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연
김태두
연이 오른다. 웅이는 연 따라 마음이 둥실둥실 하늘로 올라간다. 멋지게 날고 있는 연을 바라보는 웅이는 좋아서 부르르 가슴이 떨리기조차 했다. 얼레에 감는 줄 따라 연은 내리박다가 곳 힘차게 솟기도 한다. 솔개가 이렇게 잘 날까?
철이도 연과 얼레를 가지고 달려오고 있었다.
“웅아! 방학하는 날 모은 유리가루 바수러 가자.”
오자마자 숨을 몰아쉬며 철이는 여태껏 모은 유리조각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내가 돌이에게 부탁해 놨으니 가기만 하면 돼.”
웅이와 철이는 짬짜미 유리조각을 줍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도 연실에 쇠를 매겨서 연 싸움을 걸러 다니는 아이들이 함부로 덤벼들지 못하게 하자는.
이들 때문에 마음 놓고 연을 띄울 수 없다. 온 들판을 휘젓고 다니며 날이 선 연실로 막무가내로 얼리기 때문이다. 쇠 매기지 않은 줄만 끊어져 불쌍하게 날아간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은 저 벌판 끝까지 잡으러 가야 했다. 그런 때는 눈물까지 났다.
둘이는 부지런히 유리조각을 주워 모았다. 웅이가 먼저 제의를 했지만, 줍기는 오히려 철이가 더 열심이었다. 넓은 운동장을 두루 다니는 것보다 쓰레기 소각장을 뒤지면 유리조각이 많이 나오는 것도 철이는 알았다. 태평스러운 웅이는 유리조각을 그렇게 열심히 줍지 않았다. 철이가 이제 바수러가자고 했을 때 기뻐하면서도 예사로 생각했다. 서로 엇비슷하게 주웠을 거라고.
방학을 하자 말자 둘이는 숨겨두었던 보물자루인양 조심스럽게 들고 돌이 집을 찾았다. 돌이 집 대문간 안에는 옴팍하게 들어간 돌 구덩이가 있는 바위가 있다. 유리조각을 몇 개씩 넣고 몽실몽실한 돌멩이로 콩콩 찧었다. 고맙게 돌이가 앞장서서 찧어주었다. 철이도 흩어지는 가루를 솔잎으로 쓸어 넣으며 도왔지만 웅이는 흥뚱항뚱하며 구경만 했다. 철이는 그런 웅이가 못마땅했지만 참았다. 돌이는 힘이 세어 찧는 일도 잘했다. 웅이는 돌이가 자기와 친해서 찧을 곳도 마련해주고, 찧는 것도 도와준다며 우쭐대는 마음이 들어 있었다. 철이는 철이대로 돌이가 자기 친구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양지바른 곳이라 따뜻했는데 해가 서산머리로 기울자 추워서 손가락이 곱았다. 한나절이 거의 걸려 어른주먹보다 큰 가루뭉치를 만들었다.
둘이는 미리 의논한대로 이웃에 사는 창이 형을 찾아 갔다. 사실 둘은 독립되어 쇠를 매길 처지가 못 되었다. 그래서 유리가루부터 만들어 놓으면 꿈을 이루어지리라 믿었다.
“햐아! 많이 모았네. 그래 너 둘 우리 쇠 매기는데 넣어 줄 테니 그날 연실 가져온나.”
창이는 이들이 같이 유리조각을 주웠다고 하니 기뻤다. 이웃에서 한올지게 지내니 얼마나 좋은가. 재깍 승낙을 했다. 그 꿈이 이루어지니 웅이도 철이도 기뻤다.
이제 연실에 쇠 매기는 날만 기다리면 된다. 그런데 보름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다. 방학 끝날 날은 점점 다가오는데 애가 탔다.
웅이는 단지 창이 형만 믿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윗마을에 살고 있는 이종형을 찾아갔다.
“형은 연줄 쇠 매기를 언제 할 거야?”
“내일 할 건데 왜?”
“나도 좀 넣어줘.”
“너는 창이형에게 부탁하였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창이형이 언제 시작할지 모르겠어.”
“그러면 말이야. 창이형에게 맡겨놓은 유리가루를 가져와. 우리가 암만해도 좀 모자랄 것 같거든.”
“철이와 둘이서 모았는데…….”
“네 몫만 받아와.”
웅이는 곧 창이 형을 찾아갔다.
“형! 저번 우리가 준 유리가루를 돌려줘. 준이 형이 내일 쇠 매긴다고 해서 거기에 부탁하려고…….”
“그러지마. 나도 곧 할 거야.”
“형! 오늘 하고 싶어요. 내 몫만 찾아갈 테니 줘요.”
창이 형은 싫은 얼굴로 노려보더니 유리가루를 얼마쯤 덜어 주었다. 그런데 생각 외로 너무 적었다.
“왜 이것뿐이 안 줘요?
“철이가 얼추 다 주었다면서?”
“철이가 그래요?”
웅이는 화가 났다. 적은 양도 화가 나지만 철이가 얼추 주었다고 말한 것에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뭐? 자기가 다 주었다고? 거짓말쟁이! 그건 그렇고 돌이가 누구 때문에 돌 구덩이도 허락하고 찧어주기도 했다고.
준이 형은 유리가루를 받고 펼쳐보더니
“눈꽃밴맨허네. 이것 갖고 되겠나? 아무튼 내일 시간 맞춰 와.”
뒷날 준이형 집 마당에는 연줄에 쇠를 매긴다고 떠들썩하다. 사촌 형은 그의 친구들과 마당에다 공장을 차려놓고 연줄에 쇠를 매기고 있었다. 얼레를 잡고 연실을 슬슬 푸는 형, 커다란 솥에 물을 부어놓고, 불을 때는 형, 그 실을 물 끓이는 솥에다 아교와 부레를 넣어 연줄을 적시는 형, 밥풀을 종이에 쏴서 연줄에 유리가루가 잘 묻히게 실을 잡고 있는 형, 밥풀이 묻은 실에 유리가루를 묻히는 형, 물레에다 실을 감는 형 등 대여섯 명이 손발이 척척 맞게 움직였다. 웅이는 신기한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창이 형이 한 말이 자꾸만 떠올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방학이 끝나면 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같이 철이를 골려줄까 보다.
한편 철이도 탑세기주는 웅이에게 배신감이 들었다. 둘이 철썩 같이 쇠 매기자고 해놓고 혼자 먼저 해버리다니! 유리가루 만들 때도 대장처럼 구경만 하고 말이다. 이 기회에 웅이가 학교에서나 집에 와서나 자기를 얕보는 버릇을 좀 고쳐놓을까. 그렇지. 싸움을 걸어 웅이를 실컷 두들겨 패놔야겠다.
학교 다니기 전에는 철이가 웅이에게 이겼다. 그런데 웅이가 공부를 잘하여 반장을 하는 바람에 싸움 한번 못하고 져주었다. 그런 내가 힘이 없는 줄 알고 까불어! 키도 내가 한 뼘은 더 클걸. 좋아! 5학년 노식형에게 부탁하자. 그러면서 창이 형에게 태권도도 배워두며 개학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개학이 되었다. 며칠이 지나는 동안 둘은 학교에 따로 다녔다. 학교 가서도 웅이는 철이를 상대도 안 하며 무시했다. 철이도 웅이에게 관심 없는 척했다. 그러나 둘 다 속으로는 벼르고 있었다.
“집에 갈 때 같이 가자. 꼭!” 늘 먼저 가던 녀석이 웬일이야? 어느 날 집에 가려고 준비를 하는 웅이에게 다짐을 하며 철이가 급히 교실 밖으로 먼저 나갔다. 그러나 웅이는 그 말을 지킬 뜻이 없었다. 무시하고 돌이와 함께 나섰다.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눈송이가 하나씩 바람 따라 날리는 속을 웅이와 철이는 잰걸음으로 반쯤 달렸다. 학교 앞 가게에 눈깔사탕을 산다며 돌이가 가게 문 안으로 들어가고 웅이는 집터서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숨을 헉헉 거리며 나타난 노식이가 야릇한 웃음을 달고 물었다.
“웅아, 너 철이에게 이기니?”
웅이는 노식의 갑작스런 질문이 의아했지만,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래.”
“철이도 네게 이긴다던데.”
웅이는 깜짝 놀랐다. 철이가 감히 나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노식이 뒤따라 나타난 철이가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
“철아! 그렇지?”
놀랍게 철이의 고개가 끄떡했다. 그걸 본 웅이는 눈 깜짝할 사이 철이에게 달려들어 다리를 잡아 땅바닥에 눕혀버리고 그 위로 올라탔다. 막 두들겨 패려는데 뒤에서 노식이가 웅이 팔을 잡으며 말렸다.
“일어나서 신사적으로 해!”
팔을 잡힌 웅이가 밑에서 바동거리는 철이에게 오히려 두어 개 맞았다. 맞은 것보다 철이가 싸움을 걸어온 것이 분해서 울었다. 철이도 눈물을 흘렸다. 단단히 패 주고 싶었는데 선전포고도 없이 비겁하게 다리를 잡다니! 자기의 계획이 실패한 것이 억울해서 울었다.
각각 헤어져 집으로 올 때, 내일 다시 싸워서 혼을 내주리라 마음먹었다. 집에 와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냥 두지 않겠다. 두고 봐라.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앙하던 마음이 허물어져갔다.
‘내가 운 좋게 다리를 잡아 넘어뜨렸지만 다시 싸운다면 이길 수 있을까?’
웅이는 은근히 불안감이 들었다. 싸우지 않도록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누가 말려주지 않나?
‘생각 밖으로 힘이 세고, 동작도 빠르던데 과연 내 뜻대로 이길 수 있을까?’
철이도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냥 싸우지 않고, 다시 사이좋게 놀 수 있게 얼싸절싸하는 사람이 없을까?
“철아, 연 띄우러 가자!”
철이는 그런 웅이의 목소리가 그리워지며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웅아, 누구 연줄이 더 센지 내기 하자!”
웅이도 싸움보다도 연싸움 하자고 부르는 철이의 얼굴을 그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바깥에는 소리 없이 함박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