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인은 현대 방직기술로 만든 옷을 입었다
아주 오랜 옛날, 이미 인류에게는 머리뼈(두개골)를 비롯한 외과수술 기술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중국, 이집트, 프랑스, 미국 등 세계 곳곳에 퍼져있다. 특히 남미에 많이 있고 아프리카에서도 이미 5000년 전 머리뼈 수술을 한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유럽에서 발견된, 수술로 인한 구멍이 있는 머리뼈
4000년 전 머리뼈 수술한 30대 청년
2002년 영국 템즈강 언덕에서 수술 흔적이 있는 머리뼈가 발견됐다. 40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뼈 주인의 당시 나이는 30세 전후로 보인다.
수술 구멍의 크기는 4.5×3㎝였고 뼈를 잘라낸 표시가 있었다. 수술 후 뼈가 자란 흔적으로 보아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영국 유적전문가 메이스(Simon Mays)는 트리패닝(Trepanning)이라 부르는 이 의술이 선사시대 여러 곳에서 행해진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고대 인디언의 머리뼈 수술
1925년 미시간대학 힌스대일(HinsDale) 교수는 인디언 무덤에서 무더기로 출토된 청동기 시대 유물 속에서 명확하게 수술한 흔적이 있는 머리뼈를 발견했다. 이후 이 머리뼈 주인은 빙하기에 중국에서 알라스카를 거쳐 아메리카로 건너온 사람이라고 밝혀졌다.
중국 5000년 전 머리뼈 수술
중국 산동 고고문물연구소는 대민구(大汶口) 문화유적지에서 5000년 전 것인 성인남성 머리뼈를 발굴했다. 우측 정수리 뒷부분에는 지름 3.1×2.5㎝의 구멍이 매끈하고도 균일하게 나 있었다. X선과 CT촬영으로 3차원 영상을 복원한 결과, 이 구멍은 예리한 공구로 자른 것이었다.
중국고고학회 부이사장인 엄문명 북경대학 교수는 “묘지에 나무관과 부장품이 있는 것으로 보아 머리뼈 주인은 정상적으로 매장됐고 수술 후 오랫동안 살았다”라고 설명했다.
북경고궁박문관장 장충배 교수는 “이렇게 성공적으로 시행된 정밀한 외과수술은 선인들의 뛰어난 지혜와 창의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야의 치의술
1929년 7월 28일자 사이언스(Science)지에는 ‘천연 황철광으로 이(齒)를 만들었던 마야문명’에 대한 영국 고고답사팀의 보고서가 소개됐다. 답사팀은 ‘소의 산(牛山)’을 뜻하는 찌민 캑스(Tzimin Cax) 마야 유적지 내 묘지에서 도자기들과 함께 황철광으로 만든 두 개의 이를 찾았다. 이를 통해 마야인의 치의술은 현대에 견줄만할 수준이었음이 확인됐다.
2000년 전 전지
독일 고고학자 코니히(Wilhelm Konig)는 1938년 바그다드 교외 ‘쿠주 라부(Khujut Rabu)’ 철도공사장에서 공업용 전지를 발견했다. 그는 2년 뒤 발표한 논문에서 이것이 현대의 전지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논문은 당시 발발한 2차 대전으로 세간에 묻혀버렸다.
그러다 매사추세츠의 젊은 과학자 그레이(Willard F. M. Gray)가 이 전지를 복제해 약 2볼트의 전압을 얻은 실험 결과를 발표하면서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전지는 기원전 250~224년 오늘날의 이란 북동부 쪽 파르티아인(Parthians)이 제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들은 길이 10.16㎝, 지름 2.54㎝의 작은 원통에 6:4 비율의 주석과 아연 합금으로 얇은 구리판을 땜질하여 붙였다. 이것은 현존하는 합금기술 중 가장 좋은 것이다.
그레이는, 파르티아 전지에 어떤 전해질이 사용됐는지 확실히 밝히지 못했지만 고대에 초산이나 구연산이 많은 것으로 미루어 이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2만 7천 년 전의 방직기술
미국의 한 고고학자는 수렵생활을 했다고 믿는 2만 7천 년 전 구석기 시대에 방직기술로 만든 모자, 의복, 바구니, 망 등이 있었다는 증거를 찾았다고 밝혔다. 현재 고고학계는 인류의 방직기술이 약 5000~10,000년 전 농업문명에 진입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의 소퍼(Olga Soffer ) 박사와 동료들은 체코 국경에서 찾은 90여개 구석기 시대의 도자기 파편 속에서 방직물의 흔적을 찾았는데 방직물에는 현대 직물조직인 평직·능직·수자직의 삼원조직이 있었다. 이것은 2만 7천년 전 인류가 현대에 버금가는 방직기술로 옷을 만들어 입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