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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안聖顔
김사영金士永
1.
신체장애인처럼 한쪽 어깨가 들린 채 새하얀 콧물을 흘리면서 엄마의 치마에 매달려 걷는 울보, 저래서 시집이나 갈 수 있겠냐며 놀림을 받던 일이 거짓말인 양, 분녀는 눈코가 시원스럽고 키도 커서 마을에서 상당한 용모라는 평판을 들었다.
다섯 형제 중 분녀만 딸이고 게다가 사십을 넘어 얻은 막내딸이었기 때문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귀여워해서, 한쪽 어깨가 들려 보일 정도로 두터운 면을 집어넣어 옷을 입히고, 열네다섯 살의 꽃다운 나이가 될 때까지 어머니는 자신의 팔을 분녀에게 베개로 내주었다. 예닐곱 살 무렵부터 학문을 가르쳐 여자의 길을 익히게 해야 한다고 아버지는 야단이었지만 어머니도 분녀도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열네다섯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겁쟁이 울보라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부랴부랴 주장周章을 꺼내어 어머니는 언문을 가르치고 아버지는 한문을 가르쳤다. 말을 탄 일본헌병이 마을을 지나간다니까 안색을 바꾸고 숨은 것은 잘한 일인지만, 뒷마당에 있는 절임통에 머리만 들이밀고 있는 것을 아버지에게 들켜서 심하게 매를 맞고 울정도로 아직 겁쟁이에 불과했다. 의외로 머리가 나쁜지 시집을 간 열여덟 살 때까지 대충 언문과 천자문 명심보감을 익혔다.
헌병이 있는 읍내를 지나서 오리五里 떨어진 정씨 집으로 시집을 가야한다는 소리를 듣고 어린아이처럼 싫다고 머리를 흔들면서 엄마랑 같이 가겠다며 울었지만, ‘한심한 녀석, 언제 어른이 될 테냐, 내가 가르친 것을 벌써 잊었느냐.’는 아버지의 호통에 시키는 대로 옷을 입고 가마에 탔을 때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약간 고개를 숙인 채 입을 꾹 다문 얼굴, 서늘한 눈매와 콧대가 정말로 아름다운 새색시라고 떠드는 마을 여자들의 얘기가 그저 입에 발린 말만은 아니었다. 마음 약한 겁쟁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딸의 표정 깊숙이 대담할 정도로 강한 의지의 번뜩임과 외곬스러운 감정을 언뜻 난생 처음으로 엿본 늙은 부모는 ‘됐어, 이제 자신의 길을 잘 헤쳐 나갈게야.’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딸의 가마를 전송했다.
정씨 일문은 대개 유서 있는 집안이 그러하듯이 많은 재산은 없지만 집만큼은 넓고 크고, 조부 누구 숙부 누구 조모 그리고 친척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복잡할 정도이고, 곰방대와 백발이 엄청나 어딘가 이국異國에 끌려 들어온 듯해서 분녀는 갈팡질팡하며 서지도 앉지도 못한 채 자유를 잃어버린 작은 새처럼 허둥거렸다. 시부모님과 남편 그리고 남편의 동생과 분녀 이렇게 다섯 명의 단출한 가족이었지만 분녀는 눈이 돌 정도로 바빠서 마치 환등幻燈을 엿보는 것 같았다. 솔직히 일이라고 해봐야 별 것 없었고, 시부모도 분녀를 귀여워해서 그다지 일을 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 널널하게 하루를 보낼 정도였지만, 그것이 확실히 기분의 문제인지 지금까지 엄마의 팔을 베고 자던 분녀에게는 환경이 바뀐 그 자체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매 세끼 식사나 의복에 관련된 일도 시어머니가 시키는 것만 하면 되었고, 이 삼일에 한번 정도 조부모님께 문안인사 드리러 백부님 댁을 방문하는 것도 시어머니 혹은 친척의 딸들과 함께였기 때문에 그다지 힘든 일은 없었지만, 그런 간단한 일조차 익숙하지 못한 분녀에게는 벅찬 일인지라 기거동작起居動作 모든 것이 어려워 늦은 밤 잠든 남편의 옆에서 조용히 눈물을 삼키곤 했다.
남편은 분녀보다 다섯 살 아래인 열세 살이었다. ‘소학小學’을 옆에 끼고 아홉 살인 동생과 함께 서당에 다니고 있었다. 장난꾸러기이고 나무타기가 능숙해서 마을에 있는 새집을 하나도 남겨놓지 않았다. 겨울에도 여름에도 흙투성이가 되어가며 씨름을 하거나, 자주 싸움을 해서 울며 돌아오곤 했다. 눈이 작고 정말로 재기 넘치는 사랑스러운 얼굴이었지만 의외로 서당에서의 행실이 나빠서 매번 옷과 손발에 먹칠을 하고 삼일에 한 번은 서당선생에게 종아리가 벌겋게 부을 정도로 매를 맞고 돌아왔다. 그런 때는 어김없이 사랑에 불려가 또 한 번 매를 맞는데, ‘태돌’이라는 이름을 불려 나갈 때마다 곤혹스러운 듯한 절망에 빠진 눈초리로 분녀를 쳐다봤다. 그 눈이 너무 가련해 보이기도하고 불현듯 친정이 그리워져서 분녀는 서글픈 감정이 들었다.
처음에 남편은 분녀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며 없는 사람 취급을 하거나, 자신의 불미스러운 일을 들키거나 하면 무섭게 노려보면서도 홍당무가 되어 숨기도 했지만 곧 분녀를 따랐다.
사람들이 “분녀는 네 아내야. 너도 이제 어린애가 아니니 그렇게 질질 짜고 다니지 좀 마라 보기 흉하다.” 말해도 열세 살의 태돌이는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아내라는 것을 연상의 여자친구 혹은 상냥한 누나의 다른 호칭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배가 고프면 밤이나 감을 달라며 조르러 오거나 싸움으로 옷이 찢어지면 엄마가 모르게 살짝 꿰매어 달라거나 울며 집에 돌아와서는 치마에 눈물을 닦는 등, 때로는 분녀가 질려서 화를 낼 정도로 태돌은 아직 젖비린내 나는 ‘아기’였다.
그러나 분녀는 남편이 너무 어리다는 것을 그다지 속상해하지도 않고 삼 년을 기다렸다. 분녀의 품을 엄마의 품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 남편은 잠에 빠졌을 때 자주 분녀의 가슴을 더듬기는 했지만 분녀는 시집와서 사 년이 되는 해에 비로소 남편의 포옹을 받았다. 뭔가 훈훈하고 따뜻한 날아갈 듯한 생활의 기쁨에 겨워하다가도 다음날 아침은 아직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해야 했는데, 그늘은 빛을 따라오는 것인지라 그 때부터 이미 태돌은 마을 앞에 있는 술집에서 계집질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읍내에 학교가 생겨서 작년부터 태돌은 삼학년에 동생 태식은 일학년에 편입하여 상투와 변발 그대로 다니고 있었는데, 요즈음 학교는 뒷전이고 마을 앞에 있는 술집에 드나들고 있다는 소문이 거짓만은 아니었다. 오늘부터 부자지간의 연을 끊어버린다며 부모에게 꾸지람을 들어도 상관 않고 상투를 자르고 마을에서 최초의 개화자라며 크림을 처덕처덕 발라 한껏 멋을 부리더니 읍내에 있는 내지인 상점에서 모자와 구두를 구해오기 시작한 때부터는 남편의 오입질이 절정에 이르렀다.
분녀는 ‘그래도 그래도’ 하며 남편의 마음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지만 남편이 장롱 밑에 숨겨놓은 어머니의 유품인 금비녀와 은가락지를 몰래 훔쳐갔을 때는(그리고 그것이 술집여자에게 주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을 정도로 충격을 받아 허공을 응시한 채로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남편은 이윽고 T읍에 나가거나 경성에 올라가거나 하더니 친척들의 꾸지람은 귓등으로 듣고 점점 분녀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러나 허무하게 스러져가는 청춘을 분녀는 별로 한스러워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남편의 무정함을 책망하지도 않은 채 묵묵히 시부모를 모시고 동생을 돌보며 선조의 제사를 정성껏 모시면서 스물세 번째의 봄에 장녀를 낳았다. 여자가 한 번 출가하면 죽을 때까지 그 집을 지킨다든가 남편과 시집은 하늘이며 절대적인 것이라든가 예전에 부모에게서 배운 것들을 마음에 새기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저 인내와 체념에 분녀는 점점 익숙해져갔다. 은밀한 기쁨과 비슷한 슬픈 감정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두 번째 아이를 갖고 사내아이를 낳았다. 장녀인 일순은 세 살이 되었다. 완전히 개화광이 된 태돌은 이 년간 측량술을 배운다며 경성에 간 채로 편지 한 통 보내지 않았다. 우리 집안도 이제 끝이다, 태돌같은 놈이 우리 집안을 망치고 있다, 유서 있는 가문의 수치가 아닌가, 긴 곰방대를 두드리며 한탄을 하던 시부모가 유행병으로 며칠을 사이에 두고 잇달아 돌아가시자 남편은 허둥대며 돌아왔지만 장례를 마치자 다시 상경하겠다고 말을 꺼냈다.
“집안일도 조금은 생각해 주시지요.”
분녀가 소곤소곤 이런 말을 힘겹게 웅얼거리자 “멍충이”라며 호통을 치고는 조문객이 아직 끊임없이 오는데도 상복을 벗어던지고는 나가버렸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서 동생을 결혼시키고 분가시키는 등, 여러 가지로 집안일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생기자 태돌은 집에 돌아와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 이후부터 방탕을 멈추고 향리일대의 산야를 측량하고 돌아다니는 일만 하며 얌전히 집에 있었다. 분녀는 기뻤다. 경대 위에 나뒹굴고 있던 화장품을 오랜만에 꺼내 먼지를 닦고 할 정도였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곧이어 그 1919년이 왔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우르르 헌병대가 집에 들이닥쳐서 창고에서 부엌 마루 아래까지 조사했다. 분녀는 항아리 입구에 머리를 쳐 박는 일은 하지 않았지만 방구석에 박혀 가슴을 진정시키며 꼼짝하지 않았다. 태돌형제가 잡혀가고 나서 열흘째에 무사히 돌아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는데 그 일 전후로 친정아버지의 죽음을 전하는 전령이 왔다.
장녀 일순과 장남 갑수를 데리고 달려갔을 때는 벌써 장례가 끝난 후여서 추상과 같이 엄격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접할 수도 없었고 맘껏 울 수도 없었다. 엄마로부터 마을 청년을 모아 무익한 계획을 심하게 추궁한 일로 원망을 사 수명의 불령不逞인들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들었어도 분하고 원통한 만큼 슬픔을 토해내지도 못한 채 남편의 곁으로 돌아왔다. 연달아서 주변 사람들이 죽어서 허전함이 뼈에 사무칠 정도였지만 그 당시로부터 2년간이 분녀의 일생 중에서 가장 사람답게 사는 듯한 행복한 생활이었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밖에서 돈을 모으고 아내는 안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은 건강하게 쑥쑥 자라났다.
그러나 차남 을수를 낳고나서 일 년 후 첫 눈이 내린 겨울 밤, 태돌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측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오늘은 좀 피곤하니 일찍 자겠다며 사랑에 갈 기력도 없는지 밥을 먹고 그 자리에 이불을 깔고 잠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 이미 몸이 차게 식어 있었다. 예전의 방탕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서른 살의 아내를 뒤에 남겨 두고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에 홀연히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비통함보다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견딜 수가 없어서 끼니도 거른 채 삼일 동안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자세로 멍하게 앉아있다가, 아 내가 과부가 되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자 아직 젊은 얼굴에 실 같은 주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2.
‘이 아이들이 클 때까지 이를 악물고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과부의 길이다.’라며 칠십이 넘은 노구를 지팡이에 의지해 오리五里나 되는 길을 걸어와 전한 엄마의 말에 비로소 기운을 차린 것은 아니었지만 분녀는 친정에 돌아가는 일 등은 애초에 염두에 두지 않고 남편과 조상의 묘를 지키면서 세 명의 아이를 키우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점점 마음을 진정시켜갔다. 유산으로는 마을 앞에 있는 오반五反정도의 밭뿐이어서 조금 불안했기 때문에, 명주가 유명한 지역이니 명주라도 짜서 생활의 방도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즉시 그 겨울부터 수직기手織機를 태식에게 사오라고 해 익숙하지 않은 손놀림으로 실을 짜기 시작했다.
같은 해 겨울, 바람이 거센 밤이었다. 베틀을 멈추고 쉴 때에는 만일을 대비해 잊지 않고 항상 문에 열쇠를 걸어두었는데 그 날 밤은 어찌된 일인지 깜빡했다. 깊은 밤이었다. 깜짝 놀라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입 안 한가득 면이 채워진 뒤였다. 세 개의 검은 그림자가 숨 쉴 틈도 없이 자신을 문 밖으로 운반해 나가려는 것을 알아차리고 필사적으로 문지방에 매달렸지만 세 사람의 폭력에 저항도 못해보고 문 밖에 미리 준비해 온 듯한 자루 안에 고물 쓰레기처럼 집어 쳐 넣어졌다. 밖이 칠흑 같이 어둡고 별빛이 아플 정도로 서늘하게 눈을 비추고 있었던 것은 기억하는데, 바람 소리나 자신을 운반하는 세 사람의 거친 숨소리는 의식하지 못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닭울음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디까지 운반해 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눈 위에 내려놓았는지 몸을 베는 듯한 찬 기운이 가슴을 파고들었고 남자들의 숨소리와 낮게 중얼거리는 속삼임도 들렸다.
이십 수 년 전까지 강탈결혼 같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면 놀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원래 그것은 야만사회에서나 행해지던 일이 아닌 여러 가지 사회적인 이유 내지 의식에서 생긴 일이었다. 강탈을 하는 것은 물론 과부만이다. 고루한 유교정신으로 견고한 봉건사회에서는 과부의 재혼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방법이라도 고안해내야 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본인이 원해서 혹은 친척이 시켜서 그런 일을 했지만 종국에는 부인을 잃은 남자들이 과부가 어디에 있다고 들으면 몰래 데려오는 식으로까지 된 듯 했다.
어쨌든 분녀는 이튿날 아침 되돌아 왔다. 친척이 사방팔방 수소문해서 마을에서 일리一里정도 떨어진 주막에 숨겨져 있는 것을 찾아낸 것이다. 그 날부터 분녀는 마을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눈에 의혹이 가득 담겨있는 것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태식이 부부까지 뭔가 데면데면해진 것을 느꼈을 때는 정말로 비참했지만 그러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며 체념했다. 일단 그런 일을 당한 이상, ‘네가 재혼을 원해서 그런 놈들을 불러들인 게 아니냐?’며 추궁을 당한다 해도, 그것을 부정할 근거를 마련하려고 골머리를 앓을 분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생각지도 못한 쪽으로 발전했을 때는 놀랐다. 태식의 아내와 아이의 사소한 일로(태식에게 자식이 한 명 있었다) 대립하고 나서 서먹서먹해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부터 자주 출입하고 있던 남자하인과 밀통하고 있다는 소문이 난 것이다. 그 남자하인은 옛날부터 집안일을 부지런히 잘 해주던 남자로 지금도 읍내의 시로 심부름을 해주거나 짠 명주를 팔아주고 실을 사서 정리해주는 등의 일로 자주 집안을 출입하는 어려울 것 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그 날 밤의 일도 있었기 때문인지 소문의 근거가 된 것이다. 소문은 소문을 낳아서 분녀와 남자하인이 여기저기서 만나기 시작했다든가, 분녀가 남자의 옷을 꿰매주는 것을 봤다든가, 검은 그림자가 울타리를 뛰어넘는 것을 봤다든가 하는, 갑자기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소문이 돌아 정씨 일문이 시끄럽게 들끓었다. 분녀의 변명 따위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도 없고, 결국엔 태식이까지 저런 음탕한 여자는 내쫓아버려야만 한다, 정씨 일문의 수치라며 아우성치기 시작했고, 게다가 남자하인이 어딘가로 모습을 감추고 나서부터는 일이 더 악화되어 드디어 친족회의까지 열리는 사단이 벌어졌다. 과연 조부만은 근향近鄕에서 알아주는 한학자이어서인지 팔십에 가까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풍설을 믿어서가 아니다. 하지만 그런 풍설이 나돈 이상 너를 우리 가문 가까이 둘 수는 없다. 어떤 지시가 있을 때까지 친정에 돌아가 있는 것이 좋겠다.”고 자애롭게 말을 해주었다. 그 이해와 관용을 유일한 위로로 분녀는 일언반구 변명도 하지 않고 그저 ‘네.’ 하는 모기 같은 소리와 눈물을 동시에 조부 앞에 떨구고 세 자식과 함께 친정으로 돌아왔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허리가 빠질 정도로 명주를 짜며 삼년을 보낸 봄에 조부의 말대로 돌아오라는 전령이 왔다. 남자하인과의 추문은 모두 태식부부의 소행이었던 것이다. 수년 전부터 T시로 출입하며 상장相場1) 에 손을 대고 있었던 태식이 돈이 궁해지자 형수를 쫓아내고 형의 유산으로 남아 있는 밭을 양도받으려고 남자하인을 설복說伏했던 것이다. 성공의 보수로 너에게 반을 줄 테니 어떤 소문이 나더라도 입을 다물고 있으라고 말이다. 유혹당한 남자하인은 그 말을 그대로 믿고 마을에서 자취를 감추었는데 돌아오니 반은커녕 조금도 나눠주지 않자 화가 나서 일의 자초지종을 폭로하는 것으로 울분을 씻어낸 것이었다. 분녀가 돌아왔을 때 밭은 이미 동생의 명의로 이전되어 있었고 그것도 대부분 팔린 뒤였다.
옛날의 어떤 이야기책에나 나옴직한 이런 전래동화 같은 태식의 처사를 원망해보았자 소용없다고 생각한 분녀는 차라리 집까지 바꾸어 버리자며 자신이 별채로 옮기고 태식부부를 안채 기와집에 살게 했다. 그러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져 분녀는 다시 이튿날부터 명주짜기로 하루를 보냈다. 세끼 식사를 두끼로 줄이고 그것도 저녁은 대부분 죽으로 때웠다. 양반집 며느리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친척들로부터 질책을 당하면서 치욕을 참고 읍내에 있는 시에도 몸소 왕래했다. 남자하인들처럼 산으로 땔나무를 구하러 가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되었고 거름통을 머리에 이고서도 별로 더럽다는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다. 짐승처럼 손이 갈라지고, 허리통증이 생기고, 핏기가 사라진 얼굴에 한 줄 한 줄 보기 싫은 주름이 늘어갔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며 분녀는 토룡土龍처럼 내달았다.
차남인 을수는 오기가 있어서 학교성적이 좋았지만 장남인 갑수는 완전히 반대였다. 겁쟁이면서도 싸움을 자주 해서 얻어맞고 돌아왔다. 분녀는 패기 없는 장남이 걱정스러워 얻어맞고 돌아오면 마음을 다잡고 아주 엄하게 꾸짖었는데, 장남은 의지가 약한데다 도시락을 잊어버리고 학교에 갈 정도로 머리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성격은 소심해도 마음은 정직해서 다른 사람의 물건에는 손가락 하나 대질 않았고 가을에 동생인 을수가 밤이나 감을 훔쳐서 갖고 오면 형답게 ‘바보 같은 자식 네가 도둑놈이냐’하며 꾸짖었다.
장남이 5학년 차남이 3학년이 되던 해, 분녀는 밭 삼반三反과 작은 산림을 하나 샀다. 그 당시의 물가를 생각하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숨통이 트인 기분과 겨우 빛을 발견한 듯한 기쁨에 명주를 짜는 기계에 앉아서도 허리의 통증을 잊어버릴 정도였다.
땅을 샀어도 얼마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그 해 가을 태식이가 관계가 좀 먼 숙부 같은 사람의 땅을 인감을 위조하여 저당을 잡혀서 고소를 당하는 소동이 있었다. 결국 두 달 정도 경찰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분녀가 장롱바닥을 털어 피와 같은 돈 오백 원을 주저 없이 내놨다. 태식은 65일 만에 의기소침해져 돌아와서는 ‘내가 잘못했다’며 눈물을 떨구었다.
그 무렵 막 개통한 기차를 보러 모두 읍내까지 나갔던 때 시의 광장에서 기독교의 전도연설을 들었는데 태식은 그 때부터 몰래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세례를 받고 나서부터는 대담해져서 마을 사람들의 험담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일요일마다 교회에 나가는 독실한 신자행세를 했다. 분녀는 기독교의 ‘기’ 자도 몰랐지만 태식이가 성실하게 생활하는 것이 고마워서 아무 신에게나 빌고 싶은 마음이었고, 정씨 집안도 이로써 일단 안정이 되었다는 것과 자신이 이제까지 해 왔던 고생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는 기쁨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이듬해 봄에 장남이 졸업을 했다. ‘엄마 다녀왔어요’하고 밝게 웃으며 들어오는 을수의 뒤로 갑수가 기념사진과 졸업증서를 들고 돌아왔을 때 분녀는 축하떡을 만들고 있었다. “엄마 오늘 형 울었어요.” 하고 동생이 말하자 “바보”하며 형은 웃었지만 눈이 빨갰다. “눈이 빨가네.” 하며 분녀가 활짝 웃자 “응, 울었어. 오늘은 전부 울었는데 뭐. 선생님도 울었고─.” 갑수는 시원시원하게 자백하고 떡을 입안 가득 물었다. 분녀는 사진을 보고 있었다. 작년 가을 성묘 때 만들어주었던 명주 두루마기를 입고 갑수는 두 번째 줄 오른쪽에 어른스럽게 손을 모으고 앉아있었다. 눈이 작고 체격이 작은 것이 죽은 남편을 빼닮았다고 생각한 순간 가슴이 찌르르해지며 굵은 눈물 두 방울이 사진에 떨어졌다. 아이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급히 눈물을 훔치며, “갑수야, 이제부터 엄마와 열심히 일하자꾸나.” 하고 아이들과 같이 떡을 먹었지만 목이 막혀서 넘기기 힘들었다.
그 다음 장날에 지게를 사주자 갑수는 그 날부터 얌전히 산에도 가고 들에도 나갔다. 보통학교를 졸업하면 좀 더 공부를 해보려고 고향을 떠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기였다. 갑수는 ‘이해할 수 없어, 그놈들은 바보야’라고 했는데 정작 자신이 바보처럼 말없이 지게를 지고 다녔다. 점점 말없고 표정이 없는 남자가 되어 자식도 엄마와 같은 토룡이 되었다.
강 건너의 하천부지를 사서 뽕나무를 심고 숙부인 태식과 공동으로 안채의 일부를 양잠실로 개조하여 영농가營農家가 되었다. 새하얀 두루마기를 걸치고 긴 담뱃대를 문채 유유자적하는 양반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된 것이다.
3.
“너 같은 놈이 상급학교에 진학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돼지처럼 일만하는 너의 엄마가 보내줄거라고 생각하냐.”
졸업하는 해, 동료에게 놀림을 당하자 ‘뭐라고 이놈이’하며 불처럼 시뻘개져서 다섯 살이나 많은 그 놈에게 덤벼든 것은 좋았는데 순식간에 반대쪽으로 내동댕이쳐져서 을수는 기절을 했었다. 분녀는 그런 을수가 불쌍해서 무리를 해서라도 공부를 시키자며 갑수와 의논하여 을수를 농업학교 시험을 치르게 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떨어졌다. ‘이번엔 사범학교라도 쳐볼래?’ ‘아니’ ‘그럼 상업학교는?’ ‘됐어요’ ‘그럼 어디?’ 을수는 아무데도 안 간다며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엄마, 나 농사나 지을래요. 엄마나 형에게 부담을 주면서까지 하고 싶지 않아요.’ 이튿날부터 동생은 형을 따라 들로 나갔다. 지게를 멘 을수의 뒷모습이 애처로워서 분녀는 한숨을 쉬었지만 본인은 의외로 명랑했고, 이 삼일 지나자 학교일 따위는 완전히 잊어버린 듯이 씩씩하게 웃었다.
동생이 일을 하게 되자 갑수는 안심을 했는지 지나사변이 일어나고 이 년째에 계속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던 내지로 건너갔다. 내지라 하지만 실상은 내지를 거친 홋카이도北海道의 탄광. 노무자모집에 응모했던 것이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너라 나는 걱정이다. 돈 모으겠다고 너무 무리하지 말거라. 몸조심 하고.”
분녀는 도중에 먹으라며 떡을 싸서 주고 마을 앞 큰 길까지 배웅했다. 막 시집온 며느리가 집 울타리 뒤에서 남몰래 울고 있었다.
‘장시간 기차와 배를 타고 무사히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홋카이도는 꽤 먼 곳입니다. 어머니,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어갈 테니 이제 명주짜는 일 그만 하세요.’라는 편지가 건너 간지 얼마 안 되서 왔고, 3월 지나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다. 탄광일은 쉽지가 않다. 힘들지만 참고 매일매일 숯검정이 되어가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농사는 어떠냐. 이제 수확할 시기가 다 되었겠지. 집안일은 모두 네게 맡긴다.’는 편지 한 통이 을수에게 왔고, 아내에게 두 세 번엽서가 온 것을 끝으로 거의 일년간 아무 소식이 없었다. 과묵한 갑수이니 편지를 쓰는 것도 그런가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 하면 될 것을 분녀는 거의 잊어버린 문자를 더듬어가며 직접 편지를 쓰고 을수에게도 쓰라고 해서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다. 걱정이 심해져 “모친위독”이라는 거짓 전보를 보냈다. 목을 길게 빼고 기다렸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음력 8월 15일 밤, 분녀는 마당으로 상을 들고 나와 정화수를 떠놓고 자식의 무사함을 빌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본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섞여서 을수와 갑수의 아내가 뒷산에 올라, ‘풍성한 달月이다. 내년에 풍년이 들게 해 달라’고 하늘에 떠 있는 달을 우러르며 빌 때, 분녀는 열심히 손을 비비며 그릇 밑에 가라앉아 있는 달을 응시했다. 안채 쪽에서 태식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 “형님, 뭘 하고 계시는 거예요?” 하며 말을 걸어도 돌아보지 앉았다. 그 무렵 전도부인이 되어 있던 태식의 아내는 분녀가 하는 행동이 못마땅했던 것인지 아니면 길 잃고 헤매는 양을 구하는 것이 지금 이때라는 생각만 했었는지, “그건 미신이에요. 그런 일을 하느니 하느님께 비세요.”라고 했지만 듣지 못했는지 분녀는 입으로 뭔가 중얼거리면서 한층 격하게 손을 비볐다.
달에게 빌어 봐도 마음은 안정되지 않았다. 분녀는 어느 날 몰래 언덕 너머의 무당집에 찾아가 십전을 내고 점을 보았다.
“대호大虎가 고주孤舟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구나. 조천早天에 뇌명雷鳴이 울리니 용이 땅으로 추락하는구나.”
어디에선가 들어본 것 같은 문구를 종을 딸랑이며 낭랑하게 읊조렸다.
“흉조입니다.”
툭 기분 나쁘게 말하고는 실눈을 씀벅거리며 ‘흥’ 하고 킁킁거리면서 십전을 두꺼비 모양의 통에 집어넣었다. 분녀는 눈이 컴컴해질 정도로 실망하여 믿을 것이 못된다는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을수는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무슨 말도 안 돼는 소리를’하며 껄껄 웃었다.
“바보 같은 무당 놈, 헛소리를 짓거리고 있네. 어머니 길조예요 길조. 호랑이가 대해大海를 건넌다니 이게 씩씩하다는 얘기가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지금까지 산에만 있었던 호랑이가 용기를 내서 낡은 둥지를 뛰쳐나갔다는 소리예요. 그리고 신천지를 찾아서 태평양을 아니 어쨌든 대해를 건너는 것이니 길조일 수밖에요. 그리고 용龍얘기도 길조구요. 땅에 있는 용이 뇌명을 들었으니 곧 분명히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뇌명은 비의 전조前兆니까 용은 비구름을 타고 승천하겠네요.” 엉터리 해석을 아주 진지하게 지껄여대고 나서 또 껄껄 웃었다. “그렇겠지.” 하며 분녀도 웃었지만 마음은 뭔가 꺼림칙했다.
그 일 이후 얼마 안 있어 갑수가 돌아왔다. 무당 얘기가 맞았던 것인지 갑수는 탄광이 무너져 다리가 부러졌다고 하며 소나무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이었다. 분녀는 갑수를 보고 느닷없이, “왜 편지를 안 했냐?”며 소리치고는 아들의 가슴을 두드렸다. 옛날에 갑수가 어렸을 때 싸움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흔히 하던 행동이었다.
“편지도 전보도 받긴 했어요. 그런데 이런 다리로는 움직일 수도 없었고 또 이런 일을 어머니께 알리고 싶지 않았어요. 어머니, 걱정하시게 해서 죄송해요.”
갑수는 품에서 삼백 원을 꺼냈다. 그러나 분녀는 그 지폐다발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남편이 죽은 후 이십년간 돈에 걸신들린 사람처럼 염치가 없었던 분녀치고는 희안한 일이라며 모여든 부인들은 이상하게 여겼지만 분녀는 돈보다도 자식이 불구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갑수는 탄광병원에서 거의 치료받고 왔다고 했지만 완치는 되지 않은 상태인데다 오랜 여행의 피로와 찬바람을 맞아서인지 방안에 들어가자 어머니 품에 안긴 채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한참을 자식의 부상당한 다리를 쓰다듬으면서 울던 분녀는 그로부터 한 달 동안 골절에 좋다는 약을 구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마을을 대부분 돌아다녔다. 분녀가 구해온 약이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갑수의 다리는 지게를 멜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어 지팡이를 불에 던져 버렸지만 확실히 약간은 다리를 절었다.
봄이 되자 형과 아우는 매일 소를 끌고 들로 나갔다. 소는 갑수가 갖고 온 삼백 원으로 산 것이다. 중경일中耕日이다. 아우는 소를 끌고 형은 발을 절뚝거리면서 호미로 보리씨를 흙 속에 넣었다. 비료를 충분히 준 데다 비까지 적당히 내려서 보리는 쑥쑥 자라났다. 오월의 하늘이 밝고 청명해 샘물이 흐를 듯이 푸른 가운데 시끄러울 정도로 종다리가 울고 있었다.
흙덮기를 반 정도 끝마치고 잠깐 쉬었다. 형은 담뱃대에 연초를 채워 넣고 동생은 잔디 위에 누워있었다. “형.” 을수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나, 지원병되고 싶어.”라고 놀라며 뒤돌아보는 형에게 말했다. “실은 전부터 형한테 말하려고 했었는데 다리가 불편한 형한테 미안해서 말할 수가 없었어.” 을수는 얼굴을 붉히면서 형을 보지 않고 말했다. 어깨가 넓고 눈이 까만 을수는 올해 스물이었다.
1938년 반도의 청년들에게도 영광의 길이 열렸다. 어둠 속의 빛이었다. 그 빛을 쳐다보며 걸어가다 보면 결국 황민皇民이 되는 문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군인이 된다’는 것은 그 말 자체만으로도 젊은 가슴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총을 쥐고 전쟁터를 질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 을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과연 엄마가 허락해 줄 것인가를 생각하면 힘이 빠졌다. 게다가 불구인 형을 혼자 남겨두고 가도 괜찮은 것인지. 옛날에 다섯 살이나 많은 놈에게 맹렬하게 덤벼들던 그 주먹을 꽉 쥐어보아도 엄마와 형에게 어떻게 얘기를 꺼내야 좋을지 몰라서 을수는 전혀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그런데 5월의 맑은 공기 속에서 형과 둘이 상쾌한 피로감에 몸을 맡긴 채 편안히 쉬고 있는 중에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게 된 것이다.
“그랬구나. 확실히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어.”
갑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침묵했다.
“형은 전부터 내 속마음을 알고 있었어?”
형은 굳게 입을 다문 채 공중에 ‘후’하고 연기를 뿜어 올렸다. 눈치 없는 종다리가 한층 더 시끄럽게 울기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두 젊은이의 마음은 무언중에 서로 통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형은 담뱃대를 허리띠에 찔러 넣으면서 한 번 더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가는 것이 좋지. 가거라. 나는 홋카이도에 가서 여러 가지 일을 배웠지만 특히 내지 청년들의 강함에 놀랐었다. 몸만이 아니다. 체력이라면 나 역시 약한 편이 아니니까. 정신이었지. 시원시원하고 용기가 있고 인내심이 강하고. 하지만 조선의 청년은 완전히 반대야. 치근치근하고 의지가 약하고 자포자기적이어서 쉽게 도망치려 하고. 주눅이 들어 있어. 목표가 없기 때문이지. 환한 빛과 같은 목표가. 하지만 이제는 아니지. 확실한 길이 열려 있잖아. 가는 게 좋다 모두― .”
갑수는 드물게 말을 많이 하면서 사실은 자신도 가고 싶지만 아무리해도 이런 다리로는 무리라며 정말로 화가 난 듯이 일어서며 호미를 쥐었다.
“하지만 형, 엄마가 허락해 주실까.”
“글쎄다……. 뭐 끈질기게 말씀드려 봐야지.”
그리고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그날 이후 열흘, 스무날이 지나도록 그 일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뭔가 무거운 것에 짓눌려 있는 듯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엄마한테 어떻게 말을 꺼내야 좋을지 걱정을 하던 형도 동생도 몇 번이나 용기를 내어 엄마 앞에 서 보기는 했지만, 쉰 살에 벌써 노파처럼 늙어 보이는 엄마의 고생을 생각하면 차마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결국 그 기회가 생겼다. 보리가 점점 무르익기 시작한 무렵, 읍내 학교에서 열린 부인강습회에 갑수의 아내가 참석하고 돌아와 ‘오늘은 지원병에 관한 일을 듣고 왔다’며 저녁식사 후 여러 이야기를 했을 때 을수가 용기를 내어 고백을 한 것이다. 시대의 정세와 전국戰局의 형세, 조선청년의 장래와 천황의 은혜를 갚는 길,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행복―알고 있는 지식을 쏟아내며 을수는 진지했다. 땀에 젖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전 어머니의 자식이면서 자식이 아니기도 해요. 어머니는 저를 맡고 있을 뿐이에요.”
형과 달리 다변多辯에 성격이 급한 을수는 흥분하여 결국은 자신도 의미를 모를 고원高遠한 추상론을 지껄여댔다. 분명히 엄마는 ‘말 같은 소리를 하라’고 하실 것이라고 생각한 형제가 주뼛거리며 엄마의 얼굴을 올려다보니 분녀는 처음부터 꾹 다문채로 아들의 ‘연설’ 따위는 귀담아 듣고 있지 않은 듯이 갓 태어난 손자를 어르고 있었다. 잠시 후 칭얼대는 아이를 며느리에게 건네고 그을린 벽을 올려보며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었다. 검게 그을려 더러워진 벽 위에 그곳만이 환하게 금테두리의 액자가 빛나고 있었다. 5년 전 농촌진흥운동이 한창이었던 때, 여자 혼자서 용하게 일가를 갱생시키고 나아가 부락 전체로 하여금 게으름의 죄를 깨닫게 한 원인을 제공한 것은 타의 모범이 되기에 충분하다며 도지사에게 받은 표창장이 들어 있는 액자였다.
“어머니, 그냥 한 마디 ‘그래’ 하시면 저런 상장 하나 더 받을 수 있어요. 하하하하.”
갑수는 웃으면서,
“이제 진짜 양반이 되는 거예요. 예전에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입버릇처럼 양반 양반 하셨다지만 그것은 썩은 양반이고 정말로 우리 집에 빛을 더하는 것은 지금부터에요.”
그래도 분녀는 아무 말이 없었는데, 갑자기
“알아들었으니까 나팔叭이나 짜거라. 잘못하면 할당량에 못 미칠 테니.”
툭하고 그 말만 던지고는 노끈으로 새끼를 꼬기 시작했다. 현저히 시력이 나빠져서 작년부터 명주짜기를 그만둔 대신 나팔을 짜느라 밤늦게까지 깨어있었다. 엄마의 태도가 뭔가 석연치 않아서 자식들은 잠시 멍하게 있다가 팔직기叭織器를 향해 자세를 고쳐 앉았지만, 그것으로 엄마가 일단 승낙을 한 셈인지 아니면 전혀 우리들의 이야기 따위는 애초에 듣고 있지도 않았던 것인지, 을수는 생각이 복잡하여 바느질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열흘 정도 후의 일이였다. 주재소에서 온 호출장이라며 구장으로부터 서장書狀을 건네받고 놀라서 ‘다른 사람의 밤을 훔쳐 먹은 이외 나에게는 죄 같은 것은 없는데’ 하며 가보니 순경이 갑자기 ‘이거 좋겠구만’ 하기에 더욱 더 혼란스러워서,
“무슨 일입니까.”
하며 눈을 크게 떴다. ‘근래 지원병모집 취지를 일반에게 알리기 위해 적령자가 있는 집을 돌고 있는데 얼마 전 네 집에 가서 어머니와 얘기를 하니 즉각 찬성을 해 줘서 상당히 기뻤다. 그래서 오늘 그 수속을 하려고 너를 부른 것’이라고 하기에 을수는 너무 뜻밖인지라 곧 바로 이해를 못하고, “정말입니까?” 하며 순경의 000를 응시한 채로 잠시 멍하게 있었다. 엄마의 무언의 승낙을 고맙게 여기는 순간 코가 찡해지고 눈이 흐려졌다.
4.
분녀는 지원병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 넘칠 정도로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있었고, 마을 상회常會에서도 면서기로부터 몇 번이나 듣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두 달 전에 군청에서 열린 부인강습회에 출석해 이틀간 그 일만 상세하게 들었다. 그래서 을수의 강연을 들을 필요도 없이 지원병이 무엇인지를 알고 일본의 어머니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달 세 달 들은 얘기로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이라는 문제가 그렇게 간단히 처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과거 오백년간의 문약文弱한 피의 흐름이 분녀의 마음을 잠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식을 대군大君에 바치기 위해 애지중지 키우는 일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몇 번이나 들어도 그것을 마음으로부터 이해하기에는 분녀가 너무 무지하고 분녀의 피는 일본 어머니의 피의 전통과는 너무나 달랐던 것이다. 을수가 만약 간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그 아이의 성정性情상 십중팔구 간다고 할 것이다. 분녀는 걱정스러웠다. ‘어떻게 하지, 어쩌면 좋아.’ 분녀의 본능은 계속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두 달을 생각한 후 드디어 을수가 말을 꺼냈을 때 분녀의 마음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분녀가 정말로 완전히 자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을수의 열성에 감동했기 때문일까. 어린시절 부모에게 들은 무슨무슨 장군 어머니의 이야기를 떠올렸기 때문일까. 장래를 내다 본 공리심功利心이 있었기 때문일까. 갑수가 웃었던 것처럼 도지사에게 한 장 더 상장을 받고 싶었기 때문일까. 그 어느 쪽도 아니라고 분녀는 자문자답을 했다. 자신도 잘 모르는 막연한 마음의 움직임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 거대한 힘에 이끌려 눈부시게 빛나는 빛 앞에 세워진 듯한 망양茫洋같은 마음의 대범함을 느꼈다고 생각했을 때, 분녀는 이미 을수가 가겠다고 말을 꺼내면 자신은 거부할 수 없을 것임을 깨닫고 일종의 체념과 비슷한 아니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이 “일본의 어머니의 마음”에 이르는 문이 아닐까. 분녀는 점점 안정되어 수속을 마친 을수가 내일은 읍내에서 신체검사가 있다고 말한 밤에, 몸을 씻을 물을 끓이거나 점심 도시락을 염려하면서
“잘 해야 한다. 예전 농업학교처럼 떨어지고 돌아온다면 이것이야말로 창피한 일이니까.”
하고 몇 번씩 이렇게 주의를 주었다.
조선에서의 응모자는 모집정원을 한참 상회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중에는 혈서지원을 한 듯한 열렬인도 많이 있어서, 과연 합격을 할지 어떨지, 을수는 초조한 마음으로 시험을 치르러 갔는데 다행스럽게도 읍내에서의 제1차 전형도 본서本署에서의 제2차 전형도 통과하고 도청에서의 시험도 무사히 통과하여 가을걷이가 시작되기 전에 경성훈련소를 향해 고향을 출발했다.
역을 가득 메운 배웅군중과 “축입소 서촌을수西村乙洙 군”(정씨 일문은 니시무라西村로 성을 바꾸었다.)이 쓰인 깃발에 휩싸여 분녀는 전혀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면내의 관공서학교는 물론 타면의 학교생도들도 기旗를 들고 몰려와 있었다.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아니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이러한 감격은 또 다시 맛볼 수 없을 것이다. 만세소리와 군가, 악대, 소연騷然한 환호소리 속에서 수천의 시선과 만나고 수백의 축사에 그저 머리를 숙이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는 분녀는 마치 죄인처럼 허둥거리며 어찌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반생을 명주를 짜면서 보낸 분녀에게 그것은 너무나도 격심한 감격이었던 것이다.
T시까지 배웅한다며 갑수가 을수를 재촉해 절뚝거리며 기차에 오르자 곧 기적이 울리고, 팔자수염을 흩날리며 외치는 면장의 만세소리에 화답하여 모두 손을 들자 분녀도 덩달아 손을 들었는데, 순간 ‘와악’하고 둑이 터진 것처럼 눈물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멀어져가는 기차의 창으로 사이좋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자식들을 보자 분녀는 오십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치며 그냥 이유 없이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러나 “어머니 우시면 안 돼요. 보기 흉하니까.”라는, 이전부터 을수가 한 말이 생각나서 입을 꽉 깨물어 눈물을 참으며 손으로 볼을 훔쳤다.
6개월이 지나서 을수가 훈련소에서 00부대로 편입되어 제 몫을 다하는 군인이 되었다는 소식이 온 것은 4월이었다. 작년에 을수가 형과 함께 농사를 짓던 그 보리밭에 학교의 생도들이 우르르 몰려와 도와주어서 중경도 흙 뿌리기도 전부 마쳤다. 그것을 계기로 인근의 면面에 있는 학교에서도, 부근 부락의 청년대에서도 근로봉사를 하러 왔고, 애국반에서도 한 달에 한 번 봉사작업을 해주겠다고 해서, 씨뿌리기도 보리베기도 제초작업도 어느 사이엔가 끝나버렸다.
이러한 호의와 아름다운 풍속에 둘러싸이면서 분녀는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오십 년간 어쩌면 자신만 생각하면서 주위를 의심하고 경계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사람을 대하며 단단히 자신의 곡물을 숨겨왔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그 문을 활짝 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렇게나 세상이 아름답고 사람들이 선량했었는가, 마음이 봄처럼 부드러워져 눈에 보이고 마음에 느껴지는 모든 것들에 기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5.
무리를 해가며 몸을 혹사시켜온 탓인지 분녀는 한순간에 기력이 쇠해져서 손자를 등에 업었을 때는 허리가 굽어보일 정도로 마치 육십이나 칠십 노인 같았다. 이럴 나이는 아닌데 하며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소녀처럼 등을 쭉 펴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확실히 피로가 쉬이 몰려오고 밤이 되면 뼈 마디마디가 아파 녹초가 되어서 죽은 듯이 잠을 잤다. 게다가 한여름 어느 날, 뜨거운 하늘 아래에서 면0초를 뽑다가 쓰러져 00 사이에서 잠시 기절한 일이 있고부터는 갑자기 몸이 말을 안 들어서 마음만 앞설 뿐 예전처럼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 너무 무리하시지 마세요.” 갑수도 며느리도 권하고 분녀도 이제 힘을 쓰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어서 손자와 놀아주는 일을 유일한 즐거움으로 삼게 되었지만, 손자의 놀이상대가 되어주는 일만으로도 피로를 느낄 정도로 분녀는 나이보다도 더 늙어 있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공출이 일단락되자 농한기가 되었다. 예년例年처럼 나팔 증산운동이 시작되어 분녀의 집에는 이번 겨울에 80개를 짜라는 할당량이 떨어졌다. 80개는 상당히 버거웠다. 분녀는 아침부터 밤까지 팔직기叭織機와 씨름하고 있는 아들내외를 보기가 힘들어서 노끈정도라도 만들어 볼까했지만 손자가 칭얼거리는데다가 어깨가 결려서 반나절도 지속할 수 없었다.
분녀는 손자의 손을 잡고 매일 산책을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이 옆에 있는 것이 용납되지 않아 오랜 습관 탓인지 거의 본능적으로 물레를 끄집어냈다. 문 밖의 울타리 뒤는 바람도 없고 조용해 그곳만 눈이 녹아 땅이 말라 있었다. 대자리를 깔고 손자를 달래고 있으면 몸이 따뜻해져서 분녀는 자주 앉아서 졸았다. ‘아차’하며 물레를 바쁘게 돌리면 ‘끽끽’하고 소리가 났는데 이 물레의 단조로운 음이 오히려 잠이 오게 만들었다.
0처럼 등을 구부리고 꾸벅꾸벅 꿈을 꾸고 있는 할머니와 흙장난에 정신이 팔려 있는 손자, 강아지, 그것은 마치 동화의 세계였다. 잠에서 깨면 분녀는 하품을 하면서 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휑할 정도로 푸르렀지만 밝고 드높았다. 간혹 눈이 날리고 바람 속을 새가 헤엄쳤다. 0처럼 입을 쩍 벌리고 충혈된 눈으로 계속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무의식중에 자신의 일생을 머리 속에 그려보았다. 행복했다고도 힘들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공허한 기분으로 살아왔다는 것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그런 희미한 생각 속에서도 두 아이를 키워낸 기쁨만은 의식의 저 밑바닥에서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한 때 하늘 너머 저편으로 을수의 환영을 볼 때가 있었다. 상당히 높고 먼 하늘이다. 그 위에서 을수의 넓은 이마가 빛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분녀는 꿈을 꾸는 것처럼 마음이 들떠서, 넌 좋은 곳에 가 있구나, 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곤 했다. 별세계에라도 있는 듯한 희미한 자식의 모습을 쫓고 있으면 자신의 몸도 우주를 헤엄쳐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분녀의 눈은 점점 더 초롱초롱하게 반짝거렸다. 그럴 때의 얼굴은 마치 소녀처럼 아련하게 불그스름하고 순수했다. 물레 옆에서 장난에 몰두하고 있는 손자의 마음처럼 사유를 초월한 마음으로 분녀는 을수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처음에는 멀리서 작게만 보였던 환영이 점점 크게 다가와 종국에는 하늘 전체로 퍼진다. 심한 현기증이 일어나서 순간 기우뚱하고 얼굴이 흔들리면 깜짝 놀란 아이처럼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안돼 안돼’하다가 비로소 착각에서 벗어나곤 했다. 손자의 머리를 한참 쓰다듬으며 먼지를 털어주고 천천히 실을 감기 시작하지만 곧 다시 꾸벅꾸벅 졸다가 눈을 떠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들의 환영을 보고나서야 정신을 차리곤 했다. 이러한 일을 몇 번씩 반복하는 중에 날이 저물었으며 다음 날도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5월이 지나고 얼마 안 있어, 드디어 생각한 대로 활동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고 을수에게 편지가 왔다. 북지北支로부터였다.
어느 늦은 밤 분녀는 몰래 마당에 나와 상에 냉수를 떠놓고 한참을 손을 맞대고 문질렀다. 바늘 같은 한기가 몸을 찌르고 손이 얼어 돌처럼 굳어졌지만 분녀는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고 하얀 석상처럼 한밤중에 서 있었다. 그 후, 여러 번 밤늦게 방을 빠져나와 마당에 서 있었기 때문에 결국 며느리에게 발각되어, ‘어머니, 좀 이상해지신 것 같아요.’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태식이 그 이야기를 듣고, ‘형수님, 그런 바보 같은 짓 그만두고 교회에 나갑시다.’ 하고 권하며 성모상聖母像을 주었지만 듣지 않고, 마치 뭔가에 홀린 듯이 행동했다. 정말로 진지했던 것이다. 무엇에 빌고 있는지 왜 비는지 자신도 확실하게 몰랐다. 그래도 뭔가에 빌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정이었다. 그런 어느 날, 면에서 신붕神棚이 도착해서 봉0奉0했다. 면서기가 몇 번이나 신붕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지만 분녀는 정확히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모르면 모르는 대로 머리를 숙이고 손을 합장하고 있는 중에 점점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해져왔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분녀는 신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빌고 싶은 마음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분녀는 조석으로 신붕 앞에 앉았다. 특히 신붕에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의 영혼이 깃들여있다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는 천황의 선조이시고, 내 자식은 지금 천황을 위해 북지를 정벌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분녀는 뭔가 자랑스럽고 개운한 기분이 드는 모양이었다.
“이거면 됐어.” 뭐가 좋은 것인지 자신도 잘 모르지만, 이걸로 됐다며 바보처럼 중얼거리면서 신붕 앞을 떠나 물레를 들고 문 앞의 양지쪽으로 향했다. 당연히 손자와 강아지가 그 뒤를 따랐다. 양지에는 말뚝잠과 푸른 하늘과 아들의 환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을수가 가고 나서 두 번째의 봄이 찾아왔다. 요즈음에는 손자까지 분녀를 따라 손바닥을 문지르며 ‘무냐무냐’하는 엉터리 말을 중얼거리게 되었다. 그런 손자를 데리고 분녀는 들로 나갔다. 오랜 칩거에서 벗어나 밖으로 나와 보니 산도 강도 너무 산뜻했으며 손짓해서 부르는 것 같았다. 들판도 굉장히 넓게 느껴졌다. 몸이 쇠약해진 탓인지 그러한 자연 속으로 나오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봄이라 해도 언덕마루와 제방 밑에는 눈이 남아있고 논 주변에는 녹다 만 얼음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그런 눈과 얼음 아래에서는 벌써 새싹이 누렇게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검은 흙이 뭉게뭉게 논에 쌓여 풍만한 배를 보이며 널려있다. 찬 공기 중에 살짝 흙냄새가 섞여 있었다. 산기슭에도 제방 뒤에도 바구니를 옆에 낀 여자 아이들의 하얀 치마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겨울 동안 푸성귀에 굶주린 그녀들이 지금 희희낙락하며 쑥뿌리 등을 캐고 있는 것이다. 기분 탓인지 희미하게 아지랑이가 흔들리고 있다. ‘아, 봄이다’, 분녀는 소생한 듯한 기분이 들어서 미끌미끌한 진흙길을 밟으며 걸었다. 이제 곧 못자리를 준비해야 한다. 그 전에 당연히 한 번 더 논을 갈아두어야 한다. 춘경春耕이다. 그 춘경 전에 자신의 밭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분녀는 외출을 한 것이다. 논 한 가득 부풀어 오른 검고 찰진 땅을 분녀는 천천히 보고 싶었다.
언제부터 쫓아온 것인지 강아지가 자꾸 앞장서서 달려갔는데 버드나무 숲 사이로 들어가자 보이지 않았다. 숲을 빠져 나온 곳에 분녀의 밭이 있었다. 오랜만에 먼 길을 걸어온 탓인지 심한 피로감에 분녀는 가까스로 밭에 도착하자 둔덕에 선 채로 잠시 ‘후우’하며 숨을 토해냈다. 오두락五斗落의 수전水田은 이 지방에서는 상당히 넓은 편이었고 수리水利도 좋았다. 지반이 낮은 것이 오히려 수리를 너무 좋게 만들어서 이모작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상당히 0000해도 결국 이작裏作은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작년부터 밭 구석에 일간사방一間四方의 작은 못을 파 배수에 힘써보았지만 실패했다. 그래도 어떻게 해결을 하면 올해부터는 이모작이 가능할 것이다. 분녀는 그러한 일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천천히 밭을 일주했다. 그러고 나서 분녀는 버드나무 숲의 모래땅에서 손자와 강아지를 놀게 하고 자신도 잠시 쉬다가 다시 밭둔덕에 서서 보았다. 몇 번을 보아도 또 보고 싶은 밭이었다. 이 부근에 있는 어떤 밭보다 흙이 검고 좋아 보이는 이 밭을 산 것이 스물아홉 살 때였는지, 마흔 살 때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남편이 죽고 나서 십년 째이든가 구 년째임이 분명하다. 분녀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 일을 생각하면서 한 자리에 멈춰 선 채로 한참을 반들반들한 흙덩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흙덩어리 하나하나가 마치 자신의 아이들처럼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보였다. 아니, 그 흙덩어리 하나하나에 갑수와 을수의 환영이 출렁거리는 듯 했다. 결국에는 어느 것이 흙덩이고 어느 것이 자식의 얼굴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고 논 전체가 빙글빙글 아름다운 그림같이 돌면서 가벼운 현기증이 일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고 머리를 가로저으며 분녀는 근래의 버릇대로 지나온 많은 세월을 조용히 반추하였다. 꿈만 같다. 녹아들 것 같은 단맛이 몸속에 분비되면서 모래땅 쪽에서 ‘할머니, 할머니.’ 하고 손자가 부르고 있는 것도, 강아지가 치마에 달라붙어 장난을 치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꿈을 좇고 있었다. 꿈속에서 정말로 차를 탔을 때와 같은 쾌감을 느끼면서 분녀의 몸은 아래로 아래로 스르르 가라앉았다. 꿈을 간직한 채로 냉기를 피부로 느끼며 텀벙하고 물 속으로 머리를 묻었다.
분녀는 밭 구석에 있는 못池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겨우내 얼어 있던 못의 제방이 녹아 있었고 제방 밑에 수압으로 구멍이 생겨 있었다. 분녀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한참을 그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천천히 소리도 없이 무너졌기 때문에 분녀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물 속에 빠진 후였다. 가슴 한 가득 물을 마신 순간 분녀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허우적대면 허우적댈수록 진흙이 다리에 엉겨붙어 두세 번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 동안 기운이 다 빠진 것이다.
정말이지 거짓말 같은 익사였다.
근처에서 나물을 캐고 있던 여자 아이들이 달려와 분녀를 끌어올렸지만 넝마처럼 둑 위에 길게 누운 채로 죽어있었다. 그런데 부근에 있던 마을 사람이 뛰어 갔을 때 분녀는 조금 흙탕물을 토하고 숨을 쉬면서 뭔가 입 속에서 우물우물 거린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의식이 돌아와 “갑수 어디 있니, 갑수…… 을수에게…… 을수에게 알리지 마라. …… 걱정하니…….”라고 띄엄띄엄 말하고는 다시 뭐라고 했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급히 연락을 받은 태식이 가장 먼저 달려오고 뒤이어 갑수가 왔다. 하지만 갑수가 절룩거리며 버드나무 숲을 달려오고 있을 때 이미 분녀는 완전히 숨을 거두었다.
자신의 돌연한 죽음에 대해 전혀 놀라지 않은 듯한, 아무런 고통도 불안도 없는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자신의 밭의 제방이 상당히 기분 좋은 베개라도 되는 양 푹 머리를 걸치고, 귀 아래에는 방금 진흙 속에서 머리를 내민 듯한 황색의 풀 새싹이 깔려 있었다.
“마치 성모聖母같은 얼굴이다.” 태식은 낮게 중얼거리며 눈물을 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