 문지기로 일을 할지라도 하나님을 받들어 섬기는 것이므로 가장 행복하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하루 사는 것이 다른 곳에서 천 날을 사는 것 보다 낫다는 고백입니다. 하루를 살지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더 좋다는 말씀입니다. 문지기란 성전에서 가장 비천한 신분입니다. 그러나 주의 집에서는 문지기로 봉사하는 기쁨을 아는 성도 고백입니다.
허기동 할머니가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하다가 돌아가시기 전에 아들에게 집에 가자고 말하더랍니다. 입원한 환자가 죽을 때가 되면 집에 가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집으로 모시지 않고 병원에서 임종을 했습니다. 죽음 심리는 자기가 평생을 살던 집에서 죽기를 원합니다. 성도가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했을 때 마음에 소원이 성전에서 올라가서 하나님께 예배 한번 드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죽기 전에 한번만이라도 성전에서 예배드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주의 전에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낫다는 고백입니다.
주의 전에서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문지기는 누구보다도 가장 힘들고 낮은 직분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잠들 때도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성전 문지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성전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살핍니다. 악한 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야 합니다. 성전의 거룩함을 지키는 사명자입니다. 행여나 악한 자가 성전에 들어오게 되면 성전의 거룩함은 상실되기 때문에 문지기의 사명은 귀중합니다.
오늘의 성전 문지기는 성전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성도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으로서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들어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문지기가 사명을 잘 감당하지 않으면 악한 자들로 인하여 거룩함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한 예배가 되지 못합니다. 문지기가 자기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면 거룩한 하나님의 집이 사탄의 소굴이 됩니다. 그래서 성전 문지기는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성전 문지기는 한가하게 시간만 보내는 직분이 아닙니다. 잠시도 한눈을 팔든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깨어 정신을 차리고 문지기직을 잘 감당할 때 성전은 거룩하며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실 수 있는 예배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성전 안에는 제사장도 있고 서기관도 있고 장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문지기는 가장 낮은 직분이지만 성전의 거룩함을 책임을 진 매우 중요한 직분입니다.
찬송을 부르며, 세상에서 지친 영혼이 힘을 얻고, 시온의 대로가 있고, 많은 샘물과 이른 비로 복을 채워주는 주의 집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가 복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복을 받았습니다. 주의 장막에서 문지기가 좋다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믿음을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아버지 의 성전에 문지기로 있는 것이 최고의 축복임을 감사하며 오늘도 마음껏 주를 찬송하며 영광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