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영화 <아이 엠 샘>은 부녀의 두터운 사랑을 그리고 있다. 7살 수준의 지적 능력에 머물러 버린, 장애를 가진 샘은 목숨과도 같은 딸 루시만은 정상인 이상으로 사랑하는 자애로운 아빠이다. 어느 순간, 아빠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지만, 아빠의 무조건적인 사랑 속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루시.
외출공포증으로 집안에서 피아노만 연주하는 이웃집 애니와 샘과 같은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밝은 친구 이프티와 로버트 같은 주변의 따뜻하고 친절한 도움이 없었다면 루시가 그렇게 건강하고 밝게 자라기 힘들었을 것이다. 수요일에는 레스토랑에, 목요일에는 비디오 나이트에, 금요일에는 노래방에 함께 다니는 것이 이들 부녀의 작은 행복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정상적이지 못하지만 그들은 가장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하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루시가 7살이 되면서 아빠의 지능을 추월해버리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학교 수업을 일부러 게을리 하게되고, 이로 인해 사회복지기관에서 샘의 가정을 방문한다. 그리고 샘은 아빠로서 양육 능력이 없다는 선고를 받게 된다. 결국 루시는 시설로 옮겨지고, 샘은 주 2회의 면회만을 허락 받게 된다.
자신의 전부인 루시를 잃은 샘은 유능한 변호사를 물색하던 중 리타를 찾게 되지만, 그녀는 냉정한 출세지상주의자. 동료들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무료 변호를 맡게 된 리타는 샘과의 만남이 거듭될수록 오히려 구원받고 있는 것은 자신이라는 사실과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리타는 지적인 어머니이자 아내이며, 물질적 풍요를 보장할 만큼 사회적으로도 성공했다. 하지만 그녀는 바쁜 일과로 아들과 소통하는 법을 잊었고 남편은 다른 여자와바람났다.
극단적인 두 가정의 대비는 아동의 복지는 부모의 물질적 풍요나 지적인 능력이아니라 그들에 대한 사랑에서 보장된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리타와 샘, 그리고 그의 친구들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루시는 위탁가정에 맡겨지게 된다.
그러나 샘과 루시의 눈물겨운 부정에 감동한 양모는 루시의 양육권을 포기하고 루시는 샘의 품으로 돌아간다.
①사회복지사의 개입
루시의 학업능력 저하의 원인은 분명 샘에게 있지만 샘이 루시에게 있어 정서적 측면에서의 영향력을 무시하고 또 그의 장애정도를 재대로 평가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흑인 여자로 등장하는 사회복지사는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 부녀를 떼어놓는 악녀? 로 등장하는 핵심 인물인 셈이다. 샘은 충분히 훈련 가능정도의 장애로 훈련과 교육을 통해서 루시에겐 무엇이 필요하며 어떻게 해 주어야 한다는걸 가르친다면 루시와 굳이 떼어놓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것은 샘이 루시를 보호기관에 빼앗겼을 때 스스로 변호사 사무실까지 찾아가지 않았는가? 샘이 루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면, 또 주위에서 도움을 조금만 줄 수 있다면 충분히 양육할수 있는 환경이라 생각된다. 여기서 사회복지사의 개입은 샘을 정기적으로 교육하고 훈련시키며 루시에 대해 관찰하고 루시의 성장에 따라 적절한 도움을 줄수 있는 도우미 역할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②정부의 개입
=UN총회의 정신지체인 권리 선언의 전문이다.=
제 1 조 정신지체인은 국민으로서 일반 시민과 동등한 기본적 권리를 가진다.
제 2 조 정신지체인은 그 상태가 아무리 심하다 할지라도 그의 능력과 소질이 최대한 개발 될 수 있 도록 적절한 의학적 조치와 교육훈련, 직업보도 등 삶을 위한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
제 3 조 정신지체인은 안정된 경제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또한, 생산적이며 뜻있는 직업에 종사할 권리가 있다.
제 4 조 정신지체인은 가족들과 함께 살 권리가 있다. 또한, 모든 사회생활에 참가하여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만일 시설에서의 양호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그 시설은 최 대한 가정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제 5 조 정신지체인은 행복을 위해 협조받을 개인적인 보호자를 가질 권리가 있다. 그러나 직접 정 신지체인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은 이런 보호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제 6 조 정신지체인은 비난과 멸시와 소외를 당해서는 안될 권리가 있다. 만일 고소를 당한다면 그 의 특수한 상태를 충분히 인정하여 공정한 재판을 받게 해야 한다.
제 7 조 정신지체인 중에는 장애가 너무 심해서 그들의 모든 권리를 자신의 뜻있는 대로 행사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들을 위해서는 그의 사회적응능력에 대한 전문가의 평가를 정규적으로 받아야 하고 법률가의 자문을 받아야 한다.
위의 내용으로 보면 정신지체인은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일반 시민과 구별하지 않고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다. 영화에서 법원은 샘의 직업과 보수는 루시를 교육할 능력에 못 미친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그것은 샘을 일반 사람과 동등 취급한 것이라 본다. 2조와 3조에서 살펴보면 그들은 교육과 직업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안정된 경제생활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고 정하고 있다. 이것은 국가적인 제도적 장치와 시설적으로 그들에게 생활권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경제능력을 이유로 자녀를 사회기관이나 양부모에게 떠넘기는 것은 불합리하며, 또한 6조에서 특수한 상태를 인정하여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③위탁부모의 개입
대안가정은 가정을 상실한 아동에게 친가정을 대신해서 아동을 보호 양육하는 가정을 일컫는데 사전적 의미로는 '대리가정'이라 함이 더 적합하다고 한다.
대안가정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그 형태는 입양가정, 위탁가정, 소규모 그룹홈 등이 대안가정에 속할 수 있다.
가정위탁은 보호자(부모)의 동의 하에 일시적으로 일정기간 동안 아동을 보호 양육한다는 점에서 입양과는 구별되며 입양이 주는 심리적 부담보단 덜하겠지만 위탁된 아동을 양육하는 동안은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보살피게 되므로 순간적인 감정으로 뛰어들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위탁아동은 부모의 이혼, 가출, 학대, 방임, 유기, 빈곤 등으로 인해 가정이 붕괴되어 더 이상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을 수 없거나 일시적으로 부모를 대신해서 보살펴줄 가정이 필요한 아동이다.
우선 위탁부모와 양부모는 차이가 있다. 위에서 말했듯 양부모는 완전히 입양된 것을 말하며, 위탁부모는 일시적으로 보호해주어 시설에 맡겨지는 것을 줄이고자 하는 목적도 큰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루시가 양부모에게 입양되는 것인지 위탁부모에게 일시적 양육권만 주어지는 것인지 확실하게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위탁부모에게 맡겨진다고 가정하에 개입하여 보자.
우선 공공기관이나 시설에 맡겨지는 것보다는 훨씬 긍정적 측면이 많다고 생각하고 또 실제 결과도 그런 측면이 많다는 사실을 인터넷을 통해 사례를 많이 보았다.
또 위탁부모의 자격조건 또한 쉽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 보건복지부가 권고하는 대안가정의 조건(우리나라)-
1. 부모의 나이가 30˜55세인 가정
2. 부모 양쪽 모두 고졸 이상인 가정
3. 정기적인 수입원이 있는 가정
4. 정상적인 혼인관계로 자녀 양육의 경험이 있는 가정
(또는 자녀가 없는 부부가 아이 양육을 경험하고자 하는 가정)
5. 친자녀의 수가 위탁아동과 합해 4명을 초과하지 않는 가정
6. 가족에게 범죄, 가족폭력, 아동학대, 알콜, 약물중독 등이 없을 것
7. 친자녀와 위탁아동의 연령 및 성별에 따라 별도의 방을 제공할 수 있는 가정
8. 모든 가족원이 아동위탁에 찬성한 가정
9. 아이를 사랑하고 따뜻하게 보살펴줄 수 있는 가정
10. 대안가정 부모교육 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가정
우리나라의 경우 위와같은 조건을 갖추어야 위탁가정의 자격이 된다. 그래서 불행하고 더 이상 양육을 지탱시킬수 없는 상황의 가정이라면 위탁가정은 보호받지 못하는 아동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더 이상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처음에는 아이가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과정을 많이 겪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지만, 위탁부모들이 정기적으로 교육을 받고 사랑으로 보살펴 성공한 사례도 많이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더 이상 양육을 지탱할 수 없고 보호받지 못하는 아동에게 적절한 보호제도인 것이다.
위탁가정의 집근처로 이사온 샘을 매일밤, 창을 넘어 찾아가는 루시. 샘의 경우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사랑과 가족, 부모라는 최우선의 전제를 뒤로 미루고 장애부모라는 편입견과 경제적 지원받지 못하는 장애가족이라는 이유로 위탁을 쉽게 결정 내릴수 있을까?
꼭 극단적으로 위탁가정, 보호시설, 방치하는 것 중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 영화의 결말은 위탁부모가 양육권을 포기하여 결국에 루시는 사랑하는 아빠의 품으로 돌아간다. 마지막 장면은 루시와 샘이 야구를 하고 위탁부모와 변호사, 샘의 친구들의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어쩌면 영화를 만든 사람이 내린 결론이 아닐까 싶은데, 정상에서 조금 벗어난다고 해서 비정상적인 것이라 판단하여 보호한답시고 누구에겐가 떠넘겨 버리는 식의 쉬운 해결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사랑을 갖고, 편견을 버리고 장애를 가진 그들과 이웃이 되어 서로 보살펴 줄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것같다.