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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俗離山1057m)
文殊峰 支稜線에서 바라본 文藏臺 全景
국립공원 속리산은 이름 그대로 속세를 떠난 은둔의 산이다. 이와 같은 이름을 갖게 된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근거가 없어 거론할 가치가 없다. 다만 정상 천황봉 서쪽 은폭(隱瀑)에서 유래된 듯하고 고운최치원의 시에서 속리산이라 한 것으로 봐서 삼국시대 때부터 불려 지게된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 아홉 봉우리가 있어 구봉산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문장대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뻗은 암릉은 가히 절경을 이루고 갈령에서 시작하여 형제봉 천황봉 비로봉 입석대 신선대 문장대 관음봉 묘봉 상학봉을 거처 운흥리까지 종주를 하려면 건각들도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도 하루해가 모자란다. 동쪽의 경북상주와 서쪽 충북 보은의 경계가 된다. 정상 천왕봉과 문장대의 지번이 상주로 되어있으나 보은 쪽에 고찰 법주사와 정이품송이 있어 서울 등 수도권에서 이산을 찾을 때 보은 쪽에서 진입하므로 흔히 보은 속리산이라 한다. 정치권력 주변에서 아귀다툼하는 모습들을 눈뜨고 볼 수 없어 수다한 선비들이 이 산 내속리로 찾아들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동래성을 함락하고 상주를 거처 문경새재를 넘어 충주로 향할 때 상주사람들은 난리를 피해 속리산에 몸을 숨겼고, 이때 뒤는 산이요 앞은 들판이라 굶주리지 않는 곳 이상향 우복동(牛腹洞)이 되었다. 그밖에도 갖가지 사연으로 용화세계 등 이상향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속리산 이상상화북 등지로 찾아 들었다. 지금은 등산 또는 관광 목적으로 속리산은 항시 붐비고 있다.
世俗을 떠난 山에서 世上 시름도 잊었노라
長角洞口 入口에 있는 長角瀑布와 金蘭亭
09시50분 오늘산행 들머리 장각동 계곡입구 장각폭포 주차장이다. 속리산정상 천왕봉에서 수다한 담소를 이루며 흘러내린 옥 같은 계곡물은 계곡 입구에서 폭포를 이루었으니 시어동(侍御洞) 오송폭포(五松瀑布)와 더불어 속리산 양대 폭포의 하나인 장각동구(長角洞口)의 장각폭포(長角瀑布)다. 폭포 소리는 거문고 타는 소리 같고, 약 6m 높이에서 내리치는 폭포소리는 마치 우레와 같아 범종소리에 비길 만하다. 금란정은 주역에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는 말을 하면 그 향기가 마치 난의 향기처럼 향기롭다는 뜻, 여기 아래 위 두 마을 사람들이 마음을 합해 폭포위에 하나의 정자를 세웠으니 그 뜻은 향기를 발하는 금란(金蘭)과 같아 이름하여 금란정(金蘭亭)이다. 이곳은 사극 <무인지대>와 <불멸의 이순신> 그리고 영화 <낭만자객>의 촬영 장소가 되기도 했다.
10분간의 폭포 탐승을 마치고 산행을 시작했다. 장각 폭포에서 천왕봉까지는 5,2km이다. 여기서 계곡을 따라 도로가 끝나는 윗마을 민가까지는 약1,2km이다. 해마다 한 두 차례는 찾는 속리산, 이 길은 처음은 아니나 15년이나 지났으니 무척 오랜만이다. 내가 사는 곳은 이미 매화, 산수유, 개나리, 목련이 만개하여 봄꽃으로 장식되었는데 여기는 아직 봄은 일러 계곡 그늘진 곳에는 쌓인 눈이 그대로 있어 겨울 분위기다. 도로를 따라 상오리 7층 석탑(上吾里 七層石塔 보물 제683호)을 지나고 도로가 끝나는 마지막 민가 대문 앞에서 본격적으로 산길로 접어들었다. 장각동천(長角洞川)을 따라 오르면서 그늘진 곳에 쌓인 눈을 보고 맑은 계곡 물을 보노라니 긴 뿔은 사슴뿔과도 같은지라 문득 노천명 시인의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 사습 발을 씻는다.”라는 시구가 생각났다.
天王峰 헬기장에서 본 天王峰 頂上部
비탈길을 힘들여 올라 11시40분 백두대간 상에 있는 속리산정상 천왕봉(天王峰1057.7m)이다, 몇 해 전까지 천황봉(天皇峰)으로 불렀으나 일제의 잔재라 해서 천왕봉(天王峰)으로 고처 부르게 되었다. 일찍이 동국여지승람에 천황봉에 천황사라는 사당을 두어 산신제를 지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밀양의 천황산도 일제의 잔재라 해서 재약산에 편입시키고 있다. 천황이라 하면 무조건 일제의 천황만을 생각하는 식민근성은 아직도 곳곳에서 발휘되고 있다.
天王峰에서 내려다 본 九屛山(정면)과 삼가저수지(오른쪽) 長角洞 溪谷(왼쪽)
천왕봉은 멀리서 보면 속리산에 있는 다른 봉우리들과 달리 잡목이 덮여 인기는 없지만 정상은 바위라 사방으로 조망이 탁 트인다. 이곳 동남쪽 계곡으로 5,2km를 내려가면 상오리에 멋진 장각폭포가 있고 서쪽계곡 아래 은폭(隱瀑;숨은 폭포)을 지나 내려가면 법주사가 있다. 남으로는 속칭 충북 알프스라 불리는 구병산(九屛山877m)이 건너다보인다. 천왕봉과 구병산 사이 삼가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산간 마을에는 옛적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난리 때에 난리를 피해 숨어든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어 상주 화북사람들이 자신들이 사는 곳을 우복동 이라하는 것 같이 이 골짝 구병리, 삼가리, 만수리 대목리의 주민들도 자신들이 사는 곳을 자칭 속리산의 우복동이라 칭한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운 이때에 세상 사람과 씨름하기 싫은 사람들이 들어 와 살만한 산간마을로 알려지고 있다. 북으로는 속리산 연봉들이 능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조선영조 때 시인 백하 황번노(白下 黃磻老)선생은 천왕봉을 이렇게 노래했다.
天王峰(천왕봉)
第一高揷九天 (제일고삽구천) 제일 높은 봉우리 하늘을 뚫었고
塵寰回首却恾然 (진환회수각망연) 뒤 돌아보니 티끌세상 아득하기만 한데
斷雲欲雨留空碧 (단운욕우유공벽) 비에 젖은 구름은 끝없이 푸른 하늘에 머물고
元氣無積太玄 (원기무적태현) 바람 없는 원기만이 검은 하늘에 쌓였구나!
俗離山의 岩稜
천왕봉에서 속리산 주능선 3,4km 거리의 문장대로 향한다. 천왕봉에서 내려와 헬기장에 이정표가 있는데 대개사람들은 200m 거리를 포함하지 않고 3,2km 거리라고 이야기한다. 정상으로부터 빙판길을 엉금엉금 내려와 석문삼거리다. 직진하면 문장대로 가고 서쪽 아래로 내려가면 은폭동 계곡 은폭(隱瀑;숨은 폭포)을 지나 법주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천왕봉에서 법주사까지 5,7km 거리다. 은폭(隱瀑)은 상환암(上歡庵) 맞은편 계곡가에 있다. 계곡수가 반석을 타고 흐르는 이곳에서 세조가 목욕했다는 학소대(鶴巢臺)가 있고, 숨은 폭포는 학소대 아래 바위 속에 숨어 폭포소리만 들릴 뿐 보이지 않게 흘러내린다. 사람들이 지나 다녀도 그냥 지나치기 쉬운 숨은 폭포라 해서 이 폭포를 은폭이라 칭한다. 이곳에는 조선 태조, 세종, 세조 등 3왕이 왕림했다는 설이 있다. 옛적에는 워낙 한적한 곳이라 임금님이 벌거벗고 목욕을 했을 터이나 소문낸 사람이 없다. 나는 오늘 문장대로 가야하기에 은폭을 들리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한편의 시로 대신한다.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1607~1689)선생은 이 숨은 폭포와 나눈 무언의 대화를 시로 남겼다. 이 시의 전반부는 질문 형식이고 후반부는 이유를 듣는 형식이다.
隱瀑(은폭)
洋洋爾水性 (양양이수성) 물이란 원래 찰찰 흐르는 것이련만
何事石中鳴 (하사석중명) 너는 어찌하여 이 돌 속에서 우는가?
恐濯塵人足 (공탁진인족) 두려운 건 더러운 사람들 발 씻길 일이라서
藏踪但流聲 (장종단류성) 모습을 감춘 채 다만 흐르는 소리만 낸다네.
毘盧峰을 거처 文藏臺로 가는登山路에 있는 石門
석문 삼거리를 지나 곧장 석문(石門)이다. 이 석문은 지리산 천왕봉 통천문이나 월출산 통천문 보다 잘 생겼다. 석문을 지나 오르막길을 오르고 바위 봉우리를 돌아 또다시 질펀한 산죽 길을 오른다. 이어 첫 번째 만나는 비경지대를 지나 비로봉(毘盧峰1025m)이다. 비로봉 서쪽 바위더미 아래에 상고암이 있다. 상고암(上庫庵)은 법주사의 부속암자이지만 법주사를 지을 때 이곳에서 벌채한 목재를 보관 관리해 오던 암자였다니 엄밀히 따지면 법주사의 산실이라 하겠다. 상고암 전망대는 문장대에서 입석대까지 내 속리의 비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첫 번째 만나는 毘盧峰 남쪽 風景
비로봉은 대개 오대산 정상 비로봉, 소백산 정상 비로봉, 치악산 정상 비로봉 등과 같이 그 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붙여진다. 그런데 속리산 비로봉은 이산에서 높이 3위에 해당한다. 여기서 바라보이는 입석대, 신선대, 문수봉등 비경들을 감상하노라니 좀 더 머무르고 싶은 곳, 속세를 떠난 산에서 세상사 바람처럼 사라진다. 그러나 어찌하랴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나야할 이 몸, 나 또한 나그네가 아닌가? 이를 알고 일찍이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선생이 말했다던가?道不遠人 人遠道(도불원인 인원도; 도는 사람을 멀리 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하고) 山非離俗 俗離山(산비이속 속리산;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으나 속세는 산을 떠나는 구나)했겠다.
가까이서 본 立石臺의 立石
미로 같은 바위 사이 길을 돌고 돌아서 거대한 바위가 비석처럼 서 있는 곳, 입석대(立石臺)다. 사람들은 흔히들 임경업장군이 도술을 부려 세웠다고 이야기하는 바위다. 겨울산행에서 첫째는 설경이고 그 다음은 속리산처럼 바위가 많은 산에서 나뭇잎이 피기 전 속살을 드러내는 이때에 암골미(岩骨美)를 감상하는 것이다.
입석대를 돌아 오른 고개에서 뒤돌아보면 비로봉과 입석대의 멋진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개에서 내려서 신선대에 이르기 전에 서쪽 아래로 철계단이 보이는 길로 내려서면 0.4km거리에 있는 경업대(慶業臺)와 세심정(洗心亭)을 거처 법주사로 내려가는 길이 통한다. 지금의 관음암 자리 토굴에서 충주출신 임경업(林慶業1594~1646)장군이 무예를 연마했던 곳, 속리산 바위 돌처럼 그의 기개는 하늘을 치솟았다. 오늘은 시간관계상 그냥 지나치는 대신 장군이 남긴 용천검이란 한시 한수를 음미해 본다.
龍泉劍(용천검)
三尺龍泉 萬卷書 (삼척용천 만권서) 석자 용천검(龍泉劍)은 만권(萬卷)의 서적(書籍)과 같네
皇天生我 意何如 (황천생아 의하여) 하늘이 나를 냄은 어인 뜻인가
山東宰相 山西將 (산동재상 산서장) 산동(山東)에 재상(宰相)나고 산서(山西)에 장수(將帥) 난다는데
彼丈夫兮 我丈夫 (피장부혜 아장부) 저들이 대장부(大丈夫)면 나 또한 대장부(大丈夫)가 아니더냐?
神仙臺의 風景
文殊峰의 風景
신선대 휴게소다. 구름도 쉬어가고 바람도 쉬어가는 곳 나 또한 여기서 잠시 쉬어 갔다. 주변경관이 좋은 신선대휴게소 마당바위는 조망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신선이 놀다간 자리에 오늘 내가 있었다. 오늘은 예상 밖에 사람이 많지 않아 사람으로 인해서 지체되는 일은 없었다. 여기에 와보니 주막이어서 막걸리로 갈증을 풀며 휴식을 취하는 산꾼들로 북적인다. 이곳을 떠나 청법대를 지나서 문수봉에 올라서니 문장대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동쪽 길로 접어들어 30m 쯤 가면 문장대 전경과 화북 속리산의 풍경이 시원하게 조망되는 곳이 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치거나 힘들어서 그냥 지나친다.
가까이서 본 文藏臺
문장대(文藏臺1054m)대다. 14시10분 천왕봉을 떠 난지 3,4km 거리 2시간20분만에 도착했다. 전에는 통상 1시간 30분 정도 걸렸는데 오늘은 하산 길에 속도를 내기로 하고 이 구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었다. 문장대에 올라 천하를 굽어본다. 답답한 가슴이 뻥 뚫어지니 기가 통하는 것 같다. 눈이 닿는 데까지 볼 수 있다. 일기예보에 내일은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했다. 오늘은 흐린 날씨인데도 동 북방 저 멀리에 동서로 두 개의 선유동계곡을 거느린 대야산(大耶山)을 비롯하여, 택리지를 쓴 청화산인 청담 이중환(靑潭 李重煥1690~1752)이 사랑했던 청화산(靑華山), 백악산(白岳山) 등 백두대간의 산들이 구슬을 꽨 듯이 한 줄로 이어진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남으로 정상 천황봉까지 3.4km의 암릉이 이어지고 서북으로 가까이 가봐야 알 수 있는 속리산의 숨은 비경 관음봉(觀音峰), 묘봉(妙峰),상학봉(上鶴峰)등의 암릉이 내려다보인다.
문장대는 속리산에서 중심에 위치한 제일의 명소이다. 해발고도가 표시된 지도가 나오기 이전에 사람들은 문장대가 속리산의 최고봉으로 알았을 것이다. 지금도 지도를 보지 못한 일반 관광객들은 속리산 정상으로 알고 다녀간 사람들도 없질 않겠다. 문장대는 정상인 천왕봉(天王峰1057,7m)보다 인기가 많아 이곳에 집중적으로 사람들이 몰린다. 이름 있는 곳일수록 대개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서 이름 있는 사람을 끌어들여 이야기를 합리화 시킨다. 신라시대의 고찰들은 크건 작건 의례히 원효(元曉617~686)가 아니면 의상(義湘625~702)이 창건했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원효는 승려이지 목수가 아니다. 원효가 지었다는 절을 모두 합하면 원효의 나이보다 많으니 일 년에 절을 하나씩 지어도 평생 못다 지을 숫자다.
세조는 왕위에 오른 후 악성 피부병으로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할 정도로 괴로워 했을 것으로 보인다. 전국의 명의들을 다 불러대도 소용없자 피부병치료차 물 좋다는 속리산 삼파수(三波水)를 찾아온 것이다. 와서 보니 문장대 꼭대기 웅덩이에 용출수가 아닌 이슬방울이 굴러들어 저장된 감로수(甘露水)가 있어 이물을 마시고 바르면 낫는다는 말을 듣고 문장대에 올랐다는 설도 있다. 세조는 어린조카 단종의 왕권을 찬탈하고 왕위에 올랐다. 사육신과 생육신을 발생케 한 악한 마음을 몸속에 품었으니 몸 자루도 상하기 마련이다. 좋은 음식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마음을 먹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을 게다. 문장대도 이와 관련 세조를 끌여 들인 것 같다.
文藏臺 북쪽의 觀音峰과 龍華라는 別稱을 가진 文藏臺 溫泉地區
문장대 정상에는 사람이 들어가 목욕욕해도 좋을 만큼 큰 물구덩이가 여럿 있고 조망은 거칠 것이 없다. 주변 경치도 좋아 당대의 시인 묵객들이 찾아 들어 자신의 식견을 토론하고 발표하기도 했지만, 이따금 고을의 벼슬아치들이 악정을 일삼으면서 정작 자신은 여기 와서 술이 취해 놀아나는 행태를 보고 백호선생은 자신이 신선으로 변장해 골탕을 먹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술병을 들고 따라온 아이 앞에서 술(戌)이 되어 개(犬) 같은 기괴한 행동을 하는 벼슬아치 그 남자를 보고 백호 임제(白湖 林悌1549~1587)선생은 문장대 진풍경을 이렇게 시로 읊었다.
紫朱帶妙少年 (자주대묘소년) 자주 빛 띠 두른 소년과
眞世間奇男子 (진세간기남자) 참 세간의 기이한 남자가
一杯相送罷 (일배상송파) 한잔 술 마시고 헤어지니
俗離山雲萬里 (속리산운만리) 속리산에 구름만 멀리 뻗쳤구나!
水半 漁半 金剛溪谷 下流의 물고기들의 遊泳
문장대에서 내려와 이제 하산이다. 냉천골을 따라 내려오다가 다시 능선을 하나 넘어 금강골 세심정 휴게소다. 세상 민심에 오염된 사람들 마음을 씻어가는 정자다. 하지만 요즘은 속리산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주막에 불과하다. 여기는 문장대 신선대 천왕봉 등지로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늘 북적이는 곳인데 다들 봄 마중 갔는지 오늘은 놀라울 정도로 한산하다. 도로를 따라 속도를 내 본다. 저수지가 시작되는 곳 다리위에 사람들이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갈 길이 바쁜 나도 걸음을 멈추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내려다본다. 어릴 적 물장구치고 가재 잡던 그때 보던 그 모습 요즘은 보기 드문 그런 광경이다. 반세기 전 초등 동창을 만난 기분이다. 과연 어반수반(漁半水半)이다.
墜來岩에서 바라본 法住寺 全景
법주사(法住寺)다 호서제일가람 신라고찰로 이 절의 명물은 수정봉(水晶峰489,5m)정상에 있던 바위로 몸집이 커서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하자 신선이 걷어차서 굴러 떨어져 내려왔다는 전설을 가진 추래암 (墜來巖)을 비롯하여, 부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그린 팔상도를 봉안한 5층 목조탑인 팔상전(八相殿 국보 제55호)등 여러 문화재가 있다.
唯一하게 벼슬을 한 正二品 松
법주사를 나와 오리(五里)숲 길을 걸어 나오면 법주사 매표소가 있다. 국립공원은 입장료가 폐지 된지 오래다. 그러나 대개의 사찰에서는 문화재 관람료라는 이름으로 일반 등산객에까지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다. 일반 관광객이 아닌 문화재 관람과는 관계없는 등산객에게는 통행료에 해당된다. 징수한 금액을 어디에 어떻게 쓰여 졌는지 공개해 본적이 있나? 문화재 관람료 관리는 제대로 하는가? 묻고 싶다. 속세를 떠난 산에서 산 아래에서는 여전히 돈 노름이다. 속리산산행을 할 때는 상주 쪽에서 진입하면 입장료가 없으나 보은 쪽에서 들어가면 법주사에서 고액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 매표소를 지나 16시20분 주차장이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속리산 입구에 있는 정이품송(正二品松;천연기념물 제103호)을 관람할 예정이다.
2013년 3월16일 토요일 흐림
첫댓글 깔끔한 산 사진 ,, 구경 잘 했습니다.
대체적으로 산속은 아직은 봄을 기다리는 중인데,,
금강계곡의 물고기 떼는 맹춘을 즐기는군요.
정이품 영감님은 오늘도 무탈강건 하시네요.
덕분에 옛 기억이 새롭습니다. 감사합니다 ^^*
거촌선생님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이 자리에서 뵙게 되는군요.
산에는 봄이 일러 겨울 풍경입니다.
때문에 사진이 흑백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감사합니다.
삼십이년전..
젊은 남녀가 손잡고 문장대를 오른적이 있어지요.
신혼여행을 배낭메고..
참 오랜만에 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님께서는 속리산이 참으로 역사적인 산이네요.
다시금 그때 뜨거웠던 첫 사랑을 회복하려면 문장대로 가셔야 겠습니다.
봄 가을이 좋은데 기회를 마련하시기를 바랍니다.
아! 옛날이여! 콧 노래를 부르시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